개 풀 뜯어먹는 소리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속담과 비슷하게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가 그것인데 둘 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이 엉뚱한 행동인 것처럼, 개가 풀을 뜯어 먹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전제가 포함돼 있는데요. 하지만 그 말은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와 같은 잘못된 상식에서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 사자 같은 육식 동물이나 개는 풀을 먹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초원에서 많은 육식 동물이 풀을 뜯어먹는 장면이 관찰됐지요. 여기에 대해 육식만 하는 동물들이 부족한 영양분을 풀에서 섭취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는데요. 하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의 경우에는 영양분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속이 좋지 않거나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 풀을 뜯어먹는다고 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구토제인 셈입니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원래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다는 의미지만, 알고 보면 개도 풀을 뜯어먹고 그러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속담이나 관용어구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틀린 말이 되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요? 언젠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담은 동영상이 올라온 것을 보았는데, 보자마자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개 두 마리가 채소를 맛있게 뜯어 먹고 있고, 그 소리는 ‘아삭아삭’ 했습니다.
이에 비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그다지 맛있는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씨나락’은 사투리로 벼의 종자입니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처럼 이치와 소용에 닿지 않는 말을 뜻하기도 하지만, 남이 알아듣지 못하게 우물우물 말하거나 소곤거리는 소리를 지적할 때도 쓰는데요. 아닌 게 아니라 씨나락을 아무리 맛있게 먹는다 한들 우물우물 먹을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렇잖으면 입 밖으로 다 튀어 나올 테니까요.
씨나락은 어떤 경우에도 그렇게 먹어 치우면 안 되는 것입니다. 농부들에게 씨나락은 가장 중요한 재산이며 이것이 있어야 내년에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당장 배가 고프다고 씨나락까지 다 먹어버리면 내년 농사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이렇게 중요한 씨나락을 귀신이 까먹어 버린다면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어이없을까요. 그처럼 실속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농부의 열심과 무관하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봄에 씨나락을 못자리판에 뿌렸는데 제대로 발아가 되지 않을 때지요. 이유를 도무지 찾아낼 수 없었던 농부들이 말했습니다.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조건과 환경이 맞아 떨어졌고 열심까지 더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엔 더 이상 골머리를 앓기보다 이렇게 내뱉고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겠지요.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었다.”
사람들은 흔히 동물들의 먹이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가령 토끼는 물을 안 먹어도 된다느니, 붕어는 주는 대로 먹어 배가 터져 죽는다느니 하는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착각은 육식 동물들은 오직 육식만을, 초식 동물들은 오직 초식만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초식동물은 초식을 위주로 할 뿐이고 육식동물은 주로 육식을 위주로 먹을 뿐이다. 사실 육. 초식동물로 규정짓는 방법은 학문적인 편리함 때문이지 결코 진리는 될 수 없는 말이다. 한때 초식이었던 비둘기도 도시로 내려오면서부터는 아무거나 먹어댄다. 조상이 늑대였던 개들의 경우는 이미 잡식동물로 불리고 있다. 이렇듯 환경에 따라서도 식이습관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동물들의 먹이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은 사냥꾼들의 허풍이나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려고 했던 소리들이 와전되어 고착화 된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적인 사고방식이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황우석 박사 사건처럼 비판이 수용되지 않는 사회는 흔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쉬워진다. 특히 생물학에서는 그들이 진화하는 만큼 학문도 진화를 거듭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몇 가지 예를 통해서 우리가 착각하거나 잘못 알기 쉬운 동물들의 식이습관을 알아보겠다.
원숭이는 잡식 동물이다?
아니다. 원숭이는 초식에 훨씬 가까운 동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를 탈출하여 산에서만 5년을 산 일본 원숭이를 조사한 적이 있는 데, 주로 나뭇잎과 나무 열매만 먹고도 아주 건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유인원인 고릴라나 오랑우탄은 거의 완전한 초식위주의 동물이고(‘킹콩’ 영화에서도 그 무서운 킹콩이 대나무만 먹는 걸 볼 수 있다.) 침팬지나 비비원숭이는 아주 가끔 다른 원숭이나 어린 초식동물 새끼들을 잡아먹기도 하지만 여전히 본 식사는 초식이다. 그 밖의 소형 원숭이류는 다람쥐와 다를 바 없는 식이습관을 가지고 있고 부족한 단백질은 벌레나 새알들로 보충한다.
토끼는 물을 안 먹어도 산다?
절대 아니다. 세상에 물을 안 먹고 사는 동물은 하나도 없다. 간단히 생각해도 동물 몸의 70%이상이 물로 되어 있는데 왜 물이 필요치 않겠는가? 그러나 토끼나 낙타 같은 동물은 확실히 다른 동물들보다 물이 덜 필요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들의 오줌을 보면 아주 농축되어 거의 까만색을 띄고 냄새도 고약하다. 아울러 똥도 거의 수분이 없이 둥그스름하다. 이 정도면 다른 동물들은 이미 신장에 병이 있거나 변비라고 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오줌과 똥을 농축함으로써 수분이 빠져나가는 걸 방지한다. 아마 야생토끼 같으면 며칠동안은 물을 안 먹고도 청초만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완토끼의 경우는 주로 건초와 마른 사료를 먹기 때문에 물통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제발 잘 모르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물을 주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란다.
개가 풀을 뜯어 먹는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비유는 황당하거나 필요 없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이건 결코 욕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개들은 풀을 뜯어 먹기 때문이다. 특히 연한 새싹을 좋아한다. 이 풀들은 소화는 거의 되지 않지만 개의 소화기를 거치면서 섬유소화 되어 마치 빗자루처럼 장을 말끔히 청소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모양 그대로 뭉쳐서 똥이나 구토로 나온다. 개 뿐만 아니라 호랑이, 사자, 고양이들도 역시 풀을 뜯어먹는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풀을 먹는 것은 장 청소처럼 단순한 것에서부터 항균제, 구충제, 진통제 성분을 찾아 먹을 줄도 알며, 기분이 우울할 땐 알코올이 발효된(의도적으로 씹었다 뱉었다 하며 발효시키기도 함) 열매를 먹고 일부러 취하기도 한다고 한다.
기린이 뼈를 먹는다?
맞는 말이다. 기린은 큰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미네랄 성분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코끼리 의 경우는 항상 흙을 접하고 살기에 이를 먹음으로써 광물질을 보충하는데 기린의 경우는 목을 숙이는 게 위험해서 흙을 함부로 먹을 수가 없다. 대신에 과량의 미네랄이 농축되어 있는 뼈를 들어서 핥아 먹음으로써 효율적으로 미네랄을 섭취한다. 동물원 같은 경우 핥을 만한 물건이 없으면 벽이고 기둥이고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핥기 때문에 관리가 잘못되면 페인트나 납 중독에 빠지는 일도 생긴다.
초식 동물들이 육식을 할 때도 있다?
이 역시 맞다. 토끼나 많은 초식성 설치류들은 환경(습기나 기온, 스트레스)이 안 좋으면 새끼를 잡아먹기도 한다. 암컷 초식동물들은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에 딸려 나온 태반이나 피 한 방울까지 모든 부산물을 말끔히 먹어치운다. 소의 경우 그 태반의 무게만도 20kg 이상을 넘어간다. 그래도 소화시키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오히려 태반이나 새끼를 먹음으로써 필요한 영양분(단백질 등)을 보충받기도 한다. 광우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런 육류성분이 들어간 사료도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이밖에도 고양이는 쵸코렛을 먹으면 안 된다느니, 개는 양파나 오징어를 먹으면 안 된다느니 하는 말은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쵸코렛이나 양파 같은 것은 주로 약용이나 향료로서 약리작용과 독작용을 동시에 한다. 때문에 사람처럼 먹어 버리면 몸에 비해 과량을 섭취하게 되어 부작용(쵸코렛-심장마비나 발작, 양파-용혈성 빈혈)이 따를 수 있고 오징어의 경우, 개는 잘 씹지 않고 삼키는 데다 위장이 작아서 소화 흡수가 잘 안 될 수 있다. 담배도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안에서 피우면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리 니코틴 중독이 될 수 있다. 경험상 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좋아한다. 단지 동물들은 척박한 생존 경쟁의 환경 속에 살아 남기 위해 나름대로 먹이에 대해 취사선택을 했을 뿐이지, 자연계 최고의 미식가인 사람의 미각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개미핥기는 개미만 먹는다는 선입견은 버려라! 동물원의 개미핥기는 소고기를 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