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김민철의 꽃이야기

봉화현호색

초암 정만순 2018. 12. 4. 12:08




봉화현호색



학자 못지않은 야생화 高手 즐비
멀리서도 차이 아는 '아이디카', 꽃 이름 찾다 보면 만나는 '여왕벌', 가장 많은 품 들이는 '혁이삼촌',
만나보면 한 手 배워 즐겁고 그 熱情에 경이로움 느껴

'봉화현호색'이라는 신종(新種)을 발견했다는 논문이 '식물분류학회지(誌)' 최근호에 실렸다.

경북 봉화군에서 연노랑 꽃에 잎은 가는 신종 현호색을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전북대 생명과학과팀이 발표한 논문인데, 감사의 글에 "정보와 사진을 제공한 이재능씨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연을 알아보니 야생화 고수(高手)인 이재능(62)씨가 2012년 제보해 시작된 연구였다.

이씨는 "해마다 봉화 길가에 낯선 현호색 수백 송이가 피는 것을 보고 신종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높은 식견을 갖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이씨(닉네임 아이디카)는 야생화계에서 최고수로 통한다.

그가 쓴 세 권짜리 '꽃들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꽃나들이)' 시리즈는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필독서 중 하나다.

책에서 "몇 년 지나도록 이름을 불러주기 어렵더니 어느 날 멀리서 보아도 작고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 때가 내게도 왔다"는 대목을 보았을 때 그가 고수임을 직감했다.

마침 산자락에 현호색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현호색은 꽃샘추위가 남아 있는 초봄에 연보랏빛 꽃을 피운다.

뒤쪽이 약간 들리고 앞쪽은 입술처럼 벌어진 것이 날아오르는 종달새 같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웬만한 산에는 다 있는 꽃이다.

[김민철의 꽃이야기] 야생화 高手들에게 한 수 배우며…
/일러스트=이철원


예년 같으면 현호색이 필 시기인데, 지난 주말 남양주 천마산에 간 김에 현호색을 찾아봤으나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올겨울 강추위 여파로 야생화 개화(開花)가 열흘에서 2주 정도 늦은 탓이다.

이재능씨 말고도 학자들 못지않은 야생화 고수가 많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처럼 체계적으로 공부한 분들은 논외로 치고, 독학 또는 동호회 활동만으로 놀라운 야생화 지식을 쌓은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언제 어디에 무슨 꽃이 피는지, 직감적으로 무슨 꽃인지 아는 것은 웬만한 학자들이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인 고수들이 늘어났다.

블로그 '여왕벌이 사는 집' 운영자 여왕벌도 그중 한 명이다.
 "무슨 꽃인지 헷갈려 검색하다 보면 반드시 여왕벌 블로그에 가 닿는다"는 것이 야생화 고수들의 얘기다.
여왕벌은 안동 온혜초등학교 남명자 교장(61)의 닉네임이다.
그의 블로그에 가면 10여년 축적한 1만5000여 건의 식물 비교 자료를 만날 수 있다. 필자도 즐겨찾기를 해둔 블로그다.

현호색
현호색


남 교장은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어릴 때 알던 꽃 이름이 실제와 다른 것을 알고 공부를 시작했다"며 "어디든 주저앉아 작은 풀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왕벌이라는 닉네임은 꿀벌반 담임할 때 생긴 별명"이라고 했다.

'혁이삼촌' 이동혁(49)씨도 알아주는 야생화계 최고수다.
그는 2005년부터 전국 산을 찾아다니며 독학해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다.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 '한국의 나무 바로 알기' 등 20권의 책을 펴냈다.

그는 '꽃에 시간과 노력을 가장 많이 투자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이씨는 "한 달에 자동차로 1만㎞ 달린 적도 있다.
산을 걷고 바다 건넌 거리는 빼고…. 웬만한 산은 다 가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지역에 강한 '지역 고수', 난초 같은 특정 분야에 강한 '분야 고수'는 많지만 전국적으로, 풀과 나무를 전반적으로 아는 것과 사진 수준까지 감안하면 내가 최고일 것"이라고 했다.
고수들은 대체로 학문 영역은 건드리지 않지만 '혁이삼촌'은 학자들에게 항의 전화도 서슴지 않는 다혈질이다.

'한국의 제비꽃' 의 저자 박승천(59)씨는 제비꽃 박사로 불린다.
50여종이 넘고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제비꽃을 그는 다 꿰고 있다.
전국에 내로라하는 고수들도 제비꽃에 관한 한 박씨의 최 종 판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들 외에도 꽃을 보러 다니다 보면 깜짝 놀랄 만한 숨은 고수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의 부제(副題)대로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인생 어디든 고수들이 있다)'다.
이런 고수들을 만나 한 수 배우고 그 열정에 경이로움을 느껴 보는 것은 야생화를 찾아다니며 얻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