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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대견사

초암 정만순 2014. 3. 1. 13:35

비슬산 대견사

 

 

비슬산 대견사, 강제폐사 100여년만에 복원
 

 

국보급 적멸보궁으로 복원, 오는 3월1일 개산대재 거행

달성군이 개청 100주년을 맞아 강제폐사 100여년만에 비슬산 대견사를 복원하고 오는 3월 1일 개산대재를 통해 현판식을 갖고 국보급 적멸보궁 사찰로 등록 할 예정이다.

비슬산 대견사는 일본의 기를 꺽고 대마도를 끌어당긴다는 속설에 의거 1917년 일제에 의해 강제폐사 되어 우리민족사의 비운과 함께한 사찰이다.

▲   비슬산 대견사 중창전경  

1,200년 전 신라헌덕왕때 창건(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편)된 대견사는 일연스님이 고려 고종 14년, 22세때 승과 선불장에 장원급제 후 초임 주지로 임명, 팔만대장경 분사대장도감으로 남해 정림사로 가시기 전, 22년을 주석하면서 삼국유사 자료수집 및 집필을 구상한 사찰로도 유명하다.

이에 달성군과 팔공총림동화사가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달성의 역사성을 되찾고자 2011년부터 중창공사를 시작, 2014년 2월 완공하고 강제폐사 100여년만에 역사‧문화‧관광의 중심지로서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게 됐다. 

대견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 선당, 산신각, 요사채를 포함한 4개동, 연면적은 186㎡(56평)규모로, 용연사에 이어 대견사도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 달성군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2개소의 적멸보궁을 보유하는 자치단체가 됐다.

▲   대견사 시공전 전경 
 
적멸보궁(寂滅寶宮)은 643년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눠 봉안한 곳으로,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가 5대 적멸보궁 있다.

  달성군에는 용연사, 사천시 다솔사 적멸보궁 포함 7대 적멸보궁이 있고, 적멸보궁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사리탑은 있으나 통상 불상을 모시지는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팔공총림 동화사 성문 주시스님은 “대견사 중창은 일개 사찰을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유구한 민족 문화유산을 재현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뜻 깊은 일이라“며 ”앞으로 대견사를 국운융성과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기도 도량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김문오 군수는 “새롭게 태어난 대견사는 일연스님이 출가 후 70년 불자기간 35년을 비슬산과 달성군에 주석하시면서 삼국유사 집필의 근간을 구상한 역사성, 천연기념물인 암괴류와 해발 1,000m 고지 천혜의 자연경관, 달성군의 대표 축제인 비슬산 참꽃축제 등과 연계한 시너지 효과로 연간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매력있는 불교 문화유산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3월 1일 진행될 개산대재는 식전행사, 본행사, 식후행사로 진행되며,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진제종정, 25개 교구본사 주지스님 등 불교계 원로, 이재오, 정몽준, 김무성의원 등 정치인, 김범일 대구시장,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 행정관료,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 대견사 대웅전 요사채 시공전경    
 
특히 중창을 총 지휘한 최기영 대목장(유네스코 인류문화등재, 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도 참석한다.

또한 행사를 주관한 팔공총림 동화사는 25인승 셔틀버스 10대를 준비, 오전 11시부터 매 시간 1,000m 고지의 대견사로 방문객을 수송 할 계획이며, 사물놀이, 국악, 가수 공연과 영산재 등 전통 문화예술 공연도 준비되어 있다.

해방이후 폐사지에 사찰을 복원, 최초로 개산식을 갖는 행사이므로 일반 시민들과 불자들은 일생일대 생전에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문화행사를 접할 수 있으며,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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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제 모습 찾은 비슬산 '기도 도량'의 위엄 - 대견사 중창사업 마무리
 
중창사업을 완료한 대견사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스님들 사이에는 ‘북 봉정 남 대견’이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우리나라에서 기도 도량으로는 북쪽 설악산의 봉정암과 남쪽 비슬산의 대견사를 최고로 꼽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1917년 대견사의 존재가 일본의 국운을 짓누른다며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이후 이 말은 유명무실해졌다. 그랬던 대견사가 3년 6개월의 중창사업을 마치고 1일 성대한 개산식을 가졌다. 옛 명성을 되찾을 것을 기약하게 된 것이다.

◆100년 만에 복원

대견사 본사인 동화사는 50억원을 들여 대웅전을 비롯해 대견보궁`선당`산신각`요사채 등의 건물을 폐사 당시 모습으로 최대한 복원했고, 앞으로 20억원을 더 투입해 일주문과 종루도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복원 작업 총지휘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이자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47호인 도편수 최기영 대목장이 맡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는 사찰 복원 전문가다. 영주 부석사`전북 정읍 내장사`충남 공주 마곡사 경기 강화 보문사 등 이름난 사찰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쳐 복원됐다. 그는 조선시대때 숭례문을 축조한 도편수 최유경의 후손이기도 하다.

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적멸보궁

대견사는 명품 복원뿐만 아니라 적멸보궁으로 다시 태어난 점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이다. 진신사리가 불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찰에 불상은 모시지 않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대견사에 봉안한 진신사리는 지난해 11월 동화사가 스리랑카 쿠루쿠데 사원에서 모시던 부처님 진신사리 1과를 기증받아 이운한 것이다. 동화사는 지난해 6월 동화사를 방문한 페리라 스리랑카 해외고용 복지부 장관에게 진신사리 기증을 요청했고 이후 스리랑카를 방문해 기증 협의를 매듭지었다. 이 진신사리는 서기 103년부터 스리랑카 도와 사원에서 보관해오다 1881년부터 쿠루쿠데 사원에서 모셔진 사리 4과 중 하나다.

달성군은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적멸보궁 2곳이 자리한 자치단체가 됐다. 다른 한 곳은 용연사다. 국내에 있는 적멸보궁은 경남 양산 통도사`강원 오대산 상원사`설악산 봉정암`태백산 정암사`사자산 법흥사`경남 사천 다솔사`달성군 용연사와 이번에 대견사까지 포함해 모두 8곳이 됐다.

불교관광명소로, 최고의 기도도량으로

달성군은 이번에 복원한 대견사와 비슬산이 함께 새로운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견사가 있는 비슬산의 해발 1,083m 일대는 천연기념물인 암괴류와 참꽃(진달래) 군락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여기에 일연 스님이 22년간 머무르며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했고,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는 적멸보궁이기도 한 대견사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 관광객들을 그러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찰 본연의 가치도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동화사 법희 스님은 “대구 북쪽의 팔공산이 산세가 웅장해 아버지산이라면 남쪽의 비슬산은 온화하고 부드러워 어머니산으로 여겨진다. 그런 정서와 기운이 감싸는 대견사는 최고의 기도도량으로 손색없다"고 말했다. 동화사 주지 성문 스님은 “대견사 중창은 일개 사찰을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유구한 민족 문화유산을 재현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 뜻 깊은 일로 평가될 것”이라며 ”앞으로 대견사를 국운융성과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도량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슬산 중턱의 옛 절터에 남아 있는 탑이다.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절내의 여러 석재들과 더불어 쓰러져 있던 것을, 1988년에 겨우 복원한 것이다. 일반적인 탑과 달리 절벽의 높은 바위를 바닥돌 삼아 그 위로 기단과 탑신을 올려놓았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둔 것 외에는 거의 꾸밈을 하지 않아 소박하다. 만들어진 시기는 절의 창건과 때를 같이하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로 추측된다. 오랜 세월 무너져 있었으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주변 산세를 다스리고 있는 듯한 위엄이 우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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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사 개산(開山), 비슬산을 열다!
‘개산'(開山)은 본래 ‘개문견산'(開門見山)의 준말로, 글자 그대로 ‘문을 열어 산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개산이라는 용어는 중국 동진(東晉) 시대에 처음 등장하는데, 우리나라에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불교용어화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개산의 불교적 의미가 다양화되었고, 산중에 터를 닦아 절을 창건하는 것을 개산이라고 하였다. 또한 9산선문(九山禪門)과 같은 새로운 종파가 생겨나는 것을 이르기도 하였고, 한 종파의 창시자와 같은 고승대덕(高僧大德)을 칭하여 개산`개산조사(開山祖師)라고도 하였다.

갑오년 3`1절인 오늘, 달성군의 진산(鎭山)인 비슬산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사지(寺址)로만 남아 있던 대견사(大見寺)가 창건에 다름없는 중창 불사를 회향(廻向)하고 개산대재(開山大齋)를 봉행한다. 개산대재란 사찰의 창건을 기념하여 여는 큰 법회를 말한다.

대견사는 810년(신라 헌덕왕 2) 보당암(寶幢庵)으로 창건되었으며, 고려 후반기 일연 스님이 오랫동안 주석(駐錫)하면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집필을 시작한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대견사로 절 이름이 바뀌었고, 1917년 ‘대견사가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번에 중창된 대견사는 절터만 남아 있던 상태로, 신라 당시 축조된 축대와, 삼층석탑, 동굴대좌, 마애불 등의 옛 흔적만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달성군이 지역 주민의 뜻을 받들어 대견사 복원을 염원하였고, 팔공총림 동화사 주지 성문 스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대견사를 복원 완공하게 되었다.

달성군과 동화사 간의 사찰 건립 협약, 2013년 3월 1일 기공식, 9월 14일 상량식을 거쳐 2014년 3월 1일 역사적인 개산식을 열게 된 것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대견보궁(大見寶宮), 선당, 산신각, 요사채가 들어섰으며 이어서 종각과 일주문 등이 건축될 예정이다.

대견사 중창은 1천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민족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데 의의가 있으며, 민족정기를 드높이는 비보사찰(裨補寺刹)로서의 호국적 의미 또한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대견사 복원은 대구경북의 긍지와 희망이 되고, 비슬산은 삼국유사와 일연 스님의 테마를 간직하며 참꽃축제와 더불어 최고의 명소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천년 고찰 대견사! 해발 천m의 깎아지른 절벽을 딛고 삼층석탑이 솟아 있다, 아니 하늘을 받치고 있다. 남쪽으로는 관기봉이 늠름하고, 서쪽으로는 석양에 물든 낙동강의 황금빛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묘묘(妙妙)한 바위들 가운데로 하늘 닿은 절, 대견사가 오늘 비슬산을 열었으니, 일연 스님의 사자후(獅子吼)로 대견사 중창의 축시(祝詩)를 대신한다.

‘생계불감(生界不減) 불계부증(佛界不增) 지삼계여환몽(知三界如幻夢) 견대지무섬호애(見大地無纖毫◆)’, ‘중생계는 줄지 않고 불계는 늘지 않는다. 삼계가 허황한 꿈과 같음을 알았으며 대지는 가는 터럭만큼도 거리낌이 없음을 보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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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스님 요청으로 쓰게 됐죠" 대견사 '대견보궁' 현액 쓴 서울대 정종섭 교수
 
 
 
3`1절 95주년을 맞았던 1일 대구 달성군 비슬산 정상 부근에서는 일제에 의해 1917년 일본의 국운을 짓누른다는 이유로 폐사됐던 대견사 중창을 마무리하는 개산(開山) 행사가 열렸다.

특히 대견사가 더 주목을 끈 것은 대견보궁(大見寶宮)의 존재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전국에서 8곳밖에 없다. 그만큼 대견보궁의 존재는 대견사의 무게감을 대변한다. 대견사 중창이 화젯거리가 되자 자연히 그 대경보궁의 정면에 걸린 현액을 쓴 이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고승도 아니고 유명한 서예가도 아니다.

바로 서울대 법대 정종섭(사진) 교수가 주인공이다. 경북고(57회) 를 졸업한 경주 안강 출신인 그는 선친으로부터 어려서 한학을 배웠다. 글씨를 써 온 지 40년이 넘었다. 최근에는 문인화에도 심취해 있다. 정 교수를 잘 아는 주변의 이야기로는 ‘대가’의 반열에 든다고 했다.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헌법학자이면서 문화재위원이기도 하다. 한중서예교류전 등에도 출품을 할 정도의 실력파다. 경주 광산서원의 ‘二善堂’(이선당)이라는 현액도 그의 작품이다.

대견사의 본사인 팔공산 동화사 주지 성문 스님의 거처에는 정 교수가 쓴 두 개의 족자가 걸려 있다. 원효대사의 명저 ‘대승기신론소’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難忍能忍菩薩行(난인능인보살행), 可言不言大人心(가언불언대인심)’이다. 참기 어려운데도 참는 것이 보살의 경지이고 말할 수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것이 큰 사람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대견보궁 현액을 쓴 것과 관련, 정 교수는 “옛날 큰 절이나 서원 건물 등의 현액은 당대의 명필이나 대학자들이 써온 것이 전통이었다. 내가 그런 반열에 드는지는 모르지만 성문 스님의 요청으로 쓰게 됐다”고 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당대를 호령했던 대학자들의 흔적이 지금도 전국적으로 큰 사찰에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천 은해사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19세기 중엽 9년간의 제주도 유배생활을 마친 추사가 은해사 중건에 맞춰 ‘대웅전’ ‘보화루’ ‘불광각’ 등 세 편액을 썼다. 또 절 입구에 걸려 있는 ‘은해사’현액과 ‘一爐香閣’(일로향각)이란 글씨 또한 추사의 글씨다. 추사의 글씨는 지금도 은해사 성보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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