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한국의 숲

생명의 숲을 거닐다 <1> 기장군 아홉산 대나무숲

초암 정만순 2018. 1. 19. 14:03



부산메디클럽

생명의 숲을 거닐다

<1> 기장군 아홉산 대나무숲


바람에 서걱이는 댓잎엔 남평문씨 9대째 이어온 혼 깃들어

  • 숲. 수풀의 준말로 빛과 그늘, 온 생명이 함께하는 생명의 근원이다. 그
    대로 둬서 깊어진 곳과 다듬어서 빛이 나는 곳들까지, 정말 좋은 숲은 많다.
    누구나 머릿속에서 숲을 향해 달려가거나 숲속에서 노닐던 자신을 상상할 때가 있다.
    위로와 치유를 위한 상징적 이미지가 숲이다. 치유와 명상, 생명이 함께하는 우리 주변의 숲을 찾아간다.

    - 개잎갈나무·맹종죽 지나 만난
    - 하늘 높이 치솟은 빽빽한 나무
    - 선선한 공기와 은은한 죽향
    - 코 입 허파까지 상쾌함 차올라

    - 문중 종택 관미헌 위용 뽐내고
    - 영남서 드문 금강송 군락도

    부산의 청정지역인 기장군 철마면.

    그곳에는 4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아홉산 숲’이 있다.

    철마면에서 정관읍으로 향하는 옛 도로변(웅천리 480번지)에 야트막하게 위치한 아홉산 자락 아래, 남평 문씨 일가가 무려 9대에 걸쳐 지켜온 명숲이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 아홉산 숲의 상징인 굿터(제1맹종죽 숲)의 위용을 사진 한 장으로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인 벤치 의자. 명숲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김성효 기자

    ■아홉산 숲의 상징, 전국 최고 대숲

    아홉산 숲의 탐방로 가운데 굿터와 평지대밭은 맹종죽 숲이 그야말로 수를 놓은 제일의 명소.

    먼저 굿터(제1 맹종죽 숲)는 약 100년 전 중국에서 들여온 맹종죽을 처음 심은 곳으로 전해지는데, 오랜 세월 마을의 굿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바로 이곳에서 영화 ‘군도’ ‘협녀, 칼의 기억’ ‘대호’가 탄생했다.

       
    탐방로의 시작 지점인 매표안내소 옆 관미헌. 문중의 종택이다.

    이곳 맹종죽 숲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 최고 포인트는 바로 벤치 의자다.

    하늘을 찌르는 대숲 사이로 퍼지는 햇살에, 귓전을 간지럽히는 대숲의 바람 소리까지 ‘힐링’(치유)이라는 단어가 생성된 근원이 바로 여기인 듯했다.

    조금 더 들어가니 두 손으로 움켜쥐기 벅찰 정도의 굵은 대나무가 끝없이 이어졌다. 대나무의 종류가 죽순의 굵기를 결정한다. 대죽순의 굵기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고 다만 위로 성장할 뿐이다. 연둣빛부터 시퍼런 초록빛까지 제각각의 색을 띤 대나무 앞에서 한겨울 칼바람은 온데간데없고, 양지와 음지를 오가며 오묘한 바람 소리를 불러모은 대숲이 주는 경외감에 압도돼 온몸이 마비되는 듯했다. 지난해 봄부터 자란 것도 있다는데, 불과 일 년도 안 돼 하늘을 찌를 만큼 솟아났다고 하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굿터에서 탐방로의 가장 절정인 평지대밭의 맹종죽 숲으로 가는 길도 압권이다. 개잎갈나무와 맹종죽이 양쪽으로 늘어선 채 탐방객을 반긴다. 이 숲 전체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시원함의 정의는 온도가 아닌 상쾌함이었다. 그리고 나타난 평지대밭. 빽빽하게 들어선 대나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코와 입, 그리고 허파까지 모든 게 자동문처럼 열린다. 형언할 수 없는 신선한 공기와 대나무향이 온몸에 배도록 날갯짓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진 한 장으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인 전국 최대 규모의 이 맹종죽 숲은 1960~1970년대 동래지역을 돌며 식당 잔반을 얻어 이를 비료 삼아 만들었다.

    ■희귀 구갑죽·영남유일 금강송 군락

       

    거북이 등 껍데기 형상을 한 구갑죽. 한때 국내에서 구갑죽을 볼 수 있는 곳은 이 숲

    이 유일했다.

    아홉산 숲 탐방로는 매표안내소 옆 구갑죽 마당과 관미헌에서 시작한다. 구갑죽(龜甲竹)은 거북이 등 껍데기 같은 색상에 울퉁불퉁한 모양이다. 맹종죽이 길고 날씬하게 뻗은 몸매를 자랑한다면 구갑죽은 신기함이 무기였다. 맹종숲에서 목이 꺾일 만큼 하늘을 봐야 했다면, 이곳에서는 무릎을 굽혀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래야 구갑죽의 상징인 줄기가 사진에 담기기 때문. 한때 국내에서 구갑죽을 볼 수 있는 곳은 아홉산 숲뿐이었다고 한다.

    그 뒤에는 문중의 종택으로 ‘고사리처럼 귀하게 본다’는 뜻을 가진 관미헌(觀薇軒)이 위용을 뽐냈다. 60여 년 전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순전히 뒷산의 나무로만 지은 한옥이라고 한다.

    굿터(제1 맹종죽 숲)와 인접해 있는 금강소나무 숲도 아홉산 숲의 자랑이다. 수령이 400년이라고 하는 소나무가 보존된 영남 일원의 드문 군락이다. 이곳 소나무를 비롯해 아홉산 숲에는 116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