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
구례 구층암
기둥으로는 절대로 안 될 것 같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게 한 구례 화엄사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은 세월이 지날수록 보는 이로 하여금 용기와 희망을 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모과나무 기둥을 보러 온다.
모과나무 기둥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다
지리산에서 뜨는 달이 장관이고 주변의 뭇 산봉우리들이 촘촘히 늘어서 층층이 부처님을 둘러싸고 있어 아름답다.
별빛과 달빛이 허공에 가득하며, 너울거리는 대나무 그림자는 산사의 여유를 만끽 할 수 있다. 뎅그렁! …
아무생각 없이 그냥 쉬고 싶은 곳
지치고 힘들 땐 아무생각 없이 그냥 쉬고 싶은 사찰, 요즘 말로하면 멍 때리기 좋은 꿈결 같이 포근한 곳이 구례 화엄사 구층암이다.
화엄사 대웅전을 뒤로하고 잠시 걸으면 조릿대 숲 바람이 시원하고 여전히 때 묻지 않은 길도 정겹다.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은 구층암 가는 길을 이렇게 노래했다.
“구비 쳐 흐르는 시냇물에 봄 밤 별빛 부서지고 젱그렁 패옥소리는 다시 들을 만하네. 꽃 아래서 스님을 만나니 눈썹터럭 희고 산중에서 새를 보니 새의 깃털 푸르구나.”
☞ 무엇이 화엄의 진수일까?
벌써 무너져가는 석탑과 지붕이 보인다.
구층암(九層庵).
아무리 세어 보아도 구층일 수 없는 삼층석탑을 두고 구층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 ‘9’라는 수는 정점에 다다름을 의미하는 수이다.
구(九)는 ‘하늘 구만리’ ‘구천(九天)’ ‘구중궁궐’ 등 높다, ‘깊다’, ‘많다’라는 뜻으로 양(陽)의 기운이 충만한 수로 사용되었다.
구층암은 화엄의 꽃으로 장엄된 세계가 끝 간 데 없이 층을 이루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화엄의 진수(眞髓)일까?
구층암에서 바라본 지리산. 산봉우리들이 촘촘히 늘어서 층층이 부처님을 둘러싸고 있어 아름답다.
구층암은 지리산에서 뜨는 달이 장관이고 주변의 뭇 산봉우리들이 촘촘히 늘어서 층층이 부처님을 둘러싸고 있어 아름답다.
별빛과 달빛이 허공에 가득하며, 너울거리는 대나무 그림자는 산사의 여유를 만끽 할 수 있다.
뎅그렁! 적막을 깨는 풍경의 울림은 오만가지 생각을 텅 비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은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화엄의 진수인가?, 구층암의 빼어난 흥치인가?
구층암에는 천불보전과 좌우로 승당(僧堂)이 있고, 바깥뜰에는 부서진 탑이 겨우 몇 자 높이로 서 있다.
절 앞에는 대숲이 있으며, 절 우측에는 개울이 흐르는데 푸른빛이 돌고 맑다.
승당에는 생긴 모양 그대로의 모과나무 기둥이 있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옹이는 잘림의 아픔을 받아들이며 무수한 좌절과 시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 시큼하고 떨떠름한 모과 맛을 그대로 표현했다고나 할까?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이 모과나무처럼 견딜 수 있을까? 스스로 위로하며 힘을 내 본다.
모과나무 기둥은 창방과 마루턱을 서로 얼싸안은 듯 끼어 맞추어져 있는데, 기둥 하나는 바로 세우고 다른 기둥은 거꾸로 세워 모양과 쓰임에 맞게 멋을 부렸다.
기둥으로는 절대로 안 될 것 같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게 한 모과나무 기둥은 세월이 지날수록 보는 이로 하여금 용기와 희망을 준다.
개성 만점, 자신의 흉허물을 장점으로 만들어 버린 모과나무 기둥은 인욕바라밀을 완성한 부처님처럼 살아서 200년, 죽어서 100년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구층암 부처님을 뵙기보다 이 모과나무 기둥을 보러 온다고 한다.
☞ 인욕바라밀 부처님 모과나무 기둥
매천 황현은 어렸을 때 구층암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영신이라는 사미승이 암자의 주지 스님이 되어 황현을 반갑게 맞이했다.
황현은 1899년 7월 보름 이곳 구층암에서 이틀을 묵으며 ‘구층암 중수기’를 지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불교를 배척하는 일이 훨씬 심하였다.
스님들의 지위까지 낮추어 비천하게 만들어 그들의 신세가 처량하고 위축되어 겨우 암자를 지킬 뿐이다.
그렇긴 했어도 오늘날 머리 깎고 중노릇 하는 사람들을 보면 누더기 옷을 걸치고 채식과 걸식을 하면서도 강고한 힘과 큰 바람으로 목적을 성취해 나간다.
종종 많은 자금을 모아 큰 절을 창건하는 일을 잠깐 사이에 해내고는 자기들의 법이 오래 전해지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이들을 이교도라 하여 하찮게 볼 수 있겠는가?” 황현은 멋진 구층암을 완성한 스님들을 칭송하고 부러워했다.
이 모과나무 기둥 또한 100여 년 전 구층암을 중수할 때 사용된 듯하다.
부처님의 법이 오래 머물길 바라는 스님들의 염원에 못생긴 모과나무가 기꺼이 기둥이 되어 주었고, 황현도 이 모과나무 기둥을 보았을 것이다.
잘생긴 나무들로부터 울퉁불퉁 못생겼다는 수모와 비웃음을 참고 견디어, 사람들에게 자연을 닮았다는 최고의 찬사를 듣는 멋진 기둥이 되었다.
‘참 잘 참으셨습니다.’ 모과나무 기둥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
자연의 가르침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니 모과나무가 부처이고, 부처님이 모과나무로 법성(法性)이 둘이 아닌 구층암은 또 하나의 화엄의 진수로 중생들의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 되었다.
더불어 천불보전 앞 모과나무도 미래에 또 다른 구층암 기둥 부처가 될 것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아담한 천불보전(千佛寶殿)은 네 사람만 들어가도 꽉 찬 느낌이지만, 연꽃으로 장엄된 화엄궁전은 우주를 채워도 남을 듯 아름답다.
천 분의 부처님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만, 아무나 부처가 될 수는 없다.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처럼 참고 견디는 인욕바라밀을 실천해야만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불보전. 네 사람만 들어가도 꽉 찬 느낌이지만, 연꽃으로 장엄된 화엄궁전은 우주를 채워도 남을 듯 아름답다.
☞ 거북은 토끼 업고 고해를 건너 …
눈을 의심할 정도로 가득 찬 연꽃 공포의 아름다움과 외벽 기둥위에는 거북의 등을 탄 토끼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 이채롭다.
거북은 토끼를 업고 고해(苦海)를 건너 연꽃이 만발한 연화장 세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거북은 느리지만 유순하고 장수를 상징해 부처님에 비유했고, 토끼는 급하고 인과(因果)를 살필 여유가 없는 나약한 인간에 비유했지만 결국 부처님을 통하여 피안에 이르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부처님은 오직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거북이 토끼를 등에 태운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구층암 천불보전의 토끼는 크게, 거북은 작게 조각되어 오히려 중생이 부처보다 존귀한 존재임을 나타내어 이례적이고 해학적이다.
이렇게 사찰 건축물에는 부재(部材)까지도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나타냄으로써 부처님의 중생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구층암에는 부처님께 올리는 야생 죽로차(竹露茶)가 유명하다.
대나무 그늘 아래 바람 맞고 이슬을 머금은 차나무는 햇볕을 쬐려고 서로 경쟁하듯 자라서 차 잎의 크기는 제 각각이지만 고른 차 맛은 일품이다.
모든 중생들이 삶의 방식은 다르지만 똑같이 불성(佛性)을 지닌 존재임을 구층암의 차 맛을 통해 느껴보는 것 또한 화엄의 진수 아닐까? 물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스님이 내어주는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구층암은 아무생각 없이 그냥 쉬고 싶은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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