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임산부

햇빛과 나무 건강

초암 정만순 2017. 5. 28. 15:51



햇빛과 나무 건강



글·사진 / 이경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주목은 음수지만 햇빛을 충분히 받으면 줄기와 가지가 굵어지면서 무성한 잎을 달아 멋진 나무로 자란다.
주목은 음수로 건물과 건물 사이 그늘에서도 견딜 수 있지만, 줄기와 가지가 가늘어지면서 잎이 엉성하게달려 볼품없는 나무로 자란다.
담쟁이덩굴은 어린잎이 햇빛을 충분히 받으면 양엽(우측)으로, 그리고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음엽(좌측)으로 분화한다.
사철나무는 대표적인 음수로 그늘에서도 살 수 있지만, 이 사진처럼 많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백목련은 햇빛을 충분히 받아 광합성을 많이 할 때에만 꽃눈이 무성하게 달려 화려한 꽃을 피운다. 그늘에서 자라면 겨우 생존하면서 꽃이 몇 개 달리지 않는다.

태양은 지구에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생명체는 그동안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수백 만 종의 독특한 생물로 진화해왔으며, 지금과 같이 아름다운 숲을 만들어냈다. 생물 중에서도 녹색식물은 태양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살아간다. 햇빛은 식물에게 에너지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식물의 형태, 생장, 번식 그리고 건강 등을 좌우한다. 우리가 감탄하는 아름다운 꽃과 웅장한 나무는 햇빛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이다.
동물은 태어날 때 이미 모양이 정해져 있어 환경변화에 의해서 형태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식물은 종자 속에 고유의 유전적 형질을 가지고 있지만, 싹이 트면서 환경에 따라서 형태와 크기가 심하게 변한다. 여러 가지 환경요인 중에서 나무 형태와 크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햇빛이다.
우선 햇빛은 나무에서 어린잎의 모양을 결정한다. 어린잎이 자라면서 햇빛을 많이 받으면 짙은 녹색을 띠면서 두껍고 좁은 양엽(陽葉)으로 분화한다. 양엽은 맑은 날 광도가 높을 때 음엽보다 광합성을 더 많이 한다. 반면에 어린잎이 그늘 속에 묻히면 옅은 녹색을 띠면서 얇고 넓적한 음엽(陰葉)으로 분화한다. 음엽은 흐린 날 광도가 낮을 때 양엽보다 광합성을 더 많이 한다. 한 나무 내에 두 종류의 잎을 가짐으로써 결국 전천후 광합성을 하는 셈이다. 그 밖에 햇빛은 나무가 진화 과정에서 햇빛을 서로 경쟁하면서 그늘에서는 살 수 없는 양수(陽樹)와 그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음수(陰樹)로 분화시키기도 했다.
햇빛은 전체적인 나무의 모양을 결정한다. 양지에서 햇빛을 충분하게 받으면서 자란 나무는 줄기와 가지가 굵고, 눈이 많이 달려 무성한 잎과 가지를 만들면서 빨리 자란다. 반면 그늘에서 자란 나무는 줄기와 가지가 가늘고, 눈이 몇 개 생기지 않아 엉성한 잎과 가지를 만들어 천천히 자란다.
햇빛은 나무가 자라는 방향도 결정한다. 나무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지만, 가지는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 햇빛이 드는 쪽을 향해 자라는 주광성(走光性)을 보이며, 뿌리는 정반대로 햇빛이 없는 땅속을 향해 뻗어 나가는 굴지성(屈地性)을 나타낸다.
생식(生殖)은 생물이 후손을 남기기 위한 수단인데, 햇빛은 나무를 건강하게 만들어 생식을 촉진한다. 토양 조건과 기온이 적절할 때 광합성은 햇빛에 비례해서 이뤄지므로 햇빛을 많이 받은 나무는 광합성을 많이 하여 에너지를 많이 축적한다. 인간의 경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섭취하면 비만 등의 부작용이 생기지만, 나무의 경우에는 광합성을 많이 해도 절대로 부작용이 없고 대신 더 건강하게 그리고 더 빨리 크게 자라면서 생식이 더욱 왕성해진다.
인간의 경우 건강한 산모가 건강한 아이를 낳듯이 나무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 중의 하나가 개화와 결실이다. 나무는 어릴 때 꽃이 피지 않지만, 일단 성숙하면 개화하기 시작하고, 개화량과 결실량은 나무의 건강 상태를 곧바로 보여준다. 1년생 식물은 종자를 맺고 죽기 때문에 모든 에너지를 개화와 결실에 소모한다. 반면 나무는 개화 후에도 계속 생존해야 하므로 종자를 생산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나무는 에너지(탄수화물)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을 때 비로소 에너지의 일부만 이용하여 종자를 맺고, 나머지 에너지를 비축하여 살아남는다. 따라서 나무가 광합성을 많이 하여 체내에 탄수화물을 충분히 저축하지 않으면 개화하지 않는다.
목련은 이른 봄에 화려한 꽃을 피운다. 이후 햇빛을 충분히 받으면 여름철 꽃눈을 많이 만들어 이듬해 봄에 많은 꽃을 단다. 반면 그늘에서 자란 목련은 에너지 부족으로 꽃눈이 달리지 않아 꽃을 볼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그늘에서 견디는 회양목과 사철나무와 같은 관목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수종들은 음수로 그늘에서 잘 견디면서 정상적으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늘에서는 꽃이 피지 않는다. 예쁜 꽃을 보기 위해서는 햇빛을 많이 보도록 해야 한다.
햇빛의 역할 중에서 나무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나무가 추위에 견디는 능력 즉 내한성(耐寒性)이다. 온대지방의 나무는 혹독한 겨울에 대비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데, 내한성은 충분한 광합성에 의해서 생긴다.
인간의 경우 에너지가 남으면 지방의 형태로 축적된다. 체지방은 건강 유지에 부정적이라고 하지만, 장점도 가지고 있다. 북극곰이 가을철 지방을 축적하지 못하면 겨울에 추위를 견디지 못해 얼어 죽듯이 인간의 체지방은 추위를 견디는 데는 도움이 된다. 추운 북구지역의 사람들이 뚱뚱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나무도 같은 원리로 겨울을 난다. 여름에 광합성을 충분히 하면 체내에 탄수화물을 전분의 형태로 저장한다. 가을이 다가오면 나무는 전분을 설탕, 포도당, 과당, 지방과 단백질로 바꾸어 세포 속에 저장함으로써 월동에 대비한다. 세포 속에 이러한 물질들이 들어 있으면 빙점이 낮아져 세포가 겨울에 쉽게 얼지 않는다. 물은 0℃에서 얼지만, 자동차에 부동액을 넣으면 라디에이터의 물이 영하 25℃에서도 얼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결국 광합성을 충분히 수행한 나무만이 무난하게 월동할 수 있게 된다.
나무가 공해에 견디는 능력도 광합성과 연관되어 있다. 요즘 대기 중에 높은 농도로 존재하는 아황산가스(SO₂), 질소산화물(NOX), 오존(O₃) 등은 모두 산소를 가지고 있어 다른 물질을 산화시킨다. 이러한 산화물질이 기공을 통해서 잎 속으로 들어오면 세포를 산화시켜 파괴한다. 나무는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항산화물질 혹은 항산화효소를 만들어 대항한다. 이러한 항산화물질을 합성할 때 나무는 에너지(탄수화물)를 소모하기 때문에 공해에 대항하는 능력은 평소의 광합성량에 비례하게 된다.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내풍성(耐風性)도 광합성과 관련된다. 내풍성은 나무의 모양과 환경에 따라서 다르다. 나무는 바람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평소에 이에 대비한다. 키가 너무 웃자라지 않고, 밑동 근처에 가지를 많이 만들고, 이러한 밑가지에서 광합성을 많이 하여 밑동의 지름이 굵어짐으로써 가능한 한 무게중심을 아래쪽에 두어 쓰러짐을 방지하려고 한다.
평소에 바람을 자주 경험하는 나무가 바람에 견디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바람을 자주 맞는 나무는 뿌리의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 탄수화물을 뿌리로 많이 내려보낸다. 결국 햇빛을 잘 받은 나무가 지상부의 생장을 희생하면서 더 많은 탄수화물을 뿌리로 내려보냄으로써 바람에 잘 쓰러지지 않게 된다.
나무가 상처를 받았을 때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도 광합성과 연관되어 있다. 나무껍질에 상처가 생기면 형성층 근처의 세포가 세포분열을 해서 상처를 감싸려고 노력한다. 이때 새살(유상조직)을 만들게 되는데, 새살이 만들어지는 속도는 광합성에 비례한다. 즉 건강하게 광합성을 많이 하는 개체는 새살을 곧 만들어 상처를 감싸지만 그렇지 못한 나무는 상처 치유가 지연되어 상처 부분이 썩게 된다.
요약하면 햇빛은 나무의 가지뻗음과 잎의 모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광합성을 통해 개화 결실 능력, 내한성, 내공해성, 내풍성, 상처 치유능력에 영향을 주어 나무의 건강을 결정한다. 이처럼 햇빛은 나무의 생장과 건강을 절대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에 나무는 햇빛에 의존해 일생을 살다가 죽는다. 나무가 햇빛을 바라보면서 무한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셈이다. 해바라기가 하루 종일 햇빛을 쫓아간다고 하듯이 나무도 이에 못지않게 햇빛을 쫓아가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나무를 가꾸는 사람들이 나무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면 나무를 좀 더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산림지 2011년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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