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초기엔 천용혈 자침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일이 작을 때에 미리 처리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반드시 큰 힘을 들이게 됨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도 새벽 3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을 펼치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코가 맥맥하고 목구멍의 인후쪽이 칼칼함을 느꼈다. 영락없이 독감을 예고하는 신호였다. 이 상태에서 손을 쓰지 않으면 꼼짝없이 며칠 동안을 독감으로 끙끙 앓아야만 한다. 그야말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될 날이 오고야 만다. 아니, 가래로도 막지도 못하고 죽었다가 깨어나야 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독감이란 끔찍하리만치 지독한 것이다. 일년에 한 번씩은 연례 행사처럼 꼭 치뤄야 할 독감이 올해는 무사히 넘기려나 했는데 오늘 새벽에 급기야 찾아오고 만 것이다.
매일 아침 산책을 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데 봄이라고는 하지만 이른 아침에는 아직도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 몸을 움츠리게 하는 게 요즘의 날씨이다. 지난 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옷을 가볍게 걸치고 산을 올랐다가 한 겨울의 영하 18도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추위를 느꼈었다. 결국, 어제 아침에는 코가 막히는 증상이 왔으나 크게 염려는 하지 않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찬 바람을 쐬면 코가 막히는 일이 생긴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일어나보니 코가 다른 때와는 달리 맥맥하게 막혀 있었고 더구나 목까지 칼칼하니 이것은 틀림없는 독감의 초기 증상이었다. 해마다 찾아오는 독감이 올해라고 그냥 지나갈 리가 없었다. 이 상태로 진행되면 오늘 낮을 지날 즈음에 목은 통증으로 발전할 것이고 몸이 으실으실 추워 올테고 저녁 무렵이면 두통과 근육통으로 드러눕고만 싶은, 만사가 귀찮은 기분 상태가 될 것이다. 내일과 모레 중요한 일정이 잡혀 있기 때문에 독감으로 앓아 누우면 안 된다. 나는 책을 읽다말고 혈압계로 혈압을 체크했다. 혈압은 정상인데 맥박수가 90회에 이르렀다. 이미 체온이 올라 있는 상태였고 체온이 올랐다는 것은 몸 속으로 침입한 독감 바이러스(인플루엔자)의 증식을 막기 위한 몸의 방어기작의 한 방편인 것이다.
침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천용혈에서 목구멍 안쪽으로 침을 꽂아 넣었다. 목구멍에서 생선 가시가 걸린 듯한 느낌이 있었고 이러면 침은 제대로 편도선 쪽으로 자입된 것이다. 그대로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30분이 경과하는 동안 목에서의 칼칼한 증상이 없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30분 후에 침을 빼고 예정대로 6시 30분까지 책을 읽었다. 오늘은 산을 오르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사우나에서 뜨거운 열기를 들여마셔 목 안의 바이러스를 모조리 죽이기로 마음먹고 사우나로 향했다.
바이러스의 침투경로는 호흡기이며 그래서 목구멍의 인후 부위는 바이러스와 백혈구가 맞서 싸우는 최전선이다. 목의 인후 부위는 편도와 아데노 같은 면역세포들이 진을 치고 있는 림프기관이 있다. 바이러스나 세균은 반드시 목 안의 인후 부위를 통과해만이 몸 안의 각 조직으로 침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곳에는 면역세포들이 버티고 있어서 면역세포들과의 치열한 전투는 불가피하다. 독감의 초기에 코가 맥맥하고 목이 칼칼한 증상은 면역세포들과 바이러스들과의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다시 말해서, 바이러스의 침투로 면역세포들이 바이러스를 퇴치시키기 위한 중요한 반응인 염증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면역세포들이 일으키는 염증반응은 몸에서 열을 나게 하여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시키고, 혈관을 확장시켜 바이러스를 죽일 호중구나 대식세포의 길을 확보하는데 이 과정에서 통증이 유발된다. 목 주위의 혈관의 확장은 바이러스로 감염된 조직으로의 방어단백질과 백혈구, 항체들의 혈관유출에 따른 수분의 이동으로 인한 부종을 유발시키므로 목의 인후 부위가 붓고 아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면역세포들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체가 교감신경을 억제시키고 휴식반응과 치유반응을 유발시키는 부교감신경의 흥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졸음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반응들을 염증반응이라 하며 염증반응은 열이나고 아프고 붓고 졸음이 오는 것이다. 정상적인 면역력을 가진 사람들은 독감 바이러스에 의한 염증반응이 2~3일 지속된다. 3일 정도 지났을 때 면역세포들에 의한 바이러스의 퇴치는 완벽하게 종료가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새벽, 2~3일 간의 격렬한 전신적인 염증반응을 피하기 위해 침 하나를 천용혈에 꽂았던 것이다. 내가 내일과 모레의 중요한 일정만 없었다면 그대로 2~3일 간을 끙끙 앓을 것이다. 감기를 잘 앓고 나면 면역력이 그만큼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격렬한 염증반응을 피하기 위해 천용혈에 침 하나를 꽂았었다. 침 하나로 어떻게 전신성의 염증반응을 피할 수 있을까?
침 하나를 천용혈에 꽂아 목구멍의 인후 부위에 있는 편도선을 자극하면 이 곳에서 면역세포들에 의해 목까지 침투한 바이러스들을 모조리 초토화시키게 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목이 칼칼한 증상은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인후의 편도선에 진을 치고 있는 면역세포들과의 전투가 벌어진 데에서 생긴 현상이다. 즉, 목이 칼칼한 것은 목 부위에서의 염증반응의 초기 증상인 것이다. 이럴 때 침 하나를 편도선에 꽂으면 새로운 면역세포들의 분열을 촉진시키게 된다.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이미 분열된 면역세포들에 의한 염증반응이 시작됐으나 침 끝이 편도선에 나타나면 면역세포들에게는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보다 더욱 위중한 상황으로 받아들여 더 많은 면역세포들의 분열을 일으켜야만 한다. 느닷없는 침의 출현으로 세가 불어난 면역세포들은 이물질인 침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바이러스들은 목구멍 이상의 더 깊숙한 몸 안의 조직으로의 침투가 불가능하게 되며 따라서 전신의 염증반응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침을 몸의 적정한 곳에 찔러서 염증과 같은 불편한 증상을 없앨 수 있는 원리는 면역세포들을 활성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침을 몸 안으로 찔러 넣었을 때 면역세포들에게는 여간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면역세포들의 본질적인 임무는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병원체나 이물질을 감시하고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면역세포들이 상대하는 병원체나 이물질들은 우리의 육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싸이즈의 크기이다. 그러나 몸 안으로 찔러 넣는 침은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가느다란 바늘에 불과하지만, 면역세포들의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이물질이며 이러한 이물질의 침입은 면역세포들로서는 보통 사건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침의 몸 안으로의 자입은 면역세포들을 정상적인 수준 이상의 활성화를 꾀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이 오후 2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오늘 새벽에 천용혈에 대한 자침이 없었다면 나는 도전히 글을 쓸 수도 없고 글을 쓴다는 생각도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목이 다시 칼칼해지는 것 같아 침 하나를 천용혈에 꽂아 재차 자극을 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는 아주 편한다. 물론, 오늘을 지나봐야 알겠지만 전신성의 격렬한 염증반응은 나타나지 않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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