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기나무
다른 표기 언어 Manchurian Maple , 鬼目藥木 , オニメグスリ鬼目薬
분류 | 단풍나무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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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 Acer triflorum |
가을 산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수채화 물감을 뿌려놓은 듯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잎과의 만남에 있다.
단풍나무 종류는 대부분 안토시아닌(anthocyanin) 색소를 가진 탓에 붉은색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 종류마다 조금씩 다른 독특한 색깔과 모습을 뽐낸다.
여기 특별히 눈에 띄는 복자기란 단풍나무가 있다.
다른 이름으로 복자기나무, 복자기단풍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공
식 이름에 ‘단풍’이란 말이 들어가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만큼은 우리가 아는 진짜 단풍나무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단풍나무 종류는 대부분 잎자루 하나에 잎이 하나씩 붙어 있다.
하지만 복자기는 엄지손가락만 한 길쭉한 잎이 잎자루 하나에 세 개씩 붙어 있어서 모양새부터 평범한 단풍과는 다르다.
진짜 단풍나무 가계에서는 벗어난 특별한 모양새를 나타낸다.
무엇보다도 가을날의 단풍색깔로 일가친척인 보통 단풍나무와는 차별화를 선택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단풍나무의 단풍이 단순히 붉은색 위주라면, 복자기는 단풍나무 가계의 유전대로 붉은색을 바탕으로 하되 거기에 진한 주홍색을 더 보탰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복자기의 단풍을 보는 느낌은 가버린 한 해,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가져다주는 쓸쓸함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기쁨과 정열로 다가오기도 한다.
산자락의 단풍이 점차 시들시들 오그라들고,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 높은 산의 복자기는 제철이다.
임경빈 교수는 《나무백과》각주1) 에서 설악산 복자기 단풍의 아름다움을 여러 한시를 인용해가면서 감명 깊게 설명하고 있다. 꼭 설악산이 아니어도 좋다.
높은 산이라면 맑고 더더욱 높아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복자기의 단풍은 단풍나라의 진짜 ‘얼짱’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타는 단풍’을 비롯하여 온 산에 붉은색이 가득하다는 뜻의 ‘만산홍엽(滿山紅葉)’에서 홍엽의 진정한 의미는 복자기의 단풍을 일컫는다고 나는 믿고 있다.
복자기나무는 중부지방의 깊은 산에서 아름드리로 크게 자라는 나무다.
잎 세 개가 잎자루 하나에 붙어 있는 3출엽이 특징이고, 잎의 크기도 단풍나무보다 작아 더 아기자기한 맛이 난다.
늦봄에 노란 꽃이 피고 나면 가을에 잠자리 날개처럼 생긴 열매가 마주보기로 열린다.
단풍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질 좋은 목재를 생산하므로 죽어서는 가구재, 무늬합판 등 고급 쓰임으로 활용되는 중요한 나무이기도 하다.
복자기와 아주 비슷한 나무 중에 복장나무가 있다.
복자기는 잎 가장자리에 굵은 톱니가 2~4개 정도이고, 복장나무는 가장자리 전체에 잔 톱니가 이어져 있어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산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것은 복자기나무다.
복자기나무와 복장나무라는 나무 이름은, 점치는 일을 뜻하는 복정(卜定)과 점쟁이를 뜻하는 복자(卜者)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점치는 일에 쓰임이 있어서 복정나무나 복자나무로 불리다가 복장나무로 변하고, 모양이 비슷한 복자기는 복장이나무가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는 복자기와 복장나무의 중간쯤 되는 목약나무(目藥木, メグスリノキ)가 있다.
이름 그대로 껍질을 삶아낸 물로 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있다.
간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건강음료로까지 이용되는 약용식물이다.
지금도 민간요법으로 찾는 사람이 있어서 상품화되어 판매되고 있다.
성분을 분석한 내용을 훑어보면, 눈병에 효험이 있는 특별한 성분은 포함되어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틀림없이 낫는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탁월한 효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기록에도 《의림촬요》라는 의학책에는 복자기와 같은 단풍나무 일종인 신나무를 눈병치료에 썼다는 내용이 있다
우리산의 복인(服人) 복자기나무
삼천리 금수강산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가을산풍경의 정점은 타는 듯한 붉은 단풍이다.
중부 이남에 주로 분포하는 단풍나무와 그 이북 악산의 바위틈까지 굳센 생명력을 이어온 당단풍 그리고 산초입이나 교목층 아래의 중하부 식생에서 한 몫을 거드는 붉나무나 화살나무에 이르기까지 잎이 붉은색으로 물드는 나무를 딱히 꼽자고 하면 전체 수종에 비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그 중 복자기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15종 정도의 단풍나무과 나무 중에 가장 크고 단풍이 아름다운 나무이다. 잎이 손바닥모양을 이루는 대개의 단풍나무류와 달리 복자기나무는 하나의 잎자루에 세장의 잎이 돋아있는데 붉게 물드는 잎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일본에서는 복자기나무를 귀신의 눈병을 고쳐준다고 하여 귀신안약나무 즉 귀목약(鬼目藥 : 오니메구스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복자기나무는 생장이 매우 느려서 큰 나무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목질이 세밀하고 매우 단단해서 떡메나 써레 등 생활용구나 농기구를 만드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한자로는 우근자(牛筋子)또는 색수(色樹)로 표기하는데 수레의 차축으로 이용되거나 수피에서 탄닌을 채취하여 염색에 이 이용 된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필자가 나고 자란 치악산자락의 성황림마을 입구에는 천연기념물 제93호인 성황림이 자리하고 있다.
숲 한 가운데 전나무와 음나무 등 두 그루의 거대한 신목이 있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신성림을 이루는 대부분의 나무가 복자기 나무이다. 연두색 잎이 돋는 봄에서 짙은 녹음을 이루는 여름 그리고 숲이 불타는 듯 단풍이 장관을 이루는 가을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복자기나무의 이름 유래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 민초의 시각으로 '상주보다 복재기가 더 섧어한다'는 우리 전래의 속담과 연관지어 볼까 한다.
'복재기'는 상주이외의 일가친척을 일컫는 복인(服人)을 일반적으로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주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경꾼도 아닌 어중간한 관계자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면서도 ‘곡소리가 작네’, ‘사위가 내놓는 노잣돈이 부족하네’ 하며 장례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복자기나무 또한 소나무나 참나무가 주연인 우리 산에 조연쯤 되는 위치에 있으면서 가을이 되면 유독 생색을 내어 붉어지고 너덜너덜한 수피와 목질부의 특성도 단단한 나무의 대명사인 박달나무를 흉내 내기는 했는데 거기에는 미치지 못해 나도박달이나 개박달로 불리는 어중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 동병상련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렇게 보면 성황림의 나무 배열은 하늘(天)과 땅(地)으로 통하는 두 그루의 신목 주위에 읍소한 복재기들의 행렬이다.
복자기나무는 만주와 우리나라에 널리 분포해 영어명이 Manchurian Maple로 우리에게 더욱 친근감을 주는 나무이다.
단단한데다가 심재의 무늬가 아름다워 고급가구재로 선호도가 높고 가을의 단풍뿐 아니라 사계절의 보임새 또한 훌륭해 최근에는 가로수로도 심어지고 있는 우리토종의 나무이다.
필자에겐 유년시절 당숲에서 놀다가 쏴아 하고 북풍 섞인 바람이 불어오면 손가락만한 크기의 날개로 빙그르르 날아 내리던 열매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장난으로 묶어놓은 풀줄기에 걸려 넘어지던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올 듯한 동심의 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