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異山10臺
1. 문수대(文殊臺)
불교에서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뜻하는 화신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혜를 구할 수 있는 자리라 함은 예사롭지 않을 수 없다.
노고단 정상 부근 군사시설에서 우측 철조망을 따라 피아골 방향으로 나아가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측 바로 위에 단아하고
정갈한 건물이 서 있다.
직진하는 길은 왕시루봉과 돼지평전 가는 길이다.
문수암의 전망은 지리산 명당으로 꼽히는 상무주암보다도 시원하게 터져서 좋지만, 방향이 북향이라 겨울에는 춥다.
반야오대 지도
노고단에서 돼지평전으로 진행하다보면 헬기장 만나기전에 오른쪽으로 돼지평전~왕시루봉 휴식년제구간 이란 입간판이 있다.
이 입간판 뒤 산죽 사이로 노고단 정상에서 왕시루봉으로 내려서는 등산로와 만나는길리 열려있다.
삼거리에서 2미터 내려서면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열려있는 등산로가 문수대를 경유해 노고단 중계탑쪽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리산 산중에는 능이 높고 골이 깊은 만큼 좋은 터도 많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그런 비처에 대(臺)라는 이름을 붙이고 은밀히 즐겨 찾았다.
그곳은 대부분 접근하기 어려운 험지로 일반인의 발길이 잘 미치지 않는 곳이다.
산사람들은 그런 곳에서 비기를 연마하고 호연지기를 기르거나 아예 토굴을 짓고 수행하기도 했다.
대(臺)는 통상적으로 조망 좋은 언덕이나 적당히 엄폐된 바위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평평한 공간이 있고 트인 조망과
석간수가 있어 누가 봐도 명당이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지리산에 대표적인 열 곳을 꼽아 지리 10대라고 부르기도 하고 天王 5臺, 般若 5臺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반야 5대 중 하나인 노고단 자락 문수대(1310m)를 탐방하기로 한다.
탐방코스는 문수골과 큰진도사골을 거쳐 문수대에 올랐다가 노고단 남사면을 돌아 월령봉 능선으로 하산하는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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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대 석문.
전남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에 위치한 문수골, 지리산 여느 골 못지않게 골이 크고 깊다.
수림이 울창하고 지계곡도 많은 만큼 수량이 풍부하고 늘 청류가 흐르는 청정계곡이다.
1948년에는 김지회가 무장한 여순 반란군 1000여명을 이끌고 이 골을 통해 지리산에 들기도 했다.
이번 탐방산행은 신율마을에서 시작한다. 마을에서 우측으로 임도를 따르다가 임도 끝나는 지점에 계곡 좌측으로 등로가
열려 있다.
탐방팀은 계곡 옆 등로를 따라 숲속으로 빨려 들 듯 들어서서 문수골을 오른다.
상큼한 숲 향과 온 계곡을 울리는 청아한 물소리는 문수골의 강한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노고단 자락에서 발원한 문수골은 좌우의 월령봉 능선과 왕시루봉 능선 사면의 물을 모아 큰 골을 이루고 남으로 굽이 틀어
흐르다가 토지면 구산리, 파도리 부근에서 섬진강에 합수된다.
문수골은 수림이 울창하고 지계곡도 많아 늘 청류가 흐른다.
▲와폭과 푸른 소가 즐비한 문수골
계곡 초입 부근에서 만나는 너럭바위, 멋진 와폭이 걸려 있고 바위에는 풍류가 엿보이는 초서체 각자도 보인다.
문수골은 안으로 들어설수록 운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완만한 지형에 암반이 발달돼 있어 자연히 소폭과 담이 많다. 등로는 계곡 좌측을 오르다가 우측으로 건너 이어진다.
계곡 가에는 여름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 산행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흰 꽃을 피운 산딸나무와 때죽나무가 유독 많이 보인다. 탐방팀은 등로와 아기자기한 계곡을 번갈아 걸으며 계곡 깊숙이 접어든다.
신율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 정도, 우측에서 지계곡이 합수된다.
이 골은 질매골로 왕시루봉 능선상의 질매재 쪽에서 흘러내리는 골이다.
계곡 옆에는 질매재로 향하는 등로가 뚜렷하게 열려 있다.
탐방팀은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문수골을 계속 진행하다가 발길을 잡아끄는 폭포 앞에서 쉬어 간다.
이끼 사이로 하얀 포말을 쏟아내는 작은 와폭이다. 가만히 와폭 앞에 앉아 보니, 청량하고 선선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지리산 골골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참 보배로운 산임을 새삼 느낀다.
이어지는 계곡 모습도 신선지경이 따로 없다. 곳곳에 와폭이 걸려 있다.
완만하고 널찍한 암반을 타고 옥수가 하얗게 부서지며 타고 내린다.
산객의 발걸음은 아름다운 계곡미에 흠뻑 취해 갈지자를 그리며 점점 계곡 심처로 들어선다.
산행시간 1시간 30여분, 진도사골 분기점이다. 좌골은 작은 진도사골이고 우골은 탐방팀이 오를 큰 진도사골이다.
이곳도 명칭 정리가 안 된 곳 중 하나로 진도사골과 전도사골을 혼용해서 쓰고 있는데, 옛날 진씨 성을 가진 도사가 이 골에서
도를 닦은 데서 유래됐다는 진도사골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새하얀 꽃을 피운 물참대.
▲여름 꽃 만개한 큰진도사골= 탐방팀은 우측의 큰진도사골로 접어든다.
초입부터 소폭이 산객을 반기는데, 이후 계곡은 점차 거칠고 급해진다.
수량도 줄고 계곡미도 떨어진다.
하지만 이를 만회라도 하듯 활짝 핀 여름 꽃이 계곡 분위기를 살려주고 있다. 은은한 꽃 향이 가득 풍긴다.
향기의 주인공은 정향나무다.
무리 지어 활짝 피어 벌, 나비를 유인하고 있고 그 옆에는 별처럼 반짝이는 새하얀 꽃을 피운 물참대와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함박꽃나무도 덩달아 꽃을 피워 서로 뽐내고 있으니 거친 골이 아름다운 화원이나 다름없다.
큰진도사골 최상부를 통과한다.
물길은 너덜 밑으로 숨어들고 가파른 계곡이 다시 좌우로 분기된다.
방향을 좌골로 틀어 가파르게 올라서니 계곡은 사라지고 너덜사면이 전개된다.
너덜 길을 조심조심 올라서면 큰 암벽이 가로로 펼쳐져 있는데, 그 중간으로 길이 열려 있다.
그곳을 통과해 오르면 곧바로 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만나는데, 문수대에서 왕시루봉능선 삼거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합류지점에서 몇십 미터 우측으로 이동하면 문수대가 있다.
지리 10대 중 하나인 문수대.
문수대 옆 너덜지대.
▲반야 5대의 비처 문수대=
지리산이 감춰둔 은둔의 땅 문수대, 먼저 석문을 통과해야 한다.
막대기 하나 걸쳐진 석문, 허술해 보이는 석문이나 진법을 펼쳐 바람 한 점 통과할 수 없다.
결계를 파훼하고 기역자 형태의 석문을 통과해 내부로 들어서면 비로소 문수대 토굴이 눈앞에 나타난다.
암벽 앞에 작은 토굴이 자리하고 있고 남쪽으로 문수골과 왕시루봉 능선이 조망된다.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 이곳이 지리 10대 중 하나이며 우번대, 서산대, 무착대, 묘향대와 더불어 반야 5대로 불리는 문수대다. 정적에 묻힌 고요한 문수대를 한 바퀴 둘러본다.
뒤쪽 암벽에는 석간수가 흐르고 암자 옆에는 채마밭도 보인다.
앞마당 공터 나무 아래에는 돌 탁자가 놓였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문수대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좋은 기운 가득 느끼며 돌 탁자에 둘러앉아 한동안 머물다가 노고단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석문을 빠져나오면 길이 두 갈래로 갈리는데 어차피 둘 다 노고단 아래 방송기지국으로 향하고 있다.
수평으로 이어지는 아랫길을 택해 조금 진행하여 만나는 너덜지대에서 조망이 터진다.
발아래는 오전에 오른 큰진도사골이 보이고 그 밑으로 문수골이 굽이치고 있다.
좌측으로 왕시루봉 능선이 남으로 뻗어 있고, 문바위등과 왕시루봉도 멋지게 조망된다.
잠시 조망을 뒤로하고 노고단으로 향하는 사면길, 이곳 분위기도 좋다.
함박꽃나무와 철쭉, 노린재나무가 사방에 꽃을 피우고 있다.
호젓하게 사면 길을 걸어 노고단 방송기지국 아래로 빠져나오니 천상화원 노고단 평원이 화려하게 탐방팀을 맞이한다.
사방에 여름 꽃이 피어 있는 노고단.
▲푸른 초원에 펼쳐진 천상화원 노고단=
사방으로 매혹적인 경관이 펼쳐진다. 일대장관이다.
360도 조망 속에 푸른 초원이 펼쳐진 노고단 사면, 온통 여름 꽃이 때 맞춰 피어났다.
월령봉 능선 들머리 부근 철쭉 밭을 잠시 거닐다가 이정표 역할을 하는 조망바위 아래로 내려서서 월령봉 능선으로 진입한다.
월령봉 능선은 형제봉 능선이라고도 불리며 지리산 주요 지능선 중 하나다.
이 능선은 좌우에 문수골과 화엄사골을 두고 노고단에서 19번 국도 상의 토지면 용두리, 오미리로 이어지는 긴 능선이다.
능선 상에 형제봉과 월령봉이 있어 월령봉 또는 형제봉 능선으로 불리는데, 길은 뚜렷하고 부드러운 숲길이다.
중간중간 조망바위가 쉼터 역할을 하는 걷기 좋은 능선 길, 탐방팀은 가볍게 걸어 내린다.
노고단을 출발한 지 2시간 30분, 형제봉을 앞두고 능선 안부의 사거리 갈림길이 있는 밤재에 도착한다.
우측은 화엄사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좌측은 밤재마을로 하산하는 길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밤재마을로 향해 내려서고 이내 신율마을에 도착하며 8시간의 문수대 탐방 산행을 마무리한다.
지리산 문수암과 그 뒷편의 문수대
2. 우번대(牛飜臺)
종석대 서쪽아래에는 지리산 10대 기도처의 하나인 우번대가 있는데, 이 곳에 우번암이 위치해 있다.
아늑하니 솔솔바람만이 불어올 뿐 거세 바람에도 끄덕 없을 정도로 안온하고 편안한 느낌이 바로 전율을 탄다.
우번암과 종석대에 얽힌 전설이 있다.
상선암은 천은사계곡 상류 깊은 곳에 위치한 이름난 선원이다.
신라의 고승 우번도사가 젊은 시절 상선암을 찾아 0년 수도를 결심하고 혼자 수도 정진하기를 9년째 되던 어느 날,
절세미인 한 사람이 암자에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우번을 유혹하였다.
여인에게 홀린 우번은 수도승이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여인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 여인은 온갖 가화요초가 만발한 아름다운 수림 속을 지나쳐 자꾸만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우번은 여인을 놓칠까 봐 산속을 헤치며 정신 없이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차일봉 정상에까지 오르게 됐다.
깜짝 놀란 우번이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이는 필시 관음보살이 자기를 시험한 것이라 깨닫고 자리에 엎드려 자기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참회하니 관음보살은 간데없고 대신 큰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
자신의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달은 우번은 그 바위 밑에 토굴을 파고 토굴속에서 수도하여 후일 도승이 되었다 한다.
우번도사가 도통한 그 토굴자리를 우번대라 부르게 됐으며, 우번도사가 도통한 그 순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려왔다 하여 그 곳을 종석대라 부르고,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서있던 자리를 관음대라 부른다.
노고단에서 내려오며 바라본 종석대.
화엄사 쪽에서 이 고개에 올라설 때 코가 땅에 닿을 듯 가파르다고 하여 이곳을 ‘코재’라고 부르는데, 한편으로 물을 넘긴다는 의미로 ‘무넹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탐방팀은 무넹기에서 잠시 화엄사 계곡을 조망하다가 종석대로 향한다.
▲도를 깨치면 들려오는 종석대 석종소리
돌종이란 의미를 지닌 종석대(鍾石臺·1361m), 정상 암봉이 종 모양을 닮아서라거나 바람이 바위에 부딪칠 때 돌종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우번조사가 도를 통하던 그 순간, 이곳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른다.
종석대 능선.
조망봉인 종석대는 ‘지리 10대’ 중 하나로 사방 조망이 좋은 곳이다.
사방을 찬찬히 둘러본다. 지나온 노고단을 비롯해 남으로 뻗은 월령봉 능선이 조망되고, 발아래는 차일봉 능선이 구례벌판을 향해 뻗어 있다.
서쪽으로는 시암재를 지나 간미봉, 지초봉으로 이어지는 간미봉 능선, 그리고 북쪽으로는 만복대를 지나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조망된다.
탐방팀은 종석대의 광활한 조망을 눈에 담고 찬바람을 피해 암봉 자락에서 잠시 쉬어간다. 우번조사가 여기서 관음보살을 보았을까?
아니면 마음속의 환상을 관음보살 현신으로 착각했을까?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점차 거세지는 강풍에 보온채비를 하고 서둘러 종석대 능선길을 걷는다.
이 능선길은 실제 백두대간 마루금이자 지리산 태극종주길이다.
능선길을 10여분 이어가면 작은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이곳이 성삼재, 시암재 갈림길 가기 전의 밋밋한 봉우리로 좌측으로 우번암 가는 길이 열려있다.
탐방팀은 잠시 갈림길에서 구례 벌판과 간미봉 능선을 조망해보고 좌측으로 천은사골을 향해 뻗어내린 지능선으로 진입한다.
종석대 능선에서 15분가량 내려서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100여m 거리에 우번암이 있다.
직진 내림 길은 우번대 옛길로 상선암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탐방팀은 좌측으로 내려서서 채미밭 앞을 지나 우번암으로 들어선다.
신라 고승 우번조사가 도를 깨쳤던 토굴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허름한 우번암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오랜 세월 우번암을 지키고 계신 법종스님은 출타 중이고 경내에는 고요히 정적만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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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번조사가 득도했다는 우번암.
▲관음보살의 깨우침
신라 승려, 우번은 지리산에 입산해 10년 수도를 결심하고 천은사 골짝의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한 상선암에 자리를 잡았다.
용맹정진 9년째 수도를 하던 어느 봄날,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그를 유혹했고, 여인의 미모에 홀린 우번은 수도승이란 자신의 처지를 잊고 그녀를 따라나선다.
그 여인은 기화요초 만발한 아름다운 숲을 지나 자꾸만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우번은 여인을 놓칠세라 정신없이 산 정상까지 따라 올랐는데, 유혹하던 여인은 간데없고 관음보살이 자신을 굽어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우번은 관음보살이 자신을 시험한 것임을 알아채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니 관음보살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
우번은 자신의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닫고 산자락에 토굴을 파고 수도 정진해 도승이 됐는데, 우번조사가 도를 통하던 순간, 석종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우번조사가 득도한 토굴을 우번대, 석종소리가 들려온 암봉을 종석대, 관음보살이 현신해 서 있던 자리를 관음대라 부르게 됐다.
지금은 종석대를 우번대, 관음대라 칭하기도 하고 종석대 자락 토굴이 있던 우번암 일대를 ‘우번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번조사 이후로도 많은 고승들이 우번대에 머물며 수도정진했는데, 깨우침을 얻은 순간마다 종석대에서 울려 퍼지는 돌종 소리를 들었다고 전한다.
우번대(牛飜臺)에는 우번조사의 전설과 함께 또 다른 전설도 전해온다.
우번(牛飜)이란 의미처럼 ‘소가 몸을 바꾼 자리’라는 뜻도 있다.
옛날 문수보살과 함께 길을 가던 길상동자가 남의 밭에서 조 세알을 따 먹은 후, 갑자기 소로 변했다.
소로 변한 길상동자는 그 빚을 갚기 위해 3년 동안 밭주인에게 일을 해주고 다시 동자로 화신했다는 전설이다.
혹 길상동자가 세월을 건너뛰어 우번으로 환생했을까.
우번암 별채.
▲우번조사 득도한 우번대
우번조사 전설이 깃든 우번대를 돌아본다. 오목하고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면 별채도 있다. 더 운치가 느껴지는 별채를 둘러보고 우번암을 나선다.
가져간 미역과 김은 선방 문고리에 걸어놓고, 삼거리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우번대 옛길을 따라 상선암을 향해 하산한다.
길은 한동안 능선을 이어가다가 계곡가로 내려선다. 등로는 계곡 옆으로 휘감아 돌고 잠시 희미한 길을 이어가면 갈림길이 있는 작은 목교에 다다른다. 우번암에서 50분 거리다.
목교를 건너기 전 우측 오름길이 상선암 가는 길이다.
탐방팀은 마지막 목적지 상선암으로 향한다. 목교에서 15분가량 호젓한 숲길을 걸어올라 상선암에 도착한다.
상선암.
우번조사가 9년간 머무르며 수도 정진했던 상선암, 바람마저 쉬어가는 곳이다.
경내에는 온기가 가득하다. 따사로운 오후 햇살이 내려쬐이고 아궁이마다 군불이 발갛게 타오르고 있다.
선방에서는 산사를 찾은 사람들의 도란도란 말소리도 들려오고 우람하게 버티고 선 노거수 느티나무는 시골마을 동구 밖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모처럼 찾아온 고향 같은 왠지 낯설지 않은 익숙한 느낌이다.
탐방팀은 분위기에 젖어 한동안 상선암에 머물다가 산문을 나선다.
성삼재에서 노고단방향 코재에서 종석대~성삼봉 가다 좌측 차일봉능선으로 내려가다 우측으로 20분 내려가면 된다.
우번대사가 깨우쳤다는 곳이다.
3.묘향대(妙香臺)
※ 각 구간별 거리
반선교 : 0 km
와운교 : 3 km
제승교 : 6 km
이끼폭포 :7 km
묘향대 들머리 : 8.3 km
심마니능선 안부 : 9 km
갈림길 ; 11km
중봉 : 11.5 km
반야봉 : 2km
※ 각 구간별 예상 소요시간
반선교 : 0
와운교 : 30분
제승교 : 60분
이끼폭포 : 30분
묘향대들머리-심마니능선 : 120분
묘향대들머리-묘향대 : 120분
묘향대 - 중봉 : 30분
심마니능선 안부 - 중봉 : 60분
중봉 - 반야봉 : 30분
※ 주요 코스
1. 반선 - 제승교 - 이끼폭포 - 묘향대 갈림길 - 묘향대 - 중봉 - 반야봉 - 삼도봉 - 묘향대 - 폭포수골 - 유유교 - 반선
2. 반선 - 제승교 - 이끼폭포 - 묘향대 갈림길 - 묘향대 - 중봉(반야봉 선택) - 묘향대 - 폭포수골 - 반야비트-
유유교 - 반선 (역순).
3. 반선 - 제승교 - 이끼폭포 - 묘향대 갈림길 - 묘향대 - 중봉 - 반야봉 - 노루목 - 삼도봉 -화개재 - 반선
4. 반선 - 제승교 - 이끼폭포 - 묘향대 갈림길 - 심마니능선안부 - 중봉 - 묘향대 - 폭포수골 - 반야비트 - 유유교 - 반선
5. 반선 - 제승교 - 이끼폭포 - 묘향대 갈림길 - 심마니능선안부 - 중봉 - 반야봉 - 노루목 - 삼도봉 - 묘향대- 폭포수골 -
반야비트 - 유유교 - 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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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에서 반야봉 올라가기전 소금장수무덤 뒤쪽으로 가는길이있고 반야봉에서 중봉 무덤옆 구상나무 부근에서 뱀사골 이끼폭포골 내려가다 능선 우측에 있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 수도처로 알려진 곳. 반야봉에서 가장 아늑하고 깊은 맛이 있는 수도처이다.
이곳에는 한국 불교의 마지막 전설로 불리는 곳으로 개운조사(開雲祖師)의 전설로 유명한 곳이다.
지리산 심마니들 사이에서는 200살이 넘은 개운조사가 신선이 되어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금강대(金剛臺)가 지리산 제일의 수행지였다고 전해지나 금강대를 찾을 길 없는 지금은 이곳 묘향대(妙香臺)를
으뜸으로 치고 있다.
반야봉 자락의 묘향대와 묘향암. 묘향암의 역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백 년 전부터 토굴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많은 도인들의 참선 수행지였다고 한다.
▲산중 절해고도의 수행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집이 있는 지리산 묘향대, 그곳을 찾아가기란 여간 녹록지 않다.
반야봉 자락의 깊은 산중에 위치해 찾아가는 길도 멀고 험하다.
그래서 묘향대는 뭇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반야 성지로 불리며 지리산 최고의 수행지로 알려져 있다.
묘향대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아예 지리산 주능선에 올라서서 접근하거나 아니면 뱀사골에서 험한 계곡을 치고 올라야 한다.
그나마 편한 길은 주능선 상의 삼도봉에서 반야봉 북사면 허리 길로 접근하는 것이다.
아니면 반야봉으로 올라 반야중봉 정상에서 북사면을 타고 내려 접근할 수도 있다.
뱀사골에서 접근하려면 뱀사골 상부에서 폭포수골이나 함박골을 타고 올라야 하는데, 길이 제대로 없고 험해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찾는 사람 많지 않은 마치 절해고도 속의 수행지 같은 묘향대다.
특히 겨울이 되면 묘향대는 고립무원이 된다.
한 번 눈이 쌓이면 길과 길 아닌 곳의 구분은 사라지고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도 없을 만큼 온통 하얀 눈뿐이다.
그래서 한 발을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일쑤여서 이곳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
탐방팀의 접근로는 뱀사골에서 폭포수골이다. 폭포가 많아 폭포수골이라 불릴 만큼 가파르고 거칠다.
탐방팀은 뱀사골과 폭포수골을 거슬러 올라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 ‘박영발 비트’를 돌아보고 묘향대로 향한다.
박영발 비트에서 바로 위쪽의 사면길을 따라 20분가량 오르면 삼도봉 쪽에서 접근하는 허리 길을 만나고 여기서 다시 우측으로
15분가량 진행하면 묘향대에 도착한다.
묘향암
묘향대 석간수
▲개운조사 머물렀던 반야성지 묘향대
반야봉 자락의 반야성지 묘향대, 병풍같이 늘어선 암벽 자락에 제법 넓고 편평한 조망 좋은 터가 있고 그 한쪽에 절집이 자리하고 있다. 묘향대의 묘향암이다.
묘향암은 지리산 반야봉 북동자락 해발 1480m 고지에 위치한 은둔의 암자이다.
원래 사방 험로로 둘러싸여 인적조차 드문 곳이었지만 지금은 지리산 명소 중 한 곳이 돼 찾는 산객이 더러 있다.
묘향암의 역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백 년 전부터 토굴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많은 도인들의 참선 수행지였다고 한다.
특히 죽음으로부터 해탈한 도인으로 알려진 개운조사께서도 한때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하는데, 그는 지리산에서 182세까지 살다가 나뭇가지 하나 붙잡고 꼿꼿이 선 채로 열반한 전설적인 도인으로 산사람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고 있다.
지금의 암자는 1970년대에 화엄사 한 스님이 불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탐방팀은 배낭을 풀어놓고 묘향대를 한 바퀴 돌아본다.
암벽을 병풍처럼 두르고 고색창연한 모습의 암자가 북향으로 고즈넉이 앉아있다.
오랜 세월 거친 풍우 속에 빛바래고 허름한 암자의 모습이 오히려 참선수행 도량으로서 이곳 형세에 더 조화롭게 어울려 보인다. 색이 바랜 양철 지붕도 올해 새로이 황금색으로 도색했다.
산중 오지에 번쩍거리는 황금색 지붕이 이채로워 보이고 암자 앞의 너른 잔디마당이 여유롭고 평화롭다.
조망 또한 멋지다. 앞쪽에는 명선북릉이 바라다보이고 동쪽으로 토끼봉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주능선이 고스란히 조망된다.
암자 옆 암벽 아래에는 묘향대 명물 석간수가 있다. 바위틈을 비집고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상당하다.
한 바가지 떠서 들이켜니 물맛이 깊고 청량하다.
험한 폭포수골을 힘들게 오른 후에 접하는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의 묘향대, 일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이런 곳이 길지가 아니면 어디이랴.
암자 옆 뜰에 수북이 쌓아 놓은 장작더미의 향이 코끝으로 스며드는데, 어느 향수보다도 더 향기롭고 구수하다.
이곳 묘향암에는 호림스님이 십수 년째 지키고 계시는데 쌓아 놓은 장작더미를 보니 스님도 지리산 산중의 혹독한 긴 겨울 날 채비를 이미 마쳤는가 보다.
오늘따라 속세로 출타하시는 스님, 스님도 여느 산꾼처럼 험한 길 내려가기 위해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있다.
탐방팀은 스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법당에 들러 예를 차린 후 앞뜰에서 한동안 여유를 가진다.
지리산에는 대(臺)라는 곳이 여러 곳 있다.
대표적인 곳을 일컬어 ‘지리 8대’라고 하거나 10대, 24대 등으로 부르고 있고, 한편으로 천왕 5대, 반야 5대, 혹은 7대 등으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천왕 5대에는 통상적으로 영신대, 향적대, 문창대, 소년대, 향운대 등을 꼽고, 반야 5대에는 이곳 묘향대를 비롯해 우번대, 문수대, 서산대, 무착대를 일컫는다.
묘향대는 반야봉 정상에서 묘시 방향에 위치해 묘향대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지리산의 대(臺)는 통상 전망이 아주 좋고 높은 언덕이나 바위 자락에 위치하는데 풍수지리상으로도 명당으로 꼽히는 곳들이다. 흘러간 역사 속에 각 대마다 나름의 사연들을 품고 있고 그곳에 들면 대부분 경관이 일품이다.
또한 좋은 기운이 흐르고 있어 탐방한 산객의 마음마저도 편안하고 여유롭게 만드는 곳이 지리산의 대(臺)이다.
함박골의 이끼폭포
뱀사골
▲지리산 함박골의 비경 이끼폭포
탐방팀은 한동안 묘향대에 머물며 그곳의 아늑한 분위기를 즐기다가 하산 채비를 한다.
묘향대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가량 소요된다.
지리산 비경 중 하나인 이끼폭포, 예전 같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뱀사골 본류와 합수되는 함박골 날머리 무명교에서 전열을 정비하고 쉬어간다.
뱀사골의 수려한 계곡미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
4.서산대(西山臺)
찾기가 좀 까다로운 곳에 있다.
피아골 산장 뒤 비탈길을 올라가다보면 바위길 있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5분만 가면 바위절벽이 보인다. 서산대이다.
돼지령 1425봉 에서 피아골산장쪽 능선에 있으며 산길도 끊어졌다가 이어졌다가 한다.( 헐린 집터와 가재도구들이 있다.)
피아골대피소 왼쪽 능선을 따라 서산대로 오르기 시작한다. 길은 희미하게나마 확실하게 나 있어 초입만 찾으면 문제가 없다.
급경사에 낙엽이 쌓여 미끄럽기까지 하다. 아름드리 참나무에는 겨우살이들이 기생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주능선이 바라보이고,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뻗어가는 불무장등능선이 유장하게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왕시루봉능선이 지척이다.
피아골대피소에서 30여분 오르니 서산대로 들어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초입에 붙은 노란 리본이 길안내를 해준다.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진 서산대>
왼쪽 산허리 길을 돌아 너덜을 지나니 10m 높이의 네모 길쭉한 기둥모양의 바위가 신전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병풍을 쳐놓은 듯하다.
그 앞으로 60평 정도의 평지를 이루었다. 양쪽으로 돌담도 있고, 축대도 쌓여 있어 암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오른쪽 바로 앞에 집채만 한 바위가 있고, 정면 10m 앞에 작은 암봉이 부처처럼 앉아 있다.
작은 암봉 뒤로 백운산과 주변의 첩첩한 산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문외한이 보아도 기가 막힌 명당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m 앞 작은 암봉 앞에는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 앉으면 피아골과 불무장등능선과 왕시루봉능선을 비롯한 지리산 여러 지능선과 광양 백운산과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자연스럽게 가슴에 안겨온다.
수많은 스님과 기도객들이 이 자리에 앉아 수도를 하였을 것이다.
지리산 10대 중 어느 곳 하나 범상치 않는 곳이 없지만 이곳 서산대의 기운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곳에 앉아 보니 ‘산이 곧 내’가 되고, ‘내가 곧 산’이 된다.
사람이 산과 같은 존재가 되니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산은 높은 게 아니라 깊은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5.무착대
피아골 직전마을에서 불무장등 능선으로 1.5km올르다 좌측으로 10분거리 희미한 길따라 걷다보면 누가 보더라도 명당터임을 알수 있다.
바위벽 아래 기도처에서 바라보는 왕시루봉 능선의 조망이 일품이다.
산행 기점은 피아골 초입에 위치한 구례군 토지면의 직전마을이다.
유난히 고운색의 단풍으로 널리 알려진 피아골, 이 골 역시 여타 지리산의 골과 마찬가지로 숱한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입구에는 화엄사와 더불어 지리산권 내에서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연곡사가 있고 주변에는 사라진 암자들도 많다.
탐방할 무착대도 그중 하나다.
역사 속의 연곡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에 맞섰고 참전한 승병들은 모두 장렬하게 산화했다.
또한 구한말에는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여순반란 사건 때에도 피아간 격전장이 되면서 그때마다 절은 잿더미로 변했다.
계곡 한가운데 자리한 집채만한 바위 용수암.
▲숱한 사연 간직한 피아골=
지금은 많이 쇠락했지만 높았던 기개만큼 아픈 역사를 지닌 연곡사 앞을 지나 피아골로 접어들며 산행을 시작한다.
직전마을에서 피아골 대피소까지는 4㎞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을 오른다.
예전에 피밭이 많아 피밭골로 불리다가 피아골이 되었고 그래서 마을이름도 직전(稷田)마을이다.
골짝에 논이 없어 밭에 기장 등을 많이 심었던 모양이다. 표고버섯도 많이 재배했는데 지금도 표고막 흔적이 남아 있다.
표고막터를 지나고 삼홍소(三紅沼)를 지난다.
산이 붉게 타오르고, 계곡 물이 붉게 물들며, 사람의 얼굴까지 붉게 변한다고 했던가.
전화(戰火)와 수해 등으로 노거수 거목들이 많이 사라지고 징담도 변해 선인들이 감탄했던 그 명소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을이면 선홍으로 불타는 피아골이다.
직전마을에서 1시간 40분을 걸어 피아골대피소에 도착한다.
대피소는 삼각주 모양으로 두 골이 합쳐지는 합수부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풍수적으로 명당자리라고 한다.
돼지령, 질매재 쪽에서 흘러드는 좌골과 삼도봉, 임걸령 쪽에서 흘러드는 우골이 대피소 바로 아래에서 합수된다.
본류는 우골이다. 주변은 산세가 험하고 온통 바위투성이인데 대피소 부근만 평평하고 흙이 있다.
1984년 대피소 건립 당시 땅속에서 몇 트럭분의 인골이 나왔다고 할 정도로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용수암골의 연폭.
▲용수암골과 종녀촌의 전설=
용수암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천천히 계곡을 거슬러 오르길 20여분, 우측에서 지류가 흘러든다. 용수암골 우골이다.
우거진 잡목 속에 폐허로 변한 무착대.
하지만 주변은 무상한 세월 속에 잡목이 우거져 알아보기조차 힘든 지경이다.
잡목을 뚫고 주변을 살펴본다. 옆에는 샘터 흔적도 있고 축대도 보인다.
오래전, 이곳에는 속세의 집착과 번뇌를 없애고 도를 구하는 암자가 있었던 곳인데, 접근조차 쉽지 않은 험지라 이어갈 후계를 잡지 못해 스러져 갔을까.
잠시 둘러보고 아래의 용바위로 향한다. 무착대에서 조금 내려서면 전망바위가 있고 그 아래 용바위가 있다.
용바위는 바위 형세가 용을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데, 바위에 올라서니 여기에도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피아골과 노고단, 왕시루봉 능선, 섬진강 건너 백운산까지 조망된다.
안타깝게도 뒤돌아본 무착대는 숲속에 묻혀 축대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리 10대 중의 하나로 해발 1170m에 위치한 무착대 조망바위.
용바위에서 잠시 파노라마 조망을 즐기다가 갈림길이 있는 안부로 되돌아 나온다.
갈림길에는 무착대 일주문 격인 돌탑이 있다.
암자는 사라지고 이 돌탑만 남은 것인가. 돌탑 앞의 우측 직진 길은 조망바위, 용바위 가는 길이고, 좌측은 피아골 하류, 표고막터 부근으로 내려서는 하산길이다.
탐방팀은 무착대와 용바위를 돌아보고 무착대 능선을 타고 하산한다.
경사는 급하지만 길이 의외로 뚜렷하고 어렵지 않다.
한 시간가량 걸어내려 삼홍소에서 표고막터로 이어지는 피아골 옛길에 이르고, 이내 피아골을 벗어나며 탐방산행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주변은 무상한 세월 속에 잡목이 우거져 알아보기조차 힘든 지경이다. 잡목을 뚫고 주변을 살펴본다. 옆에는 샘터 흔적도 있고 축대도 보인다. 오래전, 이곳에는 속세의 집착과 번뇌를 없애고 도를 구하는 암자가 있었던 곳인데, 접근조차 쉽지 않은 험지라 이어갈 후계를 잡지 못해 스러져 갔을까. 잠시 둘러보고 아래의 용바위로 향한다. 무착대에서 조금 내려서면 전망바위가 있고 그 아래 용바위가 있다. 용바위는 바위 형세가 용을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데, 바위에 올라서니 여기에도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피아골과 노고단, 왕시루봉 능선, 섬진강 건너 백운산까지 조망된다. 안타깝게도 뒤돌아본 무착대는 숲속에 묻혀 축대조차 보이지 않는다.
6.향운대(香雲臺)
구름향기란 뜻이니 즉 부처님의 말씀을 뜻한다.
광점동 어름터 독가에서 계곡을 건너 우측 능선을 붙어 2시간 가량 올라가야 한다.
주능선에서는 국골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말봉을 올라서게 되고 이곳에서 능선상으로 두 번째 보조 자일을 잡고 내려서는 곳을 지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20여분 나아가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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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골사거리에서 두류능에 붙어 말봉을 넘어 가다보면 우측으로 열려있는 길이 향운대 들머리다.
조금 내려가다가 두류능 사면길을 진행하다 내려가면 좌측에 어마어마한 바위가 나타나면 그 아래 평지에 절터 흔적이 있다.
지리산 향운대에서 바라본 진주 독바위
향운대 상부에서 내려오면 올라오는 기준으로 직진하면 두류능선의 1.479봉과 1.407봉의 중간지점으로 오를수있고
향운대 상층부를 오른편에 끼고 내리막을 내려가는 산죽무성한 길을 3~4분 가면 향운대의 석굴움암터에 도착됩니다.
석굴움막터를 돌아가서 향운대에 도착 합니다.
어름터에서 2시간 09분만에 향운대에 도착하여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있는 향운대를 보며 오래전에 찾았을때는 수도자의 기거흔적이 뚜렸하였는데 언제인가부터 수도자의 흔적은 끊긴 느낌이 들며 가끔씩 찾아드는 등산객들의 흔적만 눈앞에 널려있는 모습입니다.
전체를 담기에는 똑닥이로는 역부족이라 그래도 최대한 담아보고서~~~
7.문창대
문창대 주변 지형도
천왕봉 오름길과 내림길에 볼수 있는 세존봉과 우측의 문창대
예전에는 법계사 남쪽 세존봉에 있는 암봉으로 알고 있어나 1979년 진주 산악회 학술조사반에서 법계사 서쪽 헬기장옆으로 재정립하였다.
근거로 바위에 "고운 최선생 장리지소",즉 고운 최치원 선생의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 두었던 장소라는 바위암각이 발견되었기 때문 이다.
지리산에는 오랜 옛적부터 수많은 선인들이 오르내렸다.
500여 년 전에는 조선의 지성 김종직과 조식, 이륙 등이 올랐고 800여 년 전 고려조에는 파한집을 쓴 이인로가 청학동을 찾아 지리산에 들었다.
혼탁한 세상에서 길을 잃은 선인들은 피안의 세계인 지리산에 들어 자신의 나갈 길을 물었다.
이들보다 훨씬 앞선 1100여 년 전, 이미 지리산에 들어 청학동의 전설을 만든 선인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신라 최고의 지성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다.
고운 최치원이 명상과 수양을 했다는 지리산 문창대.
▲지리산과 최치원
서기 857년에 태어난 최치원은 12세 어린 나이에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선생은 유학 7년 만인 18세 때 당나라 과거시험인 빈공과에 급제해 관료생활을 하다가 ‘황소의 난’ 당시에 토벌군 종사관으로 참여해 ‘토황소격문’을 지어 그의 문명(文名)을 천하에 떨치기도 했다. 17년간 당나라에 머문 선생은 885년 신라로 귀국해 관직을 맡지만 당시 골품제의 부조리와 혼탁한 현실 정치에 염증를 느끼고 함양태수 등 변방을 돌다가 40여 세 무렵, 젊은 나이에 관료생활을 접고 은퇴한다. 선생은 함양태수 시절은 물론, 은퇴 후에도 지리산에 자주 들었고 한동안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쌍계사와 화개동천, 불일폭포 등에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고, 피리를 불고 거닐었다는 고운동, 활을 쏘며 심신을 닦았다는 문창대 등 지리산 자락에는 선생과 얽힌 많은 얘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특히 쌍계사의 진감선사 비문은 선생의 친필을 새긴 것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마지막 여생을 가야산 해인사에서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후세의 많은 사람들은 지리산중의 이상향을 찾아내어 그곳에서 신선이 되었다고 믿었다. 실제 300여 년 뒤 고려 때의 이인로는 무신정권으로 혼란한 정국을 피해 최치원 선생이 신선이 돼 살고 있을 이상향 청학동을 찾아서 지리산 자락을 헤매기도 했다. 그래서 지리산 청학동의 전설은 최치원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탐방팀은 최치원의 전설이 서린 법계사와 세존봉 자락에 위치한 문창대를 탐방하기로 하고 중산리를 출발해 법계사로 향한다. 이번 탐방은 최치원 선생이 자주 찾았던 법계사를 돌아보고 심신수양 장소였던 문창대를 거쳐 세존봉 능선을 타고 내려 다시 중산리로 되돌아오는 일정이다.
언제나 상봉을 찾는 등산객으로 붐비는 중산리 주차장,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지리산의 만추를 즐기려는 산행객들이 분주히 오간다. 탐방팀은 7시를 조금 넘긴 시각, 법계사로 향해 오르며 일정을 시작한다. 지리산의 수문장 칼바위를 지나고 망바위에 올라서니 한기 머금은 초겨울 바람이 세차게 분다. 성큼 다가선 겨울을 느끼게 하는 송곳바람이다. 망바위 옆의 조망바위에 올라 만추의 깊은골과 천왕남릉, 일출봉 능선을 조망하고 로타리 대피소를 지나, 산행시간 2시간 만에 법계사 경내로 들어선다.
단풍 숲속의 법계사.
▲왜인들 만행에 3번이나 불탄 법계사
법계사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15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께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인도에서 모셔와 봉안한 적멸보궁 도량이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 자락의 상징성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450m)에 위치한 절로 의미가 크고,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쇠한다는 전설로 인해 왜인들에 의해 절이 여러 번 불타 없어지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일찍이 고려 말에는 남원 인월 황산전투에서 이성계에 대패한 왜적들이 지리산으로 도망쳐와 천왕봉의 성모상을 훼손하고 법계사를 불태우는 악행을 저지른 바 있고, 임진왜란과 한일합병 때에도 왜인들에 의해 또다시 불태워졌다. 그 이후 6·25전쟁 때 다시 한 번 소실돼 방치되다가 80년대 들어서며 조금씩 복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전시물, 포탄처럼 생긴 쇠말뚝이다. 이 쇠말뚝은 일본인들 만행의 산물로, 이들이 지리산 천왕봉의 정기를 끊기 위해 법계사 뒤쪽 혈 자리에 박은 쇠말뚝인데, 10년 전 우연히 발견하고 뽑아 여기 전시해 놓은 것이다. 그들은 우리 민족정기를 훼손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 놓았는데 지리산 어디엔가 중요한 혈 자리에 더 박혀 있을지도 모른 일이다.
법계사와 세존봉.
법계사 경내에 단풍이 아주 곱게 물들었다. 고요한 산사와 단풍이 어울리니 더욱 호젓하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경내를 돌아본다. 유독 눈길을 끄는 법계사 3층 석탑, 여러 차례 화마로 모든 것이 불타 없어졌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 석탑은 보물 제473호로 지정되어 있다. 3.6m 높이로 크지는 않지만 거대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사용한 모습이 특이하다.
석탑과 바위, 그리고 이와 어울린 가람배치, 정원에 활짝 피어난 구절초와 오색단풍 등 만추지절과 너무 잘 어울리는 법계사 분위기다. 천왕봉을 오르는 산객과 참배객들이 산사의 가을 정취에 도취돼 바쁜 일정도 다 잊고 경내를 조용히 거니는 모습이 더러 보인다. 탐방팀은 작년에 설치한 종각에 들러 무게 4t의 범종도 울려본다. 청아한 종소리, 공명이 오래도록 이어진다. 앞으로는 더 이상 화마를 입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긴 울림처럼 들린다. 탐방팀은 법계사 종소리를 뒤로하고 다음 탐방지인 남쪽의 세존봉과 문창대를 조망하며 산문을 나선다.
문창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최치원의 활터, 상서로운 기운 문창대
로타리 대피소 앞의 헬기장으로 되돌아 나온 탐방팀은 세존봉 능선으로 접어든다. 능선 초입에서 뒤돌아본 법계사, 단풍 속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고 그 뒤로 파란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상봉은 오늘따라 더 멋져 보인다. 헬기장에서 약간 거친 능선길을 따라 20분가량 이어가면 세존봉 자락의 문창대에 이른다.
최치원의 전설이 서린 문창대, 너른 바위암반이 있고, 그 앞쪽 아래에는 기단 모양 암반 위에 갈라진 입석이 서로 등을 기대어 하늘로 향해 버티고 선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조망 또한 기막히게 좋으니 선생이 이곳을 명상과 수양장소로 택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상봉에서 법계사까지 천왕봉 남사면이 오롯이 조망되고 서쪽의 거림골 건너편으로는 천왕남릉과 곡점능선, 남부능선이 바라다보인다. 남쪽으로는 황금능선의 끝자락 구곡산과 주산, 중산리 일대가 조망된다.
▲문창대를 떠난 화살, 향적대에 꽂히다
최치원은 함양 태수로 있을 때 법계사에 자주 왕래하면서 이곳 문창대에 올라 서쪽 건너편의 향적대 부근 바위에 과녁을 만들어 놓고 활쏘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곳을 시궁대(矢弓臺), 또는 고운대(孤雲臺)라고 불리다가 훗날 최치원의 시호인 문창후(文昌侯)를 따서 문창대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탐방팀은 양지바른 암반에 둘러앉아 1100여 년 전 이곳에서 활을 쏘고 명상을 했을 선생을 떠올려 보고 지리산의 장엄한 조망에 한동안 빠져들었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바로 위의 세존봉으로 올라선다. 세존봉 정상은 볼품없는 작은 봉우리에 불과하지만 조망은 볼만하다. 상봉과 중봉, 써리봉을 비롯해 황금능선, 하산할 남쪽방향의 세존봉 능선도 잘 조망된다. 세존봉 능선은 법계사 앞 헬기장에서 시작해 중산리 등산 초입 부근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일컫는다. 잠시 세존봉에 머물며 지리산의 수많은 골과 능선을 가늠하다가 남쪽으로 능선을 타고 중산리로 향해 내려선다. 하산길 주변 곳곳에 상봉 조망바위가 있고 거칠다가도 부드러운 등로는 산행 재미를 더해준다. 탐방팀은 만추의 세존봉 능선을 2시간가량 걸어내려 중산리 산행기점 700m 전방에서 주등로에 합류하며 6시간 30분간의 법계사와 문창대 탐방일정을 마무리한다.
법계사 남쪽2km지점 세존봉에 있는 문창대....
8.영신대(靈神臺)
영신봉 남서쪽 아래 영신사 터이며 대성골 발원지이다.
대성골에는 예로부터 도를 닦거나 푸닥거리하는 곳이 많았다.
도를 깨우치겠다며 자기 나름대로 은밀하게 수도하는 사람들이 산세가 절묘한 명당자리를 찾아내 구도생활을 한다.
이런 구도자들이 최고의 기도처라고 즐겨 찾은 명당터이다.
영신대(靈神臺)는 지리산에서 기도발이 가장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탐방코스는 의신을 기점으로 대성골과 큰세개골을 통해 영신대에 올라 주변을 탐방하고, 하산은 창불대를 거쳐 남부능선을 걷다가 대성골로 원점 회귀하는 일정이다. 이른 아침 탐방팀은 섬진강변 도로를 달려 화개장터를 지나 긴 화개골을 거슬러 올라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빗점골과 더불어 화개천의 양대 지류인 대성골로 접어들어 대성동으로 향한다. 대성골의 청아한 물소리와 짙은 숲길은 흐르는 땀 속에서도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한 시간가량 걸어 의신에서 2.5km 거리에 위치한 대성동 주막에 도착하고, 산객의 쉼터인 주막집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등로를 이어간다. 대성골에는 좌우에서 흘러드는 지계곡이 여럿이다. 우측 남부능선 사면에서 수곡골과 세양골이 흘러들고 좌측에는 덕평봉, 칠선봉 자락에서 작은세개골과 영신봉 자락에서 큰세개골이 흘러든다. 작은세개골 입구를 지나고 대성동 주막에서 한 시간여, 큰세개골 입구에 도착한다.
영신봉 남사면 암벽 아래 해발 1500m 고지대에 자리한 영신대.
▲큰세개골과 지리산 최대의 대성폭포 = 큰세개골 다리를 건너 잠시 남부능선 방향의 등로를 따르다가 좌측으로 큰세개골로 접어들어 계곡을 따라 오른다. 초입부터 멋진 와폭이 탐방팀을 반긴다. 최근 여름 가뭄으로 계곡수량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음양수샘골, 창불대골, 나바론골 등의 지류를 모아 청류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는 대성골 본류인 큰세개골이다. 창불대골 합수부를 지나고 협곡지대를 통과해 큰세개골의 터줏대감 대성폭포에 이른다. 큰세개골 초입에서 1시간 40여분이 소요됐다. 대성폭은 4단폭으로 거대한 암사면이 통째로 폭포를 이루고 있다. 120m에 이르는 대폭으로 지리산 중에서 가장 큰 폭포이다.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지만 수량이 적어 아쉽다. 그래도 대폭의 웅장한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제몫을 다하고 있다. 폭포 하단을 돌아보고 좌측으로 우회해 중단부, 상단부를 차례로 돌아본다. 그리고 폭포상단, 수려한 통암반이 단박에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미끈한 암반을 타고 하얀 포말의 폭포수가 쏟아지고, 청류는 작은 소와 여울을 만들었다가 다시 거대한 암벽을 타고 이단, 삼단, 사단으로 쏟아져 내린다. 최상단의 미폭 앞에는 평평하고 널찍한 암반이 형성되어 있다. 정말 멋진 지형지세, 자연히 산객을 자석으로 끌 듯 이끌어와 주저앉게 만든다. 잠시 쉬었다가 길을 재촉하지만 정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곳이다.
대성폭 상단에서 10여분 계곡을 오르니 우측에서 지계곡이 합수된다. 일명 나바론골이다. 요새같이 가파르고 험한 골이라 나바론이란 이름이 붙었다. 나바론골 합수부를 지나 30여분 오르면 영신대 바로 아래에서 골이 좌우로 분기되는데 하늘로 향해 꼿꼿이 선 채로 탐방팀을 맞이한다. 탐방팀은 우골을 택해 오른다. 일명 천국의 계단이 있는 골이다. 초입부터 직폭이 가로막는다. 천국의 계단으로 들기 위해서는 초입의 수문장 격인 직폭을 직등해야 한다. 직폭을 올라 잠시 진행하면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는 협곡폭포가 나타난다. 이름에 걸맞게 영신대 직전, 해발 1450m 부근에 형성된 폭포로 마치 하늘을 걸어 오르듯 한발 한발 협곡 바위틈에 낀 돌을 계단처럼 밟고 오른다. 폭포 위에 올라서니 조망도 터진다. 천국의 조망이다. 황장산을 넘어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불무장등, 그 뒤로는 왕시루봉 능선이 조망된다. 조망을 뒤로하고 잠시 가파른 협곡을 이어가면 점차 물길은 기력을 잃고, 하늘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며, 곧 계곡의 끝머리에 이른다. 그리고 그 끝에 영신대가 있다. 큰세개골에 진입한 지 3시간 30분 만에 영신대에 도착한다. 한때 도인과 무속인들에게 지리산 최고의 인기명소, 명당자리로 각광받아 붐비던 영신대였는데 이제는 정적에 싸여 고요한 모습으로 탐방팀을 맞이한다.
창불대
▲천국의 계단 위 영험한 기도터 영신대 = 영신대(靈神臺)는 영신봉(1651m) 남사면 암벽 아래 해발 1500m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영신봉의 거대한 암벽이 뒤를 받치고 남쪽으로는 큰세개골과 대성골이 아래를 받치는 형상이다. 남해에서 섬진강을 거쳐 화개동천을 거슬러 오른 물의 기운은 대성골로 꺾어들고, 다시 지리산 구중심처 큰세개골의 대성폭과 천국의 계단을 거침없이 돌파해 종착역 영신대에 맥을 이으며 그 숨을 다한다. 영신봉(靈神峰)의 신령스런 기운과 대성골, 큰세개골로 이어진 남해의 정기가 이곳에서 어울리며 조화를 이뤘기 때문일까. 영신대는 지리산에서 가장 기가 세고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주변에는 기도터 흔적이 많다. 인근 석문 안에는 우천 허만수의 기도터를 비롯한 제단과 수행자들의 좌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동안 뭇 사연을 가진 수많은 수행자들이 이곳을 스쳐갔을 것이다.
우천 허만수의 기도터
탐방팀은 잠시 제단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올리고 잡초 무성한 영신대를 둘러본다. 병풍 같은 바위자락에 남향으로 터를 잡고, 앞에는 큰 조망, 옆에는 청류가 흐르니 누가 봐도 명당이다. 앞의 조망바위에도 올라본다. 광활한 초록바다의 화려한 경관이 펼쳐진다. 힘들게 올라온 큰세개골을 비롯한 작은세개골, 칠선남릉, 범왕능선, 불무장등, 왕시루봉 능선 등, 골과 능이 넘실대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장쾌한 조망이다. 지형지세는 지리 10대 중 당연 최고라 부를 만하다.
오랜 옛날 이곳 영신대에는 암자가 하나 있었다. 그 암자는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등장하는 역사 속의 영신사일 수도 있다. 540여 년 전 조선의 유학자 김종직은 지리산에 올라 천왕봉을 거쳐 세석으로 이동, 영신사에서 산행 마지막 밤을 보냈는데, 그 영신사 위치를 두고 설이 분분하다. 이곳 영신대라는 설과 세석대피소 서쪽방향 약 200m, 헬기장 아래의 사면에 위치했다는 설이 있다. 두 곳은 직선거리로 600여m로 인접해 있는데, 양쪽 다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아무튼 이곳 영신대는 암자가 없어진 이후에도 근세까지 무속인들의 성지였다.
자살바위
▲이상향 청학동 조망 암봉 창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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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팀은 영신대와 우천 허만수의 기도터를 돌아보고 남부능선으로 향한다.
남부능선에 올라 남쪽으로 10여분 걸어내려 남부능선상의 명소, 아찔한 절벽 위의 조망 암봉, 창불대에 도착한다.
깎아지른 아득한 벼랑이 오금 저리게 하고 망망대해 초록바다(세석평전)는 끝없이 펼쳐진다.
창불대 위에 선 산객 마음은 푸른 창파에 흔들리며 떠도는 조각배나 진배없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둘러보자. 발아래는 큰세개골 방향으로 무저갱 같은 협곡이 펼쳐져 있고 협곡 건너편에는 병풍바위와 궁지에 몰린 여자 빨치산들이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자살바위가 벼랑 끝에 섰다.
대성폭포
맞은편으로 우천 허만수의 창불대 기도터도 보인다.
그리고 그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푸른 초원 같은 광활한 세석평전이 눈앞에 가득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푸른 물결로 일렁이는 세석평전을 넘어 촛대봉, 연하봉, 일출봉, 제석봉, 상봉, 하봉이 차례로 조망되고 서쪽으로 칠선봉을 지나 반야봉, 노고단이 아스라이 바라보인다.
영신봉에서 시작된 낙남정맥과 남부능선은 삼신봉을 향해 남쪽으로 내달리고 있다.
이 얼마나 장쾌한 조망인가. 이곳 영신봉 자락, 세석평전 일대가 선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지리산 이상향 청학동이 아닐는지, 탐방팀은 창불대의 일품경관을 뒤로하고 음양수샘골을 걸어내려 대성골을 벗어나 의신에 도착한다.
9.향적대
장터목대피소 아래 산희샘에서 좌측으로 15분 들어간 곳에있다.
향기가 쌓여있다는 뜻이니 그 산의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이다.
향적대는 제석봉 아래에 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 오르는 길 우측 경사면으로 비스듬히 오르면 옛 기왓장이 있는 빈 절터가 나오고 그곳을 더 지나면 향적대가 나온다.
80년대 초까지 한 겨울에도 솟아 흐르는 샘이 있었고, 옆에는 구들이 놓인 토굴이 있었으며 기도하는 수도승이 있었다.
산장이 없었던 옛 시절에는 천왕봉을 오르는 길목에 스님들이 기거하는 법계사와 향적사가 전진기지 역할을 하였음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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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금강대
뱀사골에 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장소는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
아니면 제석봉 아래 암봉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지라산에는 옛부터 10군데의 수도처가 있다고 한다.
지리산에서 10대의 공통점은 모두 뒤에는 암벽이 있고 그 아래에는 석간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10대에는 수도하는 분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묘향대, 문수대, 우번대에는 현재 수도하는 곳이고 무착대, 서산대, 향운대 현재 암자가 철거되어 머무는 분이 안계시다.
지리산 10대는 주위 풍광이 과연 수도처답게 기를 느낄수 있고 신령스러운 움이 감돈다는 사실이다.
지리산을 품었다고 자만하시는 산님들을 종종 접할때 사계절 어느때도 늘 새롭고 경이로움을 주는 지리산, 가볼수록 아직 더 갈 곳이 더 많아지는 지리산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가장 큰것은 풍요로움과 더불어 겸허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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