症狀別 方劑處方/소아계

어린아이 경기의 명약 안궁우황환

초암 정만순 2016. 8. 23. 09:04



어린아이 경기의 명약 안궁우황환



 세계의 모든 민족은 크든 작든 간에 자기 나름대로의 의술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생명유지의 본능과 의료적 지혜로 탄생시킨 의술이다. 그리고 이런 의술을 세대에 세대를 거쳐 대물림하면서 새로운 의술 방법과 지혜를 더하여 발달시켜 왔다. 이것이 바로 전통의술의 실체이다. 따라서 이런 전통의술은 문화적 세습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게 해야 계승 발전될 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환인(桓仁) 성조(聖祖)가 7대(代)에 걸쳐 다스린 환국(桓國), 환웅(桓雄) 성조(聖祖)가 18대(代)에 걸쳐 다스린 배달(倍達) 나라, 단군(檀君) 성조(聖祖)가 47대(代)에 걸쳐 다스린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실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국호는 환국(桓國)·배달(倍達)·단(檀)·조선(朝鮮)·북부여(北夫餘)·고구려(高句麗)로 이어졌으며, 그 역사는 최소 6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고시대에 우리 민족은 동아시아를 지배하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 아시아는 물론 서쪽에까지 그 문화를 전파해주었다. 일례로 문자 창제는 제1세 환웅이 중신(重臣)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1만여 자(字)의 상형문자(象形文字)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그 후 개량과 창제를 거듭하다가 31세 단군에 이르러 왕문(王文)이 오늘날 한자에 해당하는 문자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위대했던 우리 선조들을 꼽아보면 천부경(天符經)을 바탕으로 환역(桓易)을 만든 복희(伏羲) 씨는 제5세 환웅의 아들이며, 동양의 의성(醫聖)으로 꼽히는 신농(神農) 씨는 제8세 환웅의 명을 받아 군사를 관리한 소전(小典)의 아들이다. 또한 제14세 환웅인 치우천황(蚩尤天皇)은 아시아 동쪽에 광활한 영토를 개척했고, 제1세 단군의 신하인 고수(高)의 아들 순(舜)은 요(堯) 임금의 신하가 되었다가 제위(帝位)를 물려받아 정치를 함에 성군(聖君)의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고수는 농사법을 최초로 쳬계화하여 일러주었는데, 우리 민족이 지닌 독특한 농경문화인 ‘고수레’하면서 밥을 먹기 전에 밭에 밥을 뿌리는 것은 바로 고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다.
그런데 기원전 212년 진시황에 의해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이 발생하면서 상고(上古)의 역사기록이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중국은 복희씨, 신농씨, 치우씨 등 우리 민족의 뛰어난 선조들을 모두 제 나라 전설 속의 인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단군조선에서 기자조선으로 이어지는 5천 년 역사로 축소시키고 자신의 역사는 6천 년 역사로 만들어 놓았다. 이와 함께 한자도 자신이 만든 글자이고, 환역(桓易)도 주나라 때 만들어진 것인 양 주역(周易)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리하여 동양의 독특한 윤리·도덕·의학·역학·무예의 뿌리가 중국인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같은 역사 공략을 고려시대 사대주의자인 김부식이 <삼국사기>란 책을 써 인정해주었다. 여기에다 일제시대엔 일본이 단군 조선마저 신화로 격하(格下)시켜 없는 역사로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의 역사는 일본의 역사보다 한참 뒤늦은 2천 년으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거 우리 민족의 문화를 미개한 것으로 격하시켰다. 의학만 해도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으로 폄하하고, 그것도 중국 한나라시대 의학의 아류라는 뜻으로 동의학(東醫學)이란 이름 대신 한의학(漢醫學)이라고 바꾸어 놓았다. 이와 함께 국가의 의료를 서양의학 중심으로 바꾸는 한편, 의료자격증제도를 도입하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만 의술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문화 속에 세습되던 전통의술을 졸지에 무면허 의술로 만들어 놓고 사람들 사이에서 전통의술이 자유로이 행해지지 못하게 하였다. 그럼으로써 그 명맥이 자연적으로 도퇴(到退)되게 하였다. 그리고 이런 일제가 뿌려놓은 잔재가 오늘날까지 답습되면서 전통의술문화의 계승 발전이 단절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우리 민족과 중국은 역학(易學)에 근거한 음양오행사상과 함께, 경락학과 본초학에 근거하여 의술을 발달시켜 왔다. 혹자는 우리 민족의 전통의술이 중국 한나라시대에 만들어진 한의학의 아류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 민족이라고 의료적 지혜 없어 6천 년 역사를 통해 갖가지 의술적 방법을 탄생시키지 못했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이를 대물림하면서 장구한 역사를 통해 발전시켜오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이는 오늘날 우리 민족의 의식주(衣食住)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를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요, 천부경에 기초한 환역과 우리 선조인 신농씨가 지은 <신농본초(神農本草)>를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전통의술의 특성상 모든 의술 방법과 처방이 그전에는 없다가 한나라시대에 탄생되고, 방대한 이론이 하루아침에 체계화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는 우리 민족과 중국이 의학의 원전으로 삼고 있는 <황제내경(黃帝內徑)>의 소문(素問)과 영추(靈樞) 편에 병리학설(病理學說)과 경락학설(經絡學說) 등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한나라시대 훨씬 이전에 이미 방대한 의술적 방법이 있었고, 이론이 쳬계화되어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언제 누구에 의해 편찬되었는지 모르는 이 <황제내경>이 진시황의 분서갱유사건 이후 한나라시대에 발견되었다는 것뿐이다.


안궁우황환(安宮牛黃丸)


▶ 처방자: 청나라 오당(吳唐)
▶ 처방 내용 : 우황·울금·서각·황련·황금·주사·치자·석웅황 각 40그램, 진주 30그램, 용뇌·사향 각 15그램
▶ 만드는 법 : 상기 약재를 분말하여 토종꿀로 4그램 정도 크기의 환을 만든 다음 금박을 입힌다.
▶ 복용법 : 한 번에 한 알씩 먹되 맥이 허(虛)하면 인삼 달인 물로, 맥이 실(實)하면 금은화와 박하 달인 물로 먹는다. 병이 중하고 몸이 실하면 하루에 2~3회 복용하고, 어린아이는 한 번에 반 알씩 하루 2~3회 복용한다.
▶ 효능 : 몹시 열이 나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한 데, 의식을 잃고 헛소리를 하는 데, 혀가 붉고 맥이 빠른 데 쓴다. 특히 어린아이의 고열과 이로 인해 생긴 경기에 효과적이다. 이밖에 뇌출혈, 뇌혈전, 뇌경색, 뇌염, 뇌수막염, 폐렴, 요독증 등에도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