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穴學/경락 경혈

천돌혈, 기침 뚝하는 곳

초암 정만순 2015. 7. 29. 14:02

 

천돌혈, 기침 뚝하는 곳 

 

목구멍의 바로 아래에서 명치에 이르는 뼈를 흉골이라 한다. 이 흉골의 상단과 목의 후두융기 사이에는 임맥에 해당하는 '천돌'이라는 경혈이 있다. 천돌혈에 대한 자침은 천식과 기침에 특효한데 이 혈에 침을 찌를 때는 천돌혈에 대해 약간 하향으로 하여 5cm의 침으로 기도를 관통할 수 있도록 깊게 자입한다. 침으로 기도를 관통시키란 쉽지가 않아서 나름의 요령을 터득하여야만 한다. 14경락 체계에 존재하는 361개혈의 경혈 중에서 기침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혈들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폐경락에 있는 혈들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척택이나 천부, 협백, 공최, 어제와 같은 경혈은 기침과 천식, 토혈, 각혈에 특효하다고 모든 침구학이나 경혈학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침이 심할 때 폐경락의 경혈들에 자침하여 기침을 멈추게 할 수 없다. 효과가 없는 것이다. 기침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경혈은 단연 천돌혈이 으뜸이다. 여기에 침을 놓아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면 어쩔 수가  없다. 천돌 이외의 다른 경혈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기침은 기관지가 시작되는 기도로 침투한 병원체를 몰아내기 위한 몸의 방어적 현상이다. 인체에서의 코나 입은 병원체가 침투할 수 있는 최전선의 통로이자  최상의 통로이다. 그래서 목구멍에는 입으로 들어가는 병원체와 코로부터 들어가는 병원체를 방어하기 위한 백혈구들의 진지인 편도선이 있다. 뿐만 아니라 기도점막이나 기관지 점막에도 백혈구들이 진을 치고 입과 코를 통해서 침투하는 병원체를 감시하고 잡아죽인다. 기침은 목구멍 안으로 침입한 병원체를 불어내기 위한 현상이며, 콧물은 코점막에 달라붙어 있는 병원체를 씻어낸다. 코점막에 있는 털은 병원체가 깊숙이 침투하는 데 어느 정도의 장애물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공기가 드나드는 기도나 기관지에서는 병원체에 대하여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백혈구들 뿐만 아니라 비만세포가 조밀하게 분포하고 있다. 비만세포는 신체의 표면을 감싸고 있는 점막조직과 상피조직에 존재하는 세포로서 현미경으로 보면 다른 세포들에 비해 뚱뚱하다고 하여 비만세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비만세포가 하는 일은 병원체가 인체로 침입했을 때 면역계를 경계시키는 것이다. 비만세포는 점막조직이나 상피조직이 병원체로 감염되었을 때 여러 가지의 싸이토카인이라는 신호물질들을 면역세포들에게 발사하여 면역계를 작동시키고, 히스타민이나 헤파린과 같은 독성물질을 분비하여 병원체, 특히 기생충과 같은 병원체를 제거한다. 비만세포는 면역계를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신호물질과 병원체를 제거하기 위한 독성물질들을 과립의 형태로 포장하여 저장하고 있다가 병원체에 감염되면 이들을 분비하여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만세포가 가지고 있는 과립 형태의 여러 가지의 물질들을 '염증매개물질'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만세포가 가지고 있는 염증매개물질들 중에서 히스타민이 분비되면 불쾌한 염증이 유발되는데, 특히 기도나 목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기침이 심하게 나오고 가래가 많이 생기며 심하면 목의 통증까지 동반된다. 원래 비만세포는 호산구라는 백혈구와 함께 기생충이라는 병원체를 제거하는 데 기여하는 방어 세포이다. 기생충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는 달리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크기이다. 어떤 기생충은 7~8m에 달하는 크기도 있다. 이런 기생충은 백혈구들이 잡아먹거나 제거하기가 불가능하여 비만세포 또는 호산구와 같은 백혈구가 담당하는 것이다. 기생충에 감염되면 기생충에서 유래된 단백질이나 탄수화물과 같은 물질(항원)을 B 세포가 섭취하여 잘게 조각을 낸다. 그런 다음 조각낸 물질(항원)을 B 세포 표면에 있는 MHC라는 단백질 분자를 통해 제시를 한다. 이 과정을 면역학에서는 '항원처리'와 '항원제시'라고 한다. B 세포가 자신의 표면에 항원을 제시하면(기생충의 조각난 잔해들을 제시하면), 여기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헬퍼 T 세포가 자신의 수용체를 이용하여 항원을 제시하고 있는 B 세포의 MHC와 결합을 하게된다. B 세포와 헬퍼 T 세포와의 결합으로 항원을 제시한 B 세포는 형질세포(효과세포)로 분화를 하는 동시에 세포분열을 일으킨다. 형질세포로 분화한 B 세포는 '항체'를 만들어 분비하기 시작한다. 기생충의 감염으로 활성화된 B 세포는 IgE 라는 항체를 분비한다. B 세포는 병원체의 감염에 대하여 5가지 종류의 항체를 분비하는데 IgE 항체를 제외한 나머지 4가지의 항체는 혈액에 섞여 전신을 순환하면서 병원체를 감시하고 제거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IgE 항체는 혈액을 따라 순환하지 않고 비만세포에 달라붙어 비만세포의 수용체 기능을 하게 된다. 수용체란 안테나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만세포는 표면에 달라붙은 IgE 항체를 수용체로 이용하여 병원체, 특히 기생충의 감염을 감시를 한다. 만약에 신체의 어느 부위에서 기생충으로 감염되었다면 그 조직의 비만세포가 IgE 수용체를 통해서 인식을 하고 기생충을 몰아내기 위한 히스타민을 분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히스타민의 작용은 혈관은 확장시키고 평활근을 수축시킨다. 아울러 점막내피세포를 자극하여 점액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이런 일이 기도에서 일어나면 천식과 기침이 유발되는 것이다. 히스타민의 작용으로 혈관이 확장되고 평활근이 수축하는 것은 기생충을 몰아내기 위함이다. 뒤이어서 히스타민의 작용보다 더욱 강한 작용을 일으키는 류코트리엔이라는 물질이 분비되어 보다 강력한 염증을 유발시켜 기생충을 몰아내고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비만세포는 기생충에 감염되었을 때 이를 몰아내기 위한 주역을 맡은 세포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특히 선진국과 같은 위생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국가에서는 기생충의 감염으로 질병이 발생하는 예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회충이나 촌충과 같은 가생충에 감염되어 질병을 앓는 환자들은 별로 없다. 이것은 비만세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할 일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비만세포들은 기생충이 아닌 우리 몸에 아무런 해가 되지도 않는 이물질들, 즉 꽃가루, 집 안의 진드기의 분비물, 개털, 미세한 먼지들, 그리고 땅콩, 우유, 고등어, 돼지고기, 밀가루 등과 같은 식품의 단백질이 비만세포를 자극하고 이에 히스타민이 분비되어 쓸데없는 염증으로 고통을 겪게 하는것이다. 이것을 '알레르기 반응' 또는 '즉시형 과민반응'이라고 한다. 

 

기침과 천식은 우리 몸에 해가 되지 않는 이물질들이 기도로 침입했을 때 기도의 점막조직에 분포되어 있는 비만세포들이 히스타민을 분비함에 따라 유발되는 염증성 증상인 것이다. 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의 침입은 선천성면역세포들과 후천성면역세포들로 하여금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독감의 후유증으로 백혈구들에 대한 비만세포의 활성화가 기침과 천식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우리 몸에 해가 되지 않는 이물질들의 침입으로 인한, 가령 봄철의 꽃가루 흡입으로 비만세포가 활성화되어 기도에서 염증을 일으켜 기침이 나오고 목이 아프고 콧물이 줄줄 흐르는 증상은 알레르기이다. 어떻든 알레르기로 인해서 기침을 하든, 독감의 후유증으로 인해서 기침을 하든 이를 침술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침술의 효과는 초기에 명백하게 나타난다. 나의 임상적 연구에 의하면 급성의 기침이나 천식은 초기에 침으로 천돌을 자극해주면 거의 완벽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증상이 심하게 진행되었을 때의 침의 자극 효과는 많이 떨어진다. 

 

천돌에 대한 침의 자극은 이물질들에 의한 비만세포의 활성화를 더욱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물질들에 의한 비만세포의 활성화는 어정뜨게 진행되어 잦은 기침을 유발시키는데 퍽이나 귀찮고 성가신 게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침으로 천돌을 깊숙이 찔러서 기도의 점막에 상주하고 있는 비만세포를 강하게 자극하면 히스타민과 류코트리엔의 강력한 분비를 유도하여 확실한 염증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침을 하고 있는 환자들의 천돌에 침을 깊숙이 자입하면 즉시로, 또는 시간이 좀 흐른 후에 더욱 심한 기침과 눈물까지 흐르는 잠시 동안의 격한 염증반응이 나타난다. 그런 다음에 침을 뽑으면 염증반응은 서서히 줄어들면서 기침이 멈추게 되는 것이다. 비만세포가 대적해야 할 기생충이 아닌 잡다한 이물질들의 침투로 비만세포는 빈약하게 염증반응을 유발시킨다. 이러할 때 침으로 자입하여 확실하게 염증반응을 일으켜 상황을 종료시키는 것이다. 침의 기도에 대한 자입은 항체를 만드는 B 세포나 기생충을 몰아내야 하는 비만세포의 입장에서는 기생충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확실한 염증반응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둘에 대한 침의 자입은 B 세포나 비만세포에게 기생충으로 여기도록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이것이 천돌에 대한 자입으로 기침을 멈추게 하는 원리인 것이다. 이처럼 침술은 생물학적인 원리에 입각하여 시술할 때 확실한 기대 효과를 낳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원리에 의해 천돌에 침을 자입하여 기침을 멈추게 하는 것은 나의 침술에 있어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어깨의 통증, 허리의 통증과 같은 외과적인 질환과 소화기계, 비뇨기계, 생식계의 내과적인 질환, 그리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과적인 질환의 침술치료는 또 다른 생물학적인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짐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