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 50년 된 철규분식
(찐빵이 맛있어봐야 거기서 거기라고?)
“찐빵 좀 주이소!”
“찐빵 지금 없어요”
찐빵 집에 찐빵이 없다? 아니다 있다. 있는데도 팔지 않는다. 진짜 없는 것도 있다.분식집이면서도 그 흔한 김밥이나 떡볶이 오뎅 같은 것은 없다. 이처럼 주인장 맘대로 배짱장사 하는 곳이 있다. 구룡포읍 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철규분식’에 가면 주인장의 만행(?)과 통 큰 배짱을 목격할 수 있다. 친절해도 될까 말까한 세상에 말이다.
(철규분식 밖에서)
지난 3월 초, 구룡포에 가기 전 그곳이 고향인 분께 들러야 할 맛집을 소개 받았다. 당연하게도 구룡포 특산물 중에 하나인 대게와 고래고기 전문점을 알려준다. 그런데 철규분식도 가봐야 할 집이란다.
분식집이 다 같은 분식집이지 구룡포까지 와서 분식을 먹으란 말이냐? 생각하던 찰나, 그 집 내력이 50년이나 되었다는 설명에 눈빛에서 반짝! 별 모양이 그려진다. 100년 된 식당이 많은 일본과 달리 이 땅의 식당은 어떠한가?
몇 십 년만 넘겨도 간판에다 ‘00년 전통’ 이라고 써 붙여서 전통 있는 식당이 별로 없음을 역설하지 않던가? 그런데 50년, 그것도 분식집 내력이 그렇다면 희귀장수식당이라 불러도 토 다는 이 없으리라.
(철규분식 안에서)
궁금하다. 왜 철수분식이 아니고 철규분식일까? 이 집을 찾은 한 블로거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잘 웃지도 않은 주인아저씨는 무뚝뚝하고 근엄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블로거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단다.
“아저씨가 철규세요?”
질문에 아저씨는
“..................”
말없이 빤히 쳐다보기만 해서 난감했다고 한다. 하긴 지금까지 좀 그런 질문을 받았겠는가?
철규는 주인장의 처남 이름이다. 원래 이 가게도 그의 장모님이 운영하던 걸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사장은 2대 사장인 셈이다. 철규분식의 창업자인 그의 장모는 30여년 넘게 분식집을 운영하시면서 제법 돈도 벌었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재산은 처남(철규)에게 물려주고 당시 방황하던 자신에겐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라고 달랑 이 가게만 물려주었단다. 이 후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산 주인장은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국수와 찐빵, 여기에 팥죽만 있으면 철규분식 메뉴가 총출동이다)
앞서 얘기한대로 이 집에는 분식집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라면이나 김밥 같은 게 없다. 코딱지만한 차림표를 보면 만드는 음식은 달랑 3가지뿐이다. 국수 2천원, 찐빵 1천원, 팥죽 2천원. 이 중 이 집의 대표메뉴라면(3가지뿐인데 웬 대표메뉴?) 찐빵이다.
찐빵을 사러 포항을 비롯해 멀리 외지에서까지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찐빵을 사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주인장이 팔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가게 내에서 팔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찐빵을 사가는 손님이 주인 눈치를 보면서 달라고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찐빵 좀 주이소”
“찐빵 지금 없어요. 못 기다려요(기다려도 안됩니다)”
국수와 찐빵을 먹고 있는 그 사이에도 끊임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찐빵을 달라고 하지만 주인장의 대답은 한결같다. 배짱장사도 이만한 배짱장사는 없다. 도대체 이 집의 찐빵에는 어떤 마력이 있기에 주인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사가지 못해 안달할까?
(국수 2천원, 보드라운 국수가 국물과 함께 후루룩 넘어간다)
우선 국수와 찐빵부터 주문해 본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담긴 국수는 고명 이래봤자 시금치 쪼가리뿐이다. 국수 맛은 특별하진 않다. 이 집을 다녀온 어떤 블로거도 이 집의 국수 맛에 대해 기대만큼 맛있지 않다고 평을 했다.
(국수가 맛있는 국수, 당연한 얘긴가?)
(음식기행을 하면서 배가 부른다면 위기다. 언제 어떤 음식과 만나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런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다. 국물까지 싹 비웠다. 뒤에 보이는 찐빵도 마저 먹었다)
그렇다! 기대만큼 맛나지 않다. 가공된 맛에 길들여진 그대라면 이 집의 국수에서 어떤 맛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물 두 잔이 있다. 하나는 지하수이고 하나는 물에 설탕이나 색소 과즙 향 등 온갖 인위적인 맛을 가했다. 당신은 어느 쪽의 물이 더 맛있다고 하겠는가? 어리석은 질문이다. 어떤 성분도 더하지 않은 지하수 물이 진짜 물이고 그게 진짜 물맛 아니겠는가?
하지만 현대인은 온갖 인위적인 맛을 더한 것에 길들여졌고 그것을 진짜라 생각하며 먹고 있다. 이는 젊은 층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각하다. 그런 이유로 철규분식의 국수에서 원하는 맛을 찾지 못한다면 그대는 인위적으로 꾸며낸 맛에 중독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철규분식 뒷골목에 있는 국수공장)
철규분식 국수에서 맛의 핵심은 잡다한 것 들어가지 않은 그 삼삼한 멸치 국물에서 건져먹는 국수 본연의 맛에 있다. 참 깨끗한 국수! 참 신선한 국수! 그렇기에 국수에서 잡냄새가 나지 않는다. 비결은 철규분식 바로 뒷골목에 있는 국수공장에 있다.
이곳에서 만든 신선한 국수를 가져와 말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한 국수와 달리 맑은 맛이 나는 것이다. 신선한 고기는 고기 자체의 맛을 즐기지만 신선하지 않은 고기는 온갖 양념으로 위장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그대가 이곳에서 국수를 먹는다면 국수에 대한 고정관념은 잠시 잊기를 권한다. 그동안 도시에서 먹었던 위장된 국수 맛은 진짜가 아니니까 말이다. 심심한 국수와 곁들이는 깍두기에 또 하나 맛의 비결이 있다.
(약간 단단한 무로 만든 깍두기는 보드라운 국수와 절묘한 궁합이다)
이 집의 깍두기는 비료를 많이 주어 속성으로 비대하게 재배해서 수분이 많이 함유된 무른 무가 아니다. 그렇기에 국물 흥건한 시큼달큼한 맛으로 포장한 깍두기는 더욱 아니다. 육질의 촘촘함이 느껴지는 식감과 무향이 나는 깍두기다. 일반적인 깍두기에 비해 단맛도 신맛도 덜하지만 이 맛! 어렸을 때 먹었던 무와 비슷하다. 무는 어디에서 가져 오냐고 물으니 구룡포에서 난 무라고 한다. 해풍과 싸우며 자랐으니 건강한 맛이다.
면의 싱거움과 진한 무의 맛, 면의 부드러움과 씹히는 깍두기의 촉감. 국수와 깍두기가 환상의 궁합이다. 멸치로 뺀 국물까지 후루룩 들이 키고 나면 어느새 바닥이 보인다.
촌에서 구입한 팥으로 만든 찐빵
(찐빵에 설탕이 뿌려져 나온다)
(두번째 간 날은 설탕을 뿌리지 말라고 주문했다)
찐빵은 일반적인 것에 비해 조금 작은 것 4개위에 설탕이 뿌려져 나온다. 네 개에 천 원 하니 한 개에 250원 꼴이다. 이 집의 내력이 50년이라 하니 50년 전에는 찐빵을 1~2원에 팔았을까? 잠시 궁금해진다.
(탱탱! 탄력있는 빵은 팥 앙금이 없어도 맛있다)
(공장에서 나온 팥 앙금을 사용하는데가 많은데 철규분식은 촌에서 구입한 팥을 직접 삶아 만들어 맛이 남다르다)
찐빵은 바로바로 쪄서 내 온다. 주인장이 포장해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들어 내는데만 해도 달릴 뿐 아니라 즉석에서 쪄 낸 찐빵은 식은 찐빵과는 맛의 차이가 현격하게 난다. 식은 것을 다시 찐다 해도 이 맛은 나지 않으리라.
외식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수많은 식당들이 돈벌이에 급급한 세상이다. 조금만 장사가 된다 싶으면 확장에 분점에 등 음식 이외의 것들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그런 반면에 아직 돈벌이보다는 음식을 팔기 위해 장사를 하는곳이 있다. 철규분식 정도의 맛과 명성이라면 분점도 내 주고 사람도 더 써서 공장에서 만들듯 대량으로 만들어 팔아도 될 것이다. 사려는 사람에게는 100개든 1,000개든 달라는 대로 팔면 돈도 금방 모을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서두에 꺼내길 주인장의 배짱장사라 했지만 그런 배짱은 전혀 밉지 않은 배짱이다. 물질이 대세인 현세에 욕심 부리지 않고 장사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철규분식의 배짱장사가 더욱 빛나는 이유다. 그 배짱장사가 오래 계속되길 바래본다. 오늘도 철규분식은 찐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설 것이다.
“찐빵 있습니까?”
“기다려야 됩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한 20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면 됩니까?”
“기다려도 안 됩니다. 찐빵 못 기다립니다”
옥호: 철규분식
전화: 054) 276-3215
위치: 구룡포읍 구룡포초등학교 정문 앞
메뉴: 국수 2,000원. 찐빵 1,000원. 팥죽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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