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차
살아 숨쉬는 자연의 향기, 야생초차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 이제 거의 다 완성되어 가는 차를 바라보는 일은 즐겁고 행복하다. 내 손으로 직접 차를 만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만족이 그 안에는 들어 있다.
원래의 크기에서 한참이 줄어든, 바싹 마른 야생초차를 손으로 뒤적인다. 이제 거의 다 완성이 된 것이어서 특별히 손이 갈 일은 없지만, 사람의 손길이 한 번 더 가고 가지 않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는 커서 아무리 사소한 과정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뭐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야생초차를 만드는 일이다.
향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생선 내가 난다고 했다. 매화를 만진 손끝에서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록 은근한 매화 향이 가시지 않고, 이런저런 야생초를 만진 손에서는 여러 날이 지난 후에도 각각의 야생초들이 지닌 저마다의 독특한 향내가 사라지지 않는다.
야생의 상태에서 제 멋대로 자라나는 이런저런 꽃이나 풀, 나뭇잎 같은 식물의 한 부분이나 전체를 채취하여, 채취한 재료의 성격에 맞게끔 적당한 가공을 거친 후에 사람의 몸에도 이롭고 마실 때 좋은 맛을 느끼면서 마시는 순간에 멋을 부리며 마실 수 있도록 만든 것을 야생초차라고 한다.
사람의 몸에 특별히 해를 끼치는 독초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야생초는 차의 재료로 쓰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차로 만들었을 때 유독 모양이 예쁘다거나, 차로 만든 후에도 재료가 지닌 독특한 향이 계속해서 느껴 진다거나, 차로 우려 냈을 때 그 차의 색이 곱게 우러나는 것들은 야생초차의 재료로서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
봄나물 중에서도 비교적 이르게 돋아나는 냉이에서부터 시작하여 쑥이나 질경이 박하 같은 것들은 원재료가 가지고 있는 그 독특한 향이 차에서도 그대로 살아나기에 특별히 향기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향을 즐기며 마실 수 있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매화나 찔레 같이 꽃을 이용하여 만든 차들은 어떠한가. 저마다 가지고 있는 향기도 향기지만, 차를 우리는 순간에 나뭇가지에 꽃이 피어 나는 것처럼 찻잔 안에서 그대로 피어나는 꽃잎의 모양새는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야생초차는 원재료가 가지고 있는 그 빛깔대로 우러나는 게 보통이다. 초록색의 잎을 이용하여 차를 만들면 우러난 차의 색도 초록색이고 하얀색의 꽃잎을 이용하여 차를 만들면 우러난 차의 색도 하얀색에 가까운 연두 빛을 띤다.
야생초를 이용하여 차를 만든다고 하면 얼핏 그 과정이 거칠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막상 야생초로 차를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섬세한 작업이다. 잡초라던가 풀 같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그 질기고 억센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제로 야생초를 다루어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예민하고 여린지를 알 수 있는데, 꽃잎 같은 경우 어떤 것들은 사람이 지니고 있는 체온 만으로도 금새 시들어 상해 버리는 것들도 숱하다.
야생초차의 재료로 쓰이는 것들은 주변 환경이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 채취하는 것이 기본이다. 주변 환경이 깨끗한 곳에서 재료별로 차를 만들기 가장 적절한 시점에 채취하여야 하고, 차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도 원재료가 가지고 있는 성분이나 특징들이 손상되지 않도록 가장 좋은 방법을 골라 덖거나 찌는 방식 등을 이용하여 차를 만든다.
보통은 야생초차 하나를 만드는데 재료의 채취에서 완성된 차를 마시기까지 스무 번 정도의 손이 간다. 야생초차를 만들 수 있는 주된 재료들이 사람이 돌보거나 가꾸는 것들이 아니고 야생의 상태에 있는 것들을 찾아 채취하여 손질하고 차를 만드는 것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재배하는 것들 보다는 사람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한다.
똑같은 곳에서 나는 똑같은 재료를 두고 어느 것은 좋다 어느 것은 나쁘다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막상 차를 만들다 보면 스스로 이런저런 기준을 세우게 돼서 재료의 선택에서부터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는데, 차를 만들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 안에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있는 대로 욕심을 부려서 너무 많은 양의 재료를 채취한다던가, 재료를 채취할 때 정작 필요하지도 않은 부분까지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가령 잎이나 꽃을 따기 위해 나뭇가지를 꺾는다거나, 나무를 통째로 자르고 뿌리째 뽑는 행위 등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야생초차의 재료를 채취할 때나 야생초차를 만들 때 그리고 야생초차를 마실 때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몸에 얼마나 좋고 나쁜가를 따지기 이전에 지금 이순간 바로 이곳에서 이토록 소중한 것들과 내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자연에 대한 그 고맙고 감사한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 것이다. 자연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야생초차라고 하여도 그것이 단순한 마실 거리 이상의 의미는 되어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야생초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무리 꼼꼼하게 차의 재료가 되는 것들을 잘 다듬었다고 해도 막상 차를 만들고 나서 살펴보면 그래도 더러는 눈에 거슬리는 면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손바닥에 적당량의 차를 올려 놓고 미처 다듬어지지 않은 면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
모든 차가 다 그렇다. 이제 갓 만들어 빛깔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을 때 마시는 차가 가장 맛있다. 시간이 지나도 처음 그대로 변하지 않은 채 빛깔과 향,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차는 없다. 특히 야생초를 이용하여 만드는 차는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무척이나 짧아서 차를 만들 때 이상으로 보관에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어떤 재료를 이용하여 차를 만들건 그 차에 손길이 한 번 머물 적 마다 내 마음 한 자락씩 얹어 둔다는 생각으로 차를 만든다. 똑 같은 차를 마시면서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저 그런 풀잎 나부랭이 정도로 느껴질 것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아주 소중하고 값진 것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비록 눈으로 보여주고 귀로 들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 속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자연을 닮은 여유와 평온함이 느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까지 만든 야생초차에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손길이 머문 것처럼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마음결들이 하나의 차를 만들 때 마다 그곳에 묻어나게 될지 모르겠다.
이른 새벽 이제 갓 만들어진 야생초차 한 잔 우려낸다. 차를 만드는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게 야생초차를 만들어 냈다고 해도 그러나 그것이 애초에 자연의 상태에 있는 것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나무가 제 몸에서 한 송이 꽃을 피워내는 정도에 비한다면 그 꽃을 따서 차를 만드는 내 정성이라는 것은 참으로 보잘것없다.
꽃을 피워내는 나무의 마음으로, 자연을 닮은 야생초차를 만들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야생초차 한 잔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 안이, 때묻지 않은 그 싱싱한 초록의 들판 빛깔로 가득 차 온통 환해질 수 있기를 감히 소망해 본다. (우리길벗,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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