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임산부

식물은 어떻게 느끼는가?

초암 정만순 2017. 5. 30. 03:56



식물은 어떻게 느끼는가?


엄마를 따라 산길을 가다 / 무심코 솔잎을 한 움큼 뽑아 길에 뿌렸다. / 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 / 호승아 하고 나를 부르더니/내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 니는 누가 니 머리카락을 갑자기 뽑으면 안 아프겠나 / 말을 못하지만 이 소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노···

(정호승 '꾸중'의 일부)

식물도 동물이나 사람처럼 감각한다. 정호승의 시처럼 식물도 때리면 아파하고 울기도 하는 것일까?

그렇다. 당연히 식물도 때리면 반응을 보인다.

미모사처럼 당장 감각하고 바로 행동하는 식물도 있지만 대부분의 식물은 감각은 바로 하지만 행동은 더뎌서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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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풀이 자라지 못하는 것은 행인들에게 밟히는 동안 스트레스를 받아 에틸렌가스를 내뿜고 에너지를 잃기 때문이다. 덜 스치는 안 쪽 풀일수록 더 자란 것이 흥미롭다.


나는 식물의 몸에 전류계를 연결하고 플라스틱 막대로 잎을 때리면서(손으로 때리면 인체의 전류가 흘러들어가 실패한다) 전압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실험해보았다. 그 결과 식물이 맞고 있는 동안 그래프가 마구 튀었다. 아프다고 상상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 격렬한 반응이었다. 튀는 현상은 때리는 동작을 멈출 때까지 이어졌다. 행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밟히는 길가의 풀이 자라지 못하는 것은, 감각하고 반응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잃고, 에틸렌가스를 내뿜으며 에너지를 잃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넬(Neel)교수는 어린 미국풍나무(Liquidambar)를 매일 하루에 30초씩 흔들었다. 그랬더니 정상에 비해 키는 1/3이나 덜 자랐고, 줄기는 더 굵어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나무를 철사로 묶어주면 줄기는 가늘어져서 바람에 쉽게 꺾였다. 우리 조상들도 이런 원리를 콩을 기르는 데 썼다. 옛날 콩은 키가 커서 곧잘 바람에 쓰러져 소출을 얻기가 어려웠다. 이를 피하기 위해 매일 아침 '콩밭 이슬을 턴다.' 며 지팡이나 대빗자루로 콩잎을 쓸어줌으로써 웃자라지 못하게 했다. 서울대학교의 한 연구원은 실제로 콩잎을 빗자루로 쓸어주면 에틸렌가스가 많이 나오며 자람이 현저히 억제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콩을 쓸어주고 30분 후에 조사하면 줄기가 약간 굵어지고 조직이 목질화() 현상을 보이는데 정상으로 되돌아오기까지는 4일이나 걸린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쓸어주는 부위는 잎인데 이 자극이 줄기로 전달되어 줄기가 목질화되고 더 굵어진다.

이는 동물처럼 고도로 발달한 정보 전달 기구인 신경계는 없지만, 식물에게는 세포와 세포를 연결하는 '원형질 연락사'라는 통로가 있다. 세포와 세포사이의 통로를 통해 호르몬이 왕래하면서 몸의 이곳저곳에서 감각한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뿌리는 물이 없어 바싹 말라가는데 잎에서는 기공을 열어놓아 수분을 잃으면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뿌리가 물 부족을 감지하면 즉시 잎으로 호르몬을 보내 이 상황을 알린다. 통지를 받은 잎은 바로 기공을 닫는다.

식물은 '밝다, 어둡다'는 명암을 느낄 줄 알고, '뜨겁다, 차갑다'는 온도, '위, 아래'와 같이 지구의 중심 방향을 판단할 줄 안다.

베란다에 나팔꽃을 심으면 줄기가 빛이 오는 창쪽을 향해 뻗는다. 깜깜한 상자에 뿌린 콩 씨는 뚫어놓은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향해 뻗는다. 놓아두면 작은 구멍으로 모든 콩 싹이 경쟁적으로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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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 작용해서 빛을 받는 쪽 줄기는 자라지 않고, 받지 않는 반대쪽은 더 자라 클레로덴드룸 줄기는 창가를 향하게 된다.

줄기가 빛을 향할 수 있는 것은 빛을 받는 쪽 줄기는 자라지 않고, 받지 않는 반대쪽은 더 자라는 식물의 굴광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은 귀리를 기르며 한쪽에서만 빛을 비췄다. 모든 싹이 일제히 그 쪽으로 쏠리는 것을 관찰했지만, 당시 그는 왜 그렇게 되는지는 몰랐다. 그 후 학자들은 빛을 받은 쪽으로 식물성장 호르몬인 '옥신'이 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옥신은 세포의 개수는 그대로 두고 크기만 키운다는 사실도 밝혔다.

옥신이 세포의 크기를 키우는 작용은 이렇게 일어난다. 옥신이 세포로 들어가면 세포질에 있는 수소이온(H+)이 세포벽으로 스며들어 산성으로 만든다. 산성에서 셀룰라아제 효소는 활성화가 되어 세포벽을 꽉 죄고 있는 세루로스 고리를 느슨하게 풀어준다. 세포벽이 풀어지면 사이사이에 물이 스며들어 세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옥신은 빛이 오는 쪽으로 더 많이 모이게 되는데, 그래서 농도가 너무 높아지면 오히려 자람이 억제된다. 반면 빛이 닿지 않는 반대쪽은 양이 적당해 자람이 촉진된다. 그 결과 원래 응달, 즉 빛이 닿지 않은 쪽은 더 자라고, 양달쪽은 억제돼 줄기가 빛 쪽으로 자연스럽게 구부러진다. 우리가 가지에 달린 사과를 따려고 손을 뻗듯이, 줄기는 먹을 것(햇빛)을 잡기 위해 햇빛 쪽을 향하는 것이다.

빛에 민감한 부분은 귀리 잎의 끝 50μm에 있다(1μm가 1/1,000mm이니 잎의 맨 끝에 위치한다는 뜻이다). 이 부분을 잘라주거나 검은색 덮개를 씌우면 빛 쪽으로 가지 못한 채 반듯하게만 자란다. 몸 전체가 세포 하나로 된 이끼조차도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끼의 세포 속에는 동전 같이 납작한 엽록체들이 세포액에 둥둥 떠 있는데, 햇빛이 비치면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각도로 자신을 조정하기까지 한다. 물론 일반 식물의 엽록체 역시 세포액에서 떠다니며 햇빛을 더 잘 받을 수 있는 자세로 바꾼다. 화분을 자주 이리저리 옮겨놓거나 돌려놓으면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은, 엽록체의 방향이 자주 바뀌어 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화초가 몸살을 앓기 때문이다. 애란가가 난분 옮기는 것을 금기로 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줄기가 하늘을 향하는 것처럼 뿌리는 땅속을 지향한다. 식물을 뽑아 거꾸로 놓아두면 뿌리가 아래로 자라는 반응이 불과 30초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 뿌리가 중력()을 느껴 땅속으로 향하는 성질을 굴지성()이라 한다. 뿌리 세포에는 밑으로 가라앉는 성질이 있는 녹말알갱이(아밀로플라스트, amyloplast)가 있다. 마치 우리 귀속에 있는 이석()이 평형감각을 느끼는 것처럼, 이 알갱이가 중력 방향으로 가라앉음으로써 뿌리가 지구 중심 쪽으로 자라도록 지정해 준다. 중력을 느끼는 부분은 뿌리 끝 약 1cm에 있다. 이 부분은 뿌리가 자람에 따라 계속 끝 부분으로 옮겨간다.

식물을 무시하지 말기를 바란다.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식물도 시각을 알고, 방향을 알고,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 저희들끼리 조잘대고 웃고 있는지도 모르고, 비웃는 당신 마음을 비웃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태양을 쫓아다니는 나침반 식물

햇빛이 없으면 식물은 양식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식물에게 햇빛은 생명 그 자체이다. 그래서 숲 속을 들여다보면 햇빛을 좀 더 받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식물들을 볼 수 있다. 칡덩굴은 소나무 줄기를 타고 올라가 최후에는 나무를 온통 덮는다. 칡은 온몸으로 햇빛을 받지만, 소나무는 전혀 받지 못해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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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와 같이 낙엽수 밑에는 많은 식물이 자라지만, 잣나무나 소나무 같은 상록수림의 바닥에는 식물이 없다. 4계절 언제나 햇빛을 차단하고 독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참나무와 같이 낙엽수 밑에는 많은 식물이 자라지만, 잣나무나 소나무 같은 상록수림의 바닥에는 식물을 찾을 수 없다. 햇빛 때문이다. 참나무와 같은 낙엽수 밑에는 잎이 우거지기 전 봄 한철 애기똥풀, 현호색, 얼레지, 노랑제비꽃과 같은 온갖 풀들이 꽃을 피워 자손을 퍼트린다. 이어서 이듬해 꽃 피고 잎을 만들 양분까지 다 만들어 뿌리에 저장해 놓고는 슬그머니 스러져 자취조차 찾기 어렵다.

고창 선운사 경내를 아름답게 수놓는 꽃무릇은 9월 추석쯤 꽃이 만발해진다. 숲 밑에서 꽃이 피고지면 잎이 나온다. 하늘을 가로막던 나뭇잎이 낙엽 되어 하늘이 잘 보이는 가을-겨울-봄 동안에 광합성을 하여 양분을 만들고, 5월 신록이 하늘을 가리면 자취도 없이 스러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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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왼쪽)은 추석 무렵 함성처럼 일시에 꽃을 피운다. 꽃이 지고나면 주변의 나무 이파리들이 낙엽 되어 방해가 없는 가을-겨울-봄 동안에 이파리를 만들고 5월 신록이 하늘을 가리면 자취 없이 스러지고 만다. 이와 반대로 개상사화(오른쪽)는 이른 봄, 다른 식물들이 나오기 전에 먼저 잎을 피워 양분을 뿌리에 저장해 놓고 잎이 사라져 버리고 나서야 꽃대가 올라온다.

이와 반대로 꽃무릇의 사촌인 개상사화나 상사화는 이른 봄, 주변 나뭇잎들이 나오기 전에 잎이 피어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만들어 뿌리에 저장해 놓고는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다. 잎이 스러지고 나면 그 자리에서 꽃대가 올라온다. 상사화()란 영원히 서로 만날 수 없는 꽃과 잎의 그리움이 서로 사무친다 해서 얻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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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꽃봉오리조차도 해를 쫓아다닌다. 꽃 모가지에 있는 기동세포의 칼륨이온이 들고 남에 따라 생기는 현상이다.

해바라기가 해를 쫓아다닌다는 사실은 어린아이도 다 안다. 필자는 미국의 노스다코타를 여행하면서 입이 딱 벌어진 적이 있다. 수평선까지 펼쳐진 해바라기 밭의 수천만 송이 꽃이 모두 해를 등지고 서 있는 나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시야가 온통 하늘의 짙푸른 빛과 대지의 노란빛으로 양분되어 있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다.

해바라기는 아침에는 동쪽, 점심때는 남쪽, 저녁에는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해를 쫓아다닌다. 어떻게 해를 쫓아다닐까? 그리고 무엇이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온통 수천 수백만 개의 얼굴이 일제히 동쪽으로만 향하게 하는 것일까? 꽃은 물론,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조차도 해를 쫓아다닌다.

해를 쫓는 식물은 해바라기뿐만이 아니다. 목화, 알파파, 콩, 강낭콩도 잎을 움직여 해를 쫓는다. 식물이 해를 쫓아 움직이는 현상을 향일성(, heliotropism)이라 하는데 'helios'는 태양()을, 'tropism'은 굴성()을 의미한다.

이틀이면 해 돋는 방향으로 머리 향해

식물은 햇빛이 오는 방향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인식한 정보를 움직임으로 연결시킨다. 낮 동안 해를 쫓던 식물은 밤 동안 방향을 천천히 옮겨 아침 해가 떠오르기 한 시간 전에 그 쪽으로 향해 있다. 만일 화분에 심어 방향을 틀어 놓아도 해돋이를 단 이틀만 경험하면 자동적으로 고개가 그 방향으로 가고, 구름이 낀 날에도 어김없이 방향을 잡는다. 이렇게 전날 해가 나오는 방향을 기억하는 현상은 아직도 불가사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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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은 줄기와 잎이 갈라지는 뭉뚝한 관절 부분에 있는 엽침이 이 운동을 하는데 이 부분을 가리면 그 자리에 머물러 해를 쫓지 못한다. 여기에 빛을 느끼는 광탐지자가 있어 빛 방향으로 잎이 움직인다.

식물의 어떤 부분이 햇빛을 감지하는가? 엽침(, pulvini)이 이 운동을 한다. 엽침은 잎자루 맨 아래, 즉 줄기와 잎이 갈라지는 관절 부분에 있다. 루핀콩(Lupinus)의 잎은 해를 쫓아다니는데, 엽침 부분만을 빼놓고 알루미늄 포일로 잎 전체를 감싸 놓으면 잎은 해를 쫓는다. 하지만 반대로 잎은 놓아두고 엽침만을 가리면 그 자리에 머물러 해를 쫓지 못한다. 이 실험을 통해 엽침이 빛을 감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빛을 느끼는 광탐지자(photodetector)가 엽침의 기동세포에서 발견되었다. 이파리의 기동세포 아래에 빛을 주면 빛 방향으로 잎이 향한다. 기동세포에 닿는 빛의 양에 따라 방향이 바뀌는데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해 아직도 풀리지 않은 부분이 많다.

해를 쫓아다니는 성질을 가진 식물 중에 어떤 식물은 쏟아지는 햇빛에 정면으로 잎을 향해 더 많은 빛을 받아 광합성을 높이고, 또 어떤 종류는 잎을 비스듬하게 놓아 햇빛을 피해 서늘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식물이 각자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광합성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잎이 해를 쫓는 운동은 움직이는 잎자루 아래쪽에 있는 엽침에서 하고, 해바라기와 같이 꽃의 경우에는 꽃 모가지에 있는 세포의 팽압이 변해서 일어난다. 팽압의 조절은 식물 호르몬인 인돌아세트산(IAA)의 지시에 따를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구름에 가려 해가 보이지 않을 때 잎은 수평을 취하고 쉬고 있다가 저녁나절에라도 해가 구름 밖으로 나타나면 즉시 잎자루를 움직인다. 그 속도는 한 시간에 60°나 움직이는데, 해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속도보다 4배나 빠르다.

남북을 가리키는 나침반 식물 '실피움'

그러나 햇빛이 항상 절대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온도가 지나쳐 잎이 타죽고 마는 불상사도 일어난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제멋대로 피해 다니며 살 수 없는 것이 식물이다. 환경에 나름대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북미의 대초원에 자생하는 실피움(Silphium lacinatum)은 정오의 강렬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 잎을 곧추 세워 직사광선을 피하는 한편, 기공을 꽉 닫아 수분이 나가지 못하도록 단속한다.

더 신기한 현상은 잎의 면은 정확히 동서를 향하고, 날은 남북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잎의 면이 남북으로 향할 경우 남쪽이 햇빛의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과 오후 늦게 숨구멍을 열어 놓고 광합성을 하고, 정오에는 직립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햇빛을 가장 적게 받기 위한 작전이다. 실피움에게 '나침반 식물(compass plant)'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은 흐린 날조차도 날이 남북을 향하고 있어 대초원의 사냥꾼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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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그늘에 있는 선괭이밥은 잎을 활짝 펼치고 있지만(오후 2:33분, 위 왼쪽), 땡볕에 있는 괭이밥(오후 1:33분, 위 오른쪽)은 이파리를 접고 떨어뜨려 직사광선의 뜨거움을 피한다.
모란도 서늘한 아침나절에는 이파리를 곧추 세워 온몸으로 햇빛을 받지만(오전 9:01, 아래 왼쪽), 한나절 햇볕이 따가워지면 슬그머니 이파리를 늘어뜨린다(오후 12:37, 오른쪽).

일부러 잎을 수평으로 붙잡아 맨 실피움은 수분을 많이 잃어, 제멋대로 하게 놓아둔 것보다 자람이 나쁘고 꽃의 수도 적다. 실피움은 자라면서 자세를 한번 취하면 도중에 바꾸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선괭이밥과 모란도 뜨거운 한낮에는 잎을 곧추 세워 햇빛에 대해 노출을 최소화한다.

사막에서는 짧은 우기 동안 자라고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에 잎이 마치 위성 안테나처럼 해를 쫓는 식물이 많다. 자라면서 잎의 움직임이 유연해져 태양을 따라 매일 일정한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새벽에 해가 나타나는 방향으로 밤 동안 움직인다. 콩과나 해바라기 류 식물이 그런데, 찰스 다윈은 그 아들과 함께 1880년에 이미 이런 식물을 분류해 놓았으나 최근에야 이해를 하게 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에 사는 바스트롬(Malvastrum rotundifolium)과 루핀콩(Lupinus) 역시 대표적으로 태양을 쫓는 예민한 식물이다. 이들의 잎은 마치 수공작새의 꼬리처럼 잎을 펴고 태양을 향한다. 태양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잎을 비틀면서까지 최대로 햇빛을 받고, 밤에는 아침에 출발했던 방향으로 되돌아온다.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잎의 이파리와 잎자루가 만나는 지점의 엽침 속 기동세포에서 칼륨이온과 물이 들락거리기 때문이다. 이런 식물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자람이 눈에 띄게 나쁘다.

그러나 이렇게 해를 쫓는 잎에게는 정오의 강렬한 태양이 매우 위험하다. 이를 피하려고 루핀콩은 정오에는 태양으로부터 잎을 돌려 햇빛을 적게 받는 한편, 기공을 닫고 있다가 태양의 빛이 비끼는 오후가 되면 다시 틀어 해를 향해 기공을 연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식물이 어느 시간에 어떻게 알고 햇빛의 직사 노출을 피하는지 구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식물이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의 각도를 잴 수 있다는 사실만을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움직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식물들

식물이 항상 일방적으로 해충에게 먹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저항하고 심지어 곤충을 잡아먹기도 한다. 해충에게 노골적으로 저항하는 미모사는 우리에게는 신기한 화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골치 아픈 잡초이다. 아카시아와 같은 콩과식물답게 뾰족한 가시가 돋아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한다. 건드리면 신경질적으로 잎을 접는다 해서 '신경초', 또는 날이 저물면 잎을 닫고 잎자루를 내린 모습이 잠을 자는 것 같다 해서 '잠풀'이라는 별명을 가진 미모사(mimosa, 그리스어로 'mimos'는 '흉내 내다'라는 뜻으로 죽은 듯 흉을 내는 모습에서 왔다)는 건드리면 즉시 잎을 닫고, 더 심하게 건드리면 잎자루를 떨어뜨린다. 심지어는 곤충이 내려앉기 전 날갯짓에도 잎을 접는다.

눈이 있어서도, 초감각적인 인지능력이 있어서도 아니다. 다만 정전기에도 작동하기 때문이다. 곤충이 날갯짓을 하면 몸에 상당한 전류가 생겨 앉기도 전에 공기를 통해 식물의 잎에 닿고, 식물의 온몸으로 전류가 퍼져 격발작용을 한다. 잎을 닫으면 해충이 식별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적어져 공격을 덜 당하게 된다는 점을 미모사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또 갑자기 잎자루를 떨어뜨리면 해충이 놀라 떨어지도록 하는 작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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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자루 아래쪽 끝의 엽침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기동세포의 작용으로 미모사를 건드리면 잎이 접힌다. 엽침은 위·아래 반쪽씩 나눠져 있고 건드리면 잎자루를 타고 온 전기가 먼저 아래쪽의 엽침에 닿는다. 이 속에 있는 칼륨이온(K+)과 염소이온(Cl-)이 위 반쪽의 엽침으로 옮겨가면서 물도 따라가 위쪽은 팽팽해지고, 아래 반쪽은 졸아들어 잎은 아래로 숙여진다.

어떻게 잎이 접히게 되는가? 곤충의 날갯짓에서 오는 전류나 잎을 건드리는 물리적 자극이 전기신호로 바뀐다. 전기신호는 이어 화학적인 신호로 바뀌면서 이온이 세포막을 잘 드나들 수 있게 만든다. 세포 중에는 이런 자극을 잘 수용하는 기동세포가 있다. 기동세포는 잎자루 아래쪽 끝에 집중적으로 모여 엽침을 이루며, 관절처럼 뭉툭한 모양을 하고 있다. 기동세포는 보통 세포보다 크고 세포벽은 얇고 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미모사의 경우, 기동세포로 된 엽침은 위·아래 반쪽씩 나눠져 있고 잎자루를 타고 온 활성전위는 먼저 아래쪽의 엽침에 닿는다. 전류가 닿으면 엽침 세포에 있는 칼륨이온(K+)과 염소이온(Cl-)이 위 반쪽의 엽침으로 간다.

그런데 이온은 항상 물을 달고 다닌다. 소금물이 종이에 떨어지면 잘 마르지 않는 것은 소금의 나트륨이온(Na+)과 염소이온(Cl-)이 물을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식물의 세포에서도 꼭 같아서 엽침 위쪽으로 이동하는 칼륨이온과 염소이온은 물도 함께 이끌고 간다. 따라서 물이(칼륨이온과 함께) 빠져나간 아래쪽 엽침은 찌그러진 풍선이 되고, 반대로 물이 들어간 위쪽 엽침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따라서 잎은 밑으로 꺾이게 된다. 이 반응은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곤충이나 어린아이는 놀라고 만다(그림 5).

그림 5. 미모사의 줄기가 접히는 과정

그림 5. 미모사의 줄기가 접히는 과정피어 있는 잎을 건드리면 잎자루 아랫부분의 기동세포에서 K+와 물이 빠져 나가 윗부분의 기동세포로 들어가 팽창함으로써 잎자루가 아래로 쳐지게 된다.(『The action plant』에서 인용)

시간이 지나면 반대로 밖으로 나갔던 칼륨이온이 기동세포로 되돌아 들어오면 세포 안에 이온의 농도가 높아져 물이 뒤따라 들어온다. 세포는 부풀어지고 원래의 모양을 되찾아 잎자루가 올라오고 잎이 펴지게 된다. 원상회복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30분 정도. 이런 과정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자주 건드리면 미모사는 탈진하여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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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반대로 밖으로 나갔던 이온이 기동세포로 되돌아 들어오면 세포 안에 이온의 농도가 높아져 물이 뒤따라 들어온다. 세포는 부풀어지고 원래의 모양을 되찾아 잎자루가 올라오고 잎이 펴지게 된다(왼쪽부터 1:13분, 1:16분, 1:32분에 각각 촬영). 원상회복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30분 정도. 이런 과정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자주 건드리면 탈진하여 죽고 만다.

모양이 매우 비슷해서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곧잘 미모사라고 오해하는 식물이 있다. 자귀나무('밤에 잠자는 괭이밥과 자귀나무' 참조)가 그것인데 미모사와 같은 콩과식물이라 잎 모양도 같고 꽃도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건드리면 오므라드는 미모사와는 달리 즉시 반응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콩과식물처럼 밤이 되면 어린잎부터 마주하여 접힌다.

예전에는 신방() 앞에 이 나무를 심어 놓았다는데, 날이 어두워지면 마주 접히는 잎 모습에서 '합환수()', 즉 '합쳐서 기쁨을 누리는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로 마주보고 접히는 창밖의 합환수를 본받아 금슬 좋게 살라는 부모의 간절한 기원이 담겨져 있는 이름이다. 이렇게 접는 이유는 잎을 펴야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낮과는 달리, 밤 동안 강풍이나 야행성 곤충으로부터 받게 될 피해를 회피하려는 자귀나무의 조상으로부터 획득한 본능이 유전적으로 내려 온 때문으로 풀이된다.

음악에 춤추는 식물, 무초(dancing plant)

화훼를 하는 친구가 무초() 화분 하나를 주었다. 음악에 따라 식물이 어떻게 춤을 추는가를 관찰해 보라는 것이다. 몇 해 전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장에서 춤추는 것을 선보여 큰 인기를 모은 식물이다. 미모사처럼 콩과식물에 속하는 무초는 중국의 남부에 자생하는 잡초다. 이름에는 풀 '초()'자가 있지만 고추처럼 사시사철 따뜻한 곳에서는 관목으로 자란다.

음악을 들려주자 마치 발레리나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 같이 작은 턱잎()이 유연하게 움직이는 광경을 TV에서 보았다. 소리를 들으면 잎자루()의 아랫부분에 있는 엽점이 관절처럼 움직여 턱잎이 춤을 추는 것 같다. 무초는 온도 25~30℃, 습도 70%, 광선이 잘 드는 환경에서 춤을 잘 추며 특히 어린이나 여성의 노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음악을 들려줄 때는 물론 조용해도 턱잎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순식간에 올라붙기도 하고 갑자기 뚝 떨어지기도 해서 숨죽여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고양이의 수염처럼 움직인다.

이렇게 춤추듯 움직이는 식물이 신기했던지 중국 사람들은 무초에 대해 구체적인 전설을 붙였다. 옛날 다이족에 '두어이'라는 예쁘고 춤을 잘 추는 소녀가 있었다. 그의 미모와 춤에 반한 족장이 두어이를 데려다 매일 춤을 강요했다. 시달림에 지친 두어이는 몰래 도망 나와 강물에 몸을 던졌다. 그 후 그의 무덤에서 풀이 돋았는데 음악이 들려오면 춤을 추었다. 동네 사람들은 두어이의 혼백이 살아났다고 하여 '무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춤 때문에 죽은 혼백이 무슨 미련이 있다고 죽어서도 춤을 추는지 안타깝기만 한 전설이다.

친구에게 얻은 무초는 내 연구실에서 잘 자랐다. 어느 날 KBS-TV에서 음악에 대한 식물의 반응을 취재하기 위해 왔다. 무초를 소개하자 음악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린음악을 들려주자 턱잎이 움직였다. 그런데 움직임이 기대만큼 활발하지 못했다. 그린음악은 동요풍의 경음악이고 비교적 조용한 음악이다. 우리는 좀더 자극적인 음악을 들려주면 턱잎이 더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마침 책상 위에 있는 멕시코의 '손 데 마데라(Son de Madera)' 합창단이 부른 남미 특유의 정열적인 합창을 들려주었다. 턱잎은 우리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쏟아지는 강렬한 남미의 토속 음악에 질려버렸는지 1, 2, 3 분··· 10분이 지나도록 요지부동이었다.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취재진은 그린음악을 다시 들려주자고 했다. 그린음악이 나오자 턱잎은 기다렸다는 듯이 먼저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런 현상에 대해 놀라워했다. 무초는 강열한 남미 음악보다 동요풍의 경음악을 더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무초가 움직이는 것은 음파인 소리가 턱잎의 밑부분에 있는 기동세포에 물리적인 자극을 주어 기동세포의 물이 드나드는 데 따라 일어나는 현상이다.

식물도 시계를 차고 있다

식물은 몸속에 생물시계(biological clock)를 차고 있어 시각을 재고, 밤과 낮을 구별하고, 계절이 오가는 것을 알아채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도 몸속에 24시간을 주기로 하는 '생물시계'를 지니고 있다. 이 생물시계는 일정 시간이 되면 위액을 분비하고, 졸립게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자연 환경을 완전히 차단해도 자동적으로 약 24시간의 리듬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생쥐를 태어날 때부터 완전히 자연 환경을 차단한 채 일정한 온도와 밝기에서 길러도 밤에는 활동하고 낮에는 자는 주기를 갖는다. 포유동물에게 좌우의 시신경이 교차하는 부분으로부터 정수리 쪽으로 약간 올라가 있는 '시신경교차상핵()'에 생물시계가 있어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태어날 때 이미 유전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밤일과 낮일이 따로 있는 식물

식물이 낮밤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하는 것은 낮에는 낮일을, 밤에는 밤일을 각각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계절을 알아채야 하는 것은 혹독한 겨울이나 타버릴 듯한 건기()가 있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얼거나 말라 죽기 때문이다.

낮과 밤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하는 가장 대표적인 활동이 양분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일이다. 햇빛이 있는 낮에는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만들고, 밤이 되면 만든 양분을 어린 잎으로 보내 잎을 키우거나 뿌리로 보내 저장시킨다(선인장은 반대로 밤에 양분을 만든다).

밤에 양분을 만들고 만든 양분을 낮에 옮길 수는 없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햇빛이 없는 밤에는 양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밤새 가로등을 안고 사는 가로수는 어떻게 될까? 밤이 와도 여전히 낮으로 알고 광합성을 계속할 뿐, 만든 양분을 저장기관이나 어린 잎으로 보내지 않는다. 그 결과 가로등 곁에 있는 식물은 잘 자라지 않으며, 벼는 영글지 않고, 은행은 열매가 덜 달린다. 가을이 와도 해가 긴 줄로 알고 잎이 푸른 채로 남아 있고 낙엽도 떨어뜨리지 않는다. 따라서 양분을 저장하지 않아 약한 추위에도 쉽게 얼어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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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가을이 오면 이듬해 봄꽃과 잎을 피우기 위해 양분을 저장하기 시작한다. 밤새 가로등을 안고 사는 자작나무는 가을이 와도 가로등을 해로 착각하여 잎이 푸른 채로 남아 있고 낙엽도 지지 않는다(오른쪽). 이런 나무는 양분도 저장하지 못해 약한 추위에도 쉽게 얼어 죽고 만다.

우리는 양분이 식물체 몸에서 운반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식물이 낮과 밤을 감지하고 움직이는 현상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밤과 낮이 바뀜에 따라 가장 민감하게 움직이는 대표적인 식물이 '기도하는 식물(prayer plant)이라는 별명이 붙은 마란타(maranta)이다. 낮에는 햇빛을 최대로 잡기 위해 잎이 수평 자세를 취하지만 밤에는 마치 기도하는 손처럼 똑바로 선다.

밤에 잠자는 괭이밥과 자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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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경에 어김없이 피어나는 나팔꽃

오후 4경시에 꽃이 핀다 해서 '4시(four-o'clock)'라는 이름을 가진 분꽃, 새벽 4시경에 피어나는 나팔꽃, 황혼녘에 피는 달맞이꽃, 저녘나절이면 잎을 가지런히 모으는 자귀나무 등은 매일 일정한 시각에 꽃을 피우거나 잎을 여닫는다. 이렇게 매일 리듬처럼 반복해서 하는 운동을 일주기율동(, circadian rhythms, 라틴어로 circa'about', dies'day'라는 뜻)이라 한다.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우스(Carolus Linnaeus)는 하루 중 각각 다른 시각에 피고 지는 꽃을 모아 꽃시계(horologium florae, flower clock)를 만들었다. 꽃시계에 쓰는 이 꽃들은 구름이 끼거나 흐려도 일정한 시각에 꽃을 피웠다 닫는다. 개박하(Nepeta cataria)는 오전 6~7시에, 오렌지색 조밥나물(Orange hawkweed)은 그 뒤를 이어 오전 7~8시에, 들만수국(Field marigold)은 9시에 꽃이 핀다. 종이꽃(Helichrysum)은 오전 10시에 피고, 메꽃(Convolvulus)은 정오에 피고 오후 4시에 진다. 수련(water lily)은 정오에 피고 오후 5시에 닫는다. 꽃시계는 이런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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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왼쪽)은 정오에 펴서 오후 4시에 지고, 수련(오른쪽)은 정오에 펴서 오후 5시에 닫는다. 식물은 매일 리듬처럼 일주기율동을 한다.

미모사, 자귀나무, 콩 등 대부분의 콩과식물과 괭이밥의 잎은 낮에 태양을 향해 펼쳐져 있다가 해가 지면 잠을 자는 것처럼 접힌다. 이런 현상은 잎자루 아래에 있는 세포의 자라는 속도가 다른 데다 잎자루 끝에 있는 엽침의 팽압운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매일 일정한 시각에 잠을 자는 수면운동(, nyctinasty, sleep movement)이 가능한 것은 생물시계가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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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는 해질 무렵에 잎을 접기 시작(왼쪽, 오후 6:38분)하여 한 밤에는 잎을 완전히 접는다(오른쪽, 오후 9:42분).

수면운동을 하는 식물을 아주 깜깜한 방에 놓아두면 정확히 24시간 주기는 아니지만, 식물에 따라 20~30시간 주기로 한동안은 거의 비슷한 시각에 이 운동을 유지한다.

식물이 지니는 생물시계에는 해가 떠서 점점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지는 강도에 맞춰 재조정을 하면서 적응하도록 하는 기능도 들어 있다. 이는 해 뜨는 시각이 점차 빨라지거나 늦어지는 변화에 맞추기 위해서이다.

저물면 기동세포에 이온과 물이 왕래해

그럼 무엇이 엽침의 운동, 수면운동을 시간에 맞춰 일어나도록 하는 것일까? 수면운동은 잎자루 밑 부분에 있는 기동세포의 팽압의 변화에 의해 일어난다. 날이 어두워지면 칼륨이온(K+)이 기동세포의 위쪽 세포에서 아래쪽 세포로 이동한다. 마치 소금이 물을 끌어당기듯, 많아진 칼륨이온은 물을 끌어당김으로써 세포가 빵빵해진다. 따라서 이온과 물이 빠져나간 위쪽 세포는 바람 빠진 공처럼 쿨렁쿨렁해지고, 이온과 물을 받아들인 아래쪽 세포는 부풀어 오른다. 그 결과 벌을 서는 아이처럼 잎자루는 위쪽으로 빳빳하게 선다. 아침이 되면 이 과정이 역순으로 일어나 잎은 수평으로 되돌아와 더 많은 햇빛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이런 현상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괭이밥과 돌나물이 그런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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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나물도 잎에 있는 생물시계가 밤과 낮을 알아차려 잎자루 밑 부분의 기동세포에 신호를 보냄으로써 밤에는 잎을 접고(왼쪽, 오후 11:07분), 아침이면 햇빛을 잘 받도록 연다(오른쪽, 오후 4:59분).

이렇게 접힌 잎이 원래의 자세로 되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접힐 때 걸린 시간보다 길고, 특히 날씨가 흐려 햇빛을 못 받으면 더욱 느리게 일어난다. 잎을 여는 에너지를 햇빛에서 얻기 때문이다.

식물의 시계는 잎의 색소 단백질

그럼 식물은 시계를 어디에 차고 있을까? 잎에 있다. 낮의 길이가 짧은 가을에 꽃피는 국화를 가을처럼 어둡게 해주면 여름에도 꽃망울이 맺힌다. 그러나 잎을 모두 따버리면 꽃망울은 생기지 않는데 잎을 하나만이라도 남기면 꽃망울이 맺힌다. 그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시계가 있는 곳은 이제 막 크기가 최대에 도달한 잎, 사람으로 말하자면 20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는 잎이다. 이런 실험으로부터 잎에, 특히 갓 성숙한 잎에 가장 예민한 생물시계가 장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물의 생물시계는 정수리의 한 부분에 있는 동물과는 달리 잎 전체에 흩어져 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식물의 생물시계는 잎 속의 색소 단백질인 피토크롬(phytochrome)이 시계 역할을 한다. 이 색소는 빛에 의해 두 가지 색소를 넘나든다. 하나는 어두운 데서 생기는 Pr(적색광, red light, 660nm에 의해 만들어진다)과, 다른 하나는 Pr이 빛을 받아 원적외선(far-red light, 730nm)을 흡수하면 생기는 Pfr이다. PrPfr은 서로 왔다 갔다 한다. Pr은 낮 동안 태양광에 의해 Pfr로 되기 때문에 해가 긴 여름에는 Pfr이 많이 만들어진다. 그 때문에 해가 떨어져 밤이 되어도 낮에 많이 만들어진 Pfr 때문에 식물은 한동안 햇빛에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는 사이에 Pfr은 서서히 Pr로 전환된다. 식물의 생물시계는 PrPfr의 비율로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를 잰다. 즉 Pfr이 상대적으로 낮으면 낮의 길이가 짧아졌음을 알아차린다.

가을에 피는 단일() 식물인 국화와 코스모스 같은 가을꽃은 Pfr이 적으면 피고, 반대로 냉이와 꽃다지는 Pfr이 상대적으로 많은 봄에 꽃이 핀다. 직접 배우지 않았으면서도 식물이 제 어미가 했듯이 제철에 꽃을 피우는 것은, 이미 어미에게서 받은 유전자에 생물시계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피토크롬 단독으로 시계 역할을 전담하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내부 시계가 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지만 더는 아직 모른다.

나무나 풀 같은 고등식물뿐만 아니라, 단세포인 조류에서도 아침 일정한 시각에 원형질유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세포 하나하나에도 생물시계가 있다.

생물시계는 꽃이 피거나 저녁나절에는 잎을 오므리는 것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말고도,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세포분열, 기공의 여닫이, 단백질과 호르몬의 합성, 꽃에서의 꿀 분비 등 매일매일 일정 시각에 되풀이하도록 관리하고 있다.

덩굴손의 감기 작전

내 연구실 창가에 놓아둔 화분에서 알 수 없는 싹이 돋아 나왔다. 시간이 흐르자 줄기는 덩굴로 변해 올라왔다. 몇 달 전 숲에서 떠다 넣은 흙 속에서 잠자던 새콩이라는 것을 알았다. 덩굴은 쑥쑥 자라 창문의 여닫이 손잡이에 붙었지만 매끄러워 그만 미끄러지면서 허공을 방황했다. 시간이 흐르자 여러 가닥이 올라와서 서로서로 버팀대가 되어 드디어는 벽에 붙어 기어 올라갔다.

덩굴손은 허공에서 이리저리 천천히 움직이면서 지지대를 찾다 물체에 닿으면 감고 올라간다. 덩굴손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매우 예민해서 닿자마자 물체가 움직이거나 너무 매끄러우면 감은 것을 푼다. 어떤 덩굴손은 사람보다 더 예민하다. 가시박(Sicyos, 귀화식물인데 호수 주변 물가를 점령해 생태파괴가 매우 심각하다)의 덩굴손은 양모 굵기인 25μm의 아주 극히 가는 실도 팽팽하게 걸려 있기만 하면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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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박 덩굴손은 사람보다 더 예민해 25μm의 아주 극히 가는 실도 팽팽하게 걸려 있기만 하면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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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꽃의 덩굴손은 물체에 닿으면 20~30초 안에 감기 시작한다.

어느 기간 동안 물체를 잡지 못한 덩굴손은 서서히 죽어간다. 이는 덩굴 식물이 반드시 안전한 지지대를 잡아야 살기 때문에, 잡지 못하는 덩굴손은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감는 속도는 덩굴이 빨리 자라느냐 더디 자라느냐에 다소 차가 있지만 매우 신속하다. 시계꽃(Passiflora gracilis)은 물체에 닿아 자극을 받으면 20~30초 안에, 싸이클란테라(Cyclanthera pedata) 같은 식물은 0.5초 만에 감기를 시작한다.

덩굴손은 지지대가 단단한지, 지나치게 매끄럽지 않은지, 굵기는 적당한지를 판단한다. 그럼 어떻게 판단할까? 모든 덩굴식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덩굴손에는 자극에 민감한 특수 세포가 있다. 에클레모칼퍼스(Accremocarpus scaber)의 덩굴손 표면에는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여드름 모양(pimple-shaped cell)의 매우 민감한 감각세포가 줄지어 있다. 이들 중 세포 하나만 자극을 받아도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즉시 모든 덩굴손이 감도록 정보가 전달된다.

민감한 여드름 모양의 세포는 클레로덴드룸(누리장나무의 원예종) 수레국화, 채송화, 손바닥 선인장 등의 수술 표면에서, 물꽈리아제비는 암술에서도 발견된다. 클레로덴드룸의 긴 수술은 무엇에 닿으면 자라면서 몇 번이고 감아 꽃이 수명을 다해 떨어져도 그것에 매달린 채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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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로덴드룸의 수술은 수염같이 자라면서 무엇에 닿으면 돌돌 감아버린다.

감각 세포는 세포와 세포를 연결하는 원형질연락사의 작은 공간에 흩어져 있으면서 화학적, 전기적 메시지를 서로 전달하면서 세포끼리 '서로 대화'를 하도록 한다.

덩굴손이 감는 순서는 이렇다. 덩굴손에 물체가 닿으면 자극에 민감한 감각 세포의 세포막이 늘어나면서 전기적인 신호와 함께 평상시의 세 배나 많은 에틸렌이 나온다. 이 신호는 이웃 덩굴손의 세포에 전해지고 에틸렌은 덩굴손이 닿은 부분에 많은 옥신이 몰리게 하는데, 과량의 옥신은 세포의 자람을 억제해 닿은 쪽으로 감기게 한다. 옥신이 얼마나 덩굴손에 강력하게 작용하는지는 옥신의 일종인 인돌아세트산(IAA)을 녹인 용액에 덩굴손을 담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용액에 담근 덩굴손은 몇 초 안에 더욱 심하게 말리지만, 반대로 인돌아세트산의 활성을 막는 약을 처리하면 풀려버린다.

덩굴손이 지지대에 일단 닿으면 30분 안에 닿아 있는 부분의 세포에 있는 자당과 탄수화물, 이온(특히 H+), 물 등이 모두 반대쪽 세포로 건너가 자신들은 쪼글쪼글하게 되고 반대쪽은 팽팽하게 된다. 그 결과 덩굴손은 더욱 강하게 안쪽으로 감기게 된다. 독일의 식물전기 생리학자 움라스(Umrath)는 덩굴손이 무엇에 닿으면 수천 분의 1초안에 전기가 수박의 덩굴손을 타고 다른 부분으로 흐르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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