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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봉우리 이름에 대한 작은 고찰

초암 정만순 2015. 8. 14. 14:43

 

산 봉우리 이름에 대한 작은 고찰

 

 

 

 

오래전 우리나라 국토의 70%는 산악지대라고 배웠다.  

현재까지 많이 개발되고 변형되어 왔지만 현재도 산이 많고 산악지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산과 봉우리들은 어떻게 이름을 얻었고, 불리어지게 되었을까?  또 동일한,유사한 이름은 왜 이렇게 많을까? 산에 다니면서 한번 쯤 가져 보는 의문이다.


산봉우리 이름을 보면 대충 그 산의 속성이 짐작이 된다.

이 봉우리가 무엇을 닮았는지, 어떤 속성을 내포하는지, 또한 이 산에 불교문화가 융성 하고 불교에서 추앙하는 곳인지 혹은 전통신앙,무속신앙이 활발 한 곳인지, 도교나 유교의 영향을 받았는지 짐작이 간다.

<지리산 천왕봉...우리나라 산을 대표하다시피 한 천왕봉>




그 중에서 山名(봉우리명)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불교라 할수 있다. 

속세와 거리는 두는 본질상 산속에 위치하면서 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형식적 요인(절의 주소 격으로 산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요건)에 우리민족과 오랜 역사를 함께 하고 우리 생활에 깊숙이 스며든 불교적 문화로 그 연유를 추론해 볼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산을 조금 다녀 보고 이런 부분에 인식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가장 흔하게 접하는 이름이 비로봉이다. 어떻게 산마다 비로봉이 붙어 있나 할 정도다. 비로봉의 비로는 무엇인가?  떡 시루를 닮아 시루봉 이였다가 변해 비로봉으로 된 것이다 라는 이야기도 극 소수 있지만 비로봉은 다분히 불교의 최상 부처인 비로자나불에서 온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비로봉의 최고봉..오대산 비로봉>​

비로불은 불교 삼신불(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의 으뜸이자, 부처 중의 부처, 부처의 머리에 해당 하는 부처이다. 쉽게 표현하면 기독교에서 태초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분과 비슷한 레벨이라 할수 있다.  


비로불에 중점을 두는 사찰이 화엄종 종파이며, 화엄사,부석사,갑사 등이 대표적 사찰이고, 비로불을 모신 곳을 적광전,대적광전,비로전으로 불리는데(물론 파격적으로 석가불을 모시는 대웅전에 비로불이 모셔진 고창 선운사, 운길산 수종사 같은 예외도 있다) 대부분 사찰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부처의 형상은 지권인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는 모습)자세로 있다

​<소백산 비로봉>

이런 비로자나 부처를 산으로 이입한 것이 비로봉인데, 비로불이 가지는 위상으로 대부분 그 산 최고봉에 본 이름을 부여 하고 산 자락에는 큰 사찰들이 자리하거나 오래 전부터 불교문화가 융성(했던)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소백산(부석사,희방사,비로사,구인사), 치악산(상원사,구룡사), 오대산(월정사), 팔공산(동화사), 운악산(현등사), 황악산(직지사) 등. 

 

<치악산 비로봉...여기도 상원사,구룡사등 고찰이 산 아래 있다>

그 밖에도 산명에 불교적 색채가 강한 것으로 불보살의 이름에서 따온 것들 즉 문수봉,보현봉,관음봉,지장봉,나한봉,연화봉,반야봉,보살봉,용화봉,미륵봉,도솔봉,칠불봉, 등등이 있고 원효봉,의상봉,나옹대 처럼 한국 고승들의 이름에 기인한 것 또한 불교에서 영향 받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문수봉...태백산>

<관음봉...계룡산>​

​<용화봉...삼악산>

<도솔봉...소백산>​

<반야봉...지리산>​

좀더 나아가, 불교가 도입되기 전부터 자생적으로 잉태된 우리 고유의 민속신앙과 무속신앙도 유구한 시간 속에 싹트고 자리잡아 생활과 문화의 한 축을 형성해 왔다. 이런 신앙은 대부분 복을 발원하고 기복신앙의 중요한 부분이 산이기에 그런 산들이 여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봉우리 이름 중 천왕봉,장군봉,천황봉,칠성봉,삼신봉,옥녀봉으로 불리는 산들이 대부분 우리 고유신앙과 관계가 깊고, 숭배대상을 산 최고봉에 부여한 경우라 할수 있다.        
 

<천왕봉...속리산>​

 


 

​<천왕봉...비슬산>

<천황봉...월출산>



 

 

 


<삼신봉...지리산>
 

 

 


<장군봉...조계산>

 

 

 

  
그외 이름으로 대청봉,향적봉,영봉,상봉,신선봉,백운봉,향로봉,촛대봉 등은 그 봉우리의 특징을 내포하는 의미를 담은 한문 명으로 지어진 거 같고, 탁 트인 빼어난 전망을 보여 주는 암봉은 OO대 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진다. 

​<대청봉...설악산>

 

 

 

<향적봉...덕유산>
 

 

 

<영봉...월악산>

<향로봉...내연산>

 

 

 

<신선봉...내장산>
 

 

<만복대...지리산, 대 명칭은 탁 트인 전망이 좋다>​

대부분 이런 맥락에서 이름이 지어졌고 그 이름에 걸 맞게 자리 하고 있는데, 이해가 어려운 산 하나가 있다. 바로 속리산이다. 최고를 지향 하는 이름을 하나의 산에 동시에 쓰지 않음이 불문율처럼 이어져 왔는데, 속리산은 천왕봉(구 천황봉,1,058)과 그 근처에 비로봉(1,032)이 같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예전 속리산 최고봉...천황봉> ​

 

속리산이 어떤 산인가?  유불선이 함께 번성한 곳이다. 법주사 쪽의 불교문화, 우복동천의 도교문화, 천제를 지낸 고유 민속신앙 등이 각각의 터를 잡고 번창했던 곳이다. 그리고 천왕봉은 암봉인 여타 속리 봉우리와 달리 육산으로 조금 떨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암봉 기준으로 비로봉이 있고, 육산으로 천왕봉이 혼용 되어진 게 아닌가 조심스레 유추해 본다.

그래서 그런지 비로봉 표지석은 없고 아마도 앞으로도 설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진다. 하나의 세상에 두 개의 태양이 떠 있을 수 없는 꼴이다. 

<속리산 비로봉...천황봉과는 작은 고개를 두고 마주한다>

 


참고로 국토지리정보원 자료에 의하면 가장 많은 이름의 봉우리는 국사봉(138곳)이라 한다. 그런 곳은 대부분이 왕이 다녀간 혹은 흔적, 왕을 바라는 충정심 등과 관련 있다. 왕이 다녀갈 정도의 봉우리라는 과시욕 내지 대접 받기 위한 마음이 없다고는 볼수 없는 이름이다.

 

두번째 많은 이름이 옥녀봉(95곳)이라고 한다. 옥녀는 사람일수 있고,선녀일수 있는데 옥녀봉 아래 마을은 대부분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도 이루어 지지 못한 슬픈 전설을...  

<국사봉...향적산>​

<옥녀봉...괴산>
 

끝으로 가장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이름들이 동봉,서봉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건 상,중,하봉 혹은 숫자봉(1~8봉 등)으로 부르는 것보다 더 생각없이 작명한 것이다. 바로 최근 지자체들이 자기 영역표시 하듯 깊은 고민없이 이름 붙이고 표지석을 갖다 놓은 사례이다.

동,서봉은 위치 기준인데 과연 산의 앞뒤,좌우가 있느냐, 주인인 산을 두고 객인 인간(지자체) 입장에서 동쪽이면 동봉, 서쪽이면 서봉, 과연 이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름인지 묻고 싶다. 다른 위치(지자체)에서 보면 동봉이 서쪽에 있을 수 있고, 남쪽에 있을 수도 있거늘 유아적 발상에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다. 

<상봉...광양 백운산>​

 

 

 

<서봉...팔공산,  이제 이런 단순명칭이 바뀌고 있다, 삼장봉으로>
 

 

<동봉...운악산, 여기도 비로봉으로 바뀌고 있다>
 



<8봉...팔영산, 여기도 단순 숫자봉에서 다른 이름(적취봉)을 병행한다>

잘못 행하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된 봉우리들은 다 바꿔져야 하고, 적합한 이름이 없다면 그냥 그대로 산 이름만 두는 게 몇 배는 더 낫다.

또한 지자체간 경계선상의 산이 많은데 같은 정상을 두고 불필요하게 이곳 저곳에서 표지석을 과잉으로 설치해 산림과 미관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어, 관련 당사자끼리 깊이 있게 숙고하여 표지석이 하나의 명물이 되어 수십,수백년간 사랑 받고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고 부탁 드리고 싶다.

 

 

<이렇게 멋있고 친자연적인 표지석으로>

 

 

 


산은 가지도 오지도 않는다.
산은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