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의 원리
1. 방향의 원리
명절은 축제이다. 축제(祝祭)는 제사[祭]를 지내며 축원[祝]하는 일이다. 곧 제사가 축제(카니발)이다.
우리에게 제사는 유교 제례의 잔재이다. 즉, 즐기는 카니발적 축제와 엄숙한 종교적 제례로 구분되어 있다.
그래서 남존여비의 잔재 속에 축제를 즐기는 남자와 준비하고 뒤처리하는 여자로 나뉘어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제사는 유교 효(孝) 사상의 헤게모니로서 아직도 우리에게 채워진 족쇄와 같이 쉽사리 벗어날 수 없게 자리매김 되어있다.
우리 사회에서 유교가 사라지며 효(孝)에 대한 개념 또한 모호해지면서 덩달아 제사의 목적 역시 모호해지고 있다.
목적 없이 걷는 걸음이 헤매며 돌아다니는 방황이다.
목적을 모르게 되면서 막연하게 족쇄가 채워진 노예의 의무감으로 행하게 되면 당연히 제수를 준비해야하는 고부간에서 부부간 나아가 형제간의 갈등 등 집안 불화 요인의 거스름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축제일이 오히려 불화의 싸움 날이 되어가고 있다.
왜 제사를 지내는가? 제사상의 원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홍동백서(紅東白西)니 좌포우혜(左脯右醯)니 하는 제사상의 원리 속에 그 이유가 있다. 그 원리와 의미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제수 준비가 오히려 고단한 노동이 되고 집안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제사의 목적은 제사의 형식 그 법칙 속에 있다. 제사상을 차리는 방법은 그 방향의 존재이유를 설명한다. 건좌습우(乾左濕右), 어동육서(魚東肉西) 등에 나타나는 형식은 방향의 법칙이다.
방향의 법칙은 좌우(左右)와 동서(東西)가 있다. 동서는 해가 뜨고 지는 하늘(시간) 곧 불가역적 방향이다.
신위가 바라보는 방향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좌우는 왼손과 오른손 쪽을 가리키는 사람 곧 가역적 방향이다.
제사를 지내는 후손이 바라보는 방향의 상징이다. 그러면 자연히 신위는 북쪽에 위치하고 제사 드리는 자는 남쪽에 위치한다. 북쪽은 임금의 자리이고, 북망산천 곧 죽은 자 그 영혼이 머무는 자리이며 묘(산소)의 자리이다.
남향의 집 방향으로 풍수 사상의 근간이기도 하다.
남쪽은 당연히 후손의 자리이고 신하의 자리이며 신에게 기원하는(비는) 자리이다.
즉, 북면하는 것은 하늘에 빌며 도움을 바라는 방향이고, 남면하는 것은 하늘이 임금이 복을 내리는 방향이다.
북녘의 우리말은 북돋우는 녘이고, 남녘은 남아(<옛>넘어)가는 녘의 준말이다.
다시 말해 북면(북쪽을 향함)은 조상, 신, 하늘의 북돋움을 바라는 후손의 방향이고, 남면은 후손들이 청출어람하기를 바라는 하늘에 계신 조상의 방향이다. 동녘은 하늘의 해 그 얼이 돋아 오르는 녘이고, 서녘은 서리는 녘의 준말이다.
즉, 동(東)은 조상의 얼이 돋아 올린 의미이고, 서(西)는 얼이 서린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북면하는 것은 조상이 돋아 올리고 서린 얼의 북돋움을 바라는 상징이고, 남면하는 것은 후손이 그 얼을 뛰어넘는 청출어람을 바라는 상징이다.
왼쪽의 우리말은 외우어(마음에 새겨 잊지 아니하여)내는 쪽이고, 오른쪽은 그 외우어낸 얼이 올라 나온 쪽의 준말이다.
그래서 좌(左)는 좌 뜨인(생각이 남보다 뛰어난) 손이고, 우(右)는 그 얼이 우뚝 우러난 손이다.
각자의 타고난 천명(소명)은 남에겐 없는 자신만의 뛰어난 생각 그 정체성의 다름 아니다.
따라서 북면하는 것은 또한 부모가 물려주신 좌 뜨인 얼이 우러나게 북돋움을 바라는 상징이기도 하다.
더불어 조율이시(棗栗梨枾)나 적전중앙(炙奠中央)처럼 방향의 명시가 없거나 중앙은 양방향의 상징이다.
어쨌든 제사의 방향은 조상과 후손, 하늘과 사람의 가교로서 그 대화의 소통의식임을 알 수 있다.
흔히 제사상 차리는 진설의 순서는 밥상을 차리는 방식 그대로이고, 밥(飯)은 서쪽(오른쪽)에 놓고 국(羹)은 동쪽(왼쪽)에 놓는 반서갱동(飯西羹東)은 꼭 지켜야 하는데, 이것은 음양의 원리에 따라 죽은 사람은 산 사람과 반대로 해야 하는 까닭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제사의 방향은 이미 그 동서와 좌우로 서로 조상과 후손이 나눠져 있다.
동쪽이 오른쪽이고, 서쪽이 왼쪽이다. 동서는 불변의 정해진 방향이지만 좌우는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바뀌는 방향이다.
그래서 부모가 드시는 음식으로 차리는 상이라면 당연히 동쪽 곧 오른쪽에 밥이 놓이고, 서쪽 곧 왼쪽에 국이 놓여야 이치에 합당하다. 결코 반서갱동이 될 수 없으므로 좌반우갱(左飯右羹)이 맞는 말이다.
따라서 제사상은 인간이 먹기 위해 차리는 상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제사상은 조상이 드시도록 차리는 상이 결코 아니다. 어찌 죽은 사람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는가? 죽은 사람은 음식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다만 상차림으로 후손들의 현 상황을 보여드리며 아뢰는 의식임을 알 수 있다.
음복(飮福)이 그 반증이다. 음복이란 복을 드신다. 곧 복을 서로 나눈다는 의식을 뜻하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후손이 오순도순 모여 화목하게 먹는 모습을 바란다는 뜻이다. '(부모는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속담의 근원이다. 잘 먹는다는 것은 또한 잘 자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부모 최고의 바람은 자식이 청출어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고의 효도는 부모님의 유산 그 얼을 청출어람 하는 일이다.
우리의 제사는 누가 뭐라해도 효(孝)사상의 발현이다. 효(孝)는 조상숭배의 헤게모니이다.
효(孝)의 금문은 생각할, 죽은 아비/고(考) 또는 늙을/노(老)와 아들/자(子)의 형성 또는 회의자이다.
'고'는 '고이다(괴다)'의 준말로 '교'이기도 하며, 또한 '효'로도 치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형성자로도 볼 수 있다.
즉, 늙으신 부모님이 괴어(사랑하여, 부풀어 익혀)낸[고(考)] 씨앗[자(子)]을 잇는[꼬는(심는)/효] 일이고, 죽은 아비 곧 부모님이 물려주신 얼[노(老)]을 고아 우려내[괴(효)] 보다 나은 싹[자(子)]을 가꾸는 일 곧 청출어람(靑出於藍)하는 일이다.
고(考)가 죽은 아비의 뜻으로 의미 확대된 이유이다.
더불어 늙으신 부모[노(老)]를 자식[子]이 괴는(받쳐주는/부양하는)[괴(효)] 일이기도 하다.
효(孝)의 어원으로도 제사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얼을 받들어 내 마음 속에 심어 가꾸고 부풀려 익혀 새로운 싹을 일구는 과정을 조상님께 아뢰는 축제 의식임을 알 수 있다.
제사상의 원리는 남좌여우(男左女右/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 좌반우갱(左飯右羹), 건좌습우(乾左濕右/마른 것은 왼쪽, 젖은 것은 오른쪽), 좌포우혜(左脯右醯/포는 왼쪽, 삭힌 것은 오른쪽) 등의 좌우 네 가지,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생동숙서(生東熟西/날 것은 동쪽, 익힌 것은 서쪽), 두동미서(頭東尾西/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어동육서(魚東肉西/물고기는 동쪽, 고기는 서쪽) 등의 동서 네 가지와 순서대로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 밤 배 감)의 양방향성 한 가지 그리고 적전중앙(炙奠中央)의 가운데 한 가지 등 모두 열 가지로 고르게 방향자리가 주어진 원리이다.
덧붙여 접동잔서(摺東盞西)의 동서를 하나 더 추가하여 중심추를 조상에 두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바탕과 겸양의 효(孝)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를 담아 덧붙였다.
흔히 적전중앙(炙奠中央)은 적(炙/어육·채소 따위를 양념하여 대꼬챙이에 꿰어 굽거나 번철에 지진 음식)을 중앙에 두고, 접동잔서(摺東盞西)는 접시는 동쪽 잔은 서쪽에 두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접(摺)은 접시의 뜻이 없듯 전(奠)은 제사지내는 일을 뜻하듯 결코 진설의 방향을 나타낸 뜻이 아니다.
또한 제사상에서 잔(盞)은 술잔밖에 없고 모든 제기가 접시 형태이며 국[갱(羹)] 밥[반(飯)] 탕(湯) 등의 그릇은 잔보다 훨씬 크므로 이미 어불성설이다.
잔(盞)의 뜻에 매몰되어 접(摺)이 쉽게 접시로 의미 동화되고, 적(炙)과 중앙(中央)의 뜻에 매몰되어 너무 쉽게 진설의 위치로 오해한 것이다.
적(炙)은 회자(膾炙)에서 보듯, 자주 오르내리는 곧 가까이하는 나아가 친히 가르침을 받는 뜻도 있다.
ᄌᆞ올아이(<옛>친하게)[자]에 의한 가차나 전주임을 알 수 있다.
가운데/중(中)의 갑골문은 참/정(丁)과 열/십 또는 뚫을 /곤(ㅣ)의 회의자이다.
곧 ‘정수리가 참되게[정(丁)] 주근주근(은근하고 끈덕진 모양) 영글려[중] 씨앗을 맺히다[십(ㅣ)] 또는 틔우다(관통하다)[곤(丨)]’는 얼개에서 유추된 뜻이다.
우리말 중(스님)의 어원과 같은 낱말겨레이다. 더불어 가운데/앙(央)의 갑골문은 감(凵)과 그 안의 일(一) 그리고 대(大)의 회의자이다. ‘(정수리의) 하늘(얼)을[일(一)] 감싸[감(凵)] 아물려 영글어(앙 다물어)[앙] 된(큰)사람이 되다[대(大)] ’는 얼개이다. 그래서 ‘끝장나다, 다 되다’등의 뜻도 유추될 수 있다.
가운데의 옛말은 ‘가온ᄃᆡ’이다. ‘가두어[가] 오ᄋᆞᆯ어(<옛>온전하게)나는[온] ᄃᆡ[데(곳)]’의 준말이다.
곧 중(中)은 얼의 시작과 마침의 전반적인 과정적 가운데를, 앙(央)은 얼의 결과적 가운데를 나타낸다.
중앙(中央)은 중심의 중심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중(中)을 동사 앙(央)을 명사로 보면, 얼의 결실을[앙(央)] 주근주근 영글리다[중(中)]는 뜻이다.
따라서 적전중앙(炙奠中央)은 자전중앙(炙奠中央)이 올바른 말이고, ‘제사지내는 일을 가까이(친하게)하여[자전(炙奠)] 얼의 결실[자아실현]을 주근주근 영글리다[중앙(中央)]’는 뜻으로, 진설의 방향이 아닌 제사의 목적을 나타낸 말이다.
접(摺)은 수(手)와 습(習)의 회의자이고, 습(習)의 갑골문은 우(羽)와 일(日)의 회의자이다. 해는 하늘의 알이고 얼이다. ‘해[일(日)]의 날개 또는 깃[우(羽)]이 스미어/스멀스멀 부글거리다[습]’는 얼개로, 해의 기운이 일어나 부글거리며 익어가는 현상을 새의 날개 또는 깃으로 형상화 시킨 글이다.
그래서 얼을 날갯짓하듯‘익히는(배우는)’ 뜻을 나타냈다. 그런 해의 날개를[습(習)] 손으로[수(手)] 접다(개키다)[접]는 얼개로, ‘꺾다, 굴복시키다, 부러뜨리다’등의 뜻이 유추되고, 글말 ‘접’에 따라 ‘접을’뜻이 가차 되었다. ‘
나부러뜨리다[납]’의 글말(음)으로 다시 전주(轉注)하여 ‘접을/접’과 구분했음을 알 수 있다.
동(東)은 해가 동트는(돋아 오르는) 뜻이다. 따라서 접동(摺東)은 돋아 오르는 얼을 접다(개키다, 쌓다)는 뜻이고, 더불어 수(手)는 마음(생각)의 칼날과 같듯 그 얼을 다듬어[수(手)] 익혀야 한다[습(習)]는 암시를 담아 나타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얼을 반드시 뛰어 넘어야(굴복시켜야) 한다[랍(摺)]는 암시도 담아낸 말임을 알 수 있다.
잔(盞)은 그릇/명(皿)과 쌓일, 적을/전(戔) 또는 해칠/잔(戔)의 형성자이다.
전(戔)의 갑골문은 창/과(戈)가 마주보며 서로 겨루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전(戔)이 본래 ‘해칠’뜻이었는데, ‘저미어 나누다[전], 자잘하게 나누다[잔]’의 준말에 따라 ‘적을’뜻으로 가차되어 쓰이자 후에(소전시대) 알(歹)을 덧붙여 잔(殘)으로 새로 구분했다고 볼 수 있다. 전(戔)은 또한 ‘접어놓다[전]’의 준말에 따라 ‘쌓을’뜻으로도 가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잔(盞)은 ‘자란자란(그릇에 가득한 액체가 잔에서 넘칠 듯 말 듯 한 모양) 담기는[잔] 작은[전(戔)] 그릇[명(皿)]’의 얼개로, 주로 ‘술잔’을 뜻한다.
술은 누룩으로 발효시켜 새로운 얼을 우려낸 물로서 거듭남의 상징이고, 그릇은 또한 몸과 비유될 수 있다.
그리고 서(西)는 해 그 얼이 서리는(깃드는) 뜻이다. 그러면 잔서(盞西)는 서린 얼을[서(西)] 술잔에 채우다(따르다, 쌓다)[잔(盞)]는 뜻이고, 더불어 그 얼을 술로 빚어내야 한다는 암시를 담아 나타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술잔을 나누며 서로 주고받듯[전(戔)] 거듭거듭 새롭게 거듭나라는 암시도 담아낸 말임을 알 수 있다.
즉, 잔(盞)을 창/과(戈)가 거듭한 전(戔)의 형성으로 나타낸 이유는 뚫고 깨야하는 깨우침(깨어남)의 상징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서로 찔러 깨워 거듭나게 하는 술의 상징성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술이란 서로의 얼을 일깨워 주기 위해 마시는 것으로, 사극에서 종종 볼 수 있듯 건배하고 술잔을 깨는 - 그 거듭났음을 상징하는 - 의식의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접동잔서(摺東盞西)는 동서(東西)의 조상(부모) 얼을 이어 받아 더욱 발전시키고 뛰어 넘어 청출어람 하라는 남면의 조상 뜻을 나타낸 말이며, 제사를 드리는 근본 이유(수단)를 설명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즉, 제사란 살아생전 부모의 사랑[동서(東西)]을 회상하며 그 업적(얼)을 성찰하고, 조상의 북돋움을 받으며, 후손인 내가 물려받은 조상의 그 얼을 이어가는 진행정도와 앞으로 더욱 거듭남의 다짐[좌우(左右)]을 아뢰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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