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 遺跡 /정자 누각 원림

봉화 亭子여행

초암 정만순 2018. 7. 11. 11:08



봉화 亭子여행



곳곳에 정자…전국서 가장 많아

          
 
 
계서당은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인 이몽룡 스토리가 전해지는 곳이다. 계서당은 ‘암행어사의 표본’이라는 청백리 정신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경북 봉화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워낭소리'이다. 영화 워낭소리가 빅히트를 치자 봉화의 워낭소리 촬영지가 테마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경북 봉화는 오지다. 그 만큼 자연이 잘 보존돼 있고, 역사와 문화 자산도 옛 그대로다. 오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나 할까. 워낭소리를 낳은 봉화에는 숨겨진 테마가 더 있다. 바로 '정자'다. 현재 확인된 곳만 101개, 사라진 정자까지 포함하면 170개를 훌쩍 넘긴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많다.

정자가 왜 테마 여행지로 떠오르는 걸까? 정자는 옛 선현의 풍류가 깃든 곳이요, 학문의 가치가 담긴 곳이다. 또한 건축의 백미가 바로 정자다. 일석삼조인 셈.

봉화는 대한민국 정자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고장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봉화로 '정자 여행'을 떠났다.




봉화읍 유곡리에는 닭실마을이 있다.

조선 중종때의 충신 충재 권벌 선생의 후손들이 정착한 집성 마을이다. 마을의 충재고택 안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바로 청암정이다. 우리나라 대표 전통마을인 닭실마을의 명성만큼이나 청암정 역시 ‘정자 중 정자’로 이름나 있다.

겉만봐도 너무나 아름답다. 충재고택과의 조화 역시 기막히다. 거북 모양의 큰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주위의 땅을 파내 그 흙으로 둑을 쌓아 정자를 두르는 연못을 만들었다. 정자 주위의 바위틈에 단풍나무 등을 심어 청암정의 멋을 더했고, 둑에는 크고 작은 느티나무, 향나무, 전나무, 소나무 등이 둘러 있다. 둑과 정자와 연못에 걸쳐 허리를 잔뜩 구부린 떡버들나무는 수백년 세월을 견뎌내고 있으니 애처롭기까지하다. 둑은 담 아닌 담과 같아서 정자를 한결 아늑하게 하고 있다. 청암정이란 이름은 정자의 북쪽 곁에 있는 바위가 푸른 빛이어서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청암정은 돌거북, 돌다리, 연못이 어우러진 가장 아름다운 정자이자 서당이요, 자연과 인공이 가장 잘 조화를 이뤄 건축가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또한 충재 권벌의 인품이 서린 곳이자 영화 바람의 화원, 음란서생, 스캔들 등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청암정에서 지척인 석천계곡에는 석천정사가 있다. 정사(精舍)는 지금으로 보면 기숙학교다. 충재 선생의 장자인 청암 권동보가 향리로 돌아와 학문 수양, 후진 양성이라는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창건한 정자다. 정사는 대궐 짓는데만 쓴다는 춘양목으로 지어졌고, 주위는 기암절벽과 노송으로 덮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물야면 가평리의 계서당은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요즘 역사와 문화자산이 '스토리텔링'으로 각광받고 있는 만큼 계서당의 스토리는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계서 성이성이 지었다고 전하며, 문중 자제의 훈학과 후학 양성에 힘쓴 곳이다. 지금의 모습은 번듯한 고택 수준으로 후손들이 중건한 덕이다. 성이성은 문과에 급제한 후 6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3차례나 암행어사로 등용되었을 정도로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높았다. 아버지인 부용당 성안의 역시 청백리로 이름을 알렸다.

스토리는 계서당 초입의 '암행어사의 표본 이몽룡 생가'라는 안내판에서 시작된다. 이몽룡은 바로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이다.

봉화가 전하는 이몽룡 스토리는 이렇다. 성안의가 남원부사로 재직 당시 10대의 성이성은 남원에서 과거 공부에 힘썼고, 춘향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후 아버지가 한양으로 부임하자 아버지를 따라간 성이성은 과거에 급제했다. 과거에 급제한 성이성은 암행어사의 표본으로 이름을 날렸다. 봉화의 '성이성=이몽룡' 주장은 성이성이 급제 후 두 차례나 호남으로 암행을 했고, 2차 호남암행록에 ‘눈내리는 겨울 광한루에 올라 옛 생각에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당시 양반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춘향전의 작자가 성이성의 성씨를 그대로 쓰지 못하고 이씨로 바꿔 사용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계서당의 이몽룡 스토리는 지금도 계서당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춘양면 학산리 골띠마을의 와선정은 병자호란 후 청나라 오랑캐를 섬길 수 없다며 봉화 땅에 이주한 이른바 '태백오현'이 대의명분을 지키며 교우하던 정자다. 와선정은 바로 충의를 상징하는 정자다. 은빛 폭포와 바위, 바위 위의 오현교라는 다리는 "정자가 바로 이런 곳이구나"라는 감탄도 자아내게 한다. 와선정은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노송의 빼어난 자태를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찬물과 같은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라'는 뜻의 한수정, 발 아래 흐르는 사미정계곡과 함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사미정도 봉화의 대표 정자들이다.

쌍벽당, 야옹정, 종선정의 현판 글씨는 퇴계 이황의 친필이다. 조선 최고의 서예가인 석봉 한호도 구학정과 노봉정사의 현판에 흔적을 남겼다. 경체정, 영규헌의 현판 글씨도 조선 서예사에 한 획을 그은 추사 김정희의 것.

봉화의 정자는 정자마다 귀중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고, 봉화는 감춰진 보물 정자를 '풍류와 학문이 있는 정자'라는 프로젝트로 복원하고 있다.

바로 정자 순례로, 청량산과 청량산 앞 낙동강을 묶는 '낙동강 정자문화 순례 코스', 춘양면 일대를 중심으로 한 '백두대간 코스', 봉화읍과 물야면을 중심으로 한 '내성천 코스' 등이다. 낙동강 코스는 안동 고산정-퇴계 예던길-두암정-운산정-청량정사-갈천정-사미정-범바위-신비의 도로-백파정-구미당-청량폭포-청량산 박물관을 잇는다.

백두대간 코스는 창애정-한수정-만산고택-권진사택-각화사-두내약수탕-서벽 춘양목군락지-봉성 천주교 성지-애일당-이오당-춘양역을 거친다. 또 내성천 코스는 청암정-석천정사-신흥 유기마을-쌍송정-계서당-축서사-오전약수탕-한천정사-도암정-쌍벽당-송석헌-야옹정-봉성향교 등을 찾는다. 이동 방법은 슬로우 트레킹이다. 발품, 자전거, 말 등이 슬로우 트레킹의 주요 이동 수단. 버스도 동원할 계획이다.

뭘 담을까? 문화해설사들이 전설과 재담, 누정문학 등의 '정자 스토리'를 소개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자 공부방을 운영하고,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해선 정자 및 고택체험도 한다. 정자는 고품격 예술 장소로도 활용된다. 시낭송, 음악회가 관광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코스 중간 중간에는 봉화가 자랑하는 역사·문화 유산도 있다. 삼림욕과 테라피체험, 산나물 채취체험, 탬플스테이와 선(禪)문화체험, 농장체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중이다.

엄태항 봉화군수는 "청암정에선 지금도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며 "정자는 봉화의 가장 우수한 전통 문화유산임에도 곳곳에 산재해 있어 그 빛을 못본 만큼 정자 순례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정자 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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