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穴學/혈자리 서당

한열(寒熱)의 균형추, 양보(陽輔)

초암 정만순 2016. 9. 16. 17:39



한열(寒熱)의 균형추, 양보(陽輔)



한 여자가 있었다. 올해로 방년 18세. 한창 꽃다운 나이를 통과하는 중이다. 헌데 이 여자에겐 심각한 고민 하나가 있었다. 바로 탈모가 그것이다. 이건 그냥 땜통 수준이 아니다. 18살이 되던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머리털이 단 한 올도 남김없이 다 빠져버렸다. 에구머니나. 중이 되는 것이 아니고서야 이 몰골로 어찌 살아간담? 여자는 곧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용하다는 의사를 불러들였다. 의사는 단번에 대머리-처녀가 되어버린 원인을 밝혀냈다. 그것은 열(熱)이었다. 열이 피(血)를 쪄서 몸에 있는 피가 말라버린 것, 그것이 머리털이 다 빠져버린 이유였다. 헌데 상식적으론 좀 납득하기 어렵다. 머리털과 피가 무슨 상관이기에 피가 마른다고 해서 대머리가 된단 말인가. 답은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죄송) 있다가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페스트 푸드나 커피같은 열을 내는 음식을 달고 사는 우리.


그럼 이 여인네에겐 왜 머리털이 다 빠질 만큼의 열이 생긴 것일까. 그 이유는 음식에 있었다. 여자는 평소에 기름지고 맛이 강한 음식을 좋아했다. 특별히 부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렇다. 요샌 먹을 것이 적은 사람들이 오히려 비만에 시달린다. 이유는 한번 먹을 때 많이 먹고, 기름기뿐만 아니라 맛과 향이 강한 음식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식품들이다.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더 강하고 자극적인 맛을 내는 음식들. 이 값싸고 금방 먹을 수 있는 음식들에 노출된 빈곤층이 부유층보다 비만에 시달리는 것이다. 부자들은 그런 거 잘 안 먹는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기름기가 많고 맛과 향이 강한 저질(?) 음식들을 좋아하다보니 그게 몸의 습(濕)과 열(熱)을 만들었다. 이 습열은 담(痰)을 만들고 그것은 위로 올라가는 기(氣)를 따라 머리에 이르렀다. 곧 담열(痰熱)이 생기면서 머리털의 뿌리에 있는 피를 졸이고 머리털이 다 빠져버린 것이다. 결국은 입의 즐거움을 탐닉하다가 대머리가 되어버린 꼴이다.


그런데 이게 비단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처럼 기름지고 맛과 향이 강한 음식들로 넘쳐나는 시대엔 이런 대머리-청년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란다. 과거엔 40대 이후에나 병원을 찾던 탈모환자들이 요샌 20대들로 바뀌고 있단다. 이런 청년들이 많아지면서 아예 이런 탈모증상을 부르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일명 ‘열성탈모’. 열 때문에 생기는 탈모라는 뜻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기도 한 것 같다. 고단백의 음식과 열을 내는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데 운동뿐만 아니라 걷는 것마저 두려워하는 청춘들이 열(熱)로 인한 병에 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일 정도다. 여기에 스마트폰을 위시한 온갖 전자제품들이 내뿜는 열기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는 세대가 어떻게 열병을 앓지 않을 수 있을까. 머리털이 숭숭 빠지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맥락과 궤를 같이한다. 하여 오늘은 이 머리털과 열의 관계를 집중조명해보고자 한다.



털의 정체


우리 몸엔 털이 많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몸에 있는 모공은 대략 8만 4천 개.(이걸 다 누가 셌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모공에서 한두 줄기씩만 솟아도 대략 몸에 있는 털의 숫자가 10만 개는 족히 넘는다. 그럼 이 털들은 대체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답은 피, 곧 혈(血)이다. 우리 몸에 있는 모든 털은 혈(血)의 나머지에 해당한다. 몸의 신진대사를 관장하고 뼈를 만들고 몸의 정(精)을 만들고 난 나머지의 혈(血)이 몸의 털을 만든다.


나이가 들어서 정(精)이 소모되고 혈이 모자라게 되는 경우엔 자연스럽게 몸에 있는 털들이 하얗게 되고 하나둘씩 빠진다. 그 나이가 여자는 35세, 남자는 40세에 해당한다. 그런데 아직 창창한 20대들의 머리털이 숭숭 빠지기 시작하다니 우리 몸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임에 분명하다. 잠깐 털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흥미롭게도 『동의보감』엔 우리 몸에 있는 털과 경락을 서로 연결시켜서 설명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상당히 재밌으니 몸을 관찰하면서 한번 읽어보시라.

 


경락

기혈이 성()할 때

기혈이 적을 때

족양명경 상부

구레나룻이 윤기가 있고 길다.

구레나룻이 적고 입가에 주름이 많다.

족양명경 하부

음모(陰毛)가 윤기가 있고 길며 가슴에까지 털이 돋는다.

음모(陰毛)가 나지 않는데, 만약 난다고 하여도 듬성듬성하고 까슬까슬하다.

족소양경 상부

구레나룻이 윤기 있고 길다.

구레나룻이 나지 않는다.

족소양경 하부

다리에 난 털이 윤기가 있고 길다.

다리에 털이 나지 않는다.

족태양경 상부

눈썹이 아름답고 호모(毫毛:털이 긴 것)가 있다.

혈이 성하고 기가 적으면 눈썹에 윤기가 없다.

수양명경 상부

콧수염이 윤기가 있다.

콧수염이 나지 않는다.

수양명경 하부

겨드랑이의 털이 윤기가 있다.

 

수소양경 상부

눈썹이 아름답고 길다.

 

수태양경 상부

턱수염이 많다.

 


동의보감, 외형편·모발(毛髮), 법인문화사, p.862 참조



표를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몸의 털 상태를 관찰하고 경락을 확인하면 된다. 구레나룻이 많이 나고 길면 족양명경과 족소양경의 기혈이 상부에 많다는 뜻. 그럼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과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의 기혈운행이 왕성하다고 보면 된다. 이를 통해 위와 담이 작용하는 소화기능이 활발함을 짐작해볼 수도 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나머진 자율학습^^) 재밌는 건 각 경맥의 기혈이 많은가 적은가에 따라 몸에 나는 털의 유무(有無)부터 윤기까지 결정된다는 점이다. 일단 공통적인 것은 몸에 기혈이 왕성할수록 몸 곳곳에 털이 많다는 것. 그래서 알겠다. 몸에 털이 많은 건 진화가 될 된게 아니라 건강한 거다! 또 삼손의 머리털을 자르면 왜 그 남자가 그토록 무력한 남자가 되어버리는지도 알겠다.


그러니까 『동의보감』식으로 말하자면 몸에 털이 많은 사람일수록 털이 적은 사람들보다 활동적일 가능성이 큰 셈이다. 왜냐하면 활동의 근간이 되는 기혈이 풍부하니까. 이건 단순히 여자와 남자만 비교해 봐도 쉽게 이해된다. 대부분 남자들이 활동적인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몸에 털이 많고 여자들은 응축하는 음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몸에 털이 적다. 더구나 매달 한 번씩 혈(血)을 몸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혈의 나머지에 해당하는 털이 적은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머리카락! 정혈이 케어해주자나~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사인 머리털은 어디에 속할까. 일단 머리털을 관리하는 것은 신(腎)이다. 신은 정(精)을 저장하는 기관이다. 정은 혈이 온몸에 쓰이고 남을 때 그것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혈의 형제다. 하여 정혈(精血)은 그 근본이 같다는 의미에서 정혈동원(精血同源)이라고 부른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 정의 형태로 전환되고도 남는 혈들은 머리털을 자양한다. 그래서 머리털에 윤기가 흐르고 모발이 건강한 사람일수록 정력(精力)이 왕성하다. 정을 채우고 머리에 윤기까지 흐르니 말이다. 곧 트리트먼트와 온갖 헤어-케어를 받아야 머리털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몸의 정혈을 소중히 관리해야 머리털에도 윤기가 흐르고 건강미가 발산된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이 머리털이 왜 위로 자랄까라는 질문이다. 실제로 『동의보감』엔 이런 질문이 등장한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라서 참 신선한 이 질문. 답은 심(心)의 영향이다. 심(心)은 온몸의 혈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혈의 나머지라고 불리는 머리털에도 심(心)의 기운, 화(火)가 들어있음은 물론이다. 이 화기운에 의해서 머리털은 위로위로 자라난다. 정리하자면 머리털엔 심(心)과 신(腎), 몸의 상하축을 이루면서 순환을 담당하는 물과 불의 기운이 모두 담겨있는 셈이다. 하여 심기일전의 의미로 머리털을 자르거나 미는 행위는 몸의 상하축을 바꾸겠다는 결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머리털이 아무 의미 없이 추풍낙엽처럼 빠져버린다니.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머리털이 빠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이가 들면 빠진다. 헌데 요즘처럼 나이에 맞지 않게 머리가 빠지는 건 대부분이 열에 의해서다. “늙으면 머리털이 빠지고 수염이 길어지는 것은 정상이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머리털이 빠지고, 혹은 수염까지 빠지는 것은 화(火)가 타올라서 혈(血)이 말랐기 때문이다.”(『동의보감』) 보시다시피 머리털이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화(火) 때문에 머리털을 자양할 혈이 말라버리고 정(精) 또한 소모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몸은 열(족양명위경)과 한(족태양방광경)을 잘 조절해야 한다.


이러한 화(火)의 기운은 대부분 음식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이 식생활을 관장하는 경맥이 족양명위경이다. 족양명위경은 몸의 앞부분으로 흘러간다.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은 물론 여자들의 유방을 관리하는 것도 위경이다. 몸 앞쪽이 몸 뒤쪽보다 따듯한 것은 위경이 몸의 열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춥다가도 음식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금방 몸에 온기도 도는 것도 위경이 핫(hot)한 경맥인 탓이다. 하여 위경은 늘 열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조금만 뜨거운 음식을 먹거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이 떨어지는 경우. 이런 경우는 반드시 위경에 열이 있다는 신호다.


반대로 우리 몸에서 한(寒)을 담당하는 경맥은 족태양방광경이다. 방광경은 몸 뒤쪽을 흘러가는 경맥으로 몸 곳곳에 차가운 물을 대주는 역할을 한다. 등을 차게 하면 대번에 소변이 마려운 것도 이런 이치다. 또한 간혹 등골이 오싹하다고 할 때 오줌이 마려운 것도 이 방광경이 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머리털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몸의 한열을 담당하는 이 위경과 방광경을 조절하는 것이 급선무에 해당한다. 바로 이 위경과 방광경, 몸의 한열을 조절해주는 경맥이 족소양담경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


담경은 몸의 측면을 흘러간다. 눈 바깥쪽 모서리에 있는 동자료(瞳子髎)라는 혈에서 시작해 얼굴의 측면을 돌고 몸통과 다리의 측면을 따라 내려가서 넷째 발가락 끝 규음(竅陰)이라는 혈에서 끝난다. 몸의 측면부위, 특히 겨드랑이와 같은 곳이 아픈 경우엔 반드시 담경을 써서 치료하는 것이 기본이다. 담경은 위경, 방광경과 함께 몸에서 가장 많은 혈자리를 가지고 있는 경맥으로도 유명하다. 혈자리가 많은 관계로 외우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많은 혈자리 숫자에도 의미가 있다. 그만큼 몸에서 담당하는 나와바리(?)가 넓다는 것. 몸을 종(縱)으로 가로지르면서 기혈을 운행하는 통로라는 것이 그것이다. 언급한 대로 위경은 이 통로를 통해 열을, 방광경은 한(寒)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한열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담경이다. 그런데 어떻게 담경이 한열의 균형을 맞추는 중심추가 된 것일까. 그 비밀은 바로 담(膽)에 있다.


담은 간(肝)에 붙어 있는 작은 주머니다. 간에 붙어 있어 그 거리가 가깝다 보니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놈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만큼 지형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의미다. 담엔 간에서 만들어진 소화액, 즉 담즙이 담겨 있다. 이 담즙이 얼마나 맑은지 여기에 물건을 비춰보면 비칠 정도라고 적혀 있다.(이것도 누가 해본 거겠지?^^) 이렇게 맑은 액을 담고 있는 주머니이기에 특별한 이름이 부여된 것은 물론이다. 바로 청정지부(淸淨之府)가 그것이다. 말 그대로 몸을 맑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부서라는 뜻이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청정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청정이란 모든 불순물을 제거해서 먼지 하나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있는 것들 각각의 유용성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밥은 몸에 에너지로 활용하고 병은 몸을 쉬게 만드는 것으로 이용한다. 병에 걸리면 몸을 아프게 만들고 아픈 만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그것이 청정함의 의미다. 원인과 결과가 아주 투명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태, 거기에 어떠한 잉여나 찌꺼기가 달라붙지 않는 상태. 이 상태를 청정하다고 부른다.


또한 담엔 중정지관(中正之官)이라는 직책도 부여되어 있다. 중정(中正)이란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바로 잡아서(正)(中)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 쪼그만 주머니가 몸의 중심을 잡는데 있어서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바로 이런 게 청정함에 해당한다. 크기나 기능 등으로 위계화된 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몸 전체와 관여되어 있는 상태로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 그런 점에선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본이나 권력의 질서 속에서 늘 자신을 다른 것과 비교하면서 냉소와 열정 사이를 오가는 삶 자체는 그야말로 탁하다. 그래서 청정하게 산다는 것은 그런 제도화된 이념들을 스스로 넘어설 때만 가능해진다. 세상과 무관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리듬에도 자기중심을 놓치지 않고 자기가 추구하는 바를 실천해나가는 것. 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우리 몸의 담이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사람은 간담의 기운이 약하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우린 쓸개 빠진 인간이라는 말을 쓴다. 자기중심이 없어서 정서적으로 여기저기로 휘둘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담을 떼어낸 사람들은 이런 정서적 혼란을 겪는다고 한다. 몸이 곧바로 삶에 개입하는 것이다. 반대로 삶을 변화시켜야 몸에 있는 기운의 배치 또한 바뀐다. 몸과 삶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엎치락뒤치락하는 것. 그것이 곧 변화(變化)다. 담은 이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 한의학에서 담은 결단(決斷)을 내리는 장부라고 한다. 결단의 결(決)은 물이 제방을 뚫고 나간다는 뜻이다. 단(斷)은 실(絲)을 끊어낸다는 의미다. 막힌 것을 뚫고 끊어야 할 것을 끊는 것. 그게 결단이라는 말의 의미다. 곧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할 때 최종적으로 몸을 움직여서 실행해야 하는 단계에 담의 기운이 쓰인다는 뜻이다.


하여 남들이 감히 하지도 못할 일들을 서슴없이 해버리는 사람들을 두고 대담(大膽), 담이 크다고 한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것을 바로 할 수 있는 실천력이 이 담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앞서 살펴본 중정의 능력에서 발휘된다. 그런 점에서 몸의 차원에서건 일상의 차원에서건 담(膽)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추다. 몸의 한열뿐만 아니라 삶을 아주 담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담과 담경의 역할이다.



양보(陽輔)하세요


족소양담경에 있는 혈자리 가운데 양보(陽輔)는 몸 위쪽에 떠 있는 열을 내리는데 효과적인 혈자리다. 머리가 숭숭 빠지는 젊은 그대들에게 꼭 필요한 혈자리인 셈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양보혈은 수족냉증을 치료하는 혈자리도 알려져 있다. “몸은 불같이 뜨겁고 발은 얼음같이 싸늘한 경우 양보혈에 뜸을 떠준다.”(1196) 위쪽은 뜨겁고 아래쪽은 차갑게 나눠진 상황. 그야말로 몸이 냉(冷)과 열(熱)로 분리될 때 양보혈에 뜸을 뜨면 곧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앞서 본대로 담경의 한열 조절능력을 십분 활용한 치법인 것은 물론이다. 사실 양보는 족소양담경의 경혈이자 오행상으로는 화(火)의 기운을 발휘하는 혈자리다. 이곳을 자극하면 위쪽에 떠 있는 열을 식히는 것은 물론 아래쪽의 한(寒)을 위로 끌어올린다. 열 때문에 생긴 탈모에 양보혈을 사용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얼굴에 땀이 많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줄줄 흘리면서 머리털까지 빠지는 상황이라면 양보보다 효과적인 혈이 없다.


양보(陽輔)라는 이름은 혈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보의 보(輔)는 보골(輔骨)을 뜻한다. 보골은 비골(腓骨), 즉 정강이뼈(脛骨) 뒤쪽에 있는 뼈를 의미한다. 이 보골을 중심으로 몸의 바깥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보골의 바깥에 위치한다는 뜻의 양보(陽輔)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양보(陽輔)의 보(輔)는 한자를 파자해보면 참 재밌는 글자다. 수레 거(車)와 클 보(甫)가 합쳐진 이 글자는 원래는 수레바퀴의 덧방나무를 뜻하는 글자였다. 덧방나무란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의 바퀴가 부서지지 않도록 바퀴에 네모 모양으로 덧붙인 나무라는 뜻이다. 몸에서도 보골은 체중이 실리는 다리의 정강이뼈(脛骨)을 보좌하면서 우리가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만드는 뼈에 해당한다. 걸으면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뼈. 그게 보골이다. 양보는 복숭아뼈 위로 4촌, 보골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도 양보혈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도 많이 사용되는 혈자리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 또한 메커니즘은 탈모와 동일하다.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있는 열 때문에 갑상선 기능이 항진되고 이 상태로 계속해서 일중독에 빠졌다가 녹초가 되었다가를 반복하는 것. 이 안에서 그것을 조절한 능력을 상실한 상태가 바로 이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해당한다. 이렇게 되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인다. 깜빡 정신을 놓고 있다 보면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또 과열되게 무언가를 하고 있는 상태. 양보는 이런 상태를 진정시키고 몸의 중심을 회복하는 혈자리다.


우리의 가련한 방년 18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그녀는 좋은 의사를 만나 예전과 같은 미모(?)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의사의 처방은 아주 간단했다. 일단 혈(血)을 보하는 약을 쓰고 열을 흩는 처방을 내린 다음 2년간 담박한 음식을 먹을 것을 처방했다. 그리고 2년간 성심껏 조리하자 여자의 머리 또한 처음과 같이 자라났다. 아마도 침을 놓는 의사였다면 그녀에게 양보혈을 썼을 거다. 그러나 침을 쓰건 약을 쓰건 근본적인 자기중심을 회복하는 힘은 오로지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 그것을 이 여자의 에피소드는 말해준다. 기름진 음식과 무절제한 생활이 만든 불을 끄기 위해선 소방수가 필요하다. 허나 그 소방수가 불을 끄고 지나간 자리에 삶의 터전을 새롭게 다져야 하는 것은 바로 내 몫임을 잊지 말자. 그 결단을 내리는데 담의 기운이, 양보의 기운이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