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김민철의 꽃이야기

이름난 식물학자도 진땀 흘리게 만드는 '혁이 삼촌'

초암 정만순 2018. 12. 4. 12:32


이름난 식물학자도 진땀 흘리게 만드는 '혁이 삼촌'



이동혁 풀꽃나무 칼럼니스트

   



“식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기합니다. 지구라는 녹색 별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장기적 취미를 가지라고 하면 식물 공부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으니까요. 환경 문제 때문인지 요즘은 순수하게 식물 공부에 빠진 분이 많은 것을 봅니다. 그런 분들이 자주 묻곤 합니다. 어디에 가면 식물 공부하기에 좋으냐고.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목원을 찾으면 되니까요. (후략)”(<꼭 가봐야 할 우리나라 수목원&식물원 23> 中 11쪽)

이 책의 저자 이동혁(41)씨는 전국의 산ㆍ섬ㆍ수목원ㆍ식물원 등을 찾아다니며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온갖 풀꽃을 조사ㆍ촬영ㆍ기록한 ‘꽃에 미친 남자’다. 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그가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갖고 풀꽃 칼럼니스트로, 또 작가로 유명세를 치른 연유를 묻자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된 일”이라며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문학을 위해 식물을 배우다

그는 단국대학교에서 물리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국문학은 2002년 대학에 첫발을 들인 지 15년 만에 다시 시작하게 된 공부였다.

“원래 체육 특기생이었지만 대학시험에 모두 낙방, 오랜 시간 방황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글 쓰는 일이 좋아 지인의 권유로 다시 대학문을 두드리게 됐던 거지요.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시인 안도현 선생님의 ‘시 읽기와 시 쓰기’ 강의를 들었어요. 그런데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식물명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얘기인즉슨 선생님이 ‘물푸레나무’라는 시를 지은 적이 있는데 그게 물가에 피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줄 알고 잘못 쓴 경험이 있으셨던 거지요. 사실 물푸레나무는 가지를 물에 던지면 푸른색을 띠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인데 말입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 번 식물 공부를 해 제대로 된 시를 써보자’ 해서 시작했는데 오히려 식물 연구가 주업이 돼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2005년부터 그는 온갖 도감과 관련 서적을 읽으며 식물의 유래와 구별법을 독학했고, 산을 제 집 드나들 듯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책에서 보고 가도 야생에서 직접 보면 전혀 다른 식물처럼 느껴졌지요. 괭이밥과 애기똥풀은 직접 구분하기까지 딱 1년이 걸렸어요. 일반인은 구별하기도 힘든, 아주 조금의 차이로 식물의 이름이 다채롭게 바뀌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처음엔 제가 눈으로 보고 새로 알게 된 모든 것을 기록했지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정리하는 게 더 일인 겁니다. 그때부터 카메라를 집어들었죠. 식물도, 촬영도 모두 독학으로 익히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희귀생물 자생지 발견의 기쁨

   

그는 이 작업을 시작한 지 채 5년이 되지 않은 지금 <처음 만나는 풀꽃이야기>, <처음 만나는 나무이야기>, <오감으로 찾는 우리 풀꽃>, <초보자가 꼭 알아야 할 손바닥 식물도감>, <꼭 가봐야 할 우리나라 수목원&식물원 23> 등 총 9권의 책을 펴낸 인기 작가가 됐다. 최근에는 비슷한 식물을 비교한 <라이벌 식물도감>, <백두산 꽃탐사 트래킹 안내서>, <아침수목원 1ㆍ2> 등을 준비하고 있다. 다작의 비결을 묻자 간단명료한 대답이 돌아온다.

“자신감입니다. 늘 시간과 마감에 쫓기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겸손의 미덕도 필요한 것임을 식물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는 처음 식물을 연구하던 시절, 이른바 잘나가는 식물학자들에게 전화를 거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학계의 관습적 오류를 많이 고치는 데 일조한 것은 사실입니다. 수목원ㆍ식물원에 갈 때마다 잘못 표기된 팻말도 모두 체크해 수정하게 했고요. 하지만 저명한 식물학자들에게 주저없이 전화해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잘난 척하기도 했지요. 교수님들이 ‘또 혁이 삼촌이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전해 들었습니다(웃음).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제게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을 깨달았지요. 돌이켜 생각하면 참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산을 오르내리며 잊지 못할 경험은 없었을까?

“‘지네발란’이라고 멸종위기 희귀식물이 있어요. 남부 섬 지방과 제주도 등지에 극히 드물게 있는데, 최근 완도에서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우연히 발견한 식물 등을 포함해 1000여 종의 식물을 발견하고 촬영했습니다. 매일 어딘가로 출발하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하루 3~4시간 이상 자는 것도 힘이 들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풀꽃에 모든 피로가 싹 가시지요.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희귀식물의 자생지를 발견하는 기쁨이 바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혁이 삼촌의 풀꽃나무 일기’로 파워블로거 선정

그는 촬영한 사진을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2006년에 블로그 ‘혁이 삼촌의 풀꽃나무 일기(blog.naver.com/freebowl)를 개설, 2008년 파워블로거로도 선정됐다.

“‘혁이 삼촌’이라는 별명은 처음 낸 책인 <처음 만나는 나무이야기>와 <처음 만나는 풀꽃이야기>에서 연유합니다. 독자들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제 진짜 조카들에게 설명하듯이 서술했어요. 조카들이 나를 ‘혁이 삼촌’이라고 부르거든요. 친근했던 까닭인지 독자 반응도 매우 좋았어요.”

입소문이 나자 이제 ‘혁이 삼촌’을 찾는 이들도 부쩍 많아졌다.

“촬영 없이 채집만 하는 식물학과 교수님께서 사진 요청을 해 오는 경우도 있고, 숲 해설가나 유치원 교사 등 여기저기 강의 요청이 많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동호회 ‘아름다운 야생화’ 회원들도 저와 함께 산에 오르기를 원하지요. 하찮아 보이는 풀꽃 하나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더 좋은 사진을 찍고 많은 식물을 찾기 위해 혼자 가서 집중해 작업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단 그에게는 룰이 있다. 절대 채집하지 않고 오로지 사진으로만 담는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일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20대 때만 해도 세상을 참 부정적으로 봤어요. 인격장애로 입원한 적도 있고, 자살 시도도 했었지요. 식물을 공부하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매사 아름다운 걸 봐서 그런지 긍정적인 사고도 강화됐고요. 주변에서 도와주신 분들이 참 많은데, 그분들에게 멋진 책으로 보답하고 싶네요.”




'숲과의 對話 > 김민철의 꽃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화현호색  (0) 2018.12.04
팥배나무  (0) 2018.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