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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스케치 여행 - 안동 봉정사 

초암 정만순 2014. 3. 11. 18:27

산사 스케치 여행 - 안동 봉정사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놓인 봉정사 앞마당은 작지만, 앞이 트여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무엇일까. 한때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18호)이 차지하고 있던 이 자리를 봉정사 극락전(국보 15호)에게 내어 준지도 어느덧 40여년이 지났다. 1972년 안동 봉정사 극락전의 해체 보수과정에서 과거 중수 연대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봉정사 극락전, 어느 것도 창건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다. 다만 중수된 기록에 의해 만든 날을 추정해 볼 뿐인데 보통 절집의 목조건축물이 100~150년이 지나면 보수를 하게 되는 걸 감안하면, 극락전(1363년 중수)이 무량수전(1376년 중수)을 13년가량 앞서게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물론 중수라는 것은 여러 요인이 작용할 수 있어 이 짧은 시간의 차이는 사실 큰 의미가 되지는 못한다.

많이 보는 것보다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리라…

무엇보다 극락전이 앞선 건축물로 인정받게 된 계기는 건축양식 때문이라고 한다. 그저 평범한 그림쟁이로써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타이틀에 대한 문제는 조금 더 단순하면서도 명확해진다.

바로 타이틀이 붙은 것을 우선시하게 되는 경향 때문이다. 흔히 멀리 가게 되거나 시간이 부족할 때, 혹은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봉정사만 놓고 보아도 극락전 외에도 대웅전, 고금당, 화엄강당과 더불어 아름답고 아늑하기 이를 데 없는 영산암 마저 그냥 놓치고 온 지인들을 종종 보게 되면, 최고(最古)나 최대(最大)라는 최상급의 수식에 현혹되는 건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선입견이다. 자신만의 관점이나 감성이 지극히 제한되어 아쉬운 첫 만남이 되기 일쑤이다. 그런 걸 보완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는 한 긴 시간을 머물러 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는 자주 가지 못하는 스케치 여행이 더욱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한 자리에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얼마나 많은 걸 깨닫게 해주던가.

봉정사 마당에서 수백 년 버티어 온

목조건축물과 함께 세월을 거슬러 올라본다

많이 보는 것보다 제대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보다 온전하게 느껴보는 것이 더욱 즐거운 사찰 기행이 될 것이기에.

내가 극락전을 처음 본 느낌은 한 마디로 오래 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큰 기대에 동반되는 실망이었던 걸까. 물론 지붕을 받치는 공포구조를 비롯한 건축양식이 주는 옛 맛이 없지 않았지만, 토벽의 색상이나 서까래의 단청은 최근 사극을 찍기 위해 만든 것처럼 새 것 같이 새초롬해 보였다.

하지만, 극락전 앞 조그만 마당에 앉아 그림을 끼적거리고 있으니 이내 그 오랜 장소의 의미가 서서히 풍겨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당이 작고 고요해서였을까. 그 기분은 여느 커다랗고 북적거리는 사찰과는 확연히 달랐다.

   

맞배지붕 특성 상 가구 짜임새가 보이는 옆면은 극락전의 아름다움 중 하나다. 9개의 도리와 보가 조화를 이룬 정교함이 감탄을 자아낸다.

봉정사도 조선 초에는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안거 스님이 100여명이나 있던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긴 시간이 많은 걸 바꾸어 놓았다. 역사 속에 있었던 그 숱한 전쟁이나 목조건물의 최대 약점인 화재만 없었다면 극락전만큼이나 오랜 다른 건축물도 더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한동안 봉황이 내려 앉아 정해졌다는 봉정사의 마당에서 수백 년을 버티어 온 목조건축물과 함께 하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하나둘 옛 건물들이 주위를 가득 채운다. 이윽고 극락전이 세워지던 오랜 과거의 그 날에 시간은 멈춘다.

창건을 기념하는 예불이 한창이다. 마치 지금처럼 새 빛깔이 담긴 극락전은 환한 햇살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몇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몽실몽실 꿈을 꾸는 극락전 마당의 오후의 시간이 나긋나긋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살며시 봉정사의 극락전에게 부탁해 본다.

이 시대의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여. 지금부터 천 년이 훨씬 넘은 미래에도 어느 그림쟁이와 함께 했던 이 길지 않은 오후를 한 번쯤은 떠올려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