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 天下/白頭大幹

[백두대간 대장정 제24구간 / 설악산] 문화

초암 정만순 2018. 1. 23. 09:49



[백두대간 대장정 제24구간 / 설악산] 문화


‘천 봉우리의 흰 눈빛은 해일에 반사되고’
설악산의 미학과 관광

어떤 외국인이 우리더러 한국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말할까? 아마도 우리 산천의 미를 첫번째로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리 국토를 일컬어 삼천리에 비단을 수놓은 듯 하다고 하여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는 관용어가 있고, 애국가에서도 화려강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산천은 맑고 고우며 아름답다.

이러한 자연환경과 거기에 순응하고 조화하는 정착농경의 생활양식을 배경으로 친자연적인 전통문화가 형성되었고, 따라서 한국의 미학 속에는 자연미학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자연미학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자연적인 요소에서 산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은 필수적이며 크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미학과 동양의 미학은 각각 문화와 자연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대비될 수 있다. 같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도 서양의 미학은 자연이 인위적으로 재구성되어 문화적으로 변용된 미학적 내용이 위주인 반면, 동양의 미학은 자연 그 자체의 형상과 의미가 미학의 주요 내용이자 대상이 된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세 나라인 한국, 중국, 일본도 미적 감각과 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의 스펙트럼처럼 약간의 편차가 드러난다. 동아시아의 미학은 거시적으로 자연미학이 위주가 되어 있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중국과 일본에는 자연을 인위적으로 가꾸거나 모사하여 조성하는 심미적 태도도 가지고 있는 반면, 한국에는 자연 그대로를 수용하고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심미적 태도를 나타내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렇게 보자면 한국의 전통적 미학은 가장 순수하고 근본적인 자연미학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청초호에서 바라본 설악산. 경관 좋은 산이 바다 가까이에 솟아 심미적 탐승과 관광을 겸할 수 있는 좋은 대상이 되어준다.

심미적 탐승이 주를 이룬 선조들의 탐방


이렇게 나라마다 자연을 보는 시선, 다시 말해 자연관(自然觀)이 다르고, 자연을 대하고 감상하는 심미적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산에 대한 관점과 태도에서도 당연히 차이가 난다. 서양에서 산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대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과거 서양 사람들은 산에 대하여 장애물 혹은 위험요소가 상존하는 지형 등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산을 신앙적으로 숭배하고, 산악 경관의 아름다움을 심미적으로 찬탄해 마지않았으며, 심지어 이상향으로 인식하여 산자락에서 무릉도원과 같은 낙원을 꿈꾸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산악관은 관광의 행태에 있어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대개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자 하는 의도로 관광을 하였다. 산천경개의 풍광은 관광을 이끄는 필요충분조건이며, 옛 사람들이 했던 일종의 관광의 결과물로서 기록되었던 산행기(山行記, 遊山錄)와 시가(詩歌)들을 읽어보면 대부분 산의 심미적인 탐승이라고 할 만할 정도로, 산천의 아름다움을 몸소 체험하고 느끼면서 자기 자신과 당시의 사회문화를 자연경관에 은유하고 투영하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렇게 보자면 한국의 전통적 관광문화의 특징은 산을 대상으로 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설악산에도 역사적으로 홍유손, 이수광, 이세필 등 수많은 문인과 탐승객들이 방문하여 문학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중에 조선 중기의 학자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은 설악산을 이렇게 읊었다.

▲ 낙산사 의상대. 설악산은 동해 바닷가에 인접해 있어 산과 바다를 두루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설악산 높이가 만 길이나 되어
봉래산과 영주까지 그 기운이 이어져 있네
천 봉우리의 흰 눈 빛은 해일에 반사되고
저 멀리 옥경에 상제들이 모였구나
(雪嶽之山高萬丈 / 懸空積氣連蓬瀛 /
千峰映雪海日晴 / 群帝集玉京)

누구든 산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삶이 고달프고 어깨가 무거워질 때, 무엇에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디라도 떠나고 싶을 때, 많은 사람들은 동해의 푸른 바다를 떠올리고, 그 바다를 바라보며 장쾌한 형용으로 하늘을 버티고 있는 설악산에 마음이 끌린다.

설악산은 백두대간의 여러 산 중에서도 겉으로는 외설악의 수려한 아름다움이 빛나는 한편, 속으로는 내설악의 깊고 그윽한 계곡도 겸비하고 있으며, 망망대해의 동해바다에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목전이기도 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사시사철 찾는 곳이다.

특히 설악의 가을 단풍은 그 빛깔이 짙붉고 맑기로 유명한데, 이는 설악산의 청량한 기후와 식생의 생육 조건 및 토양조건에 기인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관광(觀光)이란 한자말을 살펴보면 ‘빛(풍광)을 본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광이라는 말의 어원은 중국의 고전 역경(易經) 속에 ‘나라(國)의 빛(光)을 본다(觀)’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풍경과 풍속, 그리고 문물 등을 본다는 뜻이다.

우리는 빛과 풍광을 새로이 접하고, 경관과 장소의 아름다움을 감상함으로써 생명의 충만함과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관광의 실질적 의미는 얕게는 여가시간에 한가롭게 구경하는 정도에서부터, 자연과 문화의 일부로서 나의 온전성을 거울처럼 비춰보고 확인하는 실존적 체험의 심도 깊은 장이기도 하다. 특히 뛰어난 경관을 보이는 장소는 그 장소에 있는 사람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을 장소의 혼(魂·genius loci)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설악산은 그 자태가 늠름하고 대장부의 기개를 한껏 드러내는 기상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울산바위의 장엄한 모습이 대표하듯이 골산(骨山)으로 분류될 수 있을 만큼 수려한 바위능선을 갖추고 있다. 특히 겨울에 온 몸을 덮고 있는 흰 눈은 깊은 인상을 주는데, 보는 이의 마음에 고결하고 성스러운 느낌으로 투영된다.

그래서 설악이라는 이름도 신증동국여지승람(16세기)에서 말하듯이, ‘양양도호부의 진산(鎭山)으로 매우 높고 가파르다. 8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여름이 되어야 녹는 까닭으로 이렇게 이름 지었다’고 하였다.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는 설악의 동쪽에 거울처럼 말고 고요하게 펼쳐져 있는 영랑호와 청초호이다. 호수에 비치고 어리는 흰 설악의 자태는 형언할 수 없는 감상을 불러일으키는데, 마치 설악의 마음이 물가에 드리워 내 마음자락에 비치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 울산바위의 위용. 설악산이 골산(骨山)임을 쉽게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한겨레의 역사와 문화 잉태한 태반

이제 백두대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재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동안 거쳐왔던 정겨운 산들을 다시 불러본다. 지리산, 백운산, 덕유산, 대덕산, 황악산, 속리산, 화령산, 황장산, 소백산, 선달산, 태백산, 덕항산, 두타산, 석병산, 오대산, 설악산에 이르는 수많은 산들이여. 그리고 다시금 백두대간의 화두를 되짚어 본다. ‘우리에게 백두대간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백두대간이 국토의 중추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우리 생활과 문화와 심지어 의식에서조차 백두대간의 비중과 영향이 그만큼 깊고 크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백두대간은 겨레 정신의 중추이자, 전통문화라는 그릇을 구워낸 큰 가마였으며, 삶과 죽음의 순환고리를 이루는 토대이며, 국토 생태환경의 대간이었다. 요컨대 백두대간은 우리 겨레의 역사와 문화를 잉태한 태반이자 탯줄인 것이다.

우리네 삶의 터전은 백두대간을 제외하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으니, 백두대간에서 시작하여 정간과 정맥의 통로를 따라 확산되면서 주거지를 이루어나갔다. 취락의 입지와 공간구조를 살펴볼 때 나라의 수도나 지방도시, 그리고 마을 등 규모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삶의 터전은 백두대간에서 뻗은 정맥의 둥지에 입지하였다.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아서 태어나고 백두대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고 밭을 일구며 살다가 다시 백두대간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과정이 바로 산을 둘러싼 겨레의 삶의 궤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역사와 문화의 궤적에서 등줄기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백두대간의 역사와 문화는 다양한 요소들의 총체로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백두대간에 대한 학제적 연구는 ‘백두대간학’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불러도 마땅하며, 백두대간이라는 큰 주제에는 지리학, 역사학, 사회학, 생태학, 미학, 민속학, 국문학 등의 수많은 세부 분과로 연구될 수 있을 것이다.

▲ 미시령.

그 중에서 백두대간의 문화사는 백두대간의 산지에 태어난 사람들이 산을 삶터로 삼아 경작을 하고 마을을 형성하여 살다가 죽어 일생을 마치는 전 과정의 생활사가 중요한 구성요소를 이룬다. 생활사에는 경제사, 사회사, 풍속사, 주거사, 신앙사 등이 모두 포괄되어 복합적인 체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백두대간의 문화요소에 대한 체계적 분류와 정리도 시급하다. 무형적 문화요소로는 백두대간의 자연 미학, 대관령 성황제와 같은 각종 놀이와 축제, 민간신앙과 백두대간 권역에서 생겨난 설화, 전설, 민담 등이 있을 수 있다.

한편, 유형적 문화요소는 백두대간 영역에서 벌어지는 각종 산림생활사와 관련된 취락경관 및 가옥, 산간의 생활민속 문화, 산간의 풍토성을 배경으로 형성된 각종 민간신앙 시설 및 사찰을 대표로 하는 종교시설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또한 교통시설(驛 등)과 숙박시설(院) 등을 유형적 역사경관으로 들 수 있겠고, 백두대간이 지니는 지형상의 군사적이고 전략적 중요성으로 말미암아 각 요충지에 포진하고 있는 산성, 봉수 등과 같은 각종 군사시설 역시 중요한 유형적 문화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백두대간의 문화사 연재는 설악산 언저리의 남녘땅 북쪽 끝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북한쪽의 백두대간으로는 가지 못하고 중도에 머물러 북녘 땅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스러움을 어찌하랴? 어서 통일이 되어 우리 산천을 보듬고 답사하며 쓰는 백두대간의 문화사 그 북한편을 완성하기를 소망하며 글을 맺는다.

최원석 경상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