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 …… ㉘막국수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강원도서 많이 나는 메밀이 만난 지역민 別味
심심하고 특색 없는듯해도 지역마다 개성 다른 '막국수'
자극적인 맛 더해지며 강원도 관광음식으로 발전
멀고 험한 곳에는 원형의 맛 남아있어
나는 막국수 문화권에 있었다. 때는 스물일곱 살 봄이었다. 20대에 마땅히 한 번은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도보 여행을 떠났다. 출발지는 홍천, 목적지는 설악산 너머 속초였다. 총 100㎞ 되는 그 길에서 나는 수도 없이 많은 막국수 집을 목격했다. 굳이 지도를 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느 순간 국도변에 막국수 집이 등장하면 그것은 강원도에 있다는 의미, 최소한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막국수는 집에서 구하기 쉬운 동치미 국물에 강원도에 많이 자라는 메밀로 만든 투박한 메밀면을 말아 먹던 것이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지금 이토록 강원도에 막국수 집이 많은 것은 강원도에 내국인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카지노가 들어선 것과 비슷한 사연이 있다.
막국수는 집에서 구하기 쉬운 동치미 국물에 강원도에 많이 자라는 메밀로 만든 투박한 메밀면을 말아 먹던 것이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지금 이토록 강원도에 막국수 집이 많은 것은 강원도에 내국인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카지노가 들어선 것과 비슷한 사연이 있다.
![막국수](http://travel.chosun.com/site/data/img_dir/2016/06/01/2016060102242_0.jpg)
서울과 강릉을 잇는 영동고속도로는 1971년 악명 높은 왕복 2차선으로 준공되어 2001년 4차선으로 확장이 완료되었다. 그 30여 년 사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사람들은 설악산과 강릉 경포대를 오갔다. 속 터지는 왕복 2차선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를 이용한 이도 부지기수였다.
1981년 열린 그 시대 대표적 관제 행사 '국풍81'에 춘천의 대표 음식으로 막국수가 소개되면서 막국수는 강원도의, 특히 춘천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여행을 떠나요'를 부르며 80년대 호황을 누릴 무렵, 컬러 텔레비전 시대의 미디어들은 춘천 막국수 집을 경쟁적으로 담아갔고 20여 년 전인 1995년부터는 춘천 막국수 축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제2회 춘천 막국수 축제에서 명가로 선정된 후 아예 이름을 바꾼 '명가 막국수'에 가면 우선 가족 단위 손님이 많은 것이 눈에 띄는데 대부분은 관광객이다. 남녀노소, 특히 외지인을 끌어들이려면 필연적으로 맛이 강해진다. 이 집의 막국수에는 참기름과 달콤한 양념장, 고소한 김 가루가 듬뿍 올라가 있다. 그 막국수를 비벼 입안에 넣는 순간 잘 만든 대중가요를 듣는 듯한 단맛과 고소한 맛이 미각을 사로잡는다. 이 외에도 춘천 사람들이 자주 간다는 '시골 막국수' '유포리 막국수' '남부 막국수' 등도 제각각 개성이 있지만 맛의 큰 줄기는 비슷하다.
춘천의 막국수 집들은 2009년 새로 뚫린 서울~춘천 고속도로 덕분에 더욱 가기 좋아졌다. 4인 가족이 수육을 시키고 막걸리까지 마셔도 6만원이면 될 저렴한 가격은 매력적이다. 춘천을 지나 설악산을 넘기 전,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를 지날 때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몇 해 전 가게를 신축해 훨씬 말끔해진 '남부면옥'이다. 본래 원주민의 별식에서 관광 음식으로 발전한 막국수의 원형을 보고 싶다면 관광객이 잘 가지 못하는, 멀고 험한 곳에 가면 된다. 그런 곳 중 하나가 인제 남부면에서 시작한 남부면옥이다. 이곳의 막국수 면발은 그 느낌이 맑다. 그 위에 올라간 양념도 과하지 않아 바쁜 젓가락질에도 물리지 않는다. 보들보들한 수육과 청량한 백김치, 분명 이 집 저녁상에도 올라갈 것이 분명한 잘 삭은 배추김치는 혼자 아껴두고 먹고 싶을 정도다. 막국수 한 그릇에 5000원만 받으니 오히려 돈을 낼 때
미안하기까지 하다.
인제에서 멀지 않은 양구 산기슭에는 '광치 막국수'가 있다. 산을 넘고 터널을 지나 도대체 이런 곳에 막국수 집이 있긴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홀연히 등장한 초인처럼 갑자기 인가 사이로 '광치 막국수'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민들레를 갈아 부친 민들레전은 맛이 쓰고 쨍하며 꾸밈이 없다. 이 집 역시 오래 묵은 김치와 백김치, 삭은 갓김치를 수육과 함께 낸다. 옛날 봉평장을 넘나들던 보부상들이 먹었을 것 같은 맛이다.
양구와 인제를 지나 시원하게 뚫린 터널을 지나면 바로 속초와 양양으로, 태백산맥의 동쪽 영동 지방이다. 이 지역 막국수는 영서 지방과 다른 계파를 이룬다. 우선 바다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가자미식해가 막국수 양념과 수육에 함께 나온다. 주문진의 '신리면옥'과 '대동면옥'에 가면 전형적 영동식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막국수 자체만으로는 춘천에서 먹던 것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수육에 딸려 나오는 가자미식해를 보면 여기가 설악산 너머 동해 근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두 집 중 신리면옥에 가면 작은 방에 들어가거나 마루에 자리를 잡고 엉거주춤하게 앉아 옛날 느낌으로 빠르게 먹어야 제맛이고, 건물을 크게 올린 대동면옥에 가면 편하게 앉아 느긋하게 국수 가락을 음미하며 새콤하고 녹진한 가자미식해를 넉넉히 올려 보드라운 수육을 먹어야 한다. 양양으로 올라가면 막국수를 팔아 미술관같이 으리으리한 건물을 세운 실로암 막국수가 있고 그 위 화진포에는 백촌 막국수가 이름을 날린다.
동해를 찍고 서울 근교, 용인 수지 고기리에 홍천 장원 막국수의 분점인 동명의 '장원 막국수'가 있다. 방송 탓에 늘 손님이 줄을 서는 이 집에서는 '장원' 자가 붙은 집에서 공유한다는 양념장 얹은 비빔 막국수와 제주 흑돼지를 쓴 수육을 먹어야 한다.
서울로 들어와 가야 할 곳은 춘천산 막국수 집들의 분점이 아니라 잠실의 '남경 막국수'다. 얼마 전 결혼식을 올린 새신랑이자 구(舊)노총각이 혼자 주방에서 막국수를 삶고 늙은 어머니가 홀을 맡은 이 집은 주차장 크게 딸린 여느 막국수 집에 비하면 지나치게 단출하다.
주인장이 맛없는 막국수에 실망하고 진부에 있던 할머니의 조리법을 전수받아 본인이 직접 가게를 차린 것이 2011년 5월. 여전히 한쪽 귀에는 블루투스 헤드셋을 끼고 손님 전화를 받으며 두 손으로는 바쁘게 면을 삶아 낸다. 그리고 마침내 메밀 특유의 고고한 향을 맡으며 국수를 입에 욱여넣으면 밖으로는 좁은 이면 도로, 더 나아가면 왕복 10차로가 횡횡하는 서울 한복판이지만 마음은 높은 산을 넘고 좁은 골짜기를 넘으며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밤을 잠식한 메밀 꽃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하다. 투박하지만 섬세한 노총각 마음처럼, 인적 드문 국도변의 이름 모를 들꽃처럼, 눈을 감으면 생각나고 눈을 뜨면 그리운, 막국수 맛이다.
1981년 열린 그 시대 대표적 관제 행사 '국풍81'에 춘천의 대표 음식으로 막국수가 소개되면서 막국수는 강원도의, 특히 춘천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여행을 떠나요'를 부르며 80년대 호황을 누릴 무렵, 컬러 텔레비전 시대의 미디어들은 춘천 막국수 집을 경쟁적으로 담아갔고 20여 년 전인 1995년부터는 춘천 막국수 축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제2회 춘천 막국수 축제에서 명가로 선정된 후 아예 이름을 바꾼 '명가 막국수'에 가면 우선 가족 단위 손님이 많은 것이 눈에 띄는데 대부분은 관광객이다. 남녀노소, 특히 외지인을 끌어들이려면 필연적으로 맛이 강해진다. 이 집의 막국수에는 참기름과 달콤한 양념장, 고소한 김 가루가 듬뿍 올라가 있다. 그 막국수를 비벼 입안에 넣는 순간 잘 만든 대중가요를 듣는 듯한 단맛과 고소한 맛이 미각을 사로잡는다. 이 외에도 춘천 사람들이 자주 간다는 '시골 막국수' '유포리 막국수' '남부 막국수' 등도 제각각 개성이 있지만 맛의 큰 줄기는 비슷하다.
춘천의 막국수 집들은 2009년 새로 뚫린 서울~춘천 고속도로 덕분에 더욱 가기 좋아졌다. 4인 가족이 수육을 시키고 막걸리까지 마셔도 6만원이면 될 저렴한 가격은 매력적이다. 춘천을 지나 설악산을 넘기 전,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를 지날 때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몇 해 전 가게를 신축해 훨씬 말끔해진 '남부면옥'이다. 본래 원주민의 별식에서 관광 음식으로 발전한 막국수의 원형을 보고 싶다면 관광객이 잘 가지 못하는, 멀고 험한 곳에 가면 된다. 그런 곳 중 하나가 인제 남부면에서 시작한 남부면옥이다. 이곳의 막국수 면발은 그 느낌이 맑다. 그 위에 올라간 양념도 과하지 않아 바쁜 젓가락질에도 물리지 않는다. 보들보들한 수육과 청량한 백김치, 분명 이 집 저녁상에도 올라갈 것이 분명한 잘 삭은 배추김치는 혼자 아껴두고 먹고 싶을 정도다. 막국수 한 그릇에 5000원만 받으니 오히려 돈을 낼 때
미안하기까지 하다.
인제에서 멀지 않은 양구 산기슭에는 '광치 막국수'가 있다. 산을 넘고 터널을 지나 도대체 이런 곳에 막국수 집이 있긴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홀연히 등장한 초인처럼 갑자기 인가 사이로 '광치 막국수'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민들레를 갈아 부친 민들레전은 맛이 쓰고 쨍하며 꾸밈이 없다. 이 집 역시 오래 묵은 김치와 백김치, 삭은 갓김치를 수육과 함께 낸다. 옛날 봉평장을 넘나들던 보부상들이 먹었을 것 같은 맛이다.
양구와 인제를 지나 시원하게 뚫린 터널을 지나면 바로 속초와 양양으로, 태백산맥의 동쪽 영동 지방이다. 이 지역 막국수는 영서 지방과 다른 계파를 이룬다. 우선 바다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가자미식해가 막국수 양념과 수육에 함께 나온다. 주문진의 '신리면옥'과 '대동면옥'에 가면 전형적 영동식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막국수 자체만으로는 춘천에서 먹던 것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수육에 딸려 나오는 가자미식해를 보면 여기가 설악산 너머 동해 근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두 집 중 신리면옥에 가면 작은 방에 들어가거나 마루에 자리를 잡고 엉거주춤하게 앉아 옛날 느낌으로 빠르게 먹어야 제맛이고, 건물을 크게 올린 대동면옥에 가면 편하게 앉아 느긋하게 국수 가락을 음미하며 새콤하고 녹진한 가자미식해를 넉넉히 올려 보드라운 수육을 먹어야 한다. 양양으로 올라가면 막국수를 팔아 미술관같이 으리으리한 건물을 세운 실로암 막국수가 있고 그 위 화진포에는 백촌 막국수가 이름을 날린다.
동해를 찍고 서울 근교, 용인 수지 고기리에 홍천 장원 막국수의 분점인 동명의 '장원 막국수'가 있다. 방송 탓에 늘 손님이 줄을 서는 이 집에서는 '장원' 자가 붙은 집에서 공유한다는 양념장 얹은 비빔 막국수와 제주 흑돼지를 쓴 수육을 먹어야 한다.
서울로 들어와 가야 할 곳은 춘천산 막국수 집들의 분점이 아니라 잠실의 '남경 막국수'다. 얼마 전 결혼식을 올린 새신랑이자 구(舊)노총각이 혼자 주방에서 막국수를 삶고 늙은 어머니가 홀을 맡은 이 집은 주차장 크게 딸린 여느 막국수 집에 비하면 지나치게 단출하다.
주인장이 맛없는 막국수에 실망하고 진부에 있던 할머니의 조리법을 전수받아 본인이 직접 가게를 차린 것이 2011년 5월. 여전히 한쪽 귀에는 블루투스 헤드셋을 끼고 손님 전화를 받으며 두 손으로는 바쁘게 면을 삶아 낸다. 그리고 마침내 메밀 특유의 고고한 향을 맡으며 국수를 입에 욱여넣으면 밖으로는 좁은 이면 도로, 더 나아가면 왕복 10차로가 횡횡하는 서울 한복판이지만 마음은 높은 산을 넘고 좁은 골짜기를 넘으며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밤을 잠식한 메밀 꽃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하다. 투박하지만 섬세한 노총각 마음처럼, 인적 드문 국도변의 이름 모를 들꽃처럼, 눈을 감으면 생각나고 눈을 뜨면 그리운, 막국수 맛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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