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임산부

초암 정만순 2017. 6. 11. 18:39




다른 표기 언어 Kudzu Vine , , クズ葛


요약 테이블
분류 콩과
학명Pueraria lobata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두고두고 충절을 굽히지 않았던 정몽주에게 태조 이방원이 던진 시 한 수다. 만수산 칡넝쿨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듯이 풍진(風塵) 한 세상 별스럽게 굴지 말고 서로 협조하여 잘 살아보자는 뜻이다. 이 시는 오늘날도 적당히 부정을 저질러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그러나 이것은 칡의 생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착각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칡은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서 사이좋게 살지 않는다.

콩과 식물에 속하는 칡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고, 생명력이 왕성하여 숲속에 웬만한 틈만 보이면 얼른 자리를 잡고 나서는 것부터가 문제다. 일단 터만 잡으면 하는 짓마다 망나니다. 허락도 받지 않고 이웃 나무줄기를 빙글빙글 감고 순식간에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광합성을 위해 피나는 경쟁으로 확보해놓은 공간을 몽땅 점령해버린다. 조금의 나눔도 없이 혼자 전부 갖겠다는 놀부 심보가 들어 있다. 더욱이 넓적한 잎을 수없이 펼쳐, 잎 아래에 있는 나무에게는 단 한 줄기의 빛도 들어가지 못하게 거의 완전히 햇빛을 차단해버린다. 당한 나무는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린다. 공생(共生)이라는 산림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주범이 바로 칡이다. 숲의 가장자리에서 흔히 이 녀석이 주위를 몽땅 뒤덮어버린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산림의 질서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일일이 칡을 캐내야 한다. 죽이는 약재도 있지만 돈도 많이 들고 효과도 절대적이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골길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 전선을 얼기설기 엮어 놓는다. 그러고는 비 오는 날 전기합선을 일으키는 못된 짓을 서슴없이 한다. 고육지책으로 전봇대를 지탱하는 철사 줄에 커다란 고깔모자를 뒤집어씌워 더 이상 올라가지 못 하게 하는 수고를 끼치기도 한다. 오늘날 칡은 나무 키우는 일에 매진하는 삼림공무원이나 한국전력공사 직원에게는 악명 높은 훼방꾼일 따름이다. 말 그대로 ‘칡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워낙에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녀석이라 언제나 사람이 밀린다.

그러나 역사의 바늘을 조금만 거꾸로 돌려보면 칡은 정말 고마운 식물이었다. 뿌리, 줄기, 잎, 꽃 모두 요긴하게 쓰였다. 갈근(葛根)이라 불리는 칡뿌리는 흉년에 부족한 전분을 공급하는 대용식이었으며, 갈근탕을 비롯한 여러 탕제(湯劑)에 쓰였다.

질긴 껍질을 가진 칡 줄기는 삼태기를 비롯한 생활용구로 널리 이용되었고, 크게는 다리와 배를 만들고 성을 쌓은 데도 활용된 예가 있다. 세종 15년(1433)에 정흠지는 “다리를 만드는 데에는 갈대와 칡을 많이 쓴다”라고 하였으며, 숙종 37년(1711)에는 북한산의 축성을 논의하면서 “성을 쌓는 역사를 할 때에 숯과 칡 등을 수납했다”라고 했다. 또 정조 17년(1793)에는 배다리를 놓은 방법으로 “두 배의 머리를 서로 마주 잇닿게 하고 말뚝을 마주 세워 박은 다음 칡 밧줄로 야무지게 묶는다”라고 했다. 나라를 지키는 군수물자로 요긴하게 쓰인 셈이다. 이 외에도 임금이나 부모의 상을 당하여 상복을 입을 때 매는 허리띠는 다듬어진 칡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칡은 전국 어디에서나 양지바른 곳이면 잘 자라는 덩굴나무다. 줄기는 흑갈색인데, 갈색 또는 흰빛의 털로 덮여 있다. 잎은 세 개씩 나오고, 각각의 잎은 어른 손바닥만 할 정도로 크다.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얕게 셋으로 갈라지고, 잎자루는 길고 털이 있다. 원뿔모양의 꽃차례가 잎겨드랑이에서 나와 곧추서고 여름에 짧은 꽃자루가 달린 붉은보랏빛 꽃이 핀다. 열매는 길이 5~10센티미터의 콩꼬투리로서 갈색의 거친 털이 덮여 있고 가을에 익는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들어온 가시박이란 초본 덩굴식물까지 칡과 함께 나무들을 못살게 군다. 가시박은 1년생이지만 주로 습지에서 자라면서 줄기 길이가 12미터나 되어 나무를 완전히 덮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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