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 天下/白頭大幹

[白頭大幹 大長程 第24區間 / 雪嶽山] 地名

초암 정만순 2018. 1. 24. 19:25




[白頭大幹 大長程 第24區間 / 雪嶽山] 地名



신성함의 뜻인 '살뫼'로도 불렸던 설악
살은 술, 수리, 수레, 소리 등으로도 파생

설악산 높이가 만 길이 되어
봉래산과 영주까지 그 기운 이어 있네
천 봉우리 눈빛은 바닷빛에 반사되고
저 멀리 옥경에 상제들 모였구나
동봉 노인이 거기에 머물러
거룩한 그 기상 하늘까지 뻗쳤다…

※동봉 노인은 김시습의 별호
雪嶽之山高萬丈 / 懸空積氣連蓬瀛 / 千峰映雪海日晴 / ?群帝集玉京 / 東峯老人住其間 / 高標歷落干靑冥…
-허목(許穆)의 미수기언(眉?記言) ‘강릉 도중에서 설악산 바라보며 감회를 쓰다’

▲ 설악산 원경. 우리나라 산들은 대부분 겨울에는 눈을 이고 있기 때문에 설악산만 눈을 이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설 자가 들어간 지명은 대개 수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러 이름으로 나오는 설악산 이름


설악산은 삼국사기에 설화산(雪華山)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불교에서는 설산(雪山), 또는 설봉산(雪峰山)이라고 불러왔다. 지금은 이 산을 대개 설악산이라고 하지만, 옛 지도들에선 대부분 뒤에 산 자가 빠진 설악(雪岳)이라고 표기해 놓고 있다. 설악산에 대한 이름 유래는 옛 문헌에 모두 눈(雪)과 관련지어 설명해 놓고 있다.

‘한가위부터 내리기 시작해 쌓인 눈이 하지에 이르러 비로소 녹으므로 설악(雪岳)이라 한다.’(동국여지승람)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쌓여 바위가 눈같이 희다고 하여 설악이라고 이름지었다.’(증보문헌비고)

▲ 한계령. 한계산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한계산(현 서북릉으로 추정)은 설악산과 다른 산으로 보았다.
설악산은 또 한계산(寒溪山)이라고도 불렸다고 하기도 하나, 엄밀히 말해서 설악산과 한계산은 같은 산이 아니었다. 다산시문집의 산수심원기(汕水尋源記)에 보면 ‘소양수의 발원지는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강릉부 오대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기린(基麟)의 옛 고을을 지나니 춘천부 동쪽 140리에 있다. 이른바 기린수(基麟水)요, 또 하나는 인제현 한계산(寒溪山)에서 나와(곧 설악산의 남쪽 산맥) 남쪽으로 흘러 서화(瑞和)의 옛 고을을 지나니 이른바 서화수(瑞和水)이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보아서도 두 이름이 같은 산을 가리키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설악산은 매월당 김시습(金時習·1435-1493)과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한데, 그에 관한 기록에서도 관련 사항을 알 수 있다.

-문종 때에 와서는 시습이 점차 장성하여, 벌써 널리 통달하고 남달리 유능하여 명예가 더욱 높았다. 노릉(魯陵) 단종(端宗))이 손위(遜位)하자, 시습은 책을 다 불사르고 집을 떠나 절로 도피하여 속세에 발길을 끊었다. 양주(楊州)의 수락산(水落山), 수춘(壽春=춘천)의 사탄향(史呑鄕), 동햇가의 설악산(雪嶽山), 한계산(寒溪山), 월성(月城)의 금오산(金鰲山)이 모두 시습이 머물던 곳이다. 스스로 호를 췌세옹(贅世翁)이라 하였고,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峯)이라고도 불렀다.(청사열전·淸士列傳)

연려실기술의 지리전고(地理典故)에서는 백두대간의 지맥을 따라 내려가면서 여러 산들과 고개들을 잘 나열해 놓았는데, 여기서도 한계산이 설악 바로 남쪽에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태백산으로부터 서쪽으로 내려가서 백계산(白階山)이 되고, 남쪽으로 부전령(赴戰嶺)이 되며, 서남쪽은 초황령(草黃嶺), 설한령(雪寒嶺)이 되며, 서쪽으로 뻗친 한 산맥은 평안도가 된다. 원 산맥 줄기는 남쪽으로 내려가서 상검산(上劍山), 하검산(下劍山), 오봉산(五峯山), 마유령(馬踰嶺), 두미령(頭尾嶺)이 되며, 또 동으로 꺾어졌다가 남쪽으로 내려가서 거모령(巨毛嶺), 쌍가령(雙加嶺), 거차리령(巨次里嶺)이 되고, 모흘(矛屹), 마유령(馬踰嶺), 노인치(老人峙)-이 세 고개느느 모두 안변, 영풍에 있음-가 되고 박달치(朴達峙)가 되며, 동쪽으로 꺾어져 세 지방의 분수령이 되는데, 동쪽에서 일어나 철령이 되고, 동북쪽으로는 황룡산(黃龍山)이 되고, 남쪽으로 뻗쳐서 축곶령(杻串嶺), 추지령(楸池嶺), 금강산, 회전령(檜田嶺), 진부령, 흘리령(屹里嶺), 석파령(石波嶺), 설악(雪岳), 한계산(寒溪山)이 되고, 오색령(五色嶺), 연수파(連水波), 오대산, 대관령, 두타산, 백복령(百復嶺)이 되었으며, 서쪽으로 꺾어져 태백산이 되고, 서남쪽으로는 우치(牛峙), 마아령(馬兒嶺), 소백산, 죽령이 되고, 또 불쑥 솟아서 월악(月岳), 주흘산(主屹山), 조령, 의양산(義陽山), 청화산(淸華山), 속리산, 화령(火嶺), 추풍령이 되고, 황악(黃嶽), 무풍령(舞?嶺), 대덕산, 덕유산, 육십치(六十峙), 본월치(本月峙), 팔량치(八良峙), 지리산이 된다.

지금의 설악산 남쪽 한계령(寒溪嶺)은 한계산 이름에 바탕을 둔 것이다.

설(雪) 지명은 전국에 무척 많아

설악산 외에도 전국에는 설(雪) 자가 들어간 산이 많다. 설성산(雪成山), 설봉산(雪峰山), 설한령(雪寒嶺), 설운령(雪雲嶺), 설마치(雪馬峙), 설령(雪嶺), 설암산(雪暗山), 설우산(雪雨山), 설주봉(雪柱峰) 등이 그것,

그러나, 이들 산을 서로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설’을 단순히 눈(雪)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개의 산은 겨울이면 그 머리에 거의 계속 눈을 이고 있으며, 그 눈은 평지의 눈과는 달리 더 오래 머물러 있다. 따라서, 눈 덮인 산이라는 뜻으로 설(雪) 자를 붙인다면 우리나라의 더 많은 산들이 이렇게 이름 붙여졌어야 하고, 그것도 추운 지방인 북쪽에 많이 분포되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즉, 남쪽에서 북쪽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그것도 큰 산보다는 작은 산들에 설뫼, 설봉, 설산 등 설 지명의 산이 더 많은 것도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언어나 지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러한 지명들에서 설을 ‘살’의 음역(音譯)으로 많이 보고 있다. ‘살’은 우리 조상들이 오래 전부터 높음, 신성함 등의 뜻으로 이해해 왔던 말이었다. 노산 이은상 님은 설악산을 원래 ‘살뫼’라고 했을 것이라면서 금강산의 이름을 ‘서리뫼(霜嶽)’라 하는 것과 통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이름풀이에서 ‘설’이 이름에 들어가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연상하기가 아주 쉽다. 그래서, 그러한 지명들이 대개 눈과 관련한 이야기가 붙어 다닌다. 충북 단양군 단양읍 장희리에는 설마동(雪馬洞)이라 하는 바위절벽이 있는데, 역시 겨울이면 바위 위에 쌓인 흰 눈과 우거진 소나무 위에 덮인 눈이 조화되어 마치 준마(駿馬)가 달리는 모습과 같아 설마(雪馬)라 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이름은 작은 뫼의 뜻인 ‘솔마’에서 나온 이름이 아닐까 한다.

연철 현상에 의한 지명들

지명학자들은 설(雪)뿐 아니라 한자의 술(述), 주(酒), 살(乷) 등의 글자가 취해진 지명들을 모두 아울러살 무리의 지명으로 보고 있다. 수리(鷲), 수레(車)도 마찬가지다. 전국에는살 무리의 땅이름이 무척 많다. ?은 연철되어 ‘수리’로도 되었는데, 땅이름 중에는 이처럼 연철현상에 의한 것이 무척 많다.

-강(邊)→가사, 가스, 가지, 가재, 가자
-갈→가라, 가리, 가래
-곳, 곶(所-串)→고사, 고소, 고시, 고조, 고지
-감(神-大-黑)→가마, 고마, 고매, 고모, 고무, 고미, 구마, 구매, 거무
-날(下動)→나리, 나래
-둘, 돌(周-回)→두리, 두라, 두로, 두루, 두르, 디리 > 지리, 도라, 도리, 도래, 도로
-담(圓)→두미, 두마, 두무, 두모, 도마, 더미
-말(宗-山-頭)→마라, 마리, 모라, 모리
-맛, 맏(南)→마사, 마도
-빗(光)→비사, 비자
-발(原-國)→부리, 부로, 부래, 보로, 보리
-엄(母-大)→아미, 아무
-알→아리, 아라, 어리, 어라, 어래, 어로, 오리, 오로, 우리, 우라, 아루

갈이 가리로, 알이 아리로, 달이 두리로 지명에 흔히 나타나듯이 살은 사리, 사라, 수리로 많이 나타난다. 수리는 또 수레로도 음이 바뀌면서 수레너미(車踰)와 같은 파생지명도 만들어졌다. 수레너미는 차유(車踰) 외에 차현(車峴), 차령(車嶺) 등의 한자 이름으로도 되어 양주군 효촌리, 영동군 상도대리, 청원군 외천리, 예산군 차동리 등 여러 곳에 있다.



살무리의 지명들

살미라는 이름도 역시 같은 계열 지명인데, 이 이름은 한자로 미산(米山), 활산(活山), 전산(箭山), 거산(居山), 실산(失山) 등의 한자 지명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제천시 금성면의 살미는 살을 삶(生)과 연관지어 활(活) 자를 취해 활산리(活山里)라는 한자 지명으로 만들었다. 시흥시 미산동(米山洞)은 살미의 살을 쌀(米)로 보고 취해진 지명이다. 이곳에 있는 작은 산이 미산(米山)인데, 주민들 이야기로는 전에 이곳에 창고가 있어서 쌀을 산같이 높이 쌓아 올렸다고 해서 쌀미(쌀뫼)였다고 하나 믿기 어렵다. 이곳은 시흥시가 되기 전엔 소래(蘇萊邑) 지역이었는데, 소래 역시살 무리의 지명이 아닌가 한다.

살미는 또 전산(箭山), 시산(矢山)으로 되기도 하는데, 이는 살을 화살의 살로 보았기 때문이다. 거산(居山)이 되기도 한 것은 활산(活山)의 경우와 같다. 충주시(전에 중원군) 살미면(乷味面)은 달내(達川)의 지류인 상모천(上芼川)의 수리를 얻어서 벼농사가 성하고 쌀가마가 창터(倉垈)에 산처럼 쌓였기 때문에 쌀뫼라 했다고 하나, 역시 꾸며낸 이야기로 보인다.

강원도 이천군(伊川郡)과 황해도 신계군 사이에 있는 설화산(雪花山·581m)은 한자 그대로 이름을 풀면 눈꽃뫼가 되지만, 이 이름은 살고지의 음의역(音意譯)이다. 설은 살의 취음이고, 화(花)는 곶의 연철인 고지가 꽃의 옛말인 고지(곶)와 같기 때문이다. 서울 성동구 뚝섬에도 살고지가 있다. 한자로는 전관평(箭串坪)이라 하면서 화살과 관계되는 이태조와 태종 관계의 그럴 듯한 일화가 나와 있지만, 역시살 무리의 지명으로, 불쑥 튀어나간 곳의 뜻인 살곶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인다.

충북 제천의 청풍(淸風)은 이름만 들어도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데, 이곳의 삼국시대 지명은 사열이(沙熱伊)로 신라 경덕왕 때 청풍(淸風)으로 바꾼 것이다. 원래 사널이의 이두식 표기가 사열이인데, 개칭할 때 사널을 서늘하다의 서늘로 보고 청풍으로 바뀐, 아주 재미있는 예가 되었다. 그러나, 사널은 원래 시나르(시느리)로, 이 말은 새내(新川·間川)의 뜻으로 보인다. 사열을살 무리의 지명으로 볼 수 없는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 내장산 서래봉(써레봉). 서래(西來)와 써레는 수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산이 사라오름이다. 제주 12경 중 하나인 사라봉 낙조로 유명한 곳인데, 여기서의 사라도살 무리의 지명으로 보고 있다. 사라봉과 비슷한 이름으로, 내장산 근처의 서래봉(西來峰)이 있다. 써레를 달아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달마조사(達摩祖師)가 양(梁)나라로부터 이곳에 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역시살 무리의 지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경주부에도 사리(沙里)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옛이름이 활리(活里)였다는 것으로 보아 역시 살과 관련 있음을 알 수 있다.

송산(松山)이라는 지명이 전국에 많이 깔려 있다. 대개 솔(松)과 관계지어진 것이 많지만, 꼭대기의 뜻인 수리, 술이 솔과 음을 닮아 솔뫼로 되었다가 바뀐 것도 많다. 술뫼는 한자로 술산(戌山)이나 주성(酒城)이 되기도 하였다. 대동여지도에 나오는 강원도 이천의 소리산(所伊山), 황해도 평산의 소라산(所羅山), 경기도 가평의 소의산(所衣山), 함경도 경원의 솔하천 등도살 무리의 지명으로 보인다.

청도군에 편입된 삼국시대의 한 지명인 솔이산현(率伊山縣)과 역시 당시의 지명으로 충북 옥천군에 편입된 소리산현(所利山縣)은 수리뫼로 유추되고 있다. 술천(述川)도 여주와 광주의 일부로 들어간 삼국시대의 한 지명이다. 얼핏 들으면 냇물이 솟는다는 뜻으로 들리는 솟내로 유추되는데, 한자로 술(述)이 취해진 것을 보아 살내의 음과 뜻을 따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북동쪽에 수락산(水落山)은 온 산이 모랫돌로 되어 있어 수목은 적으나 옥류동(玉流洞,) 금류동(金流洞,) 은선동(隱仙洞) 세 폭포를 이루어 수락(水落)이라 했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술앗의 취음인 듯하다. 앗은 장소를 뜻하는 옛말로 부엌(불앗>부앗>부엌), 녘(동녘, 서녘 등), 바깥(밖앗>바깟>바깥), 뜨락(뜰앗>뜨랏>뜨락) 등의 말이 이에 연유한다.

수리는 원래 꼭대기나 으뜸의 뜻

수리봉(守理峰·단양·1,022m), 수리산(修理山·안양·474m), 수리치(樹裏峙·승주) 등 수리가 들어간 산이름이 많다. 지금의 경기 파주시로 들어간 서원군(瑞原郡)의 고구려 때 이름은 수리홀성(述爾忽城)으로 수릿골재의 옮김으로 보인다. 수리재는 정선 남면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곳에 있다. 수리는 술(살)에 뿌리를 둔 말이어서 한자로는 대개 술(述) 자가 취해졌다. 삼국시대의 지명에 나오는 관술(管述), 우술(雨述), 아술(牙述), 황술(黃述) 등이 그 예다. 이들 지명은 칸수리, 볓수리, 겇수리, 느르수리 등으로 유추되는데, 지금의 강원도 북부 회양, 대전시 회덕, 아산, 영암 등이다.

수리의 음을 거의 그대로 딴 예에는 각각 지금의 인천, 파주에 속한 고구려 때의 지명인 수니홀(首爾忽)이 있다. 서술산(西述山), 술모산(述母山) 등도 수리뫼다. 수리는 꼭대기의 뜻을 지니는 말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말에도 정수리라는 말이 남아 있다.

그러나, 수리를 새 무리의 수리(鷲)로 보아, 취가 들어간 지명도 생겼다. 여수와 창녕에 있는 영취산(靈鷲山)은 아라수리 또는 올수리(얼수리)의 옮긴 이름으로 보이고, 북한 여러 곳과 양산시 등에 있는 취봉(鷲峰) 중에도 수리에서 나온 것이 많다.

수리, 술은 음이 술(酒)을 닮아 지명에 주 자가 취해지기도 했다. 경북 예천의 옛이름은 수리골인데, 그 훈을 술로 보고, 수주(水酒)로 했다가 예천(醴泉)으로 바꾼 것이다. 지금의 평창, 원주 부근의 삼국시대 지명인 주연(酒淵)도 수리못이 바뀐 이름으로 보고 있다. 수리는 수레와 음이 닮아 수레너미니 수레재니 하다가 한자로 차유현(車踰峴), 차령(車嶺), 차산(車山), 차의현(車衣峴) 등의 지명들을 낳았다.

시루(甑)를 닮았다고 해서 증봉(甑峰), 증산(甑山) 등의 이름이 붙었다는 산들이 무척 많다. 그러나, 이들 산 모양을 보면 실제로 시루를 닮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지방에 따라 스리봉, 시리봉, 시래봉, 서리봉 등으로 조금씩 달리 불리는 것으로 보아 원래 수리를 뜻하는살 지명이었던 것이 시루, 시루봉으로 불리다가 그와 같은 한자식 이름으로 된 것이라고 본다. 시루의 방언으로는 시리(영호남), 실리(금릉), 실기(영양, 영덕), 슬구(강원 일부) 등이 있다.

수리, 수루, 수레, 시루 등은 서로 친척 관계의 낱말로, 이 말들의 뿌리말인 살은 꼭대기 또는 높은 산을 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음이 들어간 산이름들도 그러한 쪽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양산 영축산. 예전 이름 영취산은 아라수리, 또는 올수리가 한자로 의역된 것이다.


살은 벼슬을 뜻하기도




지금까지살 계통의 지명들을 대충 훑어보았거니와, 이들 중에 대표적인 것은 수리라 할 수 있다. 수리라는 음의 바탕은 술로 보지만, 그 원뿌리는 으뜸의 뜻인 숟 또는 수(雄)에서 시작된 말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범어(梵語)에서 이 말이 나왔다고 하여 소슬산(所瑟山이)라는 지명도 기록해 놓고 있다.

살은 삼국시대의 관명(官名)으로도 나온다. 백제의 관명 중에 달솔(達率·수서에는 大率), 은솔(恩率), 덕솔(德率), 간솔(杆率), 나솔(奈率) 등이 나오는데, 달, 덕, 나 등은 각각 산(山), 언덕(阜), 내(川)를 뜻하여 이를 다스리는 으뜸 관직을 뜻하는 것이었다.

신라에서는 으뜸의 뜻인 수를 인명에 많이 취하였다. 신라 때의 인물로 수종(秀宗), 술랑(述郞), 술종(述宗) 등이 나오는데, 이들은 각각 수마로, 수리내, 수리마로가 그 원이름일 것이다. 일본서기에 보이는 수류지(須流枳)도 수리치의 음역으로 보인다. 신라 초기에 주다(酒多) 라는 관직명도 있는데, 고 양주동 님은 이 이름이 불한(角干)의 변한 이름인 수불한(<술한)의 한자식 표현이라고 했다.

고구려 관명의 의사살(意俟奢), 욕살(褥奢-褥薩) 등의 살(薩-生)도 벼슬을 뜻하는 옛말 ?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벼슬의 슬도 같은 바탕에서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또, 지금의 말의 크거나 힘셈의 뜻으로 새겨지는 수컷, 수놈의 수도 살이 그 뿌리일 것이다.

살은 많은 말을 낳고, 또 새끼를 쳤다. 생명의 원천이고 신성함을 뜻하는 이 말은 삶(살·生)과 연관지어 살림, 사람(살+암=사롬>사람), 사랑(살+앙), 슬기 등의 낱말을 이루게 했고, 이 말은 다시 설, 솔, 술, 수리, 수레 등으로 형태를 달리하면서 여러 가지 한자로 지명에 옮겨갔다. 최근 금강산 관광으로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된 강원도 고성의 명승지 삼일포(三日浦)도 원래 살개였을 것으로, 살개가 사흘개가 된 후에 한자로 뜻옮김된 것으로 보인다.

살은 또 물살의 살을 뜻하게도 되어 살고지, 살개 등의 지명을 낳았고, 수레, 솔, 시루, 수리 등과도 음이 닮아 전국에 이 계통의 지명을 무척 많이 깔아 놓게 된 것이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