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단술 기공
파동적 세계와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파동의 감각, 즉 기감각(氣感覺)을 계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약간의 수련과 반복적인 숙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가장 좋은 수련법은 늘 파동의 감각을 일상화하고 생활화하여 제6의 감각인 기감을 깨워서 직감적인 몸을 만드는 것이다.
기공 수련으로 단련할 수 있는 기운은 외기(外氣)와 내기(內氣), 두 가지가 있다.
태양계나 북두칠성의 기운 등은 대표적인 외기이다.
기공 수련은 내기의 단련을 이룬 후에 외기와 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기를 수공하여 내기를 키우는 것이다.
따라서 기공수련은 내단술(內丹術)이 중심이 되고 있다.
내단술은 배꼽뒤 단전을 중심으로 하는 호흡법과 운기법을 말한다. 이것을 흔히 태식호흡 또는 단전호흡이라 한다.
인체를 하나의 발전기로 보고 단전은 전기를 저장하는 축전지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공수련은 호흡을 통해서 기운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몸에서 진기를 끌어내는 호흡과 기운을 단전에 담는 축기와 단전에 저장된 기를 온 몸에 순환시키는 운기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의식을 집중하여 호흡을 크게 하면서 호흡수는 줄이며, 이때 평소보다 횡격막의 상하 운동폭이 커짐에 따라 복압이 높아져서 하부 신체의 혈액을 심장으로 되돌리는 힘을 크게 하여 혈행을 좋게 하는 것이다.
의식을 단전에 집중하는 것은 또 하나의 의식인 복뇌(腹腦)를 만들게 된다.
복뇌란 두뇌 속의 의식과는 별도로 기운을 관장하는 의식이 새로이 만들어진 것으로 수련이 향상되면 언제나 단전에 자리 잡게 되어 인체의 중심을 만든다.
이런 의식을 단전에 만드는 것을 제륜법이라 하고 발바닥 가운데에 두는 것을 족심법(足心法)이라 한다. 중국의 법륜공은 바로 제륜법이 근본을 이룬다.
내단술은 精을 충실히 하고 氣를 응집시켜 神을 밝게 하여 丹을 만드는 것이다.
단이란 精氣神의 결정체이다. 단을 만드는 것을 煙丹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단을 굽는다는 것이다. 굽는 불의 힘은 바로 의식이다.
그래서 내단술은 의식의 강화된 힘으로 精氣神을 구워 단을 제련해내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意守丹田이라 한다.
연단의 과정이 지나면 단을 奇經八脈을 통하여 순환시켜 인체의 구석구석으로 움직여 보내는 通關의 수련으로 들어간다.
통관이 자유자재로 되면 신체가 변화되어 情體를 이룬다 하여 換身이라 한다.
그 다음의 경지가 情體를 육신에서 자유로이 출입시키는 出身이다.
遺體離脫이나 分身의 능력이다.
다음의 경지가 바로 우주와의 합일, 즉 도교의 최종 목적지인 神我一體의 경지가 된다.
내단술은 고도로 집중된 의식의 힘을 동원하여 이루어진다.
단전에 의식을 집중하여야 하고 운기시에는 기운의 흐름에 정신을 모아야 한다.
의식을 止息상태로 낮추는 명상과는 반대로 의식의 강화를 요구한다.
단전에 축기할 기를 응집하기 위한 호흡법으로 調息法이 있다.
들숨으로 기운을 받고 날숨으로 몸의 邪氣를 토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호흡으로 받아들인 기운을 의식에 실어 단전으로 보내게 된다. 이때 기운의 주 공급원은 호흡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기운을 보다 강하게 흡입하고 사기의 배출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들숨과 날숨의 시간이 평소 호흡보다 길어진다.
들숨과 날숨에서 횡격막의 팽창과 수축의 정도가 한계치에 이를 정도의 깊은 호흡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1분당 호흡수를 최대한 억제하여 적은 회수의 호흡일수록 공력이 높은 척도로 보기도 한다.
단전호흡은 기공에 있어서 역사가 오래 되고 또 운기와 축기를 하는 훌륭한 방법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선생의 지도가 없이 독학을 하거나 잘못 배우게 될 경우에는 무리한 호흡에서 오는 횡격막의 과도한 긴장이 호흡계통에 지장을 줄 위험성이 있다.
무리한 단전호흡의 부작용은 수련계 내에서도 지적되어 온 문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단전 호흡은 수련자의 체력이나 체질 그리고 건강 상태에 따라 신중하게 해야 하고 초보 수련자일 경우에는 무리한 시도는 삼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래서 단전호흡을 지도자 없이 책으로 읽은 내용만 가지고 하거나 독학으로 수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면이 있다.
수련이라는 것이 억지스럽거나 고통을 수반하거나 부자연스러워서는 안 된다.
노자의 말 중에 '상선약수'라는 말이 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수행의 근본이 바로 이것이다. 흐르는 물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야말로 최상의 수행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