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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서원 / 화전대회 탐방

초암 정만순 2022. 3. 27. 15:36

한천서원 / 화전대회 탐방

 

 

 탐방일 : 

2022. 3. 27 (맑음)

 

 탐방 : 

초암 그리고 여사 

 

 

■ 한천서원(寒泉書院)

 

 

 

달성군 가창은 예로부터 물이 차다고 해서 냉천(冷泉)이라고도하고 한천(寒泉)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이곳 서원 이름도 한천서원으로 지었는지 모른다.

한천서원에는 고려 개국공신인 전이갑(全以甲)과 의갑(義甲)형제가 사촌동생 락(樂)과 함께 모셔 있다.

이렇듯 세분 충신을 모신다하여 삼충서원(三忠書院)으로도 불린다

 

 

전이갑, 전의갑 두 장수는 918년 동수대전 때 신숭겸, 김락과 더불어 왕건을 구해내면서 장렬히 전사한 고려 개국 공신들이다.

전이갑의 후손들은 재실을 지어 전이갑, 전의갑 양 공의 높은 충의를 기려왔다.

한천서원이 재실 수준을 뛰어넘어 다시 서원의 위상을 되찾은 때는 1989년이다.

 



한천서원은 경내 배치도 상당히 특이하다.

보통의 서원은 학생들이 공부도 하고 숙식도 하는 동재와 서재가 강당 앞에 있고, 사당이 강당 뒤편에 있다.

그에 비해 한천서원은 동재가 없다. 
동재가 없는 까닭은 그 자리에 사당이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계한 분을 모시는 사당과 살아있는 후손들 간에는 엄연한 경계가 있으므로 강당과 사당 사이에는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사당의 이름은 충절사(忠節祠)이다.

충절은 전이갑, 전의갑 두 분의 장렬한 죽음을 상징하는 어휘이다.

한천서원의 특이점은 강당 앞에서도 발견된다.

‘강당’이 아니라 ‘강당앞’이다.

강당앞은 어느 서원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고인돌이다. 강당 바로 앞 뜰에 거대한 고인돌이 놓여 있다

 

 

청동기 시대의 묘지 유적인 고인돌이 고려 초기의 충신들을 기리는 서원 강당 앞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본래는 받침돌도 뚜렷했었는데 근래 마당을 고르는 과정에서 약간 묻히는 바람에 몸돌과 땅이 약간 가까워졌다고 한다.

청동기 시대 사람들도 가창면 들판에서 농사를 지었고, 신천 상류의 물을 마시며 살았다.

그 증거가 바로 고인돌이다.

강이 넘쳐도 물에 잠기지는 않는 지점, 청동기 사람들은 그런 곳에 묘소를 설치했다.

 

한천서원 경내에는 여느 서원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또 다른 볼거리가 한 가지 더 있다.
‘대한민국 12대 대통령 전두환 2003년 10월 19일’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진 기념식수 표지석이 바로 그것이다.

 

 

그 옆에는 ‘2001년 3월 10일 경북경찰청장 치안감 전용찬’과 ‘2015년 4월 17일 제16대 전씨 대구지구 종친회 회장 전임효’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기념식수들도 있다. 

 

 

 

■ 화전대회(花煎大會)

 

 

 

음력 3월 중순경에 교외나 야산 등지에서 행해지는 꽃놀이를 말한다

 

꽃놀이, 화(花)놀이·꽃달임·화류(花柳)놀이·화류유(花柳遊)라고도 한다.

원래 ‘화전(花煎)’은 꽃전 곧 꽃을 붙이어 부친 부꾸미로 차전병의 하나인데, 진달래꽃이 펼 때 그 꽃을 부치거나 떡에 넣거나 하여 여럿이 모여 먹는 놀이라는 데서 그런 명칭이 생긴 것이다.

 

 

3월에 가지 않고 다른 달에 갈 때는 흔히 화전놀이라는 말 대신 화류놀이란 말을 쓴다.

화전놀이를 하는 곳을 화전장(花煎場)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 화전 외에 진달래꽃을 녹두가루에 반죽하여 만들어 먹는 ‘화면(花麵)’도 해먹고 그 지방 특유의 음식을 해먹기도 하며 또 화전가를 지기도 하며, 하루를 즐긴다.

 

 

기록으로 보아서는 화전놀이가 정조 조(正祖朝)에 시작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고구려 때 낙낭원(樂浪原)에서 교렵(較獵)를 설치하고 가야(伽倻)·신라 때 불계(祓稧)를 행했고, 고려 때 답청(踏靑)을 했던 기록으로 보아서는 훨씬 이전에 생겼던 경건한 춘계의례행사로 출발했던 것으로 본다.

 

 

원래 삼월 삼짇날(上巳日)에 진달래꽃을 넣고 국수와 술을 만들어 선조 제사(祭祀)에 올렸다.

이날 각 촌락의 서당서생들은 등고(登高)라 하여 산으로 올라가 화전을 지져 먹으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삼짇날이 3월초에 거행되는 경건한 행사였음에 비해 화전놀이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꽃을 찾고 멋을 찾는 요즘의 봄나들이로 유생(儒生)은 유생끼리 부인들은 부인들끼리 어울려서 부락단위로 산천을 따라 유락(遊樂)하는 3월의 연중행사라 할 수 있다.

 

 

 

■ 은행나무 노거수

 

 

높이가 30m, 둘레 6.8m 임

수령이 약 1000년.

 

한천 서원 앞에 서 있는데 이 은행나무로 인해 동네 이름이 행정리가 되었다.

대구 주변에 있는 수목 중 가장 나이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가을에 낙엽이 멀리 날아가 흩어지면 이듬해 농사가 흉작이 든다고 하고, 나무 밑에 모여 있으면 그 이듬에

대풍년이 든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마을의 수호목으로 보호되고 있는 나무로서 해마다 정월 보름에 나무 앞에서 동제를 지낸다.

 

 

 

◆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