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醫學 方劑 世界/한의학개론

한의학은 과학인가?

초암 정만순 2017. 11. 24. 13:45




한의학은 과학인가?


한의학은 과학인가?


작용 메커니즘 모른다고 비과학 매도 안 돼














“흥미로운 결과네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침술의 효과를 다 설명할 순 없지요.”
한국한의학연구원 침구경락연구센터 최선미 박사(한의사)는 침의 진통 메커니즘을 밝힌 최근 연구 결과에 그다지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신경과학분야의 최고 저널인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7월호에 침술에 관한 논문이 실린 걸 보고 깜짝 놀란 기자로서는 다소 김이 샜다.

침의 효과를 ‘위약효과(placebo effect)’, 즉 환자가 효과가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주류인 서구에서 이런 권위 있는 저널이 침의 메커니즘을 다룬 논문을 싣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는데 침을 이용해온 최 박사에게 이번 결과는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메커니즘의 하나가 밝혀진 것 일 뿐이다.











침은 위약효과일 뿐?

“침의 진통 작용 메커니즘만 하더라도 이미 두 가지 경로가 밝혀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2008년 저희가 발표했고요.”

첫 번째는 침의 자극이 인체가 만드는 마약성 펩티드, 즉 엔도르핀류의 분비를 촉진해 진통효과를 낸다는 메커니즘으로 1976년 캐나다의 연구진이 밝혀냈다.
한의학연구원에서 발견한 메커니즘은 침이 노르아드레날린성 뉴런을 자극해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하게 한다는 것. 노르에피네프린은 통증 정보를 억제한다.

이번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된 새로운 메커니즘은 아데노신이라는 신호분자가 관여한다.
즉 침의 자극을 받은 세포의 표면에서 아데노신이 만들어지면 A1R이라는 수용체가 이를 감지해 진통효과를 인다는 것.
흥미롭게도 A1R은 카페인에도 반응한다.
따라서 A1R이 이미 카페인과 합쳐 있다면 아데노신이 만들어져도 붙을 자리가 없기 때문에 진통신호를 전달하지 못할 것이다.

예상대로 카페인을 투여한 동물에 침을 을 경우 진통효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를 사람에 적용하면 침을 맞을 때는 커피를 피해야 한다는 말이다.
최 박사는 “한의학에서는 대체로 치료 중에는 술이나 커피 같은 극성 있는 음식은 피하라고 한다”며 “카페인 관련 결과는 이런 식이지도와도 맥이 통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침의 진통 메커니즘]

침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7월호에는 침의 진통효과를 설명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 실렸다. 

침의 자극을 받은 조직의 세포는 ATP를 세포 밖으로 내보낸다. 
ATP는 PAP를 비롯한 여러 효소의 작용으로 아데노신으로 바뀐다.
 아데노신은 통각수용뉴런의 수용체(A1R)에 달라붙어 만성통증을 억제하는 신호를 보낸다.
아데노신은 세포막 통로단백질을 통해 세포 안으로 재흡수된다.

침구경락연구센터에서는 최근 안구건조증이나 안면홍조처럼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증상에 침술을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 박사는 “현재 안구건조증은 안약(인공 눈물)을 넣어 증상을 완화하는 게 고작인데 침을 쓰면 건조증 자체가 많이 복된다”고 말했다.
폐경기 여성들의 고민거리인 안면홍조 역시 침을 4주 정도 맞으면 뚜렷이 개선된다고.
최 박사는 “전국의 한의원에서 시행되는 침술을 조사해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효과를 보고 있었다”며앞으로도 침술의 활용 범위를 계속 넓혀나갈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침을 놓는 자리, 즉 경혈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
한의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 몸 전체에는 기(氣)와 혈(血)이 흐르는 통로인 경락(經絡)이 퍼져 있고 그 가운데 기와 혈이 고여 있는 자리를 경혈(經穴)이라고 부른다.
아직 경락이나 경혈의 실체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자리를 옛날 한의사들이 제멋대로 만든 건 아님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다.
즉 거의 모든 경혈자리는 감각 신경뉴런이 풍부하게 분포돼 있고 동물에서도 사람의 경혈 자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침을 놓아야 효과가 더 높다.

























침구경락연구센터 류연희 박사는 “보통 경혈자리는 전기전도도가 낮은 것 같은 물리적 특성이 있지만 문제는 361곳 경혈이 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며 “현재 경혈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봉독, 즉 벌침의 독을 이용한 치료도 활발하다.
봉독을 이용한 치료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이집트 등 여러 지역에서 수천년 전부터 행해져왔다.
배현수 경희대 한의대 교수는 “관절염을 앓던 사람이 벌에 쏘인 뒤 통증이 사라졌다는 식의 일화가 알려지면서 봉독요법이 시작됐을 것”이라며 “최근에는 알레르기 질환이나 류마티스관절염, 다발성경화증 같은 자가면역질환에도 효과가 있어 치료에 이용한다”고 말했다.
요즘 봉독요법은 벌을 잡아다 피부에 쏘게 하는 옛날 방식이 아니라 벌침에서 모은 봉독을 주사제로 만들어 사용한다.
배 교수팀은 자생한방병원과 공동으로 봉독의 작용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DNA칩을 이용해 봉독이 염증유발에 관여하는 여러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배 교수는 “봉독의 경우 자체가 항염증 작용을 하는 게 아니라 인체의 면역세포의 활동을 조절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위장 장애나 간 손상 같은 부작용이 있는 기존 소염진통제와는 달리 별다른 부작용 이 없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한약은 독이다?






[지난해 한의학연구원은 자주 복용하는 25가지 한약처방에 대한 중금속, 농약 검사를 실시해 안전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동물독성실험도 시작해 1차로 두 처방(오적산, 육미지황탕)이 안전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약이 효과를 보려면 달이는 정성이 중요한게야….”
요즘은 한약이 ‘완제품 형태로’ 파우치에 담겨 나오지만 20~30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주전자처럼 생긴 시커먼 약탕기가 있었다. 어머니들은 한의원에서 받아온, 흰 종이에 싸인 약재를 약탕기에 넣고 깨끗한 물을 부어 얕은 불로 밤잠을 설쳐가며 약을 달이곤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지금 한가하게 추억에 잠길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간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한약을 한두 번도 아니고 보름, 한 달씩 매일 먹는 건 치료가 아니라 ‘자해행위’라는 것. 과연 그럴까.
얼핏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다.
진화의 관점에서 쓴맛은 독이 들어 있다는 경고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반론을 한약에 적용할 수 있을까.
그런 식이면 현대인들은 매일 서너 잔의 독배를 마시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쓰디쓴 커피(설탕을 듬뿍 넣어 쓴맛을 가리기도 하지만)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피를 먹고 간에 탈이 났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카페인 자극으로 위가 나빠졌다는 사람은 있다).

“많은 한약재는 수천 년 동안 사용됐고 이 과정에서 임상적 증명이 된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을 먹는다면 모를까 통상적인 한약 복용량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천연물에서 약효물질을 찾는 연구를 하는 서울대 약대 이상국 교수의 말이다.
물론 한약재 가운데는 부자나 파두 같이 독성이 강한 것이 있지만 이 역시 오랜 세월에 걸쳐 대부분 밝혀졌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주의해서 쓰고 있다는 것.
사실 약물의 부작용은 동서양 의학의 구분이 없다.
이 교수는 “원론적으로 모든 약이 독이 될 수 있다”며 “최근 비만치료제의 경우처럼 대규모 임상을 마치고 시장에 나온 신약이 수년뒤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철수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고 덧붙였다.

수년 전부터 한의학연구원에서는 각종 한약 처방의 안전성을 동물실험을 통해 입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먼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복용하는 처방인 오적산(五積散),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에 대해 안전성평가연구소에 평가를 의뢰했는데 모두 안전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한의학연구원 하혜경 박사는 “쥐를 대상으로 정상 복용량의 10배를 매일 13주 동안 복용시킨 결과”라며 “약재에 포함된 중금속이나 농약 성분도 기준 미달이지만 그나마 대부분 약을 짜고 남은 찌꺼기에 들어있기 때문에 실제 한약에서는 검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현대과학의 방법론에 따라 밝히는 작업을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EBM)’이라고 부른다.
대한한의사협회 송호철 홍보이사(자생한방병원 수원분원 원장)는 “한의학에 쓰이는 표준 치료법과 처방에 대한 EBM 연구 결과가 내년쯤 책으로 나올 예정”이라며 “학계와 병원을 중심으로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약은 약재가 대여섯 가지에서 심지어는 10여 가지나 들어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몸이 습기에 손상돼 냉할 때(위경련,신경통 등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쓰는 처방인 오적산의 경우 주(主)약재인 창출 외에도 마황, 진피, 후박, 길경 등 10가지가 넘는 약재가 들어간다. 서양의학 관점에서 보면 주먹구구식으로 보일 만도 하다.




















한의학 이론은 이에 대해 “한약의 작용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어느 한 성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일반 성분과 특수 성분들의 종합적인 작용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한의학연구원 한의융합연구본부 김진숙 박사팀이 연구하고 있는 당뇨성 안과질환 치료제를 보자. 김 박사는 “당뇨병이 만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앓게 되는 망막증이나 백내장은 실명에 이를 수 있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게 현실”이라며 “문헌조사와 탐방을 통해 안과 질환에 쓰인 약재를 찾아 스크린한 결과 이런 병의 진전을 상당히 억제할 수 있는 처방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 박사팀이 찾은 약재는 초갈근(볶은 칡뿌리), 강후박, 감초, 그리고 독성이 있는 한 약재다(혹시라도 독자가 쓸 수 있다며 이름은 알려주지 않음).

쥐를 대상으로 실험해 보면 약재를 따로 썼을 때보다 4가지를 적절한 조합으로 썼을 때 약효가 가장 탁월했다.
김 박사는 “서양 의학은 약효가 있는 특정 성분을 추출해 약물로 쓰는 걸 선호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

다”며 “국내 한 제약회사는 애엽(쑥) 추출물을‘천연물 신약’(위염치료제)으로 만들어 1000억 원 대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본적으로 의약품의 기준은 약효와 부작용에 있는 것이지 단일 성분을 썼건 식물(들)을 통째로 썼건 우열을 논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사상의학은 한국판 맞춤의학












2000년 인간게놈초안이 공개된 이후 염기 서열분석방법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개인 게놈시대의 막이 오르고 있다.
이미 수천 명의 게놈이 분석됐고 머지않아 사람들은 자신의 게놈정보를 갖고 개인별 맞춤치료를 하는 시대가 오리라는 장밋빛 전망도 있다. “사실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맞춤치료를 해왔습니다.
체질별로 처방을 달리했으니까요. 그 가운데서도 사상의학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한의학연구원 체질의학연구본부 김종열 박사(한의사)는 사상의학에 따른 분류법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수년째 진행하고 있다.

사상의학에서는 체형이나 행동, 성격에 따라 사람을 네 부류, 즉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태양인으로 나눠 체질에 맞는 치료를 행한다.
그 결과 일반적인 처방보다 훨씬 효과가 좋은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체질을 잘못판단해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김 박사는 “현재 얼굴 형태와 음성, 체형 등 신체특성과 설문을 통해 체질을 판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거의 완성했다”며 “내년 1월에 베타버전이 나오면 한의사들에게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방법으로 체질을 맞출 확률은 80% 정도다.
그렇다면 SNP 패턴이 사상의학의 분류와 일치하는 유전자, 즉 ‘사상의학 유전자’는 없을까.

“체질은 주로 태아가 발달할 때 형성되므로 이때 활성화되는 유전자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혹스(hox) 유전자 가운데 2개의 SNP 패턴이 체질과 관련이 있다는 단서를 찾았습니다.”

혹스 유전자는 동물의 몸통과 사지의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다. 체질의학연구본부에서는 이 밖에도 맥을 측정하는 맥진기, 혀의 상태를 측정하는 설진기 등 한방진단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김 박사는 “물론 한의학계 일부에서는 이런 식의 변화를 달갑지 않게 본다”며 “그렇지만 이제 한의학도 객관적인 데이터로 나타낼 수 있는 진단 시스템을 갖추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현대(서양)의학 쪽에서도 한의학의 체질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차의과학대는 사상의학을 음양에 따라 좀 더 세분화한 팔상체질론을 바탕으로 맞춤의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차의과학대 암연구소 김성진 소장은 “자신의 ‘네이처(본성)’를 이해해야 몸에 맞는 음식이나 약물을 취해 건강해질 수 있다”며 “한의학의 체질과 현대과학의 개인게놈은 서로 만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20여 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 소장은 “미국이나 유럽은 각국의 전통의학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면 적극 도입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집단이기주의로 밥그릇싸움을 하느라 이런 시너지 효과를 못 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의학과 현대의학이 대립각만 세운다면 체질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만 외국에 내주는 꼴이 될 거라는 말이다.

 

과학이 아니다


기와 경락, 과학적 근거 없다

“기(氣)가 허해서 그래.”
이런 표현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기가 충만하다거나 양기(陽氣)를 보충한다거나 하는 말도 흔히 접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써 왔던 말이라 ‘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따져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건강과 생명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병원에서 이런 표현이 쓰인다면 어떨까.
과학적인 의료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기는 없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몸에 일어나는 현상을 음양오행설로 설명한다.
음양오행은 고대 중국 철학에서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사상체계다. 음(陰)과 양(陽), 오행인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와 같이 서로 상호작용하거나 대립하는 성질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한의학은 음양오행을 인체에 대응시켜 질병의 원인을 설명한다.

예를 들면, 따뜻함을 나타내는 ‘목’은 시간적으로는 봄, 공간적으로는 동쪽, 인체성분으로는 혈액, 장기로는 간, 신체 부위로는 눈과 연관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과 비슷한 것으로 현대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간과 눈이 연관돼 있어야 하지만, 현대의학에 따르면 간이 눈에 영향을 준다는 증거가 없다.
흔히 간이 좋지 않아 황달이 올 때 흰자위가 노랗게 되는 현상을 가지고 간과 눈을 연관시키곤 한다.
그러나 황달은 눈뿐만 아니라 온 몸을 노랗게 만든다.

음양오행으로 자연과 인체를 대응시켜 설명하는 저변에는 ‘기’가 있다.
기는 인체는 물론 우주의 모든 변화를 설명하는 무형의 힘이다.
한의학은 기의 변화를 이용해 병을 진단한다.
문제는 기가 단 한 번도 검증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만약 기를 단순히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본다면 한의학은 과학이 아닌 철학으로 의료 행위를 하는 셈이다. 반대로 기를 물리적인 실체로 본다면 아직 아무도 기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이론적 근거가 없어진다.
의사들은 “결국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기를 바탕으로 하는 한의학 이론은 현재로서는 과학적이라 고 평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가 지나가는 통로인 ‘경락’도 마찬가지다. 해부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지 무려 수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 경락은 발견되지 않았다.
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 르는 상태에서 기의 통로를 찾아내 진료에 이용한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유용상 대한의사협회 의료일원화 특별위원장은 “기와 경락이라는 개념은 병의 원인을 모르던 초기 단계의 직관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과학적인 용어 정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기와 경락의 실체가 불분명하면 진료 과정에 큰 문제가 생긴다.
기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상용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는 “‘기가 허하다’라는 표현이 정확한 진단이 되기 위해서는 인체의 기 평균치가 얼마이며 그와 비교해 얼마나 부족한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보니 한의사에 따라 진단도 달라지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한의원에서 병을 진단할 때 자주 쓰는 진맥은 어떨까.
 대한한의사협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진맥은 맥박의 성질과 상태를 살펴 환자의 상태와 질병을 진단하는 방법이다. 진맥을 할때는 손목 안쪽의 요골동맥을 검지와 중지, 약지로 짚어서 맥박을 느낀다.
이때 각 손가락으로 느끼는 맥박은 서로 다른 장기와 관련돼 있다. 과연 이 주장처럼 맥박이 간이나 폐, 신장 같은 장기와 관련이 있을까.













[드라마 ‘허준’의 한 장면. 진맥으로 병을 진단하는 모습이다.
수백 년 전의 의사가 병을 척척 고쳐내는 미디어의 묘사는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실제로 허준이 살았을 당시의 의술은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수준이 떨어졌다.]

맥박은 심장이 박동할 때 동맥 속으로 혈액이 밀려나오면서 생기는 압력의 변화 때문에 생긴다.
현대의학에서도 맥박을 진단에 사용한다. 주로 세기, 맥박수, 규칙성 등을 본다. 심장과의 연관성은 당연하지만 그 외의 장기와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

각 손가락(검지, 중지, 약지)이 닿아 있는 세 부위의 맥박이 서로 다를 이유도 없다.
맥진기로 측정하면 세 군데의 맥박은 같게 나온다.
또한 맥박은 혈관 주위에 있는 피부나 힘줄 같은 구조물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같은 환자라고 해도 한의사에 따라 다른 진단이 나오기 쉽다.
남복동 창원산재 병원 산업의학과장은 “맥박만 짚어 보고 특정 장기가 좋다 나쁘다 진단하는 건 한강물을 조금 떠다 놓고 그 물을 어디서 떠 왔는지 알아맞히려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해부학적으로 경락을 찾으려는 봉한학설








[토끼 방광 표면에서 발견한 관. 소광섭 교수는 이 관이 경락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봉한학설은 1960년대 북한의 김봉한 박사가 경락을 해부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세운 이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광섭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가 연구하고 있다.
소 교수는 흰쥐의 혈관 안에서 알 수 없는 봉오리와 관을 발견하고 이것이 경락이라는 또다른 순환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관이 실제로 경락과 일치하는지 어떤 생리적인 기능을 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 관이 경락이라고 해도 때로는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가느다란 관을 한의사가 어떻게 알고 침으로 정확히 찌를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경혈과 무관한 침술

대한한의사협회 홈페이지에는 “침술이 기의 흐름을 조절하고 정신을 다스려서 내과, 외과, 부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 모든 질병의 진단 및 치료에 사용되고 있으며, 마취, 금연, 비만에도 효과가 있다”고 나와 있다.
이 외에도 관절을 삐었을 때와 체했을 때 빠른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런데 기와 경락의 실체가 모호하다면 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침술의 이론적인 근거도 무너지는 게 아닐까.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가 있다. 2006년 조장희 가천의대 교수는 1998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었던 논문을 철회했다.
 1998년의 논문은 특정 경혈에 침을 놓았을 때 뇌의 일부가 활성화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8년 뒤 조 교수는 후속 연구 결과 경혈과 상관없는 곳에 침을 놓아도 똑같이 뇌가 활성화됐다며 원래 논문을 철회했다.
침을 찔렀을 때 뇌에 일어나는 현상이 경혈과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미국의학협회지(JAMA) 2005년 5월 4일자에 실린 독일 뮌헨 과학기술대 클라우스린데 교수팀의 논문도 이를 뒷받침한다.
린데 교수는 편두통 환자에게 침을 놓고 통증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조사했다. 일부에게는 올바른 경혈에 침을 놓고, 나머지에게는 아무 데나 침을 놓았다.
그 결과 두 그룹 사이에는 차이가 없었다. 침을 어디에 놓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현대의학은 침술의 통증 완화 효과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침술이 통증에 효과를 내는 원리는 주로 위약효과와 게이트웨이 효과로 본다.
위약효과는 심리적인 효과로 환자가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믿으면 정말 그런 것처럼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조정훈 푸른솔 뇌·신경 통증 클리닉 원장은 “침을 맞는 것처럼 환자가 정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의 심리적인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고 설명했다.
게이트웨이 효과는 통증이 있을 때 다른 곳에 자극을 주면 원래 통증이 약해지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이다.
주사를 맞을 때 동시에 엉덩이를 때려 주면 주사바늘이 찌르는 통증을 잘 못 느끼는 이유라고 생각하면 쉽다.

최근에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7월호에 실린 논문처럼 침술의 통증완화 원리를 밝히는 논문도 나오고 있다.
침을 맞으면 통증을 줄이는 물질이 나온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원리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와 관련이 없으며, 효과도 국소적이고 일시적이다.
게다가 통증을 줄이는 물질은 굳이 침이 아니더라도 마사지를 비롯한 다른 자극으로도 얻을 수 있다.
취재를 위해 만난 의사들은 “현대의학에서 사용하는 체계적인 방법과 비교할 때 침술의 효과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며 “통증 완화를 위한 침술이 비용 대비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현대의학 기법인 ‘드라이 니들링’은 통증을 일으키는 부위를 바늘로 자극하는 방법으로 만성적인 근육통에 효과가 뛰어나다.
하지만 이 방법은 현대의학 원리에 따라 통증을 유발하는곳을 찾아 찌르는 것으로 한의학에서 이야기하는 경락과 무관하다.

한의학계는 침술이 질병은 물론 비만이나 금연에도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대의학에서는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오히려 반대의 연구는 있다.
영국의 학술지 ‘담배 규제(Tobacco Control)’ 1999년 4호에는 금연침의 효과를 분석한 영국 엑세터대 대체의학과 아드리안 화이트 박사의 논문이 실렸다.
금연침은 귀를 인체와 대응시키는 이론에 따라 귀에 침을 놓는다.
금연침에 관한 연구를 종합한 이 논문에서 화이트 박사는 침을 정해진 위치가 아닌 곳에 아무렇게나 놓아도 담배를 끊는 데 미치는 효과에는 차이가 없음을 보였다.

몸에 해로운 보약?



















흔히 보약이라고도 하는 한약은 식물이나 동물 같은 천연물의 일부를 건조하거나 가공해 만든 약으로 ‘생약’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된 전통 때문인지 사람들은 한약이라하면 으레 부작용이 없고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다.

한약의 부작용은 크게 한약재의 오염과 한약재 자체 성분이 원인이다.
한약재에는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 오래 보관하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곰팡이가 피어 발암물질이 생기기도 한다.
의사들은 본지에 “현대의학에서 사용하는 약을 한약에 몰래 넣는 경우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 경우 현대의학에서 규정하는 복용 방법과 양을 지키지 못해 환자가 위험해진다.

한편 과학적으로 본 한약재의 성분에도 부작용이 많다.
2006년 소비자보호원이 1999~2005년에 처리한 한의약 관련 피해 구제 115건을 분석한 결과 한약과 관련된 사고가 50% 가까이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절반은 간세포가 파괴되는 독성 간염이 발생한 경우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2006년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5월부터 17개월 동안 전국의 대학 병원에서 독성 간손상 증례를 조사한 결과 한약에 의한 간손상이 가장 많았다.

약의 부작용이 단지 한의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에서 쓰는 약은 부작용이 대부분 밝혀져 있지만, 한약재의 부작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방 치료 때문에 부작용이 생겨 증상이 악화됐을 때 한의사들은 명현(瞑眩)현상이라며 병세가 나아지고 있는 징후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수술처럼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거나 현대의학으로도 고치기 어려운 병을 치료할 수있다는 한의원 광고. 그러나 의사들은 한의학 이론으로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도 어려울 뿐더러 치료 효과도 검증되지 않았다고 우려한다.]

또한 유효 성분만을 추출해 정확한 양을 복용하게 하는 현대의학과 달리 한의학은 여러 한약재를 그대로 섞어 한약을 만든다.
환자가 먹는 한약에 정확히 어떤 성분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약리작용을 하는 성분은 일부에 불과하므로 나머지 성분은 아무 이유 없이 먹는 셈이다.
유효 성분이 약효를 발휘하는 양의 범위가 좁은 경우도 있지만 한약으로는 그 양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한다.
더구나 한약재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성분이 몸 안에 들어가 어떤 상호작용을 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의사들이 지적이다.
























한약의 효과도 의심스럽다.
잡지나 신문에서는 한약을 이용해 아토피나 탈모처럼 현대의학으로도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수술을 하지 않고도 디스크를 치료한다는 한의원 광고를 많이 볼수 있다.
의사들은 한의원의 이런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의원에서 완치를 시켰다는 환자 비율이 자연스럽게 낫는 비율과 그다지 차이가 없으며, 구체적인 통계보다는 일회성 사례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는 것이다.
효과가 불분명한 한의학 치료는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한의학 치료의 부작용으로
위험한 상태에 빠지거나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한약에만 의존해 치료하다가 뒤늦게 병원에 와 목숨을 잃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전통적으로 쓰는 한약재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해 신약을 개발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한의학계는 이런 사례를 들어 한의학의 우수성을 주장하지만, 이런 방식은 신약을 개발하는 데 쓰는 보편적인 방식으로 한의학적 방법론과는 거리가 멀다.
의사들은 “신약 개발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거대 다국적제약회사는 신약물질을 찾기 위해 아마존 구석까지 안 가는 곳이 없다”면서 “만약 한약에 효과가 있다면 왜 가만 놓아두겠느냐”며 한의학계에서 주장하는 한약의 우수성에 의문을 표했다.

































민족주의로 의학 해서는 안 돼

유용상 위원장은 “한의학은 현대과학과 연관성이 없다”며 “한의학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인문학적으로 연구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의학은 과학적인 이론으로 정립돼 있지 않기 때문에 결과를 보고 자의적으로만 해석할 뿐 예후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이 의사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의사들은 이에 대해 국가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한의학의 치료 효과에 대해 검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결과 한의사는 소위 ‘비방’이라는 치료법을 충분한 임상 테스트도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환자에게 적용할 수있다.
환자로서는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다.




상식적인 지식과 대치되는 주장도 한의학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기존의 현대의학적 치료 방법을 전면 부정한다거나 아들을 낳는 한약을 지을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은 과학적으로 반박하기 이전에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게다가 의사와 간호사 자격시험 문제는 공개되는 반면 한의사 자격시험 문제는 비공개다.
한의학이 외부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길을 하나 막아버린 셈이다.

 

선진국에서 한의학을 주목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과장이라는 평가다.
조정훈 원장은 “세계의 다양한 전통 의료 중에서 효과가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시도일 뿐 특별히 한의학을 눈여겨보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 시도는 현대의학이 발전해 온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이다.
취재를 위해 만난 의사들은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이유로 의학을 하는 건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라며 “수백 년에 달하는 문화유산이라고 해도 과학적인 검증을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