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피하고 싶은 마음
내게 가장 낯선 액세서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글라스였다. 멋으로 많이들 쓴다고 하지만 밝은 세상을 놔두고 왜 시야를 어둡게 만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선글라스가 유행을 할 때도, 외국에 나가거나 바닷가에 놀러갈 때도 구매 충동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부터 어두운 방 안에 있는 것보다 빛을 쬐는 것이 좋았다. 아무리 얼굴이 시커멓게 타도 햇빛이 부담스러운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그동안 열광했던 그 빛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몇 해 전부터 몸의 감각이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 이를 테면, 아침에 일어날 때 빛에 바로 적응되지 않아 한참동안 화장실 벽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또 거리를 걸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햇빛을 막느라 주변의 풍경을 놓치기 일쑤다. 왜 그런 것인지,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에 나오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하지 않은가. 태양은 원래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고, 정면으로 보았다간 눈이 멀 정도로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눈부심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이상 그것을 묻어둘 수만은 없게 된 ‘사건’이 생겼다. 햇빛이 눈부시다고 투덜거리는 걸 유심히 지켜보던 지인에게서 급기야 ‘노안’ 아니냐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나이 서른셋에 노안이 웬 말인가! 하지만 뒤이어 나온 그의 고백이 더 충격적이었다. 몇 해 전에 그는 이미 돋보기안경을 맞췄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는 아직 삼십대 후반이다. 그러고 보면 눈을 혹사시키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노안이 빨리 올 수 있다는 뉴스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는 내가 느끼는 눈부심이 노안의 신호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위기감이 엄습했다. 설마 나에게도 ‘노안’이 온 건가? 의혹을 풀고자 시내에서 알아준다는 안과에 찾아가 보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X 안과. 방마다 기계들로 빼곡히 차 있었다. 기계 앞에 앉아 있는 직원들이 환자보다 더 많았다. 그 방을 차례로 돌았다. 판때기에 이마를 바싹 대고 꽤 많은 사진들을 찍었다. 안경점에서 하는 것처럼 한쪽 눈을 가리고 숫자판을 짚어가며 시력검사도 받았다. 검사가 차례차례 진행될수록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의사에게 곧 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이윽고 필름을 살펴보던 의사는 말했다. “눈은 ‘정상 범위’ 안에 있습니다. 시력이 특별히 예전에 비해 나빠지진 않았는데요?” “그런데 왜 눈부신 거죠?” 그는 갸우뚱하더니 다른 이상은 없고, 안구가 무척 건조하다고 했다. “장시간 컴퓨터·독서·건조한 환경을 삼가실 것”이라고 적혀 있는 진료명세서, 그리고 히알큐 점안액(인공눈물) 한 병에 대한 처방전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왔다. ‘노안’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병원에 온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눈에 대한 새로운 관점
눈물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발생한다는 ‘안구건조증’. 그 원인은 누구나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주로 외부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컴퓨터 작업이나 독서 등 장시간 눈을 사용하게 만드는 습관, 콘택트렌즈에서 발생하는 마찰, 먼지가 많고 건조한 환경 등이 발병 원인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떠올리기 쉽지 않다. 게다가 당장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 지 막연하다. 인공 눈물을 넣는 것은 한계가 있고, 시각 매체를 끊는 것이나 건조한 환경을 피하는 것은 도시에 사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눈의 문제를 눈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다른 오장육부와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한의학은 보다 폭넓은 관점과 해법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왜 그럴까? 여기서 잠깐! 『동의보감』의 한 대목을 살펴보도록 하자.
오장육부의 정기는 모두 위로 올라가 눈에 주입됨에 따라 사물을 보는 기능이 생겨난다. 따라서 눈은 장부의 정기가 모여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신(腎)의 정기는 눈동자에 주입되고, 간(肝)의 정기는 검은자위에 주입되고, 심(心)의 정기는 혈락에 주입되고, 폐(肺)의 정기는 흰자위에 주입되고, 비(脾)의 정기는 안검(눈꺼풀)에 주입되는 것이다.
─『동의보감』, 「외형편·안(眼)」, 법인문화사, p.603
한의학에서 보는 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범위를 뛰어 넘는다. 신장은 눈동자고, 간은 검은자위고, 심은 핏줄, 폐는 흰자위, 비는 눈꺼풀이다. 눈을 몸의 특정 감각기관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관점에 따르면 눈은 온 몸이기도 하다. 그것이 무척 새롭게 느껴진다. 또한 우리는 ‘본다’고 하면 빛이 안구를 통해 굴절되어 시신경으로 전기 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을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한의학에서 ‘본다’는 것은 눈이나 시신경에만 국한된 행위가 아니다. 오장육부를 통해 온 몸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즉 외부의 물질을 몸 속 깊은 곳까지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온몸이 수행하는 가장 양적인 행위이다. 외부 대상을 식별, 분별하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보는 것을 수행하는 기관 중 눈은 가장 맑은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에 오장육부에서 만들어낸 정미로운 기운과 혈이 모인다. 그런 만큼 몸에 어떤 이상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이 눈이기도 하다. 감정이 상하거나 몸이 무리를 했을 때 눈이 가장 재빨리 신호를 보낸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 눈부심은 내 몸의 어떤 불균형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 힌트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속눈썹이 주먹을 쥐는 병: 도첩권모(倒睫拳毛)
속눈썹이 눈을 찌르는 도첩권모의 고통
돌이켜보면 서른 해 넘게 살면서 눈과 관련된 꽤 많은 병을 앓았다. 눈이 뻑뻑하고 가려운 것은 다반사였다. 간혹 다래끼가 날 때도 있었고, 환절기엔 결막염으로 눈물을 찔찔 흘리고 다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릴 적에 속눈썹이 눈을 찔러 고생을 했던 것이다. 당시 나한테 안과에 가는 것은 치과에 가서 이를 뽑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경험이었다. 렌즈에 반사된 눈의 깜박임을 가까이서 보고 있으면 차갑고 날카로운 도구가 눈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겁먹은 내가 반항하지 않도록 머리를 꽉 붙들고 핀셋으로 기형(?) 속눈썹을 일일이 뽑았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순순히 응하는 법이 없었다. 진료과정은 매번 몸싸움이 되었기에 무척 피곤했다.
그러한 ‘연례행사’를 치르는 것도 잠시, 아홉 살이 되던 해 급기야 나는 몸에 칼을 대게 되었다. 겁이 난다고 저항해 봐야 소용없었다. 학교에 결석계를 내고 1박2일 동안 입원 했다. 눈두덩이 지방을 영구적으로 잘라내어 속눈썹이 찌르는 것을 막는 수술, 그러니까 요즘은 미용의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그 흔한 ‘쌍꺼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과 실밥을 뽑는 모든 조처는 전신마취를 한 채로 진행되었다. 병실 안에서도 주사 바늘을 피해 간호사와의 몸싸움을 이어갔기에 취해진 극단적 조처였다. 비몽사몽간에 수술은 끝이 났다.
그리하여 나에게 남은 것은 몇 가지 단편적 기억들 뿐. 수술 후 눈이 째지도록 아팠던 것, 눈 부운 걸 친구들한테 보이는 게 부끄러웠던 것 등. 하지만 칼의 위력은 대단했다. 수술은 속눈썹이 향하는 방향을 한 방에 바꿨을 뿐 아니라 부수적인 효과(?)까지 가져왔던 것. 작은 눈이 커졌다. 그리하여 나는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통증이 없어지면서 속눈썹이 안으로 말려들어간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헛.... 눈이 커졌어... 눈이 아프지 않아!!
『동의보감』에서는 속눈썹 뒤집힘을 ‘도첩권모(倒睫拳毛)’라고 부른다. ‘아팠던’ 기억과는 상관없이 이제는 속눈썹(睫)이 거꾸러지고(倒) 털(毛)이 주먹을 쥔다(拳)는 그 명칭이 꽤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도첩권모는 왜 생기는 걸까? 『동의보감』에 따르면, 눈이 팽팽하게 당기면서 눈꺼풀이 오므라들기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눈꺼풀에 딸려 있는 속눈썹이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눈꺼풀이 오므라드는 걸까? 그것은 눈꺼풀에 상응하는 오장육부 가운데 비장이 삿된 기운을 받아서 그렇다. 그 삿된 기운은 무엇인가?
육륜(눈꺼풀)에 병이 생기는 원인은 뜨거운 음식을 많이 먹거나 다섯 가지 매운 음식을 즐겨 먹거나 먼 거리를 빨리 달리거나 배부르게 먹은 후 바로 잠을 자서 풍이 쌓이고 담이 막아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증상은 눈꺼풀이 벌겋게 붓고 흐릿해져서 잘 보이지 않으며, 눈물이 많이 나오고 속눈썹이 뒤집혀 눈을 찔러 껄끄럽고 아프다.
─『동의보감』, 「외형편·안(眼)」, 법인문화사, p.604
결국 삿된 기운은 외부의 사기(風), 혹은 내부의 적체된 담(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의학에서 눈의 문제는 모두 火의 문제, 즉 열증으로 나타난다. 차가운 기운은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위로 올라오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비장에 열이 나는 걸까? 먼저, 바람은 외부에서 들어온 차가운 기운인데, 양기가 튼튼하지 못하면 몸의 원기가 쫓겨나가면서 열을 발산한다. 또한 담에 의해 기혈 순환이 잘 되지 않을 때 열이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눈의 문제로만 보였던 속눈썹 찌름 현상은 비장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과거의 병증도 쓸모가 있다. 눈의 문제는 비위의 문제로도 풀 수 있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현재 나는 비위의 문제에 아직도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제 눈이 비장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음의 우두머리 비장, 혈맥의 근원 눈
비는 모두 음의 우두머리이고, 눈은 혈맥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비가 허하면 오장의 정기가 다 기능을 잃게 되어 밝게 하는 기를 눈으로 보내지 못한다. (...) 의사가 비위를 다스리지 않고 더불어 양혈養血하고 안신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병의 말단만 치료하고 근본은 치료하지 않는 것으로, 이러한 이치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동의보감』, 「외형편·안(眼)」, 법인문화사, p.606
사람의 활동을 만들어내는 ‘혈(血)’은 온 몸을 돌아다니며 흐름을 만들어내는 맑은 기운이다. 『동의보감』에는 혈이 없으면 볼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으며, 쥘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다고 했다. 이것은 음식물을 먹고 소화가 되어야 만들어진다. 그래서 비위의 기능이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비는 혈이 맥에서 넘치지도 모자라지 않으며 온 몸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조절한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비통혈(脾統血)’이라고 부른다. 즉, 혈을 맥 밖으로 넘치지 않도록 제약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비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 하면 출혈이 발생하거나 반대로 정체되어 피가 모자라게 된다. 왜 비장을 음의 우두머리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음에 해당되는 혈을 제한하고 움직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런 것이다.
눈 주위에는 수많은 혈맥이 흐르고 있다. ‘음 중의 우두머리’인 비에서 만들어진 혈은 결국 눈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래서 사물을 볼 수 있게 만든다. 비가 튼튼하지 못 하면 혈이 눈으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여 눈이 어둡게 된다. 아침에 눈부셔 눈을 뜨기 힘든 것도 결국 혈이 충분하지 못한 것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싶다. 기혈이 활발발하게 돌아가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체된 기운을 돌려 눈을 밝게 하기 위해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눈과 관련된 혈자리는 무척 많다. 경맥이 눈 주위를 흐르는 만큼 눈을 중심으로 하여 정명, 찬죽, 동자료, 태양, 사죽공, 사백, 승읍 등을 찾을 수 있다. 머리에 침을 찌르기가 부담스럽다면 손으로 직접 마사지를 해주어도 도움이 된다. 그 외에도 재미있는 혈자리가 있어서 소개할까 한다. 앞에서 언급한 비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기혈 순환과 눈 건강에 도움이 되는 혈자리이다.
광명혈은 바로 여기!
광명혈. 밝을 광(光), 밝을 명(明). 이름만 들어도 눈이 밝아지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는 광명혈은 발에서 눈을 향해 흐르는 족소양담경 가운데 경맥을 이어주는 낙혈이다. 외부의 차가운 사기(風)를 제거하여 인후나 기관지염, 중이염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정체된 몸의 습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데 도움을 주며, 간담을 서로 소통시켜 눈을 밝게 한다. 야맹증, 시신경위축, 결막염을 비롯한 모든 눈병의 필수혈로 알려져 있다.
위치는 종아리뼈의 앞쪽인데 복사뼈에서 5치 위에 놓여 있어 찾기도 어렵지 않다. 눈이 건조하거나 피로함을 느낄 때, 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곳을 눌러보라. 눈의 광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틈틈이 이곳을 눌러준다면 눈병에 대한 예방효과도 분명 있을 터! 지금 당장 광명혈을 눌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눈부심’은 나에게 걱정꺼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하니 호기심은 걱정으로 변질되었다. 특히 노안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은 정말 쓸데없는 기우가 아니었나 싶다. 지나친 걱정 근심은 건강에 해롭다. 특히 눈 건강에 말이다. 삼십대에 노안을 걱정하기 이전에 패기를 가질 것! 그것이 몸에 대한 지나친 걱정을 내려놓은 최근에 든 생각이다. 눈부심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눈의 반응이다. 안과 진료를 통해, 그리고 『동의보감』을 찾아본 후 나온 결론이다. 대신 새로운 질문이 생겨났다. “어떨 때 나는 잘 볼 수 있는 걸까? 잘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공부를 일상을 살아 나가면서 체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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