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약과 같은 혈자리, 태연
서왕모의 거처, 태연(太淵)
'해품달'
말고, '서품태'니라
동양 신화에는
서왕모(西王母)라 불리는
여신이 있다. 이름 풀이하면 서방의 여왕. 그녀가 사는 곳은 곤륜산 꼭대기에 있는 연못이다. 이 연못은 요지(瑤池)라고도 하고,
천지(天池)라고도 하고,
태연(太淵)이라고도
한다. 각각 옥구슬 연못, 하늘 연못, 크고 깊은 연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우리가 살펴볼 혈자리 태연의 원류는 서왕모가 사는 연못, 태연과
이렇게 닿아 있다. 이쯤 되면 태연에 둥지를 틀고 있는 여신, 서왕모가 살짝 궁금해진다.
중국 고대의
지리서『산해경』에 기록된 여신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아름답고 우아한 서쪽 여왕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처럼 생겼는데 호랑이 꼬리에 표범의
이빨을 한 반인반수, 머리는 봉두난발에 옥비녀를 꽂았다. 게다가 여신의 취미는 휘리릭 휘리릭 휘파람 불기. 고대 중국에서 휘파람 불기는 어엿한
음악의 한 갈래였다. 소보(嘯譜)라는 휘파람
악보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단다. 이 휘파람 불기는 음악으로 즐기기도 했겠지만, 내면의 기운과 정신을 다스리는 수련 방식의 하나였다. 곤륜산
꼭대기 태연가에 앉아 휘파람을 불고 있는 서왕모의 영상이 휙 지나간다. 어느새 휘파람을 불고 있는 나. 아랫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깊은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깜놀이다! 이제 명상한답시고 자리 깔고 앉아 몇 시간이고 멍 때리지 말자. 대신 휘파람을 불자. 휘파람을 불면서
호흡이 깊어지면, 그 호흡을 관찰하자. 모든 수련의 초식은 ‘깊은 호흡하기’와 ‘호흡 관찰하기’였으니까.
그렇다면 이
파격적인 여신 서왕모는 어떤 일을 했을까? 그녀는 하늘의 형벌과 돌림병 같은 재앙을 관장하는 무시무시한 신이었다. 하늘의 형벌이라 함은?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벌이다. 천벌은 인정사정없고 무지막지하고 잔인하다. 아무렇지 않게 코를 베고 손발을 자른다. 서왕모는 이 형벌에
관한 기운을 관장하는 여신이었다.
그런데 왜 이
살풍경한 이미지가 그녀에게 덧씌워진 것일까? 그것은 고대 중국에서 서쪽이 상징하는 의미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해의 그림자를 보고 방위를 인식한
고대인들에게 서쪽은 해가 지는 곳, 즉 어둠과 죽음의 땅이었다. 그래서 재앙과 형벌같이 죽음을 불러오는 일들을 서쪽의 여신 서왕모가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을 관장했기에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도 가진 존재였다. 곤륜산에 있는 불사수(不死樹)에서 얻은
열매로 만든 불사약(不死藥). 이
환상적인 아이템은 그녀를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지닌 생명의 여신으로 탈바꿈시켰다. 인간의 두 가지 모순적인 본능, 자기를 보존하려는 삶의 본능
에로스와, 자기를 해체하려는 죽음과 휴식의 본능 타나토스를 서왕모는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태연과
서왕모의 관계를 한번 살펴보자. 태연은 서왕모의 거처. 이곳에 사는 서왕모는 서방의 여왕이면서 서쪽을 의미하는 상징들을 지녔다. 그녀가 꽂은
옥비녀는 옥이 가진 金기운을, 취미인 휘파람 불기는 호흡을 말하면서 폐의 속성을, 직업인 재앙과 형벌은 버릴 건 버리고 거둘 건 거두어 들이는
가을 기운을, 아이템인 불사약은 가을에 거두어들인 열매, 즉 죽일 건 죽여야 얻을 수 있는 결실인 것이다.
결국 서왕모는
서쪽 방위와 금 기운, 때는 가을, 몸으로는 폐의 속성, 죽음과 재생이라는 의미망으로 연결된다. 태연은 이 상징이 거처하는 곳. 당연히 서왕모의
속성을 태연이 품었으리라(줄여서
서품태^^). 하여
태연은 수태음폐경의 대표적인 혈이면서 그 원기를 간직한 장소라 할 수 있겠다.
크고 깊은
샘줄기, 수태음폐경의 원천(原泉)
태연의
태(太)는 크다는
뜻의 대(大)에
점(⼂)을 더해
참으로 크다는 말이다. 이밖에 태(泰)의 약자라는
설이 있다. 태(泰)는 정면으로
선 사람의 상형인 대(大), 물을
움키고 있는 두 손 공(廾), 그리고 물
수(水)를 합한
글자다. 두 손으로 막아내기에는 너무 큰 물이라서 ‘크다, 심하다’는 뜻이다. 연(淵)은 네 귀퉁이
기슭으로 물이 몰려들어 빙빙 도는 모습과 그 사이에 깊은 못이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다.
정리해 보면,
태는 ‘크다’ 와 ‘심하다’, 연은 ‘물줄기가 모여 있다’ 와 ‘깊다’는 뜻이다. 여기서 ‘심하다’는 건 크다는 걸 강조한 말일 테고,
‘물줄기가 모여 있다’는 것은 기운이 집중적으로 응축되어 있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태연은 크고 깊은 샘, 태천(太泉)이란 별명도
있다. 혈자리에서 크다는 말은 혈의 크기나 넓이가 크다는 게 아니다. 그 기운이 크게 작용한다는 말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암튼,
태연은 신화로 보든 속뜻으로 보든, 심하게 크고 깊은 혈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태연은
이렇게 겁나게 크고 깊은데, 원천수까지 머물러 주신다. 이 원천수가 머물러 원혈이라 한다. 원이란 글자를 잠깐 보자. 원(原)은
바위(⼚) 밑에서
솟아나는 샘(泉)이 물줄기의
근본이 된다 해서 근원의 뜻이 된 글자다. 그래서 원혈은 근원의 샘줄기, 원천수가 머무는 혈을 말한다. 근데 이 근원의 샘줄기, 원천수가 뭐지?
하실거다. 지금부터는 좀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일평생을 사용할 수 있는 근원 에너지를 받고 태어난다. 말하자면 사는 동안 쓸 배터리를 충전 받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충전된 기운을
정(精)이라고
하는데, 원래부터 하늘이 준 기운이라 해서 선천지기(先天之氣)라고도 한다.
이 충전된 기운, 정을 가리켜 근원의 샘줄기, 원천수라 표현한 것이다. 정은 실제로 물과 같은 액체다. 그래서 수(水)를 관장하는
신장에 저장되어 있다. 정이란 글자도 그대로 액체상태를 말해준다. 정(精)은 푸른
빛(靑)이 감돌
정도로 맑은 쌀(米)이다. 딱딱한
쌀이 맑다는 건 뭔 말일꼬? 쌀을 씻어 솥에 앉히면 밥이 되면서 맑은 밥물이 생긴다. 옳거니, 쌀이 맑다는 건 이 맑은 밥물, 진액을 말하는
것이렷다! 동양의학에서는 이 진액을 참으로 귀하게 여겼다. 이것은 하늘이 이미 결정해 준 것이어서, 사람이 모자란다고 채워 넣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을 아끼라는 말이 『동의보감』에 숱하게 나온다.
근데 이
기운은 그냥 저장된 채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부속들인 각 장부를 작동시키는 에너지로 공급된다. 이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길, 그 공급 통로가
삼초다.
(삼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수소양삼초경을 기대하시라.) 신장에
저장된 정을 그 공급 통로인 삼초를 통해서 각 장기에 전달하는데, 삼초로부터 각 장기로 전달할 때 연결되는 접속지점이 바로 원혈인
것이다.
(헥헥) 내가 말해
놓고도 어렵다. 근데 핵심은 ‘각 장기로 전달할 때 연결되는 접속지점’에 있다. 이 말은 수태음폐경의 원혈인 태연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폐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원혈은 각 장부에 하나씩밖에 없기 때문에 해당 장부의 상태를 원혈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폐의 상태를 보기 위해서는
태연을 보면 그까이거 대충 알 수 있다는 것. 내가 이렇게 우기면 아무도 안 믿는다. 그래서 이 관계에 대해 설명해 놓은 텍스트를 들이밀겠다.
<혈자리 서당> 첫 번째 인트로에 등장했다시피, 동양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편작이 썼다는 『난경』이다.
원기란 배꼽 밑의 신간(腎間)에서 나와서 3초를 통해서 4지에 산포하는데, 그 기가 머무는 곳이 원혈이다.
- 진월인, 『난경입문』(최승훈 역), 법인문화사
여기서는 정을
원기(原氣)로 살짝 바꿔
놓았다. 정은 하늘에서 받아 으뜸이 되는 기운, 원기와 같은 말이다.『난경』의 텍스트를 풀어보자. 원기가 두 개의 신장 사이에서 나와, 삼초를
거쳐 각 장기에 그 기운이 전달되고, 그 기운은 똑같이 사지에 산포하는데 그 정기가 머무는 곳이 원혈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태연에 침을 놓거나
마사지를 하면 태연과 연결된 장기인 폐에 침을 놓거나 마사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씀! 더 중요한 것!! 이 원기는 고유한 정으로 있다가
장기에 전달되면서 폐면 폐, 간이면 간의 에너지로 쓰이기 때문에, 폐에 가면 폐의 기운이 되고 간에 가면 간의 기운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걸 깨닫고 무릎을 쳤다.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도 고정된 것이 아니구나, 그 기질은 폐도 되고 간도 될 수 있는 것이구나, 내가 접속하는 것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구나!!! 이크, 너무 멀리 갔다. 내가 종종 이런다. 이해하시라.)
다시 원혈로
돌아가자. 원혈은 이처럼 장기의 원기가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게 고장 나면 하늘의 기를 받을 데가 없어진다. 그래서 원혈이 중요하다. 각
장(腸)의 원혈을
살펴보면 폐는 태연, 간은 태충, 심은 신문, 심포는 대릉, 비는 태백, 신은 태계이다. 한눈에 봐도 크다는 뜻의 태나 대자가 붙었다. 그만큼
해당 경맥의 기혈을 깊이 간직하고 있고 쓰임도 많아서 붙여진 이름들이다.
원혈은
기본적으로 손목이나 복사뼈 관절 부위에 있다. 연못처럼 움푹 들어간 곳이다. 나는 이곳을 사지(四肢)의 깔때기
같은 부위라고 생각한다. 깔때기의 아래 쪽이니 원기가 깊이 머물러 지나갈 수밖에 없다. 태연은 엄지쪽 손목 부위인데, 흔히 한의원에 가면 진맥할
때 잡는 곳이다. 정확하게 촌구(寸口)에 해당한다.
(촌구에
대해서는 팁에 자세히 설명해 두었다. 참고하시라.)
다른 식으로
태연혈을 찾아보면, 우선 주먹을 가볍게 쥔 상태에서 손목을 굽혀 보라. 그러면 손목 관절에 가로무늬가 죽죽 생기면서 힘줄이 두 개 불끈
튀어나온다. 태연혈은 바로 엄지쪽 힘줄 가로무늬에 위치한다. 맥을 관찰하기에 최상인 곳, 맥기를 깊이 간직한 곳, 태연이다.
맥 집합소에서
맥을 짚다
그래서
‘맥(脈)은
태연(太淵)에 모인다’는
말이 있다. 나는 궁금해진다. 과연 맥이 뭔가 말이다. 맥이 빠진다, 맥이 없다, 맥이 끊긴다 등등 맥과 관련된 말도 많은데, 정작 맥이 뭐냐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잠시 맥이 들어간 말들을 읊어 보자. 이때 맥을 기운이나 힘으로 살짝 바꿔 말해도 의미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맥은
일상생활 속에서는 기운이나 힘으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그런데 몸으로는 맥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맥(脈)은
몸(⽉) 속에
흘러다니는(派) 것을
말한다. 몸 속을 흘러다니는 것? 그렇다. 피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氣)다. 이 혈과
기가 맥인 것이다. 그래서 맥을 짚는다는 것은 이 기혈의 흐름을 느껴보는 것이다. 기혈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맥이 없고 온몸에 열이 나는데,
손발이 차거나 심신이 무기력하다. 이때 태연을 찌르면 맥과 기운이 살아난다. 마치 매트로놈처럼 좌우로 왔다갔다하는 침의 움직임은 울결된 기의
흐름을 흩어줘 열을 내리고 맑고 서늘하게 한다.
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아이들에게 불치병에 가까운 아토피도 열로 생긴 피부질환이다. 폐와 부부지간인 대장에 열이 있으면 아토피가 잘 생긴다.
대장에 열이 있으면 폐는 한기가 들고 이 열로 원기를 갉아먹는다. 이때 폐의 원혈, 태연에 침을 놓아 보라. 대장의 열은 내리고 원기는 충전,
아토피가 훨씬 진정될 테니.
맥은 혈의
흐름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혈맥을 주관하는 장기인 심장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언제든지 오른손을 왼손의 손목 위에 얹고, 직접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껴보라. (왼손의
태연은 심장이다. 아래 팁을 보라.) 만약
심장박동이 일정치 않거나 평형을 잃었다고 생각되면, 침대에 누워 2~3분 정도 태연을 부드럽게 문질러 주라. 그러면 이내 평온을 되찾게 될
게다. 심장박동이 일정치 않는 것은 심계(心悸,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불안해 하는 증)의 일종이다.
가장 큰 원인은 심기부족! 심장이 펌프질을 잘할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아줘야 한다는 말씀. 이때 맥의 집합소 태연을 자극하면 기의 운행이
촉진되고 기가 위로 올라가게 된다.
태연은 폐의
원기와 맥기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혈자리다. 그래서 태연은 앞서 연재된 소상이나 어제혈처럼 콕 찝어서 이러저러한 데 특효가 있는 혈이라기보다,
몸의 기혈을 전체적으로 보하는 혈자리라 말하고 싶다. 그래서 폐나 폐기와 관련이 깊은 호흡기 병, 해수, 천식과 기혈의 부조화로 생기는 심장병,
심혈관 질환에는 태연을 기본으로 쓰고, 구체적인 병증으로 들어가서 혈을 추가하는 것이 좋겠다.
서왕모는
곤륜산에 있는 죽지 않는 나무에서 얻은 열매로 죽지 않는 약을 지니고 다녔다. 그 여신의 거처는 태연. 우리 몸으로는 태연혈이다. 몸의 들고
나는 순환을 가리키는 기와 혈이 모인 자리, 죽음과 재생이라는 삶의 순환을 닮은 불사약과 같은 혈, 태연이다.
침에서 맥을 짚는 것은 진단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환자의 상태 변화를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침을 놓기 전의 맥과 침을 놓은 후의 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기 위한 것이죠. 침을 놓은 후에도 맥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침을 잘못 놓은 겁니다. 그러니 침 놓기 전에 맥을 꼭 확인하는 센스! 잊지 마세요.
맥을 잡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엄지 뿌리에서 손목으로 건너가면 뾰족한 뼈가 나타납니다. 칼끝처럼 돋았다고 해서 검상돌기라고 하지요. 그곳 안쪽에다가 가운데 손가락을 댑니다. 그러면 그 위와 아래로 검지와 약지가 나란히 놓이게 되지요. 그렇게 세 손가락으로 맥을 확인하는 겁니다. 세 손가락 중에서 검지를 촌(寸), 중지를 관(關), 약지를 척(尺)이라 합니다. 이 촌관척에 오장육부를 배속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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