建康 散步/증상학

통증

초암 정만순 2016. 1. 12. 08:58

통증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맹장염 때문에 모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벌써 20년쯤 전의 일이다. 그곳에선 심장이 멎고 뇌혈관이 터져야 ‘대우’ 받는 것일까? 열 시간이 넘도록 응급실 한 귀퉁이에서 이를 악다물고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예리한 칼로 내장을 북북 찢어 발기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죽지 않으니 호들갑 그만 떨라”고 야단쳤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나쁜 의사다. 자기 가족이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면 최소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통증이란 신체에 가해지는 외부적 자극이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 구석구석에는 통증을 느끼는 신경 섬유가 분포돼 있다. 물리적, 화학적, 열(熱) 자극이 전달돼 이 섬유가 흥분하게 되면, 그것이 말초신경-척수-뇌 시상부-뇌 피질로 전달돼 비로소 아프다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통증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다.

누구나 통증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통증은 의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리 몸의 이상을 알려주는 신호 기능이다. 맹장염 통증이 그토록 극심한 것은 복막염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으니 서둘러 수술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또 맨발로 유리조각을 밟자마자 발을 떼서 물러나는 것도 통증의 경고 때문이다. 만약 당뇨병 때문에 발의 통증을 못 느낀다면 유리조각을 더 깊이 더 많이 밟아 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결국 급성 통증은 앞으로 닥칠 더 큰 조직의 손상을 예방하게 해주는 고마운 경고인 셈이다. 더군다나 통증의 원인이 사라지면 고통도 신속하게 사라지므로 임상적으로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 통증이다. 두통, 요통, 각종 신경통, 관절통, 어깨통증(오십견) 등이 대표적 만성 통증이며 그 밖에 근근막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섬유근육통 같은 비교적 생소한 이름의 통증도 있다. 만약 그 옛날, 맹장염에 걸렸을 때와 같은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면.... 아마도 지옥이 그럴 것 같다.

 

 

두통, 요통, 신경통 같은 만성 통증은 너무 흔하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편두통 등이 심하면 우울증, 불면증, 불안증 같은 정신과적 문제가 흔히 나타나며, 사람의 성격과 인생관까지 변하게 된다. 또 대상포진 후 나타나는 신경통은 산통(産痛) 못지 않게 극심하다. 두통이나 신경통 때문에 개두(開頭) 수술을 받는 환자도 드물지 않고, 통증이 너무 심해 차라리 다리 등 통증 부위를 잘라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도 있다고 한다. 제3자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근근막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섬유근육통 같은 생소한 병의 고통은 두통 등과 비할 바가 아니다. 두통이나 신경통 등은 그래도 원인과 치료법이 비교적 뚜렷하다. 아프면 어떻게라도 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증후군’이란 이름이 붙은 이 ‘요상한’ 병들은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치료를 받아도 잘 낫지 않는다. 급성통증에 잘 듣는 진통제나 치료법도 효과가 없거나 효과가 있어도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게 되고, 심한 경우 사회 생활을 못하거나 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두통 요통 등에 관한 정보는 비교적 손 쉽게 접할 수 있으므로 이 장에선 근근막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섬유근육통 세가지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근근막통증증후군은 특별한 이유없이 목과 어깨 등 근육이 뻐근하게 아픈 병으로, 통증클리닉을 찾는 가장 흔한 이유가 된다. 우리 몸은 350여개 근육의 유기적인 동작으로 움직인다. 체중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이 근육은 잘못된 자세, 외부의 충격,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쉽게 수축되며, 이렇게 수축된 상태가 풀리지 않고 굳어지면 근섬유라 부르는 ‘근육결’ 일부가 띠처럼 단단하게 변한다. 단단한 근육결 속에 있는 근육에는 자연히 피가 잘 통하지 않게 되고, 이곳에 통증 신경을 자극하는 세르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이 처음 생긴 곳을 ‘방아쇠 포인트’ 또는 ‘통증 유발점’이라고 하는데, 그곳을 누르면 마치 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심한 압통(壓痛)이 느껴지며, 손으로 만져보면 근육 속에 볼펜 심 같은 게 들어있는 느낌이 든다.

근근막통증증후군은 초기에 적절히 치료하면 비교적 쉽게 치료가 된다. 통증유발점을 찾아 그곳의 근육을 풀어주는 스테로이드제 등을 주사하는 게 기본 치료법이다. 이 주사는 몹시 아프지만 효과 만큼은 확실하다. 뭉쳐진 근섬유를 풀어주기 위해 전기나 초음파로 자극하거나, 뜨거운 물수건을 대거나, 마사지를 하는 등 물리치료도 효과가 있다. 반복되는 손상이나 사고, 짧은 팔다리 등 신체의 구조적 문제, 목 또는 허리 디스크, 치아의 부정교합, 나쁜 자세, 만성 피로, 불충분한 수면, 우울증, 급-만성 감염 등도 병을 지속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이 중 하나 이상이 통증의 원인이라고 판단되면 찾아서 교정해 줘야 한다.

 

그러나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병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다. 통증 때문에 자세가 더 나빠지고, 그로 인해 비정상적 근육수축의 범위가 늘어나서, 통증유발점이 자꾸 새로 생기기 때문이다. 발병 초기엔 통증만 문제가 되지만 병이 악화되면 근육이 약화돼 운동능력이 떨어지며, 관절이 굳어져 운동범위가 축소되고, 우울증과 수면장애도 초래된다. 감각장애, 눈물, 땀, 현기증, 이명 등과 같은 자율신경 이상 증상도 나타난다.

 

근근막통증증후군의 예방을 위해선 무엇보다 자세를 곧게 하고, 스트레칭을 해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오래 있으면 근육이 수축되므로 수시로 자세를 바꿔 줘야 하며, 컴퓨터 작업 등을 할 때는 적절하게 휴식을 취해야 한다. 스트레칭을 할 때는 근육결이 놓인 방향대로 근육이 완전히 펴질 수 있게 하면 효과가 더 좋다. 어깨 근육 등을 눌렀을 때 몹시 아프고 알갱이처럼 딱딱하게 뭉쳐져 있는 곳이 있다면 손바닥이나 엄지손가락 강하게 눌러주는 것도 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다.

 

근육이 아프다는 점에서 근근막통증증후군과 유사하지만 훨씬 ‘고약’한 게 섬유근육통이다. 이 병은 병리학(病理學)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온 몸 구석구석이 돌아가면서 아픈 것이 특징이다. 근근막통증증후군은 목, 어깨, 허리 등이 주로 아프지만, 섬유근육통은 목, 어깨, 가슴, 팔, 다리, 엉덩이 등 몸 전체가 아픈 게 차이점이다. 또 불면증, 두통, 어지럼증, 약간의 마비 또는 감각 이상, 불안감, 우울증, 소화장애, 기억-집중력 장애, 피부 가려움증까지 동반된다. 어떤 검사를 해도 정상으로 나타나므로 과거 의사들은 이 병이 실존하는 병인지 상상 속의 병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을 정도다. 1990년에야 병의 실체를 인정하고 ‘섬유근육통(Fibromyalgia)’이라 이름 붙였지만 아직도 많은 의사들이 이런 병이 있는지 조차 몰라 수 많은 환자가 ‘꾀 병’을 부린다고 오해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성인 인구의 약 2%(남성 0.5%, 여성 3.5%)가 이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돼 있으며, 환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며, 대부분 백인이다. 특히 직장여성이나 고소득 여성에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발병률은 미국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생활 양식이 서구화되면서 최근 환자가 늘고 있다.

발병 원인은 완벽하게 오리무중이다. 외상, 이혼, 사별 등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 병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의사는 바이러스 감염설을 주장한다.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나 혈중 아미노산의 이상, 갑상선 질환 때문에 병이 생긴다는 주장도 있고, 호흡한 산소의 독성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진단법은 비교적 명확하다. 미국 류머티스 학회는 다른 질병이 없을 것, 우리 몸의 18개 압통점(누르면 통증이 느껴지는 곳) 중 11곳 이상에서 통증이 유발될 것, 통증이 3개월 이상 지속될 것, 수면장애 증상이 나타날 것 등을 섬유근육통 진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온 몸이 아파도 11곳 미만의 압통점에만 통증이 있다거나, 11곳 이상의 압통점에서 통증이 생겨도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 질병이 있다면 섬유근육통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 병은 정말 치료하기 어렵다. 치료법은 기본적으로 근근막통증증후군과 비슷하다. 즉 아픈 부위에 소량의 마취제 또는 스테로이드제를 주사하거나, 근육에 전기침을 꽂아 자극을 주거나, 근육 이완제나 우울증약 등 약물을 복용시키는 방법을 쓴다. 그러나 근근막통증증후군의 경우 주사요법이나 전기자극요법으로 비교적 쉽게 치료가 되지만, 섬유근육통은 어느 한 곳을 치료하면 다른 곳의 통증이 심해지는 등 치료 효과가 크지 않다. 마치 풍선의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통증이 얄밉게 옮겨 다닌다.

 

때문에 의사들은 조바심을 내며 병원을 전전하기 보다는 차라리 통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병을 이길 수 있다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권유한다. 때로는 이같은 심리요법이 주사요법 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 때문에 이 병을 치료할 땐 심리상담이 필수적이며, 경우에 따라 정신과 치료도 곁들이게 된다.

이같은 병의 속성 때문에 제기된 게 이른바 ‘선택이론(Choice Theory)’이다. 이는 환자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무의식적으로 아프기를 선택한다는 이론이다. 임상 심리 전문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미국의 윌리엄 글라써 박사가 정립한 이 이론은 인간관계에서의 문제점이 통증으로 나타난다

 

고 설명한다. 인간에게는 생존, 힘, 사랑과 소속감, 즐거움, 자유 등 5가지 욕구가 있는데 그 중 사랑과 소속감 욕구와 힘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스스로 병을 선택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글라써 박사는 이 병의 치료를 위해 인간관계의 회복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 회복이 특히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부부간의 관계를 가로막는 7가지 잘못된 습관으로 비판하기, 탓하기, 불평하기, 잔소리하기, 협박하기, 벌주기, 매수하기(또는 상주기)를 꼽고 있으며, 병을 고치려면 이같은 나쁜 습관을 먼저 고치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에 관해 간단히 살펴보자. 이는 수술 뒤 또는 외상을 당한 뒤 신체의 한 부위에 발작적인 통증이 계속되며, 점차 몸의 여러 부분으로 통증이 확산되는 병이다. 외국의 경우를 미루어 볼 때 환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병을 정확히 진단해 내기가 무척 어려워 대부분의 환자가 병명도 모르면서 고통을 받고 있다.

 

이 병으로 인한 통증은 불에 타는 것 같은 작열통, 피부에 깃털이 스치거나 바람만 닿아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어나는 이질통이 특징이다. 또 환자는 통증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여 모든 행동이 위축되게 된다. 대개의 경우 피부접촉이 통증을 유발하므로 환자들은 통증이 생기는 피부에 부목(副木)을 대고 다니거나, 장갑을 끼고 다니거나, 아예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그 밖에 피부 감각의 변화, 부종(몸이 붓는 것), 근력약화로 인한 운동장애, 피부의 온도와 색의 변화 등의 증상도 환자의 70% 정도에게 나타난다. 대부분 교통사고를 당한 뒤 발생하는데, 복부 수술, 축농증 수술, 코 높히는 수술, 치과 수술 후에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손목 부상 등과 같은 가벼운 외상이 왜 온 몸의 이질통-작열통 등으로 발전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역시 치료가 쉽지 않으며, 완치는 거의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진통제, 항경련제,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을 처방해서 치료를 한다. 진통제보다 항우울제 등 정신과 약들이 통증과 통증으로 인한 우울감을 더 효과적으로 덜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증의 강도에 따라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신경차단요법도 발병 초기 환자에게 비교적 많이 시행하는데, 이는 마취제로 통증을 일으키는 교감신경을 마비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약물-신경차단요법으로 효과가 없는 환자가 많은데, 이 때는 최후의 수단으로 환자의 척수에 전기자극을 주는 기계(척수자극기)를 이식하는 수술을 하게 된다. 비교적 효과가 좋지만 척수에 설치하는 게 매우 까다롭고, 장비 가격이 비싸다는 게 단점이다.

 

 

근근막증후군이나 섬유근육통 같은 난치성 통증은 물론이고 두통, 요통, 신경통, 안면통, 골반통 등 대부분의 통증은 통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통증의 고통은 매우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크기의 외부적 자극이 주어지더라도 통증을 느끼는 양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죽을 것 처럼 괴로워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얼굴을 찌푸리는 선에서 그럭저럭 참아낸다. 통증을 참아낼 수 있는 한계가 다르기 때문인데, 이를 ‘통증의 문턱(threshold)’이라고 한다. 문턱이 높을 수록 통증을 참아내는 힘이 강하며, 낮을 수록 작은 자극에도 많이 고통스러워 한다.

 

마음가짐은 문턱의 높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통증을 두려워 하고 회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통증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올테면 오라”고 당당히 맞서면 통증의 강도가 훨씬 약해진다. 마치 매를 맞을 때 “맞으면 얼마나 아플까”라고 잔뜩 겁을 내서 맞는 것보다 “때릴테면 때려 봐라”는 마음가짐으로 맞으면 훨씬 덜 아픈 것과 같은 이치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섬유근육통 등 난치성 통증의 치료에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시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비단 섬유근육통 같은 난치성 통증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늘상 경험하는 두통 요통 신경통 등에도 꼭 같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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