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자극의 과학적 탐구
뇌의 해부학적 구조나 생리적인 기능을 규명해내는 데에는 의학적 영상장비의 발달에 의해서이다. 특히, 뇌 안에서의 뇌의 활성도 즉, 뇌의 생리적 기능을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기법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기법에 의해 얻어진 영상을 통해 관찰 할 수 있게 되었다. PET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하여 뇌의 대사활성을 측정하는 도구로서 뇌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혈액속에서의 포도당의 증가량과 뇌혈류의 증가량을 추적하여 뇌세포의 활동성을 측정한다. 이를테면,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하여 뚫어지게 바라보면 대뇌 후두엽의 시각피질 쪽으로 뇌혈류량과 포도당의 양이 증가하여 활성화된다. 뇌세포가 활성화 되었다는 이야기는 에너지를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며 뇌세포는 에너지의 원료로 포도당만을 이용한다. 포도당은 산소와 결합하여만이 에너지를 생성시키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지만, 활성화된 뇌세포 쪽에서 뇌혈류량 즉, 산소가 가득 찬 혈액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PET는 동위원소를 활용하여 혈액속의 산소와 포도당의 양을 검출하는 것이다. PET 촬영장비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뇌를 촬영하면 후두엽의 시각피질에서 붉거나 노란색의 밝게 빛을 내는 활성상태의 영상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기법을 개발한 사람은 놀랍게도 한국의 과학자인 조장희 박사이다. 조장희 박사는 UCLA에서 다른 과학자들과 그룹을 이루어 선두에서 PET 기법을 개발하는데 리더 역할을 했다. 조장희 박사가 이끄는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PET 기법이 개발됨으로써 뇌과학의 발달에 기여한 바는 과학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서 발행되고 있는 몇몇 신경과학의 교과서에는 조장희 박사와 그가 개발한 PET 기법에 대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과학자이다. 그는 미국 내의 여러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국내의 가천의대 뇌과학 연구소에 몸을 담고 있다.
조장희 박사는 또한 침구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침술의 치료원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해 내기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중국의 침술에 호기심을 갖고 침술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한 연구에 열정을 쏟는 과학자들이나 의사들이 수도 없이 많았었고 현재도 그렇다. 서양의 많은 과학자들의 침술에 관한 연구의 결과로 발표된 논문들은 침술이 어떻게 통증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처음부터 침술의 통증개선효과를 부정하기 위해 연구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침술은 통증을 개선시키는데 신경학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장희 박사팀이 개발한 PET는 뇌의 생리적 기능을 관찰하는데 획기적인 기법이기는 하나 해상력이 떨어진다는 점과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한다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여 나온 기법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이다.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면 뇌혈류량이 증가하며 이는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양이 증가했음을 뜻한다. 산소를 실은 헤모글로빈이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 뇌세포에게 산소를 떨구어주면 탈산화헤모글로빈으로 바뀐다. 탈산화헤모글로빈은 자성을 띠며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장치는 자성을 띠는 탈산화헤모글로빈의 양을 측정하여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장치는 활성상태의 뇌영상을 빠르게 스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상도도 뛰어나기 때문에 현재 기능성의 뇌의 생리적인 현상을 관측하는데 최상의 장비로 이용되고 있다.
조장희 박사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비로 특정 침구혈위에 대한 치료효과가 타당성이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시도를 했다. 예를 들면 담경락의 광명은 무릎 아래의 외측에 있는 혈위로서 눈의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침구학에서 설명하고 있다. 눈의 질환을 가진 환자의 광명혈에 침으로 자극하여 질환이 개선되었다면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방법도 있을 것이다. 조장희 박사는 이것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으로 밝히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의 대뇌피질은 말초기관에서 올라온 모든 감각자극을 영역별로 나뉘어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브로드만 영역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눈에서 받아들인 시각적인 감각은 뇌의 뒤쪽인 후두엽의 시각피질에서 처리하고, 코로 받아들인 냄새의 자극은 측두엽의 후각피질, 귀에서의 소리 감각은 측두엽의 청각피질, 손발이나 몸의 체성 감각은 두정엽의 체감각피질에서 처리한다. 이처럼 몸의 각 부위의 감각 자극이 대뇌피질에서 여러 부분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만약에 귀를 시끄러운 소리로 자극하면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으로 뇌를 스캔하면 측두엽의 청각피질이 활성화된 영상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기법으로 조장희 박사는 어느 특정의 침구혈위가 침구학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지를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여러 개의 혈위에서 상응하는 대뇌피질의 영역이 활성화가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광경락의 마지막 경혈인 지음혈은 새끼 발가락의 끝에 위치한 경혈로서 침구와 관련된 어떤 서적에서든 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침으로 지음혈을 자극했을 때 눈 부위로 또는 시각적인 감각을 처리하는 후두엽의 대뇌피질 쪽으로 어떤 신호가 전해져야 한다. 눈이나 후두엽의 대뇌피질에서는 가장 먼 쪽에 있는 새끼 발가락을 자극한다고 하여 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기에는 무리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의구심을 가진 조장희 박사는 지음혈에 침으로 자극했을 때 후두엽의 시각피질에서 활성화가 일어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침으로 지음혈을 자극하면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기법으로 후두엽의 시각피질의 활성화 여부를 검출한 결과 뜻밖에도 이곳으로 뇌혈류가 증가하여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의 신호가 강해지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담경락의 협계혈은 새끼 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 사이의 갈라진 틈에 있는 경혈이다. 이곳은 귓병을 치료할 수 있음을 전통 침구학에서 설명하고 있다. 협계를 침으로 자극했을 때도 역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기법에 의한 측두엽의 청각피질이 활성화가 되었음이 확인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세 번째 발가락이나 엄지 발가락 같은 곳에 있는 경혈을 자극했을 때 시각피질이나 청각피질이 전혀 활성화가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조장희 박사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의 기법을 통해 침구혈위애 대한 자극의 효용성을 입증하였고 아울러 침구치료의 과학적인 근거까지 밝혀낸 셈이다. 그런데 과학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첨단장비도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선조들은 어떻게 새끼 발가락 끝에 있는 혈자리를 자극하여 눈병을 고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을까? 그 비밀의 열쇠는 전통의학이 경험의학이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선조들은 눈병을 치료하기위해 장구한 세월 동안 침으로 몸의 여기저기를 무수히 많이 찌르던 과정에서 새끼 발가락의 끝이 눈병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선조들은 어느 특정의 혈위가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음을 점차적으로 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361개의 모든 경혈이 어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허구적으로 설명되어진 부분도 많다는 이야기이다. 선조들이 인체에 침을 찌를 수 있는 경혈 360여 개를 정해놓고 경험적으로 치료효과가 있는 경혈을 찾아내는데 행운이 따르기도 했겠지만, 많은 경혈들이 어떤 질병에 대한 특이적인 치료효과를 찾지못해 그럴듯한 시나리오처럼 나머지의 경혈에 관한 이론을 완성해 나갔을 것이다.
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광명이나 지음혈이 다리와 발가락에 있고 귓병을 치료할 수 있는 협계혈이 역시 발가락에 있다 하더라도, 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경혈은 바로 눈에 있는 정명혈이며 귓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경혈은 귀에 있는 예풍이나 청궁, 청회이다. 가령, 정명혈을 침으로 자극하면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기법으로 뇌의 영상을 검출해보면 새끼 발가락의 지음혈을 자극했을 때보다는 더 강력한 시각피질의 활성화된 영상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눈을 침으로 자극하면 이 자극이 시신경을 통해 직접 시각피질로 투사되기 때문이다. 새끼 발가락에 있는 지음혈을 자극했을 때 뇌의 시각피질에서 활성화가 된다는 사실은 침술에 호기심이 많은 과학자들에게 과학적 흥미거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임상에서는 치료효과가 얼마나 있느냐라는 효용성이 더 중요한 관건이다.
침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서구의 많은 과학자들은 침술을 단순히 통증을 개선시켜주는 것으로만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침의 자극이 어떻게 통증을 완화시켜주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침술이 통증을 완화시키는 메커니즘을 신경생리학적으로 밝혀냈다. 침의 자극으로 진통물질인 엔케팔린, 엔돌핀, 다이놀핀과 같은 아편유사물질들이 시상하부에 존재하는 여러 핵들과 뇌하수체, 중뇌의 수도관주위회색질, 척수에 존재하는 중간뉴런 등에서 분비되어 통증을 억제시킨다는 것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경혈을 자극했을 때 그 자극이 척수로 입력되는 구심성뉴런에 의해 전달되어 척수의 억제성 중간 뉴런을 활성화시킨다. 활성화된 억제성 중간뉴런은 통각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또 다른 구심성뉴런을 억제시켜 통증의 유발을 차단시킬 수 있다는 메커니즘은 오래 전에 미국의 두 과학자에 의해 가설로 세워진 바 있었다.
이상과 같이 침술은 자칫 통증만을 다스리는 단순한 의술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침술은 통증을 다스리는 외에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보다 핵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는 환자에게 침 시술을 하여 통증만을 완화시켜서는 안 된다. 허리 디스크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도 있어야 한다. 허리 디스크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침술에 우호적인 과학자라 할지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침술의 통증치료 원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대부분이 신경과학자들이다. 그들은 침술을 신경과학적으로만 이해하려니까 침술의 중요한 가치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침술은 전인적인 치료수단이라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 즉, 침술은 신경학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면역학, 내분비학, 심리학적인 면에서도 깊은 영향을 미치는 의술이다. 과거 몇몇 과학자들에 의해 면역학적으로 침술이 연구된 자취는 있다. 그들은 어떤 경혈에 침으로 자극하여 백혈구 수치의 변화량을 측정했는데 합곡이나 곡지, 족삼리 등을 침 자극하면 백혈구의 수치가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들은 면역력에 영향을 미치는 몇 개의 경혈을 찾아내었고 이들 경혈에 대한 자극은 면역력을 증대시켜줄 것이라는 피상적인 예측만을 했다. 허리 디스크는 면역세포들에 의해 근본적으로 치료가 될 수 있다. 허리 디스크가 면역세포들에 의해 근본적으로 치료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혈구들의 전체적이고 복잡한 역할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백혈구들은 여러 종류로 나뉘며 이들은 상처부위에서 각자의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상처를 완전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상처부위로 몰려드는 병원체를 물리치는 백혈구, 상처부위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백혈구, 손상된 조직을 재생시켜주는 백혈구 등의 활동들이 어떤 질병이든 근본적으로 치료되게 하는 것이다. 침의 자극은 백혈구들의 활성화를 촉진시켜 보다 복잡하고 정교한 차원에서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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