鍼灸 小考/침구 개론

침술과 플라시보 효과

초암 정만순 2015. 7. 31. 12:29

 

 

 

                              침술과 플라시보 효과

 

 

 

현대의학에 종사하는 많은 의사들은 침술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중 어떤 의사들은 침술의 효과에 대해 플라시보의 효과만이 있을 뿐이라고 단정지으려고 한다. 플라시보의 효과 자체를 대부분의 의사들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돌팔이 치료효과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 가령 현대의학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하여 병이 낫게 되면 십중팔구의 의사들은 다른 방법의 치료의 기전에 의해서가 아닌 순전히 플라시보의 효과라고 우기고 싶어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침술로 어떤 질병을 고쳐진 사실을 놓고 현대의학의 의사들은 침술이 가지고 있는 기전에 의해 치료가 되었다기보다는 플라시보 효과가 질병을 낫게 했을 거라고 주저없이 주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 지난 세기 동안 많은 의사들이나 과학자들 간에 방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그들에게 플라시보 효과는 환자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므로 플라시보 효과를 부정하는 의사들은 의사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는가를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어떤 의술에 종사하는 의사가 되었든 우리 몸 속에 있는 진정한 의사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지 못한다면 의사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의술이든 의사이든 환자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가졌을 때에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의사가 아무리 좋은 약을 처방을 한다 하더라도 환자가 약과 의사에 대해서 신뢰를 하지 않는다면 효과가 없다. 반대로 아무런 약리 효과가 없는 밀가루를 알약처럼 만들어 환자에게 주면서 어떤 병이라도 고칠 수 있는 신약이라고 믿게 한다면 대단한 효과를 나타낸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은 의사들과 과학자들에 의해서 실험되어 왔었고, 그 결과 어떤 질병을 치료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예수가 살아 있을 때 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앉은뱅이 환자에게 예수가 그를 불쌍히 여겨 "내가 그대를 일어나게 하리라" 하면서 앉은뱅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줬더니 일어섰다는 일화는 종종 듣는 이야기다. 그 일이 예수니까 가능한 것이었다. 예수를 따르는 군중들 중에는 예수의 얼굴을 먼 발치에서라도 보게 된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예수를 흠모했던 무리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흠모하고 존경하는 예수가 당사자에게 다가가 손으로 잡아주게 되면 그의 마음은 어떤 상태였까를 굳이 짐작해 보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환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병원의 규모와 시설이 아닌가 한다. 우선 병원의 건물이 초현대적이면 환자들이 그 병원에 대한 신뢰는 높게 작용할 것이고, 진단 장비나 치료용 장비가 최첨단화 되어 있으면 환자들의 신뢰도는 그야말로 최상이 될 것이다. 게다가 유명세를 타고 있는 기라성 같은 의사들이 포진하고 있다면 그 병원은 환자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게 되며, 이 신뢰도는 환자들에게 강력한 플라시보 효과로 작용하여 다른 어느 병원보다도 질병의 치료율이 월등히 높게 나올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이 호전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불행하게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의사들조차 환자들의 마음 상태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학적 지식과 의술로 질병을 치료하려고 한다. 이런 의사들에게는 플라시보 효과라는 용어는 철저하게 배척당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환자의 마음에 변화를 주어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 즉 플라시보 효과를 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의사가 현명한 의사이며 명의인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여 환자들로부터 신뢰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병원의 초현대화이다. 초현대의 병원 안에 근무하는 의사의 수준이 환자들에게 신뢰감을 얻지 못한다면 그 병원은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의학이 아무리 눈부시게 발달했다 하더라도 의사들이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행동한다면 환자들의 신뢰도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강력한 신뢰관계가 구축이 되어야 한다. 의사는 환자가 왜 병에 걸리게 되었나를 생물학적 수치에 의해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환자의 마음 상태를 읽어내려고 애를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와 상당한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주고 받아야 한다. 그리고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혈액검사로 나타난 수치를 가리키며 환자에게 당신은 암에 걸렸을 수도 있으니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말을 툭 내던졌을 경우와, 문제가 될만한 수치는 나왔으나 몇 가지 조치만 받으면 정상을 되찾을 것이라며 환자를 안심시키는 말을 했을 경우의 차이는 환자에게 나타나는 마음의 상태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전자의 경우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걸로 환자의 몸 속에서 진짜 암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후자의 경우는 이 환자가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상태라도 의사의 현명한 조치로 인해 거뜬히 질병을 낫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침술로 화제를 돌려보자. 침술치료로 어떤 질병이 고쳐졌다면 그건 플라시보 효과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의사들은 아직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의학적 지식 안에 갇혀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의사에 불과하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의술이든 환자들의 마음에서 플라시보 효과가 작용하게 하지 않으면 그 의술은 실패하는 의술이 될 수밖에 없다. 의사가 주는 약을 복용하든, 침술사로부터 침을 맞았든 환자가 약물의 효과를 믿지 않거나 침술의 효과를 믿지 않는다면 병은 낫지 않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의사와 환자 간에 신뢰관계가 구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질병이라도 치료하기가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학적 지식만으로 환자를 대하는 의사는 환자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없다. 환자는 이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게끔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환자의 마음은 닫히게 되고 마음이 닫히면 몸 속의 진정한 의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침술사의 경우도 기계적으로 침을 놓는다면 환자의 마음은 닫히게 된다. 환자들은 많은 경험을 통해서 자기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들을 의식적으로 가려낼 수 있지만, 본능적으로도 자신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의사를 알아차릴 수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서 침술의 치료기전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침술은 단순히 플라시보의 효과에 의해서가 아닌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치료기전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침 자극에 의한 통증 관문조절이론이라든가, 엔돌핀의 분비설, 백혈구의 증가설, 생물학적 지표의 안정설 등이 질병을 치료하는 기전들이다.

그러나 침술에서도 다른 의술처럼 플라시보의 효과가 매우 유용하게 작용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다른 의술보다 플라시보의 효과가 우세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플라시보의 효과를 경멸하는 현명하지 못한 의사들이 침술은 플라시보 효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평가절하하려고 하는 것이다.

침술을 시술하는 침술사들이야말로 환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면 침술의 치료 효과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침술은 다른 어떤 의술보다도 자연치유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이 있기 때문에 환자들이 침술의 효과를 믿지 않게 되면 환자의 몸 속에 있는 의사(자연치유력)는 움직이지 않게 된다. 예수가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게 된 것은 예수의 손이 신통한 능력을 지녀서가 아니라, 앉은뱅이의 마음이 그렇게 작용하여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같은 이유로 어떤 환자가 침술사를 믿게 되면 침술사가 놓는 침술의 효과는 예수의 손길처럼 강력한 치료의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침술사가 환자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남다른 실력을 연마하여야 하며 그에 못지 않은 인품과 환자들마다 질병이 발생한 원인을 본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누구나가  손을 잡아서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할 수는 없다. 예수만이 그렇게 할 수 있듯이 침술사에게도 환자들이 믿고 따라올 수 있게끔 하는 여러 가지의 조건들을 갖추어야 된다. 요즘에 자주 하는 말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평범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침술사들은 대개 자신이 환자들에게 놓는 침에 대하여 확신감을 갖지 못한다. 이 불확신감은 그대로 환자의 마음으로 전달되고 환자도 똑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침술사는 머릿속에 들어 있는 요리책 식의 처방전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환자들에게 침을 놓는다. 그리고 침을 뽑을 때는 간호사에게 맡긴다. 환자들은 그렇게 맞는 침을 숱하게 겪어보았으므로 환자들도 아무런 느낌이 없이 침을 맞으며 자신게에게 침을 놓았던 침술사를 그저 침 꽂는 기계정도로만 여길 뿐이다.  

 

침으로 병을 잘 고친다고 소문난 침술사들에게는 환자들이 그들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장점이나 특기들을 틀림없이 가지고 있다. 우선은 침 놓는 방식이 독특하고 뛰어나다. 그래서 환자들이 그들을 찾아가서 침을 맞는 순간 여태까지 빈번하게 맞아왔던 평범한 침감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더구나 침술사가 다양한 수기를 통해 자극을 가할 때마다 온 몸에서 나타나는 침감을 신기해 하면서 그러한 침감이 자신의 병을 고치게 해줄것임을 믿게 된다. 환자의 마음이 몸 속의 의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능력을 갖춘 제대로 된 침술사는 침술의 웬만한 기법이나 침술이 인체에 미치는 여러 가지의 작용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질병이라도 확신을 가지고 침을 놓을 수 있다. 확신을 가지고 침을 놓는 침술사의 손끝에서 환자도 경험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병이 치료가 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침술사의 확신감과 침술사가 자극하는 남 다른 침감에 의해 환자에게 강력한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는 침술사와 환자 간에 진정한 신뢰감이 구축되었을 때 강력하게 작용하며 영구히 지속이 된다.

 

평범한 침술사가 자신의 평범함을 가리기 위해 겉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있다. 머리를 기르고 수염을 기른다든가, 의복을 독특하게 코디하여 차려 입는다든가, 근엄한 말투로 잘 난척하여 환자들이 자신을 믿게끔 위장을 한다. 위장술로 플라시보 효과를 노리는 사이비 침술사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 유발시킨 플라시보 효과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환자들 몸 속의 의사들은 침술사들의 잔재주를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