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천강근(萬歲天罡根)
만 년을 사는 선약(仙藥) 만세천강근(萬歲天罡根)
만세천강근(萬歲天罡根)은 우리나라의 해발 1,400미터가 넘는 높은 산꼭대기 수목한계선 부근의 몹시 춥고 메마른 흙이나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지극히 희귀한 고산식물입니다. 초롱꽃과에 딸린 식물로 그 잎과 뿌리의 생김새가 초롱꽃이나 도라지를 닮았습니다.
만세천강근은 수천 년 전부터 경험이 많은 채약꾼이나 선각자들 사이에서 산삼을 훨씬 능가하는 천하제일의 선약(仙藥)으로 비밀리에 전해져 왔습니다. 천강근(天罡根), 만세근(萬歲根), 청등근(靑燈根), 괴강근(怪罡根), 고산천수근(高山天壽根), 고산천수길경(高山天壽桔梗), 천수무병근(天壽無病根) 등의 여러 이름이 있으며, 경험이 많은 채약꾼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천강근(天罡根)의 강(罡)은 하늘에 있는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북두칠성은 하늘에 있는 뭇 별들 중에서 가장 바르고 맑고 굳센 기운을 지니고 있으며 뭇 생명들의 수명과 생명력을 주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세천강근은 북두칠성의 밝고 바른 정기를 받아서 자라는 까닭에 3천 살에서 7천 살에 이르는 긴 수명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을 복용하는 사람도 백 살 이상 불로장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세천강근은 면역력을 늘리고 수명을 길게 하며 기형세포나 병이 든 세포를 파괴하여 없애고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게 하며 잘못된 유전자를 바로잡아 온갖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만세천강근을 복용하고 현대의학에서 고칠 수 없는 말기 암과 말기 당뇨병, 파킨슨병, 근무력증, 백혈병, 치매, 천식, 조류독감, 아토피 피부염 등을 고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신박약아나 신체적으로 불구로 태어난 사람이 정상적으로 되었고,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곰보가 되었던 사람이 곰보자국이 없어졌으며, 병명도 알 수 없고 치료법도 없는 질병을 치유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만세천강근은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지혜로운 우리 조상들이 먼 앞날, 곧 오늘날 우리들한테 닥쳐 올 온갖 괴질과 난치병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만고(萬古)의 비밀로 감추어 두었던 약초입니다. 이제 수천 년 동안 가려져 있던 그 신비로운 베일을 벗기고 만세천강근의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효능을 온 세상에 낱낱이 드러내어 불치병과 난치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합니다.
이 책에는 만세천강근의 신비로운 생태와 수천 년을 불로장생할 수 있는 원리, 그리고 사람이 오래 살고 건강해질 수 있는 이치가 실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불로장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4, 9, 1 지은이 최진규
1) 만세천강근은 어떤 식물인가
산에서 자라는 모든 도라지 종류를 통틀어 산도라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도라지는 그 생장 환경에 따라서 모양새와 약성, 생태가 각기 다르다. 산의 높이와 토질, 위도에 따라서 그 약성(藥性)과 생김새, 쓰임새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도라지는 생장 환경에 따라 크게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사람들이 밭에 심어 가꾸는 밭도라지다. 흰 꽃과 푸른 꽃이 섞여서 피고 수명은 3년에서 5년이다. 뿌리가 굵고 길고 미끈하며 뇌두가 생기지 않는다. 3년이나 5년마다 옮겨 심으면 수십 년을 살 수 있다.
둘째, 흔히 사람들이 산도라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을에서 가까운 산과 들에 흔히 나서 자란다. 밭도라지와 생김새가 거의 같지만 흰 꽃이 피는 것이 없고 푸른 꽃이 핀다. 뿌리의 굵기가 대개 사람의 엄지손가락만하고 뇌두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길이가 아주 짧다. 이를 야산길경(野山桔梗)이라고 한다.
셋째, 사람이 사는 마을과 멀리 떨어져서 계견지성(鷄犬之聲) 곧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자생하는 도라지다. 이를 두메길경, 또는 묏도라지라고 한다. 두메길경은 뿌리의 굵기가 가운데손가락이나 새끼손가락만하며 뇌두가 굵고 짧은 편이다.
넷째, 해발 1,400미터가 넘는 높은 산꼭대기 초목 한계선 부근의 냉혹한 환경에서 자라는 고산길경(高山桔梗)이다. 만세천강근 또는 고산천수길경(高山天壽桔梗)이라고 한다. 고산길경은 그 특성이 도라지를 닮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도라지와는 다른 점이 많다.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성질이 강인하고 모질게 바뀌었다. 키가 아주 작고 잎과 꽃에 미세한 털이 나 있으며 싹이 4년에서 7년에 한 번씩 나며, 뿌리가 단단한 흙이나 바위틈을 파고 들어가는 성질이 있다. 뿌리는 큰 것은 새끼손가락만하고 작은 것은 젓가락만하며 뇌두가 가늘고 아주 긴 것이 특징이다.
다음에는 이 네 가지 도라지의 효능을 알아보자.
첫째, 사람들이 밭에 심는 도라지는 2-3년 만에 캐서 나물로 흔히 먹는다. 주로 반찬으로 먹고 약성이 미약하여 거의 약으로 쓰지 않는다.
둘째, 흔히 산도라지라고 부르는 야산길경(野山桔梗)은 주변에 흔하므로 식용이나 약용으로 두루 널리 쓴다. 그러나 약성이 약간 모자라서 식용으로는 좋지만 약으로 쓰기는 어렵다. 수명은 대략 이십 년에서 백 년쯤 된다.
야산길경은 차두(叉頭)가 생기거나 차미(叉尾)인 것이 많다. 차두는 뿌리 하나에 줄기가 두 개 이상 난 것을 가리키고, 차미는 몸통이 두 갈래 이상으로 갈라진 것을 가리킨다. 옛 말에 차두는 광란(狂亂)이요, 차미는 고질(痼疾)이라고 하였다. 이는 차두를 먹으면 미치광이나 배신자, 역적(逆賊)이 되고 차미를 먹으면 아무도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생긴다는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초학 책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는 약초를 그 효능에 따라 상약(上藥), 중약(中藥), 하약(下藥)으로 나누었다. 상약은 어진 임금과 같아서 사람을 무병장수하게 하고 오래 먹을수록 좋은 약이고, 중약은 지혜로운 신하와 같아서 생명을 기르기는 하지만 독이 있어서 오래 먹을 수는 없는 약이며, 하약은 형리(刑吏)와 같아서 독이 있고 오직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만 써야 하는 약이다.
<신농본초경>에는 길경을 하약(下藥)으로 분류하였다. 그 이유는 야산에서 자라는 길경이 차두나 차미가 있는 것이 많아서 사람을 해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도라지나 잔대, 산삼, 방풍 같은 숙근식물들은 마을 가까이에서 자라거나 사람이 심어 가꾸면 사람한테서 풍기는 온갖 독한 기운으로 인해 차두와 차미가 생긴다. 그러므로 요즈음 밭에서 재배하는 인삼이나 산에서 재배하는 산양삼, 장뇌삼 같은 것은 뇌두에 독이 있다고 하여 대개 뇌두 부분을 떼어내어 버리고 약으로 쓴다.
셋째, 두메길경은 약성이 제법 높아서 음식으로는 쓰지 않고 대개 약으로 중요하게 쓴다. 두메길경은 사람의 흔적이 별로 없는 깊은 산속에서 자라므로 차두(叉頭)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뇌두를 떼어내지 않고 뿌리 전체를 약으로 쓰는데 몸통보다 뇌두가 약효가 더 높다.
수명도 몹시 길어서 오백 살이나 육 백 살쯤 묵은 것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뿌리의 굵기는 보통 가운데손가락 만하거나 그보다 약간 작다. 두메길경은 오장육부와 사지백해(四肢百骸)에 생기는 온갖 질병에 두루 효과가 좋은 선약이다.
넷째, 고산길경은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불로장생하게 지상 최고의 선약으로 그 효능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생태와 효능이 기이하여 하나의 이름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열 가지가 넘는 이름이 생겼다.
천수를 누리며 병 없이 산다고 하여 천수무병근(天壽無病根), 천 년을 사는 도라지라고 하여 천수길경근(千壽桔梗根), 능히 만 년을 살 수 있다고 해서 만세근(萬歲根)이라고도 한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천수를 누린다고 하여 고산천수길경(高山千壽桔梗), 천강성(天罡星)의 정기를 받아 만세를 누린다고 하여 만세천강근(萬歲天罡根), 천강근(天罡根), 그 뿌리의 생김새가 사람이 만세를 부르는 듯 하다고 하여 만세근, 꽃의 모양이 푸른 등불 모양과 같다고 하여 청등근(靑燈根), 청등초(靑燈草)라고 한다. 이 밖에도 괴강근(怪罡根), 청롱근(靑蘢根) 등의 이름이 있으며 순수한 우리말로는 만년살이 도라지라고 부른다.
만세천강근은 뭇 생명의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고 자라는 까닭에 불사(不死)에 가까운 수명을 누린다. 영생(永生)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수명이 길고 이것을 복용하는 사람도 백 년 이상 연년익수(延年益壽)할 수 있다고 한다.
고산길경은 뿌리가 굵은 것은 새끼손가락만하고 작은 것은 젓가락만하다. 그 약효가 뇌로 올라가서 뇌기능을 활발하게 하고 기억력을 좋게 하며 뇌와 관련된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데 불가사의한 효력을 발휘한다. 두뇌에 생기는 갖가지 질병과 이목구비(耳目口鼻)의 모든 질병, 목과 인후, 기관지와 폐의 온갖 질환을 통치하는 효과가 있다. 그 효과가 신비롭고 불가사의하여 지구상에 있는 수십만 가지 약초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약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가히 천하제일의 선약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오장육부나 사지백해의 온갖 질병에도 뛰어난 치료효과가 있지만 매우 희귀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중병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
2) 전염병과 불치병을 퇴치하여 인류를 구할 항역구명탕
만세천강근을 달여서 만든 탕약(湯藥)을 우리 옛 선각자들은 항역구명탕(抗疫救命湯)이라고 불렀다. 이는 온갖 역병에서 목숨을 구해 주는 약이라는 뜻이다. 만세천강근이 온갖 역질(疫疾) 곧 조류독감이나 유행성 독감, 돼지독감, 에이즈 같은 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로 인한 온갖 전염병에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아득한 옛적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먼 앞날에 알 수 없는 괴질이 세상을 휩쓸어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할 것을 알고 이를 퇴치할 수 있는 약을 미리 마련하여 극비(極秘)리에 전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만세천강근이다. 지금 세상에 유행하는 전염병이나 앞으로 다가올 어떤 전염병이든지 만세천강근을 먹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만세천강근은 모든 병원균과 바이러스를 죽이고 면역력을 높여서 온갖 역질을 물리친다.
실제로 앞으로 인류가 전염병으로 인해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중세에 페스트가 유행하여 유럽의 인구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기도 했으며, 1918년 전 세계적으로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여 5천만 명에서 1억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3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치사율이 높고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며 전염성이 강한 역병이 발생하면 의학자들이 그 치료약을 개발하기도 전에 온 인류가 감염되어 인류 전체가 몰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세근은 아득한 옛적부터 도인이나 선각자들 사이에 먼 앞날에 닥쳐 올 온갖 유행성(流行性) 역질(疫疾)을 퇴치하는 특효약으로 비밀리에 전해 오는 약초이다.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옛 선지자들은 천강근이 앞날에 아무리 무서운 괴질이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모두 물리치고 인류를 멸망에서 구할 수 있는 약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극비리에 극소수의 제자들한테만 대를 물려 전하게 하였다. 수천 년을 이어오는 동안 한 세대에 오직 한 사람의 수제자한테만 전하여 그 맥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
만세근은 온갖 전염병 뿐만 아니라 인체의 어느 부위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상해(傷害)나 불치나 난치로 알려진 온갖 병증(病症)에 불가사의한 치유효과를 발휘한다. 암, 당뇨병, 온갖 염증으로 인한 질병, 심장순환기계 질병, 면역력 저하나 면역계의 이상으로 인한 질병, 폐와 기관지의 질병, 간과 쓸개의 질병, 콩팥과 생식기 계통의 질병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만병을 통치할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사람한테 질병이 생기는 근본 원인은 정상적인 세포가 기형세포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뇌수(腦髓)나 척수(脊髓), 사지백해(四肢百骸)의 골수(骨髓)나 관절(關節), 오장육부의 각 장기나 생식기관, 내분비 기관, 혈액, 혈관, 피부, 모공(毛孔), 모발(毛髮) 등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에 생기는 질병은 정상적인 세포가 외부나 내부의 어떤 좋지 않은 영향으로 인해 기형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생긴다.
기형세포의 핵을 파괴하여 만병을 물리친다
정상적인 세포가 어떤 나쁜 영향으로 한 번 비정상적인 세포로 바뀐 것을 일차(一次)기형세포라고 한다. 이 일차기형세포는 자신과 꼭 같은 기형세포를 복제하고 죽어서 없어진다. 이 복제된 일차기형세포가 다시 어떤 좋지 않은 영향으로 인해 한 번 더 상처를 입으면 이차기형세포가 된다. 이 이차기형세포도 자신과 꼭 같은 기형세포를 복제하고 나서 죽는다. 복제된 이차기형세포가 어떤 다시 좋지 않은 영향으로 인해 상처를 입으면 삼차기형세포가 된다. 삼차기형세포도 자신과 꼭 같은 기형세포를 복제하고 죽는다. 이 복제된 삼차기형세포가 다시 어떤 나쁜 영향으로 인해 상처를 입으면 사차기형세포가 된다. 이 사차기형세포가 곧 암세포이다.
일차기형세포를 일러 비기능성세포라고 하고, 이차기형세포를 발병세포라고 하며, 삼차기형세포를 만성질환세포라고 하고, 사차기형세포를 일러서 악성종양세포 또는 암세포라고 한다. 사차기형세포는 주변의 온갖 나쁜 조건 속에서도 죽지 않고 무한하게 분열할 수 있는 불사신과 같은 세포로 탈바꿈하는데 이 불사의 세포가 수십 억 개로 분열하여 덩어리를 이룬 것이 암이다.
천강근은 이 일차와 이차, 삼차, 사차에 이르는 온갖 기형세포의 핵에 깊이 침투하여 기형세포가 더 이상 복제를 하지 못하도록 세포핵을 파괴하여 온갖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한다. 정상적인 세포는 더 튼튼하게 하고 병들고 불량한 세포만을 골라서 파괴하여 없애서 만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천강근을 복용하면 현대의학이나 한의학에서 어떤 방법으로 고칠 수 없는 모든 불치병이나 난치병을 고칠 수 있다. 암이나 당뇨병, 파킨슨병, 근무력증 같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정신박약아나 저능아, 불구자로 타고난 사람, 요절한 체질을 타고난 사람, 선천성이거나 유전적인 질병까지도 모두 고칠 수 있는 것이다.
3) 만세천강근을 올바르게 복용하는 방법
모든 약을 먹을 때에는 정성이 지극해야 한다. 옛말에 약은 만드는 정성, 달이는 정성, 먹는 정성의 세 가지 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잘못 달이면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옛말에 약은 음화(陰火)에서 오래 달이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였다. 음화는 숯불이다. 숯불 중에서 약을 달이는 데에는 오동나무 숯불이 제일 좋다고 하였다. 오동나무 숯은 화력이 약하고 오래 탄다. 약은 약한 불로 천천히 오래 달이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서는 오동나무 숯을 구하기도 어렵고, 숯불에 약을 달이는 일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에는 약을 달이는 도구가 발달하였으므로 좋은 약탕기를 구해서 가스불이나 전기로 천천히 달이면 된다.
천강근의 하루 분량은 한 냥(37.5그램)에서 두 냥(75그램)이다. 특별한 질병이 없는 사람은 한 냥을 복용하고 몸이 허약하거나 지병이 있는 사람은 두 냥을 달여서 복용한다. 천강근을 달이는 용기는 유리나 옹기로 만든 것이거나 또는 법랑으로 표면처리가 된 것이 좋다. 쇠나 알루미늄, 내열 플라스틱 같은 것으로 만든 것을 쓰면 안 된다. 온도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가정용 홍삼 추출기나 슬로우 쿠커 같은 것을 구해서 쓰는 것이 좋다.
말린 천강근 한 냥이나 두 냥에 물 1리터에서 2리터를 붓고 천천히 가열하여 섭씨 95도에서 97도의 온도에서 세 시간에서 다섯 시간쯤 달여서 거무스름한 빛깔로 우러나면, 온도를 90도쯤으로 약간 낮추어 다섯 시간에서 일곱시간쯤을 더 달인다. 그런 다음에 약탕기에 들어 있는 채로 보온 상태에 두고 하루 열 번쯤에 나누어 밥 먹는 것과 상관없이 수시로 떠서 복용한다.
대개의 약은 섭씨 100도가 넘는 높은 온도에서 달이면 안 된다. 약재 속에 들어 있던 미세하고 가벼운 성분들이 휘발되어 날아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또 짧은 시간 동안 달이면 약재에 들어 있는 약효성분들이 제대로 우러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약은 약한 불로 오랫동안 달일수록 좋다. 특히 천강근에는 지극히 세미한 입자의 백금, 유황, 아연 같은 식물성 미네랄 성분들이 아주 많이 들어 있으므로 달일 때 온도가 섭씨 100도가 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약재를 달이고 남은 찌꺼기를 약밥이라고 한다. 이 약밥을 흔히 퇴비로 쓰거나 동물 사료로 쓴다. 그러나 천강근을 달이고 남은 약밥에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섬유소가 들어 있으므로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 천강근을 달여 낸 찌꺼기는 천강근을 달여서 우려 낸 물보다 훨씬 약성이 높다. 천강근을 달이고 남은 약밥은 토판 천일염이나 묵은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고춧가루, 마늘, 파, 생강 같은 것으로 양념을 해서 나물로 무쳐 먹는 것이 좋다. 천강근에 들어 있는 지극히 미세한 입자의 섬유소가 뇌혈관과 뇌신경을 강화하는데 가장 좋은 약이 된다.
천강근이나 천강근을 달인 탕액은 절대로 냉장고에 보관해서는 안 된다. 냉장고에 넣으면 약효가 형편없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천강근 뿐만 아니라 어떤 약이나 음식이든지 냉장고에 넣는 것은 좋지 않다.
천강근을 복용하는 동안 모든 종류의 고기, 달걀, 우유와 유제품, 버섯, 청량음료, 아이스크림, 밀가루 음식, 설탕이 들어 있는 음식, 당분이 많은 바나나, 수박, 사과 같은 과일, 라면, 빵, 과자, 햄버거 같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술, 담배, 커피, 녹차나 홍차, 보이차 같은 것도 피해야 한다. 어떤 것이거나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을 먹지 말고, 따뜻한 물을 마셔야 하며 찬 물을 마셔서는 안 된다. 천강근을 먹을 때 이런 금기사항들을 지키지 않으면 약효가 훨씬 줄어든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 쌀밥이나 현미밥보다는 늘보리를 곱삶아 보리밥을 지어 먹는 것이 좋다. 한편으로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우리 고유의 전통 발효식품을 많이 먹고 갖가지 산나물이나 들나물, 해조류 등으로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가끔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황태나 콩나물국을 푹 끓여서 먹도록 한다.
약을 먹을 때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 제일 어렵고 정성이 많이 든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해도 금기음식을 지키지 않으면 제대로 효과를 보기 어렵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4) 만세천강근에 얽힌 전설
1. 노인성과 칠성신께 무병장수를 빌게 된 사연
옛날에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한 처녀가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느 날 병이 나서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처녀는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를 온갖 정성으로 돌보았다. 이름난 의원을 불러 약을 써 보았으나 백약(百藥)이 무효였다. 아버지의 병은 갈수록 더 위중해졌다.
처녀는 장독대 한쪽 옆에 정화수를 떠서 올리고 날마다 정성스럽게 아버지의 질병을 고칠 수 있게 해 달라고 천지신명께 백일 동안 기도를 드렸다. 백일기도가 다 끝나는 마지막 날 밤에 처녀는 기도를 드리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한 꿈을 꾸었다.
일곱 빛깔의 찬란한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질러 걸렸는데 한쪽은 하늘 한가운데 있는 북두칠성에 걸리고 다른 한쪽은 뒷산 제일 높은 봉우리 꼭대기에 걸렸다. 꿈에서 깨어난 처녀는 뒷산에 올라가면 아버지 고칠 수 있는 약초를 구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약초를 캐기 위해 괭이와 바구니를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몇 시간을 걸어서 뒷산 꼭대기에 올라갔더니 온통 험한 암벽과 바위투성이라서 풀 한 포기도 나무 한 그루도 자랄 수 없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무슨 약초가 있겠는가? 그 꿈이 아마 개꿈이었나 보다. 내 정성이 모자라서 헛것이 보였던 모양이군.”
처녀는 혼잣말을 하면서 한숨을 쉬고 돌아서서 산을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때 건너편에 있는 봉우리에서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노인은 처녀를 보고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처녀는 그 노인이 산신령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노인은 이마가 고깔처럼 높이 솟아 있어서 이마가 몸통보다 더 길어 보였으며 이마에 주름이 아주 많고 눈썹은 땅에 닿을 만큼 길었다. 노인이 손짓을 하는 대로 바위를 붙잡고 봉우리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노인은 바위틈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 같이 가요.”
처녀도 얼른 그 바위틈으로 따라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바위틈이 순식간에 닫혀 버려서 손가락 하나도 들어갈 틈도 보이지 않았다.
노인이 사라진 바위틈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처음 보는 약초 뿌리가 바위틈에 박혀 있었다. 그 생김새가 마치 이마가 몹시 긴 노인을 꼭 닮았다.
“이 약초 뿌리가 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임에 틀림없어. 산신령께서 약초가 있는 곳으로 나를 인도해 주신 거야!”
처녀는 산신령께서 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초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 주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처녀는 바위틈에서 이마가 긴 노인처럼 생긴 약초를 많이 캐서 집으로 갖고 내려왔다.
처녀는 그 뿌리를 달여서 아버지께 드렸다. 과연 아버지는 그 약초를 복용하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아 수십 년을 더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처녀가 산에서 본 노인의 모습과 그 약초의 뿌리가 서로 닮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또 꿈에 북두칠성에서 무지개가 내려와서 뒷산 꼭대기에 걸려 있었다는 말을 듣고 꿈에서 본 노인이 북두칠성의 정령이라고 믿었다. 또 노인을 닮은 그 약초는 북두칠성의 정기가 강림하여 자라난 약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부터 북두칠성이나 북두칠성의 정령인 수성노인(壽星老人)한테 질병치유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북두칠성이 수명을 관장한다고 하여 수성(壽星)이라고 하였고, 그를 기리기 위해 높은 산봉우리에 칠성각(七星閣)을 지었다.
우리나라에는 오천 년 전부터 칠성을 섬기는 신앙이 있다. 절간에도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大雄殿)보다 더 높은 자리에 칠성을 모신 칠성전(七星殿)이나 칠성당(七星堂), 칠성각(七星閣)이 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칠성신앙이 나중에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결합하여 절간에서도 칠성을 모시는 전통이 생겨난 것이다.
2. 동자야 네 나이가 몇이냐? 만세, 만세, 만만세
옛날에 금슬이 좋은 한 부부가 있었다. 그러나 늘그막이 가까워지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부인은 오랫동안 천지신명께 기도를 해서 간신히 아들을 하나 낳았다. 부부는 어렵게 얻은 아들을 금지옥엽(金枝玉葉)처럼 귀하게 여겼다. 아들은 몹시 총명하였으나 몸이 허약하였다.
어느 날 아이한테 병이 났다. 아이의 부모는 이름난 의원을 불러 약을 써 보았으나 별 효험이 없었다. 의원들은 아들이 요절할 체질을 타고나서 화타(華陀)나 편작(扁鵲), 황제(黃帝), 신농(神農) 같은 분들이 살아온다고 해도 고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어렵게 얻은 아들을 잃을 것을 생각하니 부모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아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어머니는 뒤뜰에 단을 만들고 정화수를 떠 놓고 날마다 칠성께 정성들여 기도를 드렸다. 그런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잔등에 북두칠성을 짊어진 한 동자(童子)가 나타나서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동자를 따라 나섰다. 동자는 뒷산의 암벽을 올라가는데 걸음걸이가 나는 듯 빨라서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동자를 따라가느라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좀 천천히 가자꾸나. 얘야! 네 나이가 몇 살이냐?”
동자는 대답 대신 “만세!” 하고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산을 올라갔다.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대체 네 나이가 몇 살이냐? 몇 살인데 그렇게 걸음이 빠른 것이냐?”
동자는 먼저와 꼭 같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만세!”를 불렀다.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얘야! 만세만 부르지 말고 진짜 네 나이를 말해 다오. 네 나이가 몇 살이냐?”
동자는 “만세! 만만세!” 라고 하면서 두 손을 두 번 반복해서 손을 들어올렸다.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아무리 봐도 예닐곱 살 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네가 만 살이라도 되었다는 말이냐?”
동자는 대답 대신 “만만세! 만만세!” 하고 두 손을 번쩍 두 번을 들어 보이더니 갈라진 바위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어머니가 급히 동자가 들어간 자리를 살펴보았으나 돌 틈은 닫혔고 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도 다 있군!”
동자가 들어간 돌 틈을 살펴보니 처음 보는 풀이 있었다. 그 풀의 뿌리를 캐 보았더니 돌 틈으로 들어가서 사라져 버린 동자처럼 두 손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형상이 아닌가.
꿈에서 깨고 난 뒤에 어머니는 꿈에서 본 대로 뒷산 꼭대기로 올라갔더니 꿈에서 본 것과 꼭 같은 풀들이 많이 있었다. 그 풀의 뿌리를 캐어 보니 꿈에서 본 동자의 모습대로 만세를 부르고 있는 형상이었다.
어머니는 그 풀을 캐서 갖고 와서 아들한테 달여 먹었다. 아들은 그 약초를 달여 먹고 건강이 완전하게 회복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사람들은 그 약초의 뿌리를 만세근(萬歲根) 또는 만세천강근(萬歲天罡根)이라고 불렀으며, 천강성(天罡星) 곧 하늘에 있는 북두칠성이 동자로 화신(化身)해서 약초를 가르쳐 준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 두 손을 들어 올려 만세를 부르는 습관이 생겨났다. 동자가 하던 손짓을 따라서 만세라고 하면서 두 손을 하늘로 번쩍 들어 올려서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전통이 생겨난 것이다. 만세에는 만 년 동안 건강하게 살기를 소망이 담겨 있다.
3. 처녀총각의 방문 앞에 청사초롱을 밝힌 까닭은?
옛날에 한 고을에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애지중지 곱게 키우던 딸이 병이 나서 다 죽게 되었다. 의원을 불러 약을 썼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온갖 굿과 무거리를 하고 절간에 가서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장독대에 찬물을 떠 놓고 북두칠성께 딸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100일 기도를 드렸더니 어느 날 밤에 꿈인 듯 생시인 듯 청사초롱을 든 동녀(童女)가 나타났다. 동녀는 한 손에는 청사초롱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청사초롱을 든 동녀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더니 어느 초가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동녀를 따라 초가집 속으로 따라 들어갔더니 초가집은 간 곳 없고 온통 너럭바위뿐이었다. 동녀를 찾느라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동녀는 보이지 않고 바위틈에 동녀가 들고 있던 청사초롱과 꼭 같이 생긴 꽃이 있었다.
“이 꽃이 우리 딸을 고칠 수 있는 약이 틀림없어.”
어머니는 그 꽃의 뿌리를 캐서 집으로 갖고 와서 앓아누워 있는 딸한테 달여서 먹였다. 딸은 차츰 몸이 좋아지기 시작하여 병이 완전히 나았다. 딸은 병이 나아서 이웃에 사는 훌륭한 도령한테 시집을 갔다.
그 뒤부터 어머니가 약초를 캐러 갔던 골짜기를 초롱골이라고 불렀으며, 혼기가 가까운 총각이나 처녀의 방 앞에 비단으로 청사초롱 등불을 만들어 걸어두는 풍습이 생겨났다.
4. 상투의 기원은 천강근이다
옛날, 아버지께서 약초꾼들이 오래 묵은 잔대나 도라지를 캐서 갖고 온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이 놈은 아직 상투를 안 틀었구먼.”
“이 놈은 상투가 아주 길어서 좋은 약이 되겠구나.”
아버지께서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도라지는 21년이 되어야 뇌두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21년이 지나야 비로소 사람으로 치면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남자는 21살이 되어야 상투를 틀 수 있었다. 여자는 18살이 되어야 성인이 되고 남자는 21살이 되어야 어른 노릇을 할 수 있었다. 남자가 상투를 트는 풍습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으로 도라지가 스물 한 살이 되어 마치 상투를 틀고 있는 듯한 모양으로 뇌두가 생기는 것을 보고 생겨난 것이다. 도라지가 스물 한 살이 되어야 뇌두가 생겨 약효가 제대로 나고, 사람은 스물 한 살이 되어야 상투를 틀어 어른으로 대접을 받는다.
5. 칠선녀와 상사병에 걸린 가난한 선비
옛날 어느 마을에 한 가난한 선비가 있었다. 선비는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하여 어느 깊은 산 속에 있는 절간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글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그 절간에 한 어여쁜 낭자가 가마를 타고 불공을 드리려고 왔다. 그 낭자는 고관대작의 딸로 용모가 몹시 아름다웠다.
어느 날 밤에 글을 읽다가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절간 마당에 나왔던 선비는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서 어여쁜 낭자가 탑돌이를 하는 것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다.
“저토록 아름다운 낭자가 있다니.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해도 저 낭자만큼 아름답지 않을 거야!”
그 뒤로 선비의 눈에는 책을 보아도 그 낭자의 얼굴로 보이고 불상을 보아도 낭자의 얼굴로 보였다. 그런데 그 낭자는 신분이 아주 높은 고관대작의 딸이었다. 가난한 선비로서는 감히 얼굴을 마주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감히 매파를 놓아서 혼인을 청할 수도 없는 처지였으므로 혼자 끙끙 앓아누웠다.
선비의 부모들은 아들이 상사병에 걸린 것을 알고 어디 여자가 그 낭자 하나 밖에 없느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타일러 보았으나 막무가내로 아무 소용이 없었다.
총각이 열이 펄펄 나고 헛소리를 하면서 앓아누워 있던 중에 비몽사몽간에 한 꿈을 꾸었다. 기화요초가 가득한 한 아름다운 한 골짜기가 나타났는데 거기에는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일곱 선녀들이 장난을 치면서 노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 선녀들이 노는 모습을 한참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 때 일곱 선녀 중에서 막내 선녀가 그를 발견하고 다가와서 옥 같이 고운 음성으로 물었다.
“도령님께서는 이곳 선계(仙界)에 어찌하여 이곳에 오셨습니까?”
“저도 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절간에서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서 글공부를 하고 있다가 불공을 드리러 온 한 여인한테 반해서 상사병으로 앓아누워 헛소리를 하고 있었는데 문득 정신이 들어보니 이곳에 와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 사는 일곱 선녀 중에 막내로 이름을 요광(搖光)이라고 합니다.”
도령이 일곱 선녀들을 보니 하나같이 얼마나 곱고 아리따운지 먼저 절간에 불공을 드리러 왔던 고관대작의 딸 같은 것은 형편없는 추물로 느껴졌다.
요광선녀가 말했다.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놀다가 가십시오. 제가 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도령님께서는 저를 따라 오십시오.”
선녀는 청사초롱을 한손에 들고 한손으로 손짓을 하여 선비를 그림같이 아름다운 기와집으로 안내하였다. 선녀는 넓고 깨끗한 마당을 지나 원앙금침이 펼쳐져 있는 방으로 도령을 안내하였다. 선녀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청사초롱을 들고 문밖에 걸어놓고 도령을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선녀가 말했다.
“도령님께서는 오늘 저를 품에 안으시고 그 고관대작의 딸은 잊어버리십시오.”
“이것이 정녕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군요.”
선비총각은 막내선녀를 품안에 꿈같이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선비가 잠에서 깨어보니 선녀도 기와집도 간곳없고 언제 어떻게 올라왔는지 높은 산꼭대기에 바위 위에 혼자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선비는 몽유병에 걸려서 꿈에 보는 선녀를 따라 산꼭대기까지 올라와서 잠이 들었던 것이다.
선비가 정신을 차려 보니 선녀를 안고 누웠던 자리에 선녀가 들고 있던 청사초롱과 꼭 같이 생긴 파란색 꽃이 피어 있었다. 선비는 그 풀의 뿌리를 많이 캐서 갖고 와서 달여서 먹었다.
선비는 그 풀의 뿌리를 캐서 먹고 상사병이 완전히 나았을 뿐만 아니라 머리가 아주 총명해졌다. 선비는 글공부를 열심히 해서 마침내 과거시험에서 장원으로 급제를 하였다.
그 뒤부터 그 약초의 꽃이 꿈에서 본 선녀가 들고 있던 청사초롱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그 약초를 등롱초(燈籠草) 또는 청등초(靑燈草)라고 하였고, 그 뿌리를 청등근(靑燈根) 또는 청롱근(靑蘢根)라고 불렀다.
5) 천강근으로 고친 난치병 이야기
1. 곰보 구두닦이가 곰보자국이 사라진 사연
오래 전에 서울 중구 퇴계로에서 구두닦이로 어렵게 살림을 꾸려나가는 한 사십 대 총각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빡빡 얽어서 곰보인 데다가 천식과 비염이 심해서 일 년에 절반 이상을 감기를 달고 살고 심한 기침과 콧물에 시달렸다.
천식이 몹시 심해서 숨이 몹시 차서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이 들어서 구두닦이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엄동설한에 살길이 막막하고 병이 심해서 고통이 심했지만 가족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사정이 몹시 딱해서 감기와 천식이라도 고쳐서 구두닦이 노릇이라도 제대로 해서 먹고 살게 해 주겠다는 생각에서 천강근탕을 달여서 주었다. 그는 천강근탕을 2년 동안 먹고 평생을 달고 다니던 천식과 비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보고 곰보자국이 줄어들고 날이 갈수록 젊어진다고 말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강근이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해도 곰보자국이 없어질 수야 있겠는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3년 동안 천강근탕을 복용하고 놀랍게도 곰보자국이 완전히 없어져서 얼굴이 깨끗하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천강근이 곰보자국을 없앨 수도 있는 약초라는 것을 알았다.
2. 혈우병과 공포증을 앓던 아이가 모범생이 된 까닭
용인에 사는 여섯 살 난 여자 아이를 그 어머니가 데리고 왔다. 아이는 제법 총명해 보였으나 낯가림이 몹시 심했다. 진맥을 해 보려고 해도 제 어머니 품으로만 파고들기만 하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심해서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할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을 같이 놀아주고 나서야 아이야 약간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일분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내 얼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낯가림을 심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10여 분 동안 말을 붙인 뒤에야 다시 친해져서 아이를 안고 진맥을 할 수 있었다.
아이는 무릎과 팔목 부분에 브래지어를 잘라서 만든 봉을 대고 끈으로 묶어놓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한테 그 이유를 물어보니 혈소판이 매우 부족하여 코피가 나거나 한 번 부딪혀서 상처가 나서 피가 나기만 하면 이틀이 지나도 피가 멎지 않는다고 하였다. 무릎이나 팔목을 다쳐 살이 찢어져서 피가 한 번 나기만 하면 멎지 않으므로 부딪혀도 상처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브래지어 봉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혈소판 수치가 14만이라야 정상이라고 하는데 아이는 1만이 채 안 된다고 하였다. 몸에서 혈소판이 거의 생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몹시 건망증이 심해서 잠에서 깨어날 때 처음 보는 사람을 아버지나 어머니인 줄 안다고 하였다. 만약 잠을 자다가 깨어났을 때 곁에 아무도 없으면 경기를 일으켜서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이가 잠을 잘 때에도 부모 중에 한 사람은 반드시 곁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잠에서 깨면 즉시 경기를 일으키지 않도록 달래 주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잠에서 깨어날 때 아버지가 곁에 없고 어머니만 있을 때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면 아버지를 보고 놀라서 경기를 일으켜 까무러치고, 어머니가 곁에 없고 아버지만 있을 때 어머니가 나타나면 어머니를 보고 놀라서 까무러친다고 하였다. 병원에서는 병의 원인도 모르고 병명도 알 수 없으며 다만 고칠 수도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아이를 진맥하고 나서 어머니한테 아이의 눈을 보니 총명하므로 지금은 어렵겠지만 잘 키우면 열 아들을 키우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이한테 봉래천강근탕을 달여서 보내 주었다.
아이는 봉래천강근탕을 복용하고 그토록 심하던 건망증과 무섬증이 사라지고 혈소판이 차츰 늘어나서 정상 수치로 되었다. 지금 8년이 지났는데 정상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출혈 증상은 1년이 지나면서 차츰 멎고 백혈구 수치도 정상으로 되었다. 그토록 심각하던 건망증도 사라졌으며 경기도 전혀 하지 않게 되었다. 머리가 아주 총명하게 되어 학교에서 성적이 제일 높아졌으며 손꼽히는 모범생이 되었다. 창의력도 뛰어나고 배짱도 두둑해져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3. 백혈병과 혈우병이 한꺼번에 나아
여러 해 전에 여섯 살 난 한 사내아이가 백혈병과 혈우병으로 인해 찾아왔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데다 혈소판 수치가 아주 낮아서 코피가 한 번 나면 일주일 동안 멎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는 피골이 상접하다고 할 만큼 몸통이 바싹 말랐고 키가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작아서 마치 난장이처럼 보였다. 아이는 늘 피로하고 근력이 몹시 약해서 간신히 한두 발자국을 걷고 나면 그 자리에 쓰러져서 일어나지를 못한다고 했다.
진맥을 하고 나서 약으로 만세천강근을 달여서 주었다. 아이는 일 년 동안 천강근탕을 복용하고 백혈병이 거의 다 나았다. 백혈구 수치가 2,000-3,000이던 것이 10,000 이상으로 올라갔고 혈소판 수치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2년 동안을 복용하고 아주 건강해지고 근력이 매우 좋아졌다. 밖에 나가서 열심히 뛰어놀기만 좋아하는 까닭에 햇볕에 얼굴이 까맣게 그슬려서 마치 아프리카 토인처럼 되었다. 지금 열세 살이 되었는데 키가 165센티미터가 넘게 자라서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더 커졌다. 다만 아버지의 체질을 닮아서 비쩍 말라서 살이 찌지 않고 밖에서 뛰어노는 것만 좋아하고 공부를 등한시하는 것이 흠이라고 하였다.
4. 근무력증으로 배가 철판 같이 굳어진 것을 고치다
스물여덟 살 된 한 여성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서른 살 된 남자와 결혼을 해서 첫 딸을 두었다. 다리가 마치 고무로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힘이 없어져서 걸음을 걸을 수 없는 이상한 병에 걸렸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몇 걸음을 간신히 걷다가 그 자리에 쓰러지곤 했다. 다리에 힘이 전혀 없으므로 다리가 이리 저리 꼬부라지고 비틀려서 일어날 수도 걸음을 걸을 수도 없었다.
간신히 일어나서 걸음을 걸으려면 옆에서 두 사람이 부축을 해 주어야 했다. 발을 끌기만 할 수 있을 뿐 1센티미터도 들어 올릴 수가 없으므로 계단을 올라갈 수가 없었다. 계단은커녕 문턱도 넘을 수가 없었다. 두 다리에 힘이 없어서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므로 한 발을 떼기만 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고 했다.
배를 만져 보니 마치 철판이라도 깔아놓은 것처럼 딱딱했다. 손으로 세게 눌러 보았으나 3밀리미터도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시멘트 콘크리트 바닥 위에 모노륨 장판을 깔아놓은 것과 같았다. 뱃가죽 밑에 콘크리트 바닥이 깔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낫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했다고 하였다.
병의 증상을 물었더니 종이 석 장에 앞뒤로 빽빽하게 적어 온 것을 주었다. 다 읽어 볼 수가 없어 말로 진맥을 하고 나서 천강근탕을 약으로 달여 주었다.
이 여성은 제법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나 병으로 인해 직장에 병가(病暇)를 내고 2년 동안 쉬면서 천강근탕을 먹었다. 천강근탕을 먹고 2년 만에 병이 완전히 나아서 직장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천강근탕을 먹고 다리에 힘이 몹시 세어져서 직장에서 무거운 화물을 들고 날라야 하는 부서에 배치되었다. 한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던 허약한 몸이 수백 명의 직원 중에서 가장 힘이 세고 건강한 사람으로 뽑힌 것이다.
이 여성의 어린 딸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근무력증 초기 증상이 있었으나 천강근탕을 먹고 완전히 나았다. 병원에 돈을 다 갖다 바쳐서 재산이 거덜이 나 있었으므로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고쳐 주었다.
5 .곰보인 내 딸은 어디로 갔는가
얼굴이 빡빡 얽은 서른여덟 살 된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서 얼굴이 곰보인데다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무병(巫病)이 들어 무당이 되었다. 어머니는 딸이 무당의 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 싫어서 어린 딸을 절간에 보내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게 하였다.
비구니는 얼굴이 곰보인 것과 여자로 태어나서 연애도 한 번 못 해 보고 중이 된 것이 서러워서 인생을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였다. 그런 중에 우연히 그 절간에 갔다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곰보 비구니 스님을 발견하고 그 사연을 듣고 나서 천강근탕을 달여 약으로 보내 주었다.
비구니 스님은 천강근탕을 3년 동안 복용하고 곰보자국이 차츰 희미해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완전히 없어졌다. 곰보자국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얼굴이 아주 고와져서 누가 보아도 아리따운 얼굴로 변했다.
그 때 마침 무당이 된 어머니가 7년 만에 딸을 만나보기 위해 절간으로 찾아왔다. 비구니 스님이 몹시 반가워하면서 어머니를 맞았으나 어머니는 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넋두리를 했다.
“우리 딸은 얼굴이 빡빡 곰보인데 너는 곰보가 아니므로 내 딸이 아니다. 늙은이를 희롱하지 말고 내 딸을 내놓아라. 내 딸을 어디에 감추었느냐?”
“어머니! 제가 어머니 딸입니다.”
“아니다. 너는 내 딸이 아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내 딸 같기는 한데 얼굴은 내 딸이 아니다.”
“어머니! 어떤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좋은 약을 지어 주셔서 그 약을 먹고 곰보자국이 깨끗하게 없어졌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세상에 곰보를 낫게 하는 약도 다 있단 말이냐?”
어머니는 딸한테 여러 가지 말을 시켜 보고 나서야 제 딸이 틀림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 눈물을 흘렸다.
6. 목이 떡갈나무 창에 찔려 혀를 뚫고 나왔으나
열 살쯤 되었을 적에 한 길이 넘는 언덕 위에서 밑에 있는 대밭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나 발밑에 대나무를 낫으로 베어내고 남은 그루터기가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아얏!” 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만큼 굵고 끝이 창날처럼 날카로운 대나무 그루터기가 용천혈을 뚫고 발등위로 올라왔다. 순식간에 뜨거운 피가 솟구치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용천혈에 찔리면 힘을 전혀 쓰지 못하고 덧나기라도 하면 고칠 방법이 없다고 다들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기를 원했으나 병원에 가지 않고 천강근탕을 달여서 먹기로 했다. 상처를 본 사람들이 대꼬챙이가 발바닥뼈를 뚫고 나왔으므로 발을 잘라야 한다고 했으나 천강근탕을 여러 달 먹었더니 상처 구멍이 차츰 메워지고 부서지고 망가진 뼈도 되살아나서 완전하게 회복되었다.
예닐곱 살 무렵의 단오 날이었다. 솔밭 언덕에 솔가지에 그네를 매고 그네를 탔다. 어른들이 그네를 타는 것을 보고 좋아 보여서 흉내를 내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네 줄을 잡고 그네 판에 앉아서 둘째 형한테 그네를 밀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둘째 형은 동생이 칭얼대는 것이 거슬렸던지 그네를 잡고 아주 세게 밀었다. 갑자기 그네가 힘차게 나가는 바람에 그네 줄을 놓치고 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마침 언덕 밑에는 엄지손가락만한 떡갈나무 줄기를 낫으로 베어 끝이 창날처럼 날카롭게 된 그루터기가 하나 있었다. 굴러 떨어지면서 그 뾰족한 떡갈나무 그루터기에 목 위쪽을 찔렸다. 끝이 창날처럼 뾰족한 떡갈나무 그루터기가 턱 아래서부터 혀를 뚫고 올라왔다. 아마 조금만 더 깊이 찔렸다면 떡갈나무 그루터기가 뇌를 뚫고 올라가서 즉사했을 것이다.
피가 분수처럼 마구 솟구치므로 솜을 단단하게 뭉쳐서 뚫어진 상처 구멍을 막아 지혈을 했다. 주변에서 모든 사람들이 병원에 가라고 했으나 이까짓 상처 때문에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하고는 천강근을 달여서 먹었다. 천강근을 먹은 덕분에 전혀 염증이 생기지 않았고 오래 지나지 않아서 상처가 완전히 아물어 붙었다.
7. 연탄가스 중독으로 폐인이 되었으나
오래 전에 서울 도봉구 수유리에 허름한 판잣집을 하나 사 놓고 연탄을 때는 방을 하나 얻어서 살았다. 그러나 이른 봄에 집을 나서서 채약을 하느라고 온 산천을 돌아다니다가 날씨가 추워서 채약을 할 수 없는 10월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날씨가 몹시 추운 어느 날 거의 열 달 만에 집에 돌아와 연탄아궁이 세 개에 연탄 9장을 넣고 불을 지피고 방안에 들어가서 방문을 꼭꼭 닫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재래식 구들로 된 방에 굴뚝 속에 쥐들이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집을 짓고 새끼를 치고 사느라고 굴뚝이 완전히 막혀 있었던 것을 몰랐다. 연탄가스가 굴뚝으로 전혀 빠져나기지 않고 모조리 방안으로 스며들었다. 연탄아궁이의 숨구멍을 약간만 막아 두었으므로 연탄불은 천천히 타서 30시간이 지나서야 완전히 꺼졌고 나는 27시간 만에 이웃사람들한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틀만에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하고 나서 보니 연탄가스로 인해 목이 헐고 성대가 타 버려서 말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시력이 나빠져서 내 손가락도 흐릿하게 보였고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귀는 멀쩡하여 소리는 들을 수가 있었다.
말을 할 수가 없으므로 담당의사와 글을 써서 대화를 했다. 의사는 후두가 타서 걸레처럼 너덜너덜하게 되었으므로 후두를 잘라내고 인공 후두를 다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인공 후두를 달고 얼마 동안 살 수 있겠는가 하고 물었더니 5년 동안 생존한 사례가 있다고만 하였다. 나는 5년을 더 사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므로 당장 죽을지언정 수술은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퇴원을 하겠다고 하였더니 만약 중환자가 잘못되면 병원에 책임이 있으므로 절대로 퇴원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수액 병을 달고 슬리퍼를 신고 환자복을 입은 채로 병원을 빠져나와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천강근을 캐 놓은 것이 있었으므로 천강근을 달여 먹기 시작했다. 천강근을 달여 먹은 덕분에 목과 후두는 90퍼센트쯤 나았고 시력은 80퍼센트쯤 회복되었으며 뇌기능도 80-90퍼센트가 회복되었다. 몸이 웬만큼 회복된 뒤에는 귀한 약을 먹는 것이 아까워서 더 이상 복용하지 않았다.
병원의 의사는 후두와 기관지는 한 번 조직이 파괴되면 절대로 재생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이라고 해도 내 병을 고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천강근탕을 먹고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연탄가스에 중독으로 인한 후유증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호흡곤란이었다. 숨이 몹시 가빠서 계단 하나를 오를 때 10번 이상을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죽을힘을 다해 병원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집 앞에 와서 내렸다. 마당에서 대청마루에 올라가는 일이 설악산을 올라가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만성 두통이었다. 머리가 천 쪽 만 쪽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아팠다. 기억력이 가물가물해져서 내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고 어려서 살던 고향 동네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칫솔을 들고 이빨을 닦아야지 하고는 칫솔을 도로 놓고 방으로 들어오기 일쑤였다. 일분이나 이분 전의 일을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똥오줌 마려운 것만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한쪽 발에는 운동화를 신고 다른 쪽 발에는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가기도 했고, 밖으로 나갔다가 금방 무엇 때문에 나왔는지를 몰라서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잠옷 차림이나 속옷 차림으로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연탄가스에 중독되고 나서 1년 동안 늘 몸에 미열이 나고 감기가 든 것처럼 몸이 오슬오슬 떨려서 찬물에 손을 담그거나 세수를 하지 못했고, 찬물로 양치질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에는 추위를 타지 않고 여름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나 부채도 하나 없이 여름을 날 수 있을 만큼 몸이 좋아졌다.
천강근을 복용하고 나서 차츰 후두의 염증이 낫고 조직이 재생되어 목청이 회복되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고, 시력과 뇌기능도 차츰 정상에 가깝게 회복되었다.
비강에 있는 물렁뼈가 절반 이상 녹아서 없어졌다고 하였으나 그것도 회복되어 축농증을 심하게 앓는 사람처럼 코맹맹이 소리를 하던 증상도 없어졌다.
8. 성장이 중지된 아이를 고친 이야기
몇 년 전에 네 살 된 한 아이를 그 어머니가 데리고 왔다. 아이는 마치 오뚝이처럼 동글동글하여 굴리면 데굴데굴 굴러갈 것 같았다. 태어난 지 3년이 지났으나 뼈는 1퍼센트도 자라지 않고 몸통만 굵어졌으므로 아이의 체형이 마치 나무통처럼 변한 것이다. 손톱이 1년에 1밀리미터도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는 눈만 뜨면 먹을 것을 달라고 악을 쓰면서 울고 먹고 나면 금방 먹은 것을 모두 토해 버렸다. 토하고 나면 다시 기를 쓰고 음식을 아득바득 먹고, 먹고 나면 다시 토해 내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이나 반복했다. 음식을 빼앗으면 곧 죽을 것처럼 울고 먹고 나면 금방 모두 토해냈다.
아이는 몸통의 굵기와 앉은키가 거의 같았다. 발목이나 손목도 마치 굵은 자루 두 개씩을 가운데를 잘록하게 묶어 놓은 것 같았다. 팔뚝의 굵기가 어른 만한테 팔뚝 뼈는 연필만큼 가늘었다. 손가락을 만져 보면 그 속에 있는 뼈가 마치 볼펜 심 마냥 가늘게 잡혔다.
엄마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간신히 기어 다니기만 하고 서지도 걷지도 못한다. 아이를 진맥한 뒤에 천강근탕을 달여 주었다.
아이는 천강근탕을 복용하고 나서 차츰 뼈가 자라고 굵어졌다. 1년 만에 말을 잘 할 수 있게 되었고 여섯 살이 되자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키가 자랐다. 음식도 스스로 조절하여 먹을 수 있게 되어 어머니가 아무리 많이 먹이려고 해도 먹고 싶은 만큼만 먹지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아이는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무료로 약을 해 주었다. 아버지는 택시 기사이고 어머니는 몸이 허약해서 일을 하러 나갈 수가 없는 처지였다. 지금 그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9. 다리를 잘라야 할 골수염을 천강근으로 치유
수십 년 전에 여덟 살 된 어린 조카가 골수염을 앓았다. 정강이뼈가 썩고 골수가 녹아내려서 무릎을 잘라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다리를 자르기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 날 저녁에 동료 일곱 사람을 데리고 인력거 하나를 끌고 조카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으로 갔다. 다섯 명이 병원의 한 쪽 유리창에 돌을 마구 던져서 의사와 간호사들을 그 쪽으로 유인한 다음 그 틈에 두 사람이 재빨리 병원 안으로 들어가서 조카를 데리고 나와 인력거에 싣고 한 동료의 집에 데리고 갔다.
그 집에 조카를 누이고 천강근탕과 봉래약쑥, 여로를 달인 탕약을 복용시켰다. 조카는 사흘 만에 열이 내리고 나흘째에는 미음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보름 만에 완전히 나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0. 백혈병을 천강근과 괭이밥으로 완치
오래 전에 충청북도 충주에 살던 8살 된 꼬마가 골수성백혈병에 걸려서 병원에서 치료를 했으나 고칠 수가 없다고 하여 병원 치료를 그만두고 도와 달라고 찾아왔다. 병원에서 골수 이식을 하면 회복될 가망이 있다고 했지만 아버지나 어머니와도 혈액형이 맞지 않았다. 게다가 외아들이어서 형제도 누이도 없었다. 그래서 골수 이식도 못하고 꼼짝 없이 죽는 날만 기다리는 처지라고 하였다.
괭이밥을 써서 고쳐 보기로 작정하고 신선한 괭이밥을 따서 날것을 지장수(地漿水)로 김치를 담가서 사나흘 동안 푹 익혀서 하루에 30그램씩을 먹게 하였다. 이와 더불어 생즙을 짜서도 먹고 수시로 날것을 그냥 뜯어서 먹게 하였다.
또 천강근을 달인 물로 밥도 지어 먹고 국도 끓여 먹으며 음료로 수시로 마시도록 하였다. 아이는 혈소판도 줄어들어 마구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마치 얼룩 강아지 같았다. 괭이밥을 먹기 시작한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멍이 삭아서 없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집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괭이밥을 뜯어먹느라고 손가락과 입술이 녹색으로 물이 들었다. 신맛이 강해서 먹기 어렵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전혀 신맛이 없고 맛이 아주 좋다고 대답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열심히 괭이밥과 지장수를 먹은 덕분에 4월에 치료를 시작해서 6월이 끝나기 전에 아이의 백혈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병원의 판정을 받았다. 환자가 4월에 찾아 온 것이 다행이었다. 한겨울에 왔더라면 괭이밥을 구할 수가 없어서 고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와 연락이 끊긴 지 오래 되어 얼굴도 잊어버렸고,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아마 나이가 서른 살쯤은 되어 어디선가 건강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11. 신종플루에 감염되었으나 만세천강근으로 회복
2009년 여름 대학생이었던 나는 스페인에 있는 세고비아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아홉 시 무렵에 숙소에 돌아왔다. 그런데 오후부터 몸이 조금 노곤하여 약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한 시간쯤 지나서 잠에서 깨어났다. 목이 마르고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로 가다가 갑자기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거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몹시 춥고 오한이 들고 구토가 나던 천장이 빙글빙글 돌면서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가까스로 일어나서 기다시피 해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굴이 진땀과 머리카락이 엉켜 있는데다가 눈이 퀭하니 안으로 들어가서 마치 좀비처럼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가 깨어지는 것처럼 아프고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변을 보고 일어나서 간신히 기다시피 해서 침대로 돌아와서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밤새도록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며 잠을 자는 듯 마는 듯 지새고 날이 밝았다.
룸메이트인 수잔과 내가 일어나지 않자 숙소의 주인아주머니가 와서 우리를 깨웠다. 그러나 수잔도 나도 일어날 수 없었다. 아주머니가 이마를 짚어 보시더니 열이 있다고 하시면서 타이레놀을 먹여 주셨다. 얼마 뒤에 학교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를 세고비아에 있는 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나는 몸이 차츰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한도 한결 덜해지고 다리에 힘이 조금 생겼다. 어지럼증도 상당히 없어졌다.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를 받는 동안 나는 약간의 감기 증상만 있을 뿐이고 별 문제 없이 몸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수잔은 인사불성으로 부축을 받은 채로 진료를 받아야 했다.
의사는 신종플루에 감염되었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고 검사한 견본을 마드리드로 보내서 판독을 요청하였다.
우리는 호텔에 있는 어느 방에 격리되어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나는 몸이 거의 완전히 나아서 약간 피로하기만 할 뿐 아무렇지도 않아서 호텔에 음식을 주문해서 먹고 숙제도 했다. 저녁 무렵에는 호텔 주변을 걸어서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있는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서 신종플루에 감염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여 호텔에 격리되어 있으며 그 검사결과를 기다라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 무렵 돼지독감이 스페인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한 사람도 발생하지 않았을 때였으므로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 나는 하루 만에 다 나았으므로 단순한 감기인 것 같고 친구는 사흘째 거의 인사불성 상태인 것으로 보면 혹 신종플루인지도 알 수 없겠다고 하였다.
사흘이 지나자 수잔은 미국에 있는 어머니한테 전화를 하면서 몹시 아프다고 울었고 어머니도 전화를 받으면서 몹시 울었다고 하였다.
그 다음날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친구와 나 모두가 스와인플루에 감염되었다는 검사결과가 나왔다. 그 뒤로 우리 연수생 일행의 절반 이상이 스와인플루에 감염이 되어 환자들은 모두 타미플루를 먹으면서도 며칠씩 심한 열과 통증으로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하루 만에 모든 증상이 나아 버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심한 열과 통증으로 고생을 하는데 어째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나아 버릴 수 있는가.
그 비결은 바로 만세천강근탕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제자로 인정하시고 여러 번 천강근탕을 지어 주시고 스페인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때에도 한 상자를 주셔서 그것을 갖고 와서 계속 먹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만세천강근을 먹으면 피로가 풀리고 집중력이 월등하게 좋아지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지구력이 좋아지고 집중력이 좋아지니까 밤늦도록 공부를 해도 피로함을 모르고 성적이 쑥쑥 올랐다. 그래서 나는 만세천강근탕을 천재탕이라고 불렀다.
신종플루에 감염되었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정말 무서웠다. 그 때는 스페인에서 신종플루가 막 시작되는 단계여서 환자가 생기기만 하면 언론에서 크게 다루고 주변을 엄하게 통제하였다.
다른 친구들과 같이 신종플루에 감염되었으나 나는 하루 만에 쉽게 회복되었고 친구들은 몹시 여러 날 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도라지를 얻은 자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 보았다.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 뒤로 나는 만세천강근 뿐만 아니라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건강법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하루 3-4시간만 자면서 공부를 하는데도 강철과 같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무서운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에는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면역력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갈림길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