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巨樹 保護樹 記念物/樹木 圖鑑

소나무

초암 정만순 2019. 1. 13. 15:53





樹皮 圖鑑 - 소나무




    겉씨식물들로 이루어진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 소나무의 ‘솔’은 ‘으뜸’을 의미하여, 소나무는 나무 중에

    으뜸인 나무라는 뜻을 가진다.

    소나무와 관련된 속담으로 ‘송무백열(松茂栢悅)’라는 말이 있다.

    소나무가 무성해지니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이다. 친구의 잘됨을 기뻐한다는 의미이다.

    또 ‘송백지조(松柏之操)’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처럼 변하지 않는 지조를 가르치는 말이다.

    이처럼 소나무는 우리의 기상과 선비정신, 절개, 지조, 우정을 기려 온 나무이다.

    또한 소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졌으며, 예부터 해, 산, 물, 돌,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과 함께

    십장생의 하나로서 장수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사시사철 푸르른 잎을 지니며, 강인한 인상을 주는 줄기 때문에 대나무와 함께 송죽지절을 상징하거나 송교지수를

    가리키기도 한다.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일본 및 만주의 모란강(牧丹江) 동북쪽부터 중국의 요동반도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하고, 구미 각국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소나무는 우리 나라 수종 중 가장 넓은 분포면적을 가지고 그 개체수도 가장 많다.

    남쪽은 제주도로부터 북쪽은 함경북도에 이르는데 함경남북도의 북반 부분에서는 부분적으로 소량 나타난다.

    수직적 분포는 산악의 황폐 정도에 따라 위도와 일치하지 않는다.

    또, 같은 산악에 있어서도 남북 방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지리산·팔공산·태백산·치악산 등은 해발 1,000∼1,100m까지 자라며, 백두산에서는 900m 높이까지 분포하고 있다.

    바닷가를 따라 분포하는 해송과는 분포경계가 비교적 뚜렷하다.

    울릉도와 홍도에는 소나무가 분포해 있었으나 해송은 원래 없었으며, 제주도에는 소나무와 해송이 함께 나타난다.

    소나무는 양지식물로, 다른 나무들이 자라기 힘든 메마른 곳에서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산성의 토양에서 잘 자라며 몇몇 종은 석회질 토양에서도 자란다.











    수피는 적갈색 또는 흑갈색이나 밑으로 갈수록 검어지며, 겨울눈(冬芽)은 적갈색이다.





                수꽃봉오리와 잎


    잎은 길이가 8~14cm, 너비가 1~1.5mm로 2장씩 잎집(葉鞘)에 모여 달린다.

    잎은 바늘모양으로 짧은 가지 끝에 2개씩 뭉쳐 나며, 밑부분은 엽초(葉鞘: 입깍지)에 싸여 있다가 이듬해

    가을 엽초와 함께 떨어진다.

    겨울눈은 적갈색으로 은백색을 띠는 해송과 구별된다.




    소나무꽃

      수꽃


      암꽃 

       

       

       

       



      꽃은 5월에 피고 수꽃에 해당하는 소포자엽(小胞子葉)은 새가지의 밑부분에 달리며 노란색으로 길이 1cm의 타원형이다.

      암꽃에 해당하는 대포자엽은 새가지의 끝부분에 달리며 자주색이고 길이 6mm의 달걀 모양이다.

      암수한그루로 5월에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따로따로 피는데, 가지 끝에 2~3개의 자주색 암꽃이 달리며

      그 아래에 많은 수꽃이 달린다.


      꽃가루는 노랗고 공기주머니를 가지고 있어 멀리까지 전파되며, 다음해 가을에 솔방울이 익고 인편(鱗片)이 벌어지면서

      씨가 땅으로 떨어진다.




      솔방울



      솔방울은 계란형으로 길이 4∼5㎝, 지름 3∼4㎝이나 나무의 나이에 따라 크기에 차이가 심하다.

      씨에는 날개가 달려 있는데 얇은 막질이며, 그 빛깔과 모양은 한 개체 내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고 개체간에는 차이가 크다.

      수분(受粉)은 첫해의 5월중에 이루어지기 시작하나 수정(受精)은 이듬해 5월중부터 이루어진다.

      수분이 된 뒤에는 어린 솔방울의 인편이 유착되어서 전체적으로 밀폐된다.

      열매조각은 70∼100개이고 다음해 9∼10월에 노란빛을 띤 갈색으로 익는다.

      씨에는 날개가 있다.

      일반적으로 40∼50년생이 되면 종자결실량이 크게 떨어진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잘 자라고 재질도 우량한 편이다.

      이에 대비될 수 있는 외국산 소나무로서 유럽적송, 그리고 미국의 레지노사소나무가 있는데 생태적 특성에 있어서는

      유사한 점이 많다.

      우리 나라 소나무숲은 천연갱신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천연갱신이란 숲 땅에 서 있는 성숙한, 또는 이용단계에 있는 나무에서 종자가 숲 땅에 떨어져, 그 뒤 자연적으로 어린

      나무가 자라나 후계림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후계림이 만들어지면 어린 나무가 상하지 않도록 큰 나무를 잘라 이용한다.

      이때 성숙목과 후계림은 일시적으로 이단교림(二段喬林)의 모습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소나무숲은 이러한 천연갱신의 과정을 계속 되풀이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한국에는 수령이 200∼600년 정도된 소나무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는 표와 같다.

      번호위치수령(년)높이(m)나무둘레(m) 각주1)
      103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17-3
      (정2품송)
      600154.7
      180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68-7
      (처진 소나무)
      -62.9
      289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835 외 1필40017.55.5
      290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산25061012.54.76
      291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31(반송) 외 1필350175.3
      292경북 문경시 농암면 화산리 942(반송)200245
      293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50-1(반송) 외 2필40016.54.3~4.8
      294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600103.6
      295경북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 146-1
      (처진 소나무)
      200141.96
      350강원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산116450213.58
      351강원 속초시 설악동 20-5 외 1필500164
      352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리 49-4 외 1필600154.5
      357경북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539(반송) 외 2필400132.4
      358경남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 854(반송)260123.5(뿌리목 둘레)
      359경남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산34-1300114.7
      381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도립2리4804.21.8
      383충북 괴산군 연풍면 적석리 산34-2500173.55
      389경북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 159(반송)4001217~18.5
      397전북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 176-740083.2
      409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627
      (처진 소나무)
      300142
      410경남 거창군 위천면 당산리 331   
                

      우리나라에서 소나무 목재처럼 오랜 세월을 통해서 다양하고도 폭넓게 이용된 나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문명과 문화는 소나무 자원의 이용정도와 비례해서 발달해 왔다고까지 볼 수 있다.

      소나무의 변재(邊材)는 담황색이고 심재(心材)는 적갈색을 띠며, 나이테의 경계가 뚜렷하고 두께는 생산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경상북도 북부지방과 강원도 태백산맥에서 나는 소나무는 특히 재질이 우량하여 춘양목(春陽木)이라 불리며 귀중재로

      취급되어 왔다.

      춘양목은 나무의 굵기가 굵은 반면 나이테의 너비가 좁고 고르며 결이 곱고 광택이 있어 이용가치가 높았다.

      목재는 기둥·서까래·대들보·창틀·문짝 등에 쓰이는 건축재, 상자·옷장·뒤주·찬장·책장·도마·다듬이·빨래방망이·병풍틀·

      말·되·벼룻집 등의 가구재, 소반·주걱·목기·제상·떡판 등의 식생활용구, 지게·절구·절구공이·쟁기·풍구·가래·멍에·

      가마니틀·자리틀·물레·벌통·풀무·물방아공이·사다리 등의 농기구재, 그리고 관재(棺材)·장구(葬具)·나막신재 등 그 용도가

      다방면에 이르렀다.

      특히, 해안을 따라 자라는 큰 목재는 조선용(造船用)으로 중요시되어 보호되어 왔다.

      왕실 또는 귀족들의 관재로 삼기 위해서 소나무숲이 보호된 바 있는데, 굵게 자라서 안쪽의 심재가 황적색을 띤 고급재로

      유용한 것을 황장목(黃腸木)이라 하였다.

      1420년 예조(禮曹)에서 “천자와 제후의 곽(槨)은 반드시 황장으로 만들며, 황장이란 송심(松心)이며 그 황심(黃心)은

      단단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아니합니다. 백변(白邊)은 수습에 견디지 못하고 속이 썩습니다.”라고 한 대목으로

      보아 소나무의 심재가 관재로 높이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소나무재의 현대적 용도 또한 다양하여 완구·조각재·현대식 가구재·포장용 상자·성냥대·목모·펄프·합판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온돌을 사용해 왔고 따뜻한 음식 먹기를 좋아하였다.

      온돌의 난방용으로는 소나무장작이 가장 뛰어났다. 이것이 삼림을 황폐화시키고 숲의 형질을 퇴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솔잎은 취사할 때 불의 힘을 조절하기에 가장 좋은 재료로서,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는 데에는 솔잎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이름을 솔갈비라고까지 치켜올려 부르게 되었다. 숯에는 백탄과 흑탄이 있는데, 흑탄이 일반적인 것이었고

      소나무가 원료이다.

      『경국대전』에 가을이 되면 중앙관서에서는 각 지방에서 장정들을 징집해서 숯을 구워 바치도록 한 기록이 있는데,

      원료가 된 것은 주로 소나무였다.

      조선시대에는 능의 전례제사에 쓰기 위해서 향탄산(香炭山)을 지정하고 그곳 주민으로 하여금 숯을 굽게 해서 상납시켰다.

      수원의 광교산과 서울 홍릉, 그리고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일대의 숲이 향탄산이었는데, 경상도에서 숯을 구워 서울로 운반

      하는것이 매우 어려웠으므로 현금으로 대납시켰다.

      땔감은 백성들의 생활필수품인데도 산림은 원칙적으로 모두 국가 소유였으므로 그 소유와 이용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다.

      백성들이 마을 주변에서 땔감을 채취하는 행동은 금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무주공산(無主空山)’이란 말을 낳게 한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즉, 산림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었고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공해전시제(公廨田柴制)를 정해서 국가기관에 농토와 시지(柴地:땔나무를 심는 땅)를 나누어 주었고

      조선시대에도 관용시장(官用柴場)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분급은 삼림을 황폐시키는 여러 가지 폐단을 낳았다.

      송지(松脂) 또는 송진(松津)은 소나무의 줄기에 상처를 내어 채집하는데 때로는 소나무목재를 건류해서 얻기도 한다.

      채취법에 따라 성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송진을 정제해서 얻은 터펜틴(turpentine)은 각종 도료의 제조에 쓰이고, 용제(溶劑)·의약품 및 화학제품의 원료로서 요긴

      하게 이용된다.

      간솔가지 및 소나무뿌리를 원료로 건류를 거쳐 송근유(松根油)·목초액·송근타르 등을 얻는데, 일제강점기 말엽 일제는

      군수자원을 얻고자 우리나라 사람들을 혹사하면서 송근 채취와 건류에 혈안이 된 적이 있다.


      소나무는 식품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나무의 백피(白皮), 즉 속껍질은 식량으로서 한몫을 하였다. 수액이 유동할 때는 이것을 생식할 수 있었고, 벗겨서 말려

      보관해 두었다가 물에 담가 떫은 맛을 없앤 뒤 식용하기도 하고 찧어서 가루로 만들어 송기떡을 만들기도 하였다.

      소나무껍질도 예로부터 구황식품으로 중요시되었다.

      1434년 경상도 진제경차관(賑濟敬差官)이 올린 “구황식품으로서 상수리가 가장 좋고 다음이 송피이옵니다.

      기민(飢民)이 소나무껍질을 벗겨 식량으로 하도록 허가하여 주옵소서.”라는 대목으로 보아 소나무껍질이 굶주린 백성을 연명

      시키는 데 도움을 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소나무줄기의 껍질뿐만 아니라 뿌리의 껍질도 식품으로 이용되었다.

      『본초강목』에도 근백피(根白皮)는 목피(木皮) 또는 적룡피(赤龍皮)라고도 하는데, 독이 없으며 벽곡(辟穀: 곡식을 먹지

      아니하는 대용식)으로 쓰인다는 기록이 있다.

      소나무의 꽃가루는 송황(松黃)·송화(松花) 등으로 불리는데 밀과(蜜果)의 재료가 되었고, 기(氣)를 보호해 주는 약성을 갖고

      있다. 솔잎은 송모(松毛)라고도 하며 송죽(松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또 어린 솔잎 한 말을 잎 끝쪽은 떼어버리고 잘게 썰어 오지항아리 속에 넣고 여기에 온탕 한 말을 넣어 보통 김치와 같이

      담그는데, 그것이 점차로 서늘해지면 무·미나리 등을 썰어넣거나, 또는 파·부추·된장·소금 등으로 맛을 돋운다.

      시일이 지난 뒤 한 번에 한 공기씩 먹고 수시로 그 물을 마시면 배가 부르다는 것이다.

      『본초강목』에도 솔잎을 가늘게 썬 뒤 다시 이것을 갈아 날마다 밥 먹기 전에 술과 함께 먹거나 끓인 물로 죽을 만들어

      먹으면 건강에 좋은데, 기년(飢年)에 쓰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또한, 솔잎을 써서 송편을 만드는데, 솔잎 내음이 가득 밴 송편은 우리 민족의 식품이 되어 왔으며, 중국에서도 구황식품

      으로 이용되었다.

      소나무는 술을 만드는 데도 쓰여, 송순주(松筍酒)·송엽주(松葉酒)·송실주(松實酒)·송하주(松下酒) 등이 있다.

      송하주란 동짓날 밤에 솔뿌리를 넣고 빚어서 소나무 밑을 파고 항아리를 잘 봉하여 두었다가 그 이듬해 낙엽이 질 무렵에

      먹는 술이다.

      솔방울술은 지금도 흔히 담그는 술인데 솔방울을 송자(松子)라고도 한다.

      소나무옹이[松節]를 넣고 빚은 술을 송절주라 하는데, 송절은 소나무의 뼈로서 단단하고 강해서 몸에 좋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소나무의 각 부분은 식품인 동시에 약재로서도 효과가 있었다.

      복령(茯靈)은 소나무뿌리에 외생균근이 공생해서 혹처럼 비대하게 된 것인데 신장병에 약효가 있다고 한다.

      소나무뿌리가 정기를 가지고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뿌리 속에만 숨어 있을 수 없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 복령으로

      되었다고 믿었다.

      소나무뿌리의 정기가 뿌리로부터 떠나지 않고 끝까지 붙어 있다고 해서 복신(伏神) 또는 복령(伏靈)으로도 불렀다.

      복령 가운데에서도 뿌리조직 부분을 특히 황송절(黃松節) 또는 신목(神木)이라 해서 약효를 으뜸으로 쳤는데 『본초강목』

      에 그 효과가 기록되어 있다.

      소나무뿌리는 외생균근균과 공생하는데, 종류에 따라 송이(松栮)라는 포자체를 발생한다.

      이것을 송심(松蕈)·송균(松菌) 등으로 부른다.

      우리나라 소나무숲은 송이가 자라는 데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에 송이가 많이 채취되고 있다.

      1978년부터 1985년까지 8년간에 걸쳐 약 6,000t의 생송이가 생산, 수출되었다.

      송이는 식품가치가 대단히 높아 궁중진상품으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송이는 인공배양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생산량을 인공으로 조절할 수는 없다.

      송진은 공업용으로 쓰이고, 다방면에 약효가 있어 한약재로도 쓰였으며 송고(松膏)·송방(松肪)·송교(松膠)·송향(松香) 등으로

      불리었다.

      송진이 땅 속으로 들어가 천년이 지나면 호박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호박은 장식재로서 가치가 높다.

      기름진 간솔가지는 조명용으로 쓰여왔고 송명(松明)은 관솔불을 뜻한다.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송매(松媒) 또는

      송연(松煙)이라 하는데, 좋은 먹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먹은 아교를 녹여 넣은 물에 그을음을 반죽하여 만드는데 그을음 중에서는 소나무를 태운 것을 으뜸으로 쳤으며, 우리

      나라의 송연묵은 당나라에서 수입해 갔을 만큼 이름이 높았다.

      소나무는 나무 자체로서도 우리 민족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으나, 그 숲도 우리 민족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여

      주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임수(林藪: 숲)가 있는데 소나무를 주축으로 한 것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경주시에 있었던

      천경림(天鏡林)과 경주시 내남면의 왕가수(王家藪)는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예천의 상금곡송림(上金谷松林),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의 봉화임수(奉化林藪),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의

      봉송정임수(奉松亭林藪), 강원도 경포의 한송정임수(寒松亭林藪), 경상북도 울진군의 취운루임수(翠雲樓林藪), 강원도

      양양군의 동해송임수(東海松林藪), 경기도 수원시 북문 밖에 있는 노송의 가로수 등은 풍치·방풍·방사 등으로 귀중한

      가치를 발휘하였다.

      소나무는 묘소 주변에 심어 묘를 보호하는 데도 이용되는데, 이것을 도래솔이라 부른다.



우리 민족의 삶과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


우리 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라도 꼭 찾아볼 수 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도시의 모든 나무들이 그렇긴 하지만, 역시 처음부터 저절로 도시에 자리잡고 자란 나무는 아니지요.

마치 우리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도심이든 농촌이든 꼭 심어 키우는 나무입니다.


명실상부하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나무! 무슨 나무인지 아시겠지요.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잘 자라는 나무이지만 따뜻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백두산 주변의 고원 지대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소나무만큼 넓은 지역에서 골고루 자라는 나무가 없을 정도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그렇다고 이 소나무들이 모두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저절로 자란 건 아닙니다.


소나무가 어떻게 우리 땅에 이처럼 번성하게 됐는지를 살펴보려면 사람이 간섭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숲이 겪는 변화 과정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랜 시간에 거쳐 숲이 변화하는 과정을 숲의 천이라고 하지요.


천이의 첫 단계인 황폐한 땅에 처음 들어오는 식물은 뿌리가 얕은 식물들입니다.

돌무지 땅에 흙 한 줌만 있어도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식물이지요.

우리 식물을 예로 들면, 진달래가 그런 개척자적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진달래 외에 담쟁이 류의 덩굴식물들도 개척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식물이지요.

이들은 숲에 다른 식물이 들어와 살 수 있도록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때 이 땅에 찾아 드는 나무는 식물교과서에서 한자말로 침엽수(針葉樹)라고 부르는 바늘잎나무입니다.

소나무가 그 중 대표적인 나무이죠.

진달래가 일궈준 땅에 들어온 소나무가 긴 세월을 거쳐 잘 자라 숲을 이루면 그 다음에는 활엽수(闊葉樹)라고 부르는 넓은잎나무가 들어올 차례입니다.

우리 땅에서는 신갈나무, 떡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 종류의 나무가 그런 나무들입니다.


참나무 종류의 나무들이 소나무 숲에 뿌리를 내리기는 했지만, 소나무가 지어낸 그늘을 뚫고 자라는 건 쉽지 않습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하지요.

어느 정도의 크기로 자라기만 하면 참나무 종류의 나무들은 잎이 넓어서 많은 양의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고, 광합성으로 지어내는 영양분이 풍부해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런 치열한 생존 경쟁을 통해 넓은잎나무들은 바늘잎나무의 키 위로 훌쩍 솟아오릅니다.


이쯤 되면 바늘잎나무들에게 위기가 찾아온 겁니다.

가뜩이나 잎이 가늘어서, 광합성으로 지어내는 양분이 적은 처지인데, 넓은잎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니, 광합성에 꼭 필요한 햇빛 모으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거죠.

다시 또 시간이 지나면 마침내 바늘잎나무들은 서서히 스러져 가고, 넓은잎나무들이 숲의 왕좌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숲은 좀 이상하지요.

참나무 종류의 나무들이 섞여서 자라는 게 분명하지만, 유난히 소나무가 많거든요.

그렇다면 자연 상태의 천이과정이 어디에선가 멈추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요?


저절로 그리 된 건 아니고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사정이 있습니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를 매우 중요시했지요.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금송령(禁松令)’을 비롯해서, 소나무를 베어내지 못하게 하는 여러 법령을 제정할 정도였어요.


가난한 백성들이 땔감을 구하기 위해 소나무를 몰래 베어가는 상황이 생기면, 소나무 대신 참나무 종류를 베어다 쓰라고 장려했지요.

또 일부 소나무 숲에는 황장금표를 세우고, 나무 보호를 위해 출입을 통제하기까지 했지요.

그만큼 소나무를 극진히 보호하는 바람에 저절로라면 풍성하게 자랐을 참나무 종류의 나무가 우리나라의 숲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 거죠.

결국 우리 땅의 소나무는 자연 상태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적극적인 보호에 의해 위세를 떨치게 된 것입니다.


생김새만으로도 소나무는 우리의 정신문화를 상징하는 나무였습니다.

옛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소나무는 선비의 절개를 가리키기 위한 상징이었지요.

그래서 옛날에는 아들을 낳으면 늘 푸른 절개를 갖춘 선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모들은 집 안팎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우리 문화를 ‘소나무 문화’라고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전만큼 소나무를 극진히 대접하는 건 아니지만, 소나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사랑은 식을 줄 모르고 이어집니다.

이를테면 얼마 전 산림청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소나무를 꼽았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소나무를 심어 키우는 이유입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도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함께 소나무를 심어 키웁니다.

우리 아파트 단지 뿐이 아닙니다. 주변의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는 물론이고, 근처의 학교라든가 관공서 건물에서도 소나무는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 마을이 아닌 우리나라의 여느 마을이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삶이 이어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라도 찾아볼 수 있는 우리의 대표적인 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老巨樹 保護樹 記念物 > 樹木 圖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태나무   (0) 2019.01.18
노간주나무  (0) 2019.01.16
메타세쿼이아  (0) 2019.01.08
스트로브잣나무  (0) 2019.01.08
리기다소나무  (0) 2019.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