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屠
요약 후한시대부터 사용된 용어로 부도, 부두, 불도 등으로 불린다. 처음에는 불상·불교사원·불탑을 의미했지만 뒤에는 고승들의 사리를 담는 작은 탑을 가리키게 되었다. 석탑과 마찬가지로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부도 형식은 기단과 탑신, 옥개석이 8각형으로 된 신라말과 고려초의 형식이 주류를 이룬다. 가장 오래된 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전 흥법사염거화상탑(844),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861)·쌍봉사철감선사탑(868)·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880)·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893) 등이다.
부도는 각 면에 불상이나 여러 문양들이 장식되어 있고, 탑비에 의해서 건립연대를 알 수 있어 당시의 사회상이나 문화뿐만 아니라 목조 건축양식이나 석조미술의 흐름 등 미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부도, 부두, 불도, 포도라고도 한다. 원래 불타 또는 솔도파라는 음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처음에는 불상·불교사원·불탑을 의미했지만 뒤에는 고승들의 사리를 담는 석조 소탑을 지칭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후한시대부터 이러한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 당나라로부터 선종이 들어온 9세기 이후 각 구산선문에서 사자상승으로 법맥이 이어지면서 불상 숭배보다는 조사들의 사리와 유골을 담은 묘탑이 중요한 예배대상이 되어 많은 부도가 세워졌다.
일반적으로 부도는 석탑과 마찬가지로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기단과 탑신, 옥개석이 8각형으로 된 8각원당형은 신라말과 고려초에 성행했던 전형적인 부도 형식으로 우리나라 부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옥개석은 목조건축물의 기왓골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기단이나 탑신부에는 불·보살을 비롯하여 신장상·비천·사자 등이 새겨져 있다.
문헌상으로는 〈삼국유사〉 권4 원광서학조와 권5 혜현구정조에, 7세기 전반 신라 진평왕 때 원광법사의 부도와 백제 혜현의 부도를 각각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어 늦어도 삼국시대말에는 부도가 건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 가장 오래된 예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흥법사염거화상탑(844)이며 이외에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861)·쌍봉사철감선사탑(868)·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880)·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893) 등이 유명하다. 8각원당형 부도는 고려시대에도 계승되었지만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1085)과 같이 기단이나 탑신이 방형인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8각원당형을 기본적으로 따르면서 기단의 중대석에 귀부를 중심으로 4마리의 용을 입체적으로 조각한 고달사지부도라든가, 탑신만 둥근 형태인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1017)처럼 특이한 예도 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예로 홍법국사진공대사탑(940)·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975)·거돈사원광국사승묘탑(1025) 등을 들 수 있다. 고려말 조선초에는 형태가 아주 간략화되면서 탑신부만 있는 석종형 부도가 크게 유행했다. 이는 인도의 복발탑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형태가 종(鐘) 모양과 같다는 데서 석종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석종형 부도로 가장 오래된 것에는 신라 말기의 태화사지12지상부도를 비롯하여 금산사석종, 신륵사보제존자석종(1379), 화장사지공화상탑 등 고려시대의 예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도 석종형 부도가 많이 건립되었으나 드물게 통일신라시대의 8각원당형 부도 형식을 따른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1394)과 회암사지부도(1407) 등도 전한다.
부도는 건축적인 요소 외에도 각 면에 불상이나 여러 문양들이 장식되어 있고, 또 대부분 탑비에 의해서 그 건립연대를 알 수 있어 당시의 사회상이나 문화뿐만 아니라 목조 건축양식이나 석조미술의 흐름 등 미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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