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식물의 방어전략
곤충이용 해충 물리친다
식물은 어떻게 자기 몸을 지키나, 식물도 가시, 털, 거친 잎 등으로 나름의 방어책을 강구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일.
여기 더해 식물은 분비물을 통해 자신을 먹는 곤충의 천적을 불러들여 적을 퇴치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경기란 항상 대등한 상대끼리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신문에는 언제나 콜드게임패를 면할 줄 모르면서도 꼬박꼬박 대학 야구경기에 출전하는 모대학에 대한 기사가 실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경우는 야구니까 그럴 것이다. 만약 권투 경기라면 어떨까?
지금은 감방에 있는 헤비급 프로권투 선수 마크 타이슨의 경기를 볼 때면 무시무시한 생각이 종종 든다. "어유! 저 한방이면 갈텐데…" 하면서 말이다. 이것도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한방에 보내 주니까 말이다.
혹시 게임이 안되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그런 잔혹한 경기를 본 적은 없는가? 자연상태에서는 그런 상대가 안되는 게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때가 흔하다.
게임 안되는 식물과 곤충의 싸움
특히 초식동물이나 곤충에 먹히기만 하는 식물들을 보면 이런 생각은 더욱 확실해진다. 길가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를 무심히 쳐다보면 겨우 입맥만 남은 채 벌레에게 무참하게 먹힌 경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연이라는 링에서는 초식동물이나 곤충과 식물과의 게임은 너무나 일방적이다. 식물은 도망가지도 못하고, 팔을 끼지도 못하며, 붙잡지도 못하고 그저 얻어맞는 수밖에, 씹어 먹히는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불쌍한 식물이여! 그러나 만약 당신이 생물학자라면 식물에게 그러한 동정심을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식물들은 그들의 포식자 보다 지구상에 먼저 나타났고 또한 그들보다 더 오래 지구상에 생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이라는 매정한 링에서 그렇게 심하게 탄압받으면서도 어떻게 식물이 생존했을 뿐 아니라 번창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오랜 세월의 투쟁 동안 식물이 진화하고 다듬어온 일련의 광범위한 방어기술에 있다.
잘 아는 바처럼 장미나 선인장에겐 가시가 있고 환삼덩굴과 같은 덩굴엔 깔끄러운 털이나 있으며 어떤 식물은 거칠고 질긴 잎을 가지고 있어 초식동물들이 먹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이것이 통하는 것도 잠시다. 언제까지나 이런 허장성세로만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말부터 식물의 중요한 대사산물이 아닌 많은 이차산물이 중요한 생태적인 기능을 갖는다는 것이 알려졌다(Harborne, 1982). 이차산물들의 기능 가운데 중요한 것은 초식동물과 세균으로부터의 보호이다. 이차산물은 생합성의 형태에 따라 3가지 종류(Terpenoids 계통, Penolic화합물, Alkal-oids 계통 )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중 테르페노이즈(Terpenoids) 계통은 많은 초식곤충이나 포유류를 제지하는 독성 물질이며 미생물에 대한 저항성도 가지고 있어서 식물체에서 중요한 방어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식물학자들은 때때로 테르페노이즈나 다른 이차산물이 방어적 기능을 갖는다고 말하기를 망설였다.
초식동물이 이들 화합물의 높은 농도에도 불구하고 어떤 피해도 없이 식물을 먹어치우거나 심지어 어떤 2차산물에 의해서는 물리쳐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인될 수조차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찰은 독성물질에 대한 어떤 식물을 먹어치우는 종류의 상대적 적응 진화로 설명이 가능하다. 즉 식물이 그들을 먹어치우는 곤충이나 초식동물을 물리치기 위해 진화과정에서 독성 2차산물을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초식동물들도 이에 대항해서 이들 독성물질을 해독하거나 혹은 독성물질에 덜 민감해지는 방법을 고안해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어떤 초식동물은 친지성 이차산물을 분비가능한 수용성 산물로 바꾸어 해독하며 어떤 초식동물은 더이상 특별한 산물에 독성을 느끼지 않도록 생리적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Lincoln Taiz and Eduardo Zerger, Plant Pysiology, p.1991).
'적의 적은 나의 친구'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은 이보다 한 차원 높은 식물의 방어전략을 발견했다. 이것은 기존의 적과의 일대일 대응 방식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전략이다. 즉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인간들의 정치적 개념을 식물들이 생물의 세계에도 적용시킨 놀라운 전략인 것이다.
옥수수싹(묘종)은 풀쐐기(모충)의 공격에 많은 피해를 입는다. 풀쐐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그 풀쐐기는 옥수수 거의 전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풀쐐기 자신이 기생말벌과 같은 그들의 적의 공격에 의하여 희생되기 때문에 거의 드물다고 한다. 말벌은 알을 풀쐐기 안에다 낳고 말벌 유충이 풀쐐기 안에서 풀쐐기를 먹으며 자란다.
그래서 새로운 말벌이 나타날 때쯤 풀쐐기는 죽게 된다. 이런 시나리오는 아주 잘 연구되어 있으나 그 누구도 어떻게 말벌이 풀쐐기를 발견하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답이 말벌과 풀쐐기의 기묘한 협력에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농업연구소 곤충연구원인 테드 터링스(Ted Turlings)는 옥수수를 먹어치우는 풀쐐기를 조절하기 위하여 기생말벌(Cotesia marginientris)을 유인하는 신호가 무엇인지를 연구해왔다. 가장 간단한 가설은 풀쐐기 그 자체에서 어떤 종류의 신호가 말벌을 유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터링스의 연구에 의해 기각되었다.
대신 그와 미국 농업연구소 동료는 말벌을 유인하는 신호가 식물에 의해 방출된다고 국립과학학회 회보(Proceeding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1992년 9월호에 보고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신호 물질은 식물에게 특징적인 냄새를 나게 하는 휘발성 테르페노이즈로 규명되었다.
그들은 풀쐐기가 식물잎을 씹어먹을 때 풀쐐기 침의 어떤 성분이 식물로 하여금 말벌을 부르는 테르페노이즈를 방출하도록 자극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욱이 테르페노이즈의 방출은 식물의 손상된 부분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손상되지 않은 부위에서도 일어남으로써 말벌을 유도하는 기회를 증가시켰다.
마치 고사성어 중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이이제이(夷以制夷)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이를 '충이제충'(蟲以制蟲)이라 해야 할까.
풀쐐기가 식물잎을 씹어 먹을 때 그 침의 어떤 성분이 식물로 하여금 말벌을 부르는 테르페노이즈를 방출하도록 자극한다.
자연의 살충제 역할 기대
터링스는 언젠가는 옥수수밭에 기생말벌을 풀어놓음으로써 풀쇄기의 집단을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람과 농작물 모두에게 해로운 살충제의 훌륭한 대체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즉 실험실에서 길러진 말벌은 테르페노이즈에 의해 잘 유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과 야생 말벌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야생에서 풀쐐기로부터 새로 태어난 말벌은 숙주가 씹어먹을 때 방출되는 테르페노이즈의 냄새를 즉각 맡을 수 있다. 그래서 말벌은 그 화학물질과 풀쐐기를 관련시키고 풀쐐기를 발견하기 위하여 테르페노이즈를 향한다고 터링스는 말한다. 따라서 해충을 구제하는 매개체로서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말벌이 테르페노이즈를 풀쐐기와 관련짓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말벌이라는 훌륭한 해충구제 선수는 유명한 권투선수인 무하마드 알리보다 하나를 더 잘하는 것같다. 즉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쏠 뿐 아니라 식물에서 나는 냄새를 정확히 맡는다(American scientist, vol.80,p535).
자연이라는 냉혹한 링에서 초식동물과 투쟁해온 식물은 진화의 과정 속에서 다양한 전술과 전략을 구사해왔다. 충이제충 전략을 비롯한 식물의 자기보호 전략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것이 적지 않다.
식물의 역사는 대단히 오래됐다. 오래 생존한 만큼 그들 나름대로 이 지구 위에 살아남는 특유의 비책을 그들의 역사책, 아마도 유전자 속에 적어서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물론 아직 우리가 명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식물이든 곤충이든 우리보다 오래 지구상에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동정을 받아야 할 것은 겉으로 보기엔 언제나 인간에게 살충제 제초제 등으로 얻어터지는 식물이나 곤충이 아니라 가장 잘나고 똑똑한 우리 인간 자신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말벌은 풀쐐기 안에 알을 낳고 그 유충이 풀쐐기를 먹으면서 자라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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