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정경연의 풍수기행

고창읍성 풍수

초암 정만순 2021. 5. 8. 15:58

고창 읍성

 

청룡과 백호가 팔 벌려 안아주는 형국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는 모양성(牟陽城)이라 불리는 읍성이 있다.

백제 때 이 지역을 ‘모량부리(毛良夫里)’로 부른데서 모양성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성이 많았다.

한양에는 도성, 각 주·군·현에는 읍성과 산성이 있었다.

이 둘은 세트로 평상시에는 평지 읍성에 거주하다 유사시엔 산성에 들어가 싸웠다.

그런데 고창은 평지성이 아닌 산성뿐이다.

산성이라고는 하지만 높지가 않아 관아는 성내에 있었다.

주민들은 평시에는 성 밖에서 생활하다 유사시에는 성안으로 들어왔다.

조선 성종 때 330개의 행정구역 중 190개의 읍성이 있었다.

내륙지방은 주(州)처럼 큰 고을에만 있었고 해안지방에는 군(郡)과 현(縣) 단위까지 있었다.

왜구의 침략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제는 조선의 통치기능을 차단하기 위해서 통감부에 성벽처리위원회를 두고 조직적으로 한양도성과 지방 읍성을 철거하였다.

관아는 헐고 군청이나 읍면사무소, 학교를 지었다.

오늘날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고창읍성, 낙안읍성, 해미읍성, 제주 성읍마을, 수원화성 등이다.

우리나라 읍성 형태는 중국과 많이 다르다.

중국은 대부분 평지에 네모반듯하게 성을 쌓고 밖에는 해자를 팠다.

엄청난 인력이 투입되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성을 쌓았다.

산들이 사방으로 감싸준 안쪽에 위치하며, 강이나 하천 또는 도랑을 해자 대신 이용하였다.

이 때문에 읍성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

대부분 읍성은 북쪽으로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평탄한 곳을 골라 쌓는다.

자연히 정문은 남쪽이다.

이 경우 겨울에는 북서풍을 막아 따뜻하고 여름에는 동남풍이 불어오므로 시원하다.

그러나 고창읍성은 그 반대다.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지형으로 정문이 북쪽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하다.

그 이유는 풍수지리 특성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풍수에서는 보국을 잘 갖추고 있고, 남쪽 산이 낮아 햇볕을 차단하지 않으면 북향이라도 명당이 있다고 본다.

실재로 전국의 유명한 집이나 마을 중에는 북향인 곳이 많다.

고창 읍성도 그중 하나다.

 

 

고창읍성의 지맥은 호남정맥 내장산(763.5m)에서부터 비롯된다.

내장산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맥 하나가 입암산(626m)을 만들고 방장산(734m)을 세웠다.

방장산은 고창군·정읍시·장성군 경계에 있으며 산이 크고 넓어 모든 백성을 포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방문산(640m)까지 서진한 맥이 문수산을 향해 남진하는데 돌독재에서 북쪽으로 맥 하나를 뻗는다.

그리고 고창천을 만나 멈춘 산자락에 고창 읍성이 위치한다.

산이 남쪽에서 왔기 때문에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지형이다.

 



고창읍성은 청룡과 백호가 팔을 벌려 안아주듯 보국을 형성하였는데. 그 능선을 따라 성을 쌓았다.

둘레는 총 1,684m이다.

이러한 성 건축법을 포곡식이라고 하는데 성내의 수원이 풍부하고 활동공간이 넓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곳도 성안에 4곳의 샘물과 2곳의 연못이 있다.

여기서 흘러나온 물들은 골짜기를 타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나간다.

읍성 바깥에서 보면 성곽 능선들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성안에서 보면 아트막하다.

이 때문에 성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빛이 하루 종일 비춘다.

비록 정문이 북쪽에 있음에도 겨울에 따뜻한 이유다,

조선시대 읍성 내에는 관아 건물이 22채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 건물들은 1988년에 복원한 것들이다.

수령의 정무 공간인 동헌에는 평근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고을 백성들을 편안하게 잘 다스리겠다는 뜻이다.

고창성은 성 밟기 민속놀이로 유명하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낳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 한다고 한다.

특히 음력 윤삼월에 효험을 강조하였다.

이는 해빙기에 무너지기 쉬운 성을 굳게 다지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또 돌을 한곳에 모아 놓은 석전 대비용으로 추축된다.

백성들을 강제동원하지 않고도 스스로 참여시키는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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