診斷學/진단일반

우리의학의 진단원리

초암 정만순 2015. 7. 21. 10:56

 

우리의학의 진단원리

 

1.과학적인 우리 몸 인식

 

모든 질병에 잘 대처하지면 우리 몸에 대해 과학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몸에 대해 과학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채 몸을 진단한다면 그 진단은 오진이 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잘못하면 병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대과학의 발전에 따라 현대의료장비들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댓가로 우리 몸을 파악하는 능력이 대단히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의 원리를 합리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현대 의료장비를 다루는 기술만을 익혀보았자 그것은 절반의 도움밖에는 안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학의 원리에 따라 우리 몸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길은 바로 우리 몸 안으로 나 있는 다섯가지 길과 관련해서 파악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음식길 물길 신경길 핏길 숨길과 관련하여 연구한다면 전체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어떤 병적인 증세일지라도 이 다섯가지 길과 관련시켜 본다면 걸려들지 않을 것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각각의 길들에 대해 우선은 분석적으로 깊이 연구해야할 것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되며 다시 그 길들 가운데 중심고리가 되고 바탕이 되는 길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우리 몸을 연구하는 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의학에서는 그 모든 길들의 바탕에 숨길이 있다고 생각하여 숨길을 중심으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편입니다. 우리 몸 안으로 나 있는 다섯가지 길들에 대해서도 독립된 장에서 하나 하나 체계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2. 상호관련성으로 파악

살아 있는 유기체는 모든 것이 서로 상호연관되어 있다고 파악하는 것이 우리의학의 중요한 진단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 부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것이 전체 속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또 다른 부분과도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저는 여행을 참 좋아하는 편입니다. 국내나 해외여행을 여러차례 다녀왔지만 그 때마다 언제나 전체지도와 부분지도를 꼭 가지고 다니며 지리를 익히기를 좋아합니다. 역사를 학습할 때도 마찬가지이며, 우리 시대를 이해할 때도 전 세계적인 역학구도와 부분에 작용하는 힘의 고리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한 부분에서 나타나는 현상일지라도 그것이 전체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다른 부분과 맺고 있는 관계를 훨씬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을 상호관련 속에서 이해하는 방식은 바로 우리 몸 안으로 나 있는 다섯가지 길들의 원리나 다음에 나올 박배발의 원리, 그리고 우리 몸을 큰 우주와 연관을 맺고 있는 하나의 작은 우주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박배발의 원리

우리 몸을 진단하는 우리의학의 중요한 진단원리 중에는 박배발의 원리가 있습니다. 박배발의 원리란 박에 해당하는 머리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병증은 그 원인이 배에서 오고, 배의 탈은 손발에서 온다고 보는 원리입니다. 머리아픔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양의학에서는 두통이라면 그 부위나 원인을 체계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진통제로 쉽게 다스리려고 드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머리아픔이 진통제로도 잘 듣지 않거나 상습적으로 자주 일어나게 되면 그것의 원인을 대체로 머리자체의 이상으로 원인을 찾아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머리의 속을 촬영할 수 있는 기계로 사진을 찍어봅니다. 그래서 머리 속에서 이상현상을 발견했다면 다행이지만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픔은 있더라도 원인을 모르거나 신경성으로 원인을 돌리고 말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학에서는 머리가 아프다면 대체로 그 원인을 배에서 찾습니다. 여기서 배라는 것은 뱃속에 있는 장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아픔의 부위에 따라서도 원인을 짚어내는 부분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앞머리가 아프다면 주로 밥통탈에서 원인을 찾고, 뒷머리가 아프면 염통탈이거나 오줌보탈로 파악하고, 옆머리가 아프다면 쓸개탈이요, 속골치가 지끈거리며 아프다면 종합적인 소화불량에서 그 원인을 찾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같은 머리아픔이라고 하더라도 그 부위에 따라 처방하는 약이나 침자리 뜸자리가 다를 수 있고 근본치료를 위해 환자가 실천해야할 내용이 현저하게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배에서 나타나는 아픔은 대체로 손발에서 찾는 것이 우리의학의 진단원리입니다. 여기서 배를 장부로 파악했듯이 장부에서 나타나는 탈의 원인은 손발 즉 생활습관에서 파악합니다. 잘못된 생활습관이 오래 지속되다보면 해당 장부에 탈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부의 탈을 고치기 위해서는 한 두 봉지의 약으로 보다는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위벽이 헐어 있는(위궤양) 사람이 불규칙적이고 자극성이 강한 음식을 급하게 먹는 생활습관을 고치지 않은 채 선전에 열심히 나오는 궤양약만을 먹는다고 완전히 고쳐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일시적인 효과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상치료를 위해 약도 복용해야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손발을 놀림으로써 이루어지는 우리의 생활습관을 고쳐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4. 표면을 내면의 창으로 파악

우리 몸을 진단하는 우리의학의 또다른 원리는 표면을 내면의 창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 표면이란 얼굴과 살갗 모두를 다 포함합니다. 서양의학에서는 얼굴은 별도로 생각하지만 나머지 피부는 피부과에서 다루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학에서는 피부에 나타나는 모든 증상은 우리 몸의 내부를 맡고 있는 장부들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피부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피부자체의 문제로만 파악해서는 결코 바른 원인을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에 비해 피부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내부의 표출현상이라고 파악하는 그 원리 하나만이라도 잘 기억한다면 수많은 병적인 증세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습진이나 아토피 증상처럼 일반적으로 피부과에서 맡게 되는 병적증상도 우리의학에서는 우리 몸의 장부에 쌍혀있는 독이 피부를 통해 표출되는 모습으로 봅니다. 따라서 그러한 증세들도 현상치료를 위해 피부에 연고를 바르는 것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해당장부에 쌓이는 독성물질을 차단해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화상처럼 다른 곳의 피부를 이식해서 보다 원래 모습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서양의학의 특수성을 결코 간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점에서 서양의학과 우리의학은 상호협력해야하는 많은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도 서양의학과 우리의학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나감으로써 인류의 의학이 더욱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쓰고 있습니다.

 

5. 장부 기능과 상을 바로 알기

우리 몸을 잘 진단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 안의 각 장부가 우리 몸에서 맡고 있는 구실과 그것들의 기운이 넘칠 때(실)와 모자랄 때(허)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바로 아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몸의 각 장부들이 몸 안에서 하고 있는 일과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제대로 알아두기만 해도 그것과 관련된 이상증세가 나타나면 즉각 그 원인을 파악할 수가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문제를 제대로 포착해내기가 어렵습니다. 서양의학은 각 장기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부분적인 연구는 대단히 잘 되어 있지만 다른 부분들과의 상호관련성을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학에서는 장부를 중심에 놓고 역할을 파악하기 때문에 상호관련성을 밝히는 일을 잘 하지만 각 장기의 부분부분을 살피는 일에는 소홀히 해온 잘못을 범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예를 하나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서양의학에서는 허파가 우리 몸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숨을 담당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학에서는 허파는 숨쉬는 일을 담당할 뿐 아니라 몇가지 다른 역할을 더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허파는 기를 다스리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기란 먹거리와 숨을 통해 얻어지는 기운을 말합니다. 그래서 허파가 튼튼하면 기력이 좋은 사람이 되지만 허파가 약해져서 기를 다스리는 능력이 떨어지면 기력이 쇠잔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허파는 소리를 나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허파가 튼튼하면 맑고 깨끗한 소리가 나지만 허파가 약해지면 쉰 목소리가 나게 됩니다. 허파는 살갗과 털을 관장하기도 합니다. 허파기운이 왕성한 사람은 살갗이 윤기가 있고 고운데 비해 허파기운이 모자란 사람은 살갗이 거칠거칠해지고 갈라지거나 윤기가 없어집니다. 허파가 튼튼하면 머리털이 풍부하고 광택이 있지만 허파기운이 모자라면 머리털이 빈약하고 윤기가 없어집니다. 마지막으로 허파는 우리 몸에서 코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허파가 튼튼해야 코도 튼튼해지고 코가 튼튼해야 허파도 좋아지게 됩니다.

우리의학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우리 몸을 파악할 때 각 장부가 맡고 있는 역할을 잘 알아야 되기도 하지만 그 장부의 상태를 허와 실로 구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를 포착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원리가 되지만 서양의학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듯 합니다.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을 의학적으로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다양한 답이 가능하겠지만 크게 간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의학의 목적이 건강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지만 우선 의학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다시 두 종류로 구분하자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이 또한 다양한 답변이 가능하겠지만 우리의학에서는 병든 사람과 약한 사람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병들었거나 약하거나 간에 모두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병든 사람이란 병의 기운이 몸에 들어와 병의 기운이 넘치는 사람(실)이며, 약한 사람이란 지금 몸에 병은 없지만 몸 안의 좋은 기운이 빠져 나가버려 약해진 사람(허)을 말합니다.

사람을 나눌 때도 그렇게 파악하지만 우리 몸 안의 장부를 이야기할 때도 그렇게 나눕니다. 염통을 예로 든다면 현재 염통이 튼튼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염통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은 다시 염통에 병이 든 사람과 염통의 좋은 기운이 빠져 버려 약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염통에 병이 있을 때 나타나는 우리 몸의 병적인 증세와 염통이 약해서 나타나는 증세들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서양의학은 이 간단하지만 너무도 중요한 사항을 놓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염통에 병이 있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최신식 현대장비들을 동원해 잘 진단해 내지만 염통이 약해서 생겨나는 많은 증세들에 대해서는 원인을 몰라 속수무책이거나 신경성이라든지 다른 곳으로 원인을 넘겨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염통에 병이 있어 나타나는 증세로는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판막탈, 뒷골당김, 입안이 쓰고, 몸에 열이 많고, 목이 자주 마르고, 똥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고, 실없이 웃기를 잘하는 것 등입니다. 그에 비해 염통이 약해서 나타나는 증세들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심계항진), 만사가 즐겁지 않고, 웃음을 잃어버리고, 말하기도 싫어하며, 심하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가슴에서 찬기운을 느끼며, 깜짝깜짝 자주 놀라기도 하고, 얕은 잠을 자게 되며, 꿈도 많아지고, 오줌도 자주 누거나 지리고, 동상에 잘 걸리거나, 멍도 잘 들고, 손을 떨기도 하고, 체머리를 흔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염통이 병들었거나 약해졌을 때 나타나는 증세들을 잘 기억해두고 있으면 그 증세를 보아 원인을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어떤 증세를 보아도 원인을 파악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시한 우리의학의 증세들에 대해 서양의학이 일부 수긍하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학은 상호관련성 속에서 전체의 한 부분을 파악하지만 서양의학은 염통 자체만을 열심히 연구했을 뿐 그것과 관련된 다른 부분들을 함께 파악하는 연구를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