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穴學/혈자리 서당

중봉, 피로야 가라

초암 정만순 2016. 9. 16. 17:02



중봉, 피로야 가라



잠은 소중해


“다크써클이 광대뼈까지 내려앉았네요.” 


감성 2학년 학인 한 분이 내게 던진 비수 같은(?) 말이다. 얼굴 한가득 걱정스런 표정을 감추지 않고 다시 한마디 던지신다. 


“포성 공부가 사람 잡네요. 쯔쯧”


이번엔 혀까지 차신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머뭇거리다 부리나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베어하우스로 향한다. 길을 걸으면서도 머릿속에는 가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한다. 독송에서 강의할 방제 발제해야 하고, 혈자리 원고 써야 하고, 『천 개의 고원』 세미나 발제해야 하고, 목성에서 강의할 『동의보감』 원고 써야 하고…. 두 주간 나에게 몰려 있는 일들로 머리가 복잡하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난 것일까?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누군가에게는 의사다. 그 사람의 표정이나 마음을 읽고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한마디를 건네주니 말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어. 오늘 꼭 해야 할 일만 하고 집에 가서 쉬자.”



나는 분주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쓴다. 일이 번다하게 있으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순서 정하기도 힘들다. 방제 발제를 하다가도, 아! 원고도 써야 하는 데 걱정을 하고, 그러다 보니 마음은 요동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아니야, 모든 걸 내려놓고 우선 쉬자. 지금 내겐 휴식이 필요해.”


오늘 꼭 해야 할 일이란 단서를 붙일 때가 아니다. 몸은 계속해서 열이 나고 머리까지 어지럽다. 나는 퍼뜩 가방을 싸고 베어하우스를 나선다. 그렇게 나는 꿀잠을 잤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꿀잠을 자고 나니 몸은 가뿐하다. 머리도 맑고 산뜻하다. 꿀잠이 나의 피로를 몰아낸 것이다. 이즈음 궁금하다. 잠은 피로를 어떻게 푸는 것일까? 오늘은 이 궁금증! 잠과 피로의 관계, 또 그것이 오늘의 혈자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탐사해보자. 


오늘의 혈자리를 향해 고고~



간장혈과 잠


사람은 누구나 잠을 잔다. 하루에 일곱, 여덟 시간을 자니 인생의 삼 분의 일은 잠들어 있는 셈이다. 옛날에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이 있었던 걸 보면 잠은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생리적 본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잠은 낮 동안의 활동으로 피로해진 몸을 쉬게 한다. 잠시 쉬면서 노폐물도 제거하고 해독도 하면서 몸을 재생시킨다. 이것은 간의 작용과 관련이 깊다. 


『소문·오장생성론』에 “사람이 누워 휴식할 때에는 혈액이 간(肝)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왕빙(王氷)은 “간은 혈을 저장하고 심은 혈을 운행시킨다. 사람이 움직일 때는 혈액이 모든 경맥을 운행하고, 사람이 누워 휴식할 때는 혈액은 간장으로 돌아간다. 간이 혈해를 주관한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배병철, 『기초한의학』, 성보사, 163쪽


우리가 누워서 잠을 자면서 휴식할 때 간은 혈액을 저장하는데 이것을 간장혈(肝藏血)이라고 한다. 간은 반드시 일정량의 혈액을 저장해야만 정상적인 소설기능을 유지한다. 이것은 혈액을 우리 몸의 말초부위까지 운반하기 위해서는 간에 혈이 충분히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달리 얘기하면 우리 몸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는 잠을 자야 한다는 것. 만약 잠을 자지 않고 밤에도 낮과 같이 활동하게 되면 간은 쉬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혈을 저장하지 못해 우리 몸은 혈 부족 사태가 벌어진다. 그렇다면 혈은 우리 몸에 어떤 작용을 할까?


혈은 영기(營氣)가 되어 맥내(脈內)를 돌아다닌다. 눈은 혈을 얻어야 볼 수 있고, 발은 혈을 얻어야 걸을 수 있으며, 손바닥은 혈을 얻어야 쥘 수 있고, 손가락은 혈을 얻어야 잡을 수 있다.


─『동의보감』, 「내경편」, ‘혈’(血) 법인문화사, 300쪽


혈은 우리가 먹은 음식물의 정미로운 기운이다. 이것을 일러 영기(營氣)라고 하는데, 이 기운이 혈맥을 돌면서 우리 몸을 영양하고 자윤한다. 이렇게 맥을 따라 순행하는 혈은 장부와 피부, 근골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우리 몸의 감각과 운동기능을 영양하고 자양한다. 그래서 혈이 풍부하면 몸이 튼튼해지고 혈이 부족하면 몸이 쇠약해진다. 


장경악은 “사람에게 형체가 있는 것은 오로지 혈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혈이 부족하면 형체가 연약해지고 혈이 고갈되면 형체가 무너진다”고 하였다.(배병철, 『기초한의학』, 성보사, 280쪽) 간에 혈액이 충분하면 감각과 운동기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만, 간혈이 부족하면 사지가 저리고 무감각하며 관절의 굴신이 여의치 않다. 또한 머리와 눈을 자양하지 못해 현기증이 나고 눈앞이 아른거린다. 두 눈은 건조하여 따끔거리고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 밖에도 혈이 허하면 쉽게 건조해져 피부가 가렵고, 근육 경련이 일어난다. 그야말로 피곤한 몸이 되는 것이다.


간장혈이 안되니?


이제야 말할 수 있겠다. 잠은 혈과 죽고 못 사는 사이다. 왜냐? 잠을 자야 혈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로와 잠, 또한 막역한 사이다. 왜냐? 자면서 몸을 쉬게 하니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것이다. 어떻게? 간장혈하면서 몸을 영양하고 자윤하는 것이다.



꿀잠 자는 법


『동의보감』에는 편안하게 잠자는 법도 나와 있다. 이왕 잠 얘기가 나왔으니 『동의보감』이 제시하는 꿀잠 자는 법도 알려드린다. 


첫 번째, 꿀잠 자는 법은 ‘옆으로 누워서 무릎을 구부리고 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심기를 북돋아 주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몸을 펴고 자면 잡귀가 달려든단다. 공자가 ‘죽은 사람처럼 똑바로 누워 자지 않는다’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렇게 하룻밤 누워 자면서 다섯 번 정도 돌아눕는데, 두 시간에 한 번씩 돌아눕는 것이 좋다고 한다.


─ 『동의보감』, 「내경편」, ‘몽’(夢) 법인문화사, 333쪽 참조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듯이 잠을 자는 모습 역시 각양각색이다. 잠자는 모습에서 인류의 진화를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원시시대에는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없었다. 왜? 혹시 있을지 모를 맹수의 공격, 급작스런 자연재해를 맞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원시인들은 외부의 자극에 즉각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어떻게 잤을까? 엎드려서 잤단다. 배를 땅에 깔고 잤던 것이다. 이는 우리 몸을 흐르는 경락으로도 알 수 있다. 외부의 공격을 막아내는 등이나 몸 바깥쪽으로 양경(陽經)이 흐르고, 내부 장기가 들어 있는 복부로는 주로 음경(陰經)이 흐른다.


여러분은 어떤 수면자세를 취하세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웅크리는 자세를 취하는데, 이때 양경으로 방어를 하는 셈이다. 따라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려면 당연히 엎드려 자거나 약간이라도 모로 누워 자는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똑바로 누워 자게 되면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들이 바로 노출되기 때문에 쉽게 위험에 빠지고 재빠르게 방어하기도 어렵게 된다.(김홍경, 『내 몸을 살리는 역설 건강법』, 21세기북스, 300~301쪽 참조) 


이것은 우리 몸에 외사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호위하는 위기(衛氣)와도 연결된다. 위기는 우리 몸을 하루 50바퀴 도는데, 낮에는 맥 밖에서 신체의 표면을 보호하고 외사의 침입을 막으면서 25바퀴 돈다. 그러다 밤이 되면 맥 안으로 들어가 나머지 25바퀴를 돈다. 그러니 잠을 잘 때는 위기가 맥 안으로 들어가 외부의 공격에 무방비상태가 된다. 하여 잠을 잘 때 몸을 구부려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밖에 『동의보감』이 일러주는 꿀잠 자는 법은 다음과 같다. 


둘째, ‘낮에 잠을 자지 말라.’ 낮에 자면 기운이 빠진다. 


셋째, ‘밤에 잘 때는 늘 입을 다물고 자는 습관을 들여라.’ 입을 벌리고 자면 기운이 입에서 빠져나가고, 사기가 입으로 들어와서 병이 생기기 쉽다. 


넷째, ‘더울 때는 얇은 이불을 덮고, 추울 때는 두텁게 덮어라.’ 밤에 잘 때 편안하지 않은 것은 이불이 두꺼워 열이 몰렸기 때문인데, 이때는 빨리 이불을 걷고 땀을 닦은 다음, 얇은 이불로 갈아야 한다. 반대로 너무 얇은 것을 덮어 추울 때는 더 덮어주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다섯째, ‘배가 고파서 잠이 오지 않으면 조금 더 먹고, 배가불러 잠이 오지 않으면 차를 마시고 조금 돌아다니거나 앉았다가 누워라.’


여섯째, ‘잠을 잘 때에는 등불을 꺼라.’ 등불을 켜놓으면 정신이 불안해진다.


일곱째, ‘똑바로 누워서 손을 가슴에 올려놓고 자지 마라.’ 손을 올려놓으면 반드시 가위눌리어 잘 깨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 가위눌렸을 때는 불을 켜지 말고, 앞에 가까이 가서 급히 부르지 말아야 한다. 다만 가슴 위에 올린 손을 내려준 다음, 천천히 불러서 깨워야 한다.


─『동의보감』, 「내경편」, ‘몽’(夢) 법인문화사, 333~334쪽 정리



잠에 관한 몇 가지 궁금증


이렇듯 『동의보감』에는 편안한 잠을 자는 법도 실려 있지만, 잠에 관해 궁금해하는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지금 우리도 궁금해 하는 것들이다.
 

첫 번째 질문, 왜 노인은 밤에 잘 자지 못하고, 젊은이는 낮에 잘 자지 못하는가?
젊은이는 기혈이 왕성하고 근육이 윤택하며 기가 도는 길이 잘 통하기 때문에 영위(營衛:영혈과 위기)가 정상으로 잘 돈다. 그러므로 낮에는 정신이 맑고 밤에는 잘 잘 수 있다. 반면에 노인은 기혈이 쇠약하고 근육이 마르고 기가 도는 길이 막혀 오장의 기가 서로 충돌하게 되고 영혈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위기가 속으로 들어가서 이를 대신한다. 때문에 낮에도 정신이 맑지 못하고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 사람이 누워 자기를 좋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런 사람은 장위(腸胃)가 비대하고 피부가 습해서 근육이 풀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위가 비대하면 위기가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고, 피부가 습하면 근육이 풀리지 않아 위기의 운행이 더디다. 따라서 위기가 음분(陰分)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기가 맑지 못하면 눈이 감겨지므로 눕기를 좋아한다.


세 번째 질문, 잠을 많이 자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잠을 많이 자는 것은 양이 허(虛)하고 음이 성한 것이다.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음이 허하고 양이 성한 것이다. 벽을 향해 자는 것은 음증(陰證)에 속하고, 원기(元氣:본디 타고난 기운)가 허한 것이다. 밖을 향해 자는 것은 양증(陽證)에 속하고, 원기가 실(實)한 것이다.


─『동의보감』, 「내경편」, ‘몽’(夢) 법인문화사, 332~333쪽 정리


잠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이 풀렸는가? 이제 오늘의 혈자리를 만나보자.



중봉, 피로 적중!


중봉의 ‘중(中)’은 적중한다는 뜻이다. ‘봉(封)’은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기 위해 높이 쌓아 올린 흙을 말한다. 그래서 그것 자체로 경계의 뜻이 있다. 중봉은 안쪽 복사뼈 앞쪽의 가장자리 움푹 들어간 곳에 있는데, 발목 중앙에 위치한 해계와 안쪽 복사뼈 대각선 약간 앞에 있는 상구의 사이에 있다. 해계와 상구라는 두 개의 봉 사이에 있는 중봉. 혈의 위치를 따라 이름이 되었다. 


또 다른 뜻도 있다. ‘봉(封)’은 제후에게 영토(土)를 주어, 그 지방에 가서 다스리게(寸) 한 데서 봉(封)하다의 뜻이 있다. 따라서 중봉은 적중하여 다스리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일까? 『침구갑을경』에는 간경(肝經)에 이상이 있을 때 경맥이 이곳에서 폐색되므로 간경의 반응점으로 활용한다고 하였다. 그만큼 간경의 기가 잘 모인다는 뜻이다. 중봉은 족궐음간경의 경혈(經穴)로서 오행상 금(金)에 속하니 이를 더더욱 뒷받침한다. 금 기운은 수렴하는 기운이니 간기(肝氣)를 거두어들여 모집하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이 간은 혈액을 저장하고 혈량을 조절하는 중요한 장기다. 간이 혈액을 저장하는 것은 간기(肝氣)가 기기(氣機)의 소설과 조달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즉 간장혈과 간주소설(간주소설에 대해서는 ‘행간, 걸으면서 사이 만들기’를 참고하시라)의 공동 작업으로 혈류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소설 하기 위해서는 장혈이 되어야 하고 장혈이 되어야 소설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 작용은 간의 양기(陽氣)를 쓰는데, 이것은 쉽게 항진되거나 상역(上逆: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하고 울결된다. 이에 반해 간음(肝陰), 곧 간혈(肝血)은 쉽게 허약해지는 특징이 있다. 간혈은 간을 자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신을 영양하니 부족하기 쉽다. 


우리가 피로를 느끼는 것도 혈이 온몸을 자양하지 못할 때 느낀다. 눈이 뻑뻑하거나 어지럽고 사지가 축 처진다. 그때 우리는 그저 눕고 싶기만 하다. 자연스럽게 몸이 장혈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양생이 된다. 중봉은 이때 간기를 거두어 모으는 작용, 장혈이 잘되도록 돕는다. 이는 혈부족 사태로 피로해진 몸을 빠르게 재생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중봉이 이렇게 피로에 적중해 간장혈을 돕더라도 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잠을 발명하신 님아(?) 고마워요.^^


따라서 잠은 피로를 푸는 명약이다. 잠은 육체적 휴식뿐만 아니라 정신적 휴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잠에 빠지면 몸과 마음을 모두 잊어버리게 된다. 육체적으로는 간장혈하면서 피로를 풀고, 마음 또한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 몸과 함께 쉰다. 그렇다. 휴식이 필요할 땐 잠을! 또 한 가지 잊지 말자. 피로 적중, 중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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