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목본(자)

전나무

초암 정만순 2017. 3. 19. 11:29



전나무


다른 표기 언어 Needle Fir , , チョウセンモミ朝鮮樅


요약 테이블
분류 소나무과
학명Abies holophylla


이름이 둘이다. 하나는 전나무고 또 하나는 젓나무다.

각급 학교 교과서나 국어사전, 일부 수목도감에는 대부분 전나무로 표기되어 있다. 젓나무는 1960년대 이창복 서울대 교수의 주장에 따라 부르게 된 이름이다. ‘전나무의 어린 열매에서 흰 젓이 나오므로 잣이 달린다고 잣나무라 하듯이 젓나무가 맞다’라는 논리다. 한편 《훈몽자회》, 《왜어유해》, 《방언유석》 등의 옛 문헌에는 모두 젓나무로 나온다. 따라서 이 교수의 주장이 과학적으로나 문헌자료를 살펴보아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나무 이름은 어디까지나 공동의 약속이니, 많이 부르는 전나무로 간단히 통일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 책에서도 산림청의 국가표준식물명에 따라 전나무로 표기한다.






조선 숙종 39년(1713) 1월에 부교리 홍치중은 백두산정계비를 답사하고 임금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무산에서 어활강(두만강의 지류)을 건너 산 밑에 이르니 인가 하나 없는 넓은 땅이 나타났습니다. 구불구불한 험한 길을 따라 산꼭대기에 올라 보니 산이 아니고 바로 들판이었습니다. 백두산과 어활강의 중간에는 삼나무(杉樹)가 하늘을 가리어 해를 분간할 수 없는 숲이 거의 3백 리에 달했습니다. 거기서 5리를 더 가서야 비로소 비석을 세운 곳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삼나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삼나무가 아니라 전나무의 옛 이름이다.

이처럼 전나무는 백두산 부근의 고산지대를 비롯하여 북한에서도 추위로 이름난 곳을 원래의 자람 터로 한다. 동쪽으로는 시베리아를 거쳐 동유럽까지, 서쪽으로는 알래스카와 캐나다를 거쳐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한대지방을 대표하는 나무다. 우리나라의 백두산 일대는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및 잎갈나무의 삼총사가 모여 원시림을 만들어낸다. 그중에서도 전나무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가장 높아 남쪽으로도 거의 한반도 끝까지 내려온다.

전나무는 습기가 많고 땅이 깊은 계곡을 좋아한다. 어릴 때의 자람은 늦어도 몇 년 자라면 긴 원뿔 형태의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다른 종류와 어울려 살지만 전나무는 자기들끼리 한데 모여 사는 경우가 많다. 큰 규모의 숲이라면 수천수만 그루가 모여 웅장한 ‘나무바다(樹海)’를 만드는 대표적인 나무다.

하지만 동족간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서로를 잘 알고 비슷한 특성을 가진 자기들끼리의 싸움이 종류가 다른 나무들과의 싸움보다 오히려 더 어렵다. 우선은 빨리 키를 키워야 하므로 한가하게 구불구불 자랄 여유가 없다. 직선으로 뻗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다 보니 전나무는 모두 곧은 줄기를 만든다. 광합성을 위한 가지 뻗음도 효율적으로 대처한다. 가지를 거의 수평으로 뻗어 이웃과 맞닿게 만든다. 이 때문에 햇빛이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숲의 바닥은 경쟁이 될 만한 다른 나무들이 아예 싹을 틔울 엄두도 못 낸다. 이런 가지들은 나무가 자라면서 아래부터 차츰 죽어서 떨어져 버린다. 사람이 일부러 가지치기를 해주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곧고 미끈한 나무를 만들어가는 셈이다.

전나무는 한곳에 모여 자라므로 사람 편에서 보면 베어서 이용하기 편하다. 다른 나무에 비해 재질이 조금 무른 것이 단점이지만, 사찰이나 관공서의 웅장한 건축물의 기둥으로 쓰기에 전나무만 한 장대재(長大材)인 나무도 흔치 않다. 실제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보관 건물인 수다라장, 양산 통도사, 강진 무위사의 기둥 일부 등이 전나무로 만들어졌다. 남한에서 숲으로 대표적인 곳은 오대산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이다. 계곡과 어우러져 수백 년 된 우람한 전나무가 옛 영광의 맥을 그대로 잇고 있다. 그 외에 경북 청도의 운문사, 전북 부안의 내소사 등 이름 있는 큰 사찰에 가보면 어김없이 전나무를 만날 수 있다. 사찰 부근에 자라는 전나무는 절을 고쳐 지을 때 기둥으로 쓰기 위하여 일부러 심은 것이 대부분이다.

전나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날에도 쓰임이 넓다. 한 해가 저물어 가면서 곳곳에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는 호랑가시나무도 쓰지만 전나무가 원조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목사는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어느 맑은 밤, 상록수 숲을 걸으면서 별빛에 비춰지는 숲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가족들에게 그때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집 안으로 나무를 가져와 하늘의 별처럼 촛불로 장식했다는 것이다. 또 전나무는 고급 종이 원료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목재의 속살은 대체로 황백색에 가까우나, 옛사람들이 ‘백목(白木)’이란 별칭을 붙일 정도로 거의 하얗다. 거기다 세포 하나하나의 길이가 다른 나무보다 훨씬 길다. 따라서 종이를 만들 때 탈색제를 조금만 넣어도 하얀 종이를 얻을 수 있고, 긴 세포는 종이를 더욱 질기게 해준다.

우리나라의 전나무 종류는 전나무 이외에 분비나무와 구상나무가 있다. 분비나무는 솔방울의 비늘 끝이 곧바르고, 구상나무는 뒤로 갈고리처럼 휜 것이 차이점이다. 수입하여 남부지방에 심고 있는 또 다른 전나무 종류로는 일본전나무라는 것이 있다. 우리 전나무와는 달리 일본 버선처럼 잎 끝이 갈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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