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암의 답사기행 - 청도 운문사(雲門寺) 북대암(北臺庵)
참고 지도
온누리에 가을 향기가 번져 많은 이들이 가을앓이를 하건만 가을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명소는 단연 운문사의 은행나무와 운문사 부속암자인 북대암이다. 이 둘을 빼고서 감히 가을을 말할 수 없으니 귀있고 눈있는 사람은 마땅히 발걸음을 재촉하여 이 곳을 한번 방문하고 볼 일이다.
특히 은행나무를 가까이서 친견할 수 있는 이 날들은 참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명산은 명찰을 품는 법이고 그 속에는 천오백년의 역사를 가진 명찰과 사백년을 훌쩍 자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가을을 품고 있다
운문사는 주변 경관이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1,200년 전에 운문사는 평지에 지어졌지만 가람을 두르고 있는 산의 보호를 받는다. 동쪽으로는 운문산과 가지산이 어깨를 맞대고 있고 서쪽으로는 비슬산, 남쪽으로는 화악산, 북쪽으로는 삼성산이 둘러싸고 있어 운문사는 연꽃의 한가운데 꽃술로 안긴 자태다. 다. 정감록에서 십승지로 꼽았을 정도. 운문사 입구 북대암에 오르면 절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때 창건된 사찰로 전해온다. 원광, 일연, 원등 등 걸출한 위인들이 거쳐 간 곳이며 지금은 260여명의 비구니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비구니사찰로 승가대학도 겸하고 있다.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좋은 곳이지만, 한번만 갈 수 있다면 가을에 가보기를 강권한다.
그리고 운문사에는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하다. 보물 제193호인 금당 앞 석등, 보물 제208호인 운문사 동호(동항아리), 보물 제316호인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 제317호인 운문사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제318호인 운문사 사천왕 석주, 보물 제678호인 운문사 삼층석탑, 보물 제835호인 운문사 비로전 등이 있다.
수령 400년이 넘는 ‘처진소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데, 스님들이 해마다 봄·가을로 막걸리 열두 말을 보시해 아직도 싱싱하고 푸르다
557년 신라 진흥왕 때 세워진 운문사.이 운문사가 원광법사가 세속오계를 지은 화랑정신의 발상지이며,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 탄생지라는 사실은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다.1200년 전 원광법사는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세속오계를 전수했다. 고려 충렬왕 때(재위기간 1274 ~ 1308년) 이곳 주지였던 일연 스님은 이곳에서 우리가 자손만대까지 전해야 할 삼국유사 5권 2책을 펴냈다. 세기가 바뀐 지금 일연 스님의 자취를 찾아볼 길은 없지만 마음속으로 미세한 울림이 인다.
1958년 불교 정화운동 후 비구니 도량이 된 다음부터는 여승의 선맥을 세운 만성, 청풍납자로 유명한 광호 스님 등이 운문사를 거쳤다.
고려 숙종 10년(1105) 원응국사가 중창하면서 전국 제2의 선찰로 자리 잡고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를 내려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된 후 임진왜란 당시 일부 건물이 소실되고 숙종 16년(1960) 설송대사가 중창을 하였다. 그 후 중창은 1835년 운악대사를 거쳐 1912년 긍파대사, 1913년 고전선사를 이어 지금의 모습은 1977년 명성스님이 대웅보전과 범종루 및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였다.
운문사 진입로에서부터 경내까지 1km 정도 되는 솔숲길이 이어진다.
솔숲길 끝자락에서 만나는 감나무에는 가을이 영글어가고 있다
잎은 떨어지고 발갛게 매달린 감은 꽃보다 고웁구나~~
숲길이 끝나자 운문사 돌담장이 나타난다.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치고 늘어선 고목들이 단풍터널을 이루고 있다.
단풍터널을 지나는 스님들~~
아스팔트 도로위에 고인 물에도 붉게 물든 나무와 흥겨운 인파의 가을 그림자가 비친다~~
운문사 중심에 위치한 식수 - 일년에 이틀 8시간 개방되는 암수 두그루 은행나무
문은 1시에 개방되지만 이미 사람들은 뒷문을 통해 들어섰다. 카메라 샤트가 눌러지면서 조용하던 금남의 구역은 등산복 차람의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일순간 점령해 버렸다. 운문사 은행나무는 400~5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암수 두그루가 측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그루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은행나무와 스님
운문사는 일주문과 사천왕문이 없다. 정문격인 범종루를 통과하면 평지에 터를 잡은 전각들이 보인다. 전각들 뒤로 호거산이 호위병처럼 버티고 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수령이 400년이나 된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에게 인사를 하고, 보물로 지정된 석등과 원응국사비, 비로전, 석조여래좌상, 사천왕석주, 삼층석탑 등을 차례로 만난다.
호거산 운문사 범종루를 지나 운문사 경내로 접어드니~~
수많은 전각들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나라 절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각인 만세루(萬歲樓)
천연기념물 180호인 수령 500년의 처진 소나무의 기상이 꿋꿋하다~~
처진 소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매우 희귀하다.
운문사의 앞뜰에서 자라고 있으며 높이는 9.4m, 둘레는 3.37m이다. 나무의 모습이 낮게 옆으로 퍼지는 모습 때문에 한때 반송(盤松:키가 작고 밑동부터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소나무)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이 나무는 3m 정도의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밑으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 소나무로 본다. 운문사는 1,400년 전에 지었다고 하고 임진왜란(1592) 때 이 나무는 상당히 컸었다하니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처진 소나무는 고승(古僧)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스님들은 매년 봄·가을에 뿌리 둘레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려주는 등 정성을 다하여 가꾸고 있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답고,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며,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연꽃형 수각
대웅보전(신)
운문사는 대웅보전이 둘인데 원래 대웅보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 전에는 비로전이던 건물이고 새 대웅보전은 1994년 세워졌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의 석가모니불
대웅전 [大雄殿]을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도하는데 항상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대웅(大雄)’은 고대 인도의 ‘마하비라’를 한역한 말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하였다.대웅전에는 중심에 불상을 안치하는 수미단(須彌壇)과 신중(神衆)을 모시는 신중단, 그리고 영가(靈駕)를 모시는 영단을 두고 각 단마다 탱화를 모신다. 이곳 운문사의 대웅보전은 1994년 봉불식을 했으며 삼세불(三世佛)인 연등불, 석가모니불, 미륵불을 모셨다. 양쪽의 협시보살로는 4대보살(四大菩薩)인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후불탱화로 삼세불탱화를 봉안했으며 우측에는 53선지식을 그린 탱화와 상단 뒷면 벽에는 영산화상도와 관세음보살32응신도, 석가삼존 오백나한도를 봉안(奉安)했다.
대웅전 계단을 오르는 스님
경내의 감나무. 청도는 역시 감의 고장이다~~
법륜상
쌍탑
동ㆍ서 삼층석탑 (淸道 雲門寺 東ㆍ西 三層石塔
운문사는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이『삼국유사』를 저술하였던 곳으로, 지금도 절 안에는 3층 석탑을 비롯하여 금당 앞 석등, 석조사천왕상, 원응국사비, 석조여래좌상 등의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보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이 두 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규모와 양식이 서로 같다.
각 층의 기단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기고, 특히 윗층 기단에는 8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는데 모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 밑이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각 부분들이 차례로 올려져 있는데, 모두 본래의 것들이다.
기단의 가운데기둥이 아래층 기단에서는 2개이던 것이 윗층 기단에서는 1개로 줄어들고, 표면에 조각을 둔 점 등으로 보아 9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기단부가 몹시 부서져 무너지기 직전이던 것을 일제시대에 보수하였는데 이 때에 팔부중상 등 일부를 새로운 돌로 보충하였다.
운문사 대웅보전(보물 제835호)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인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 신승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암자를 만들어 3 년간 수도한 끝에 득도하여 7년간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고 진평왕 30년(608) 원광국사가 중창한 후 보양이 중창하면서 오갑사로 부르다 943년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위해 도왔던 보양의 공에 보답하기 위해 운문선사라 사액하고 전지 50결을 하사하면서 오갑사는 중 천문갑사를 운문사라 불렀다.
운문사에는 두 개의 대웅전이 있다. 옛 부터 전해오던 중심법당과 새롭게 신축한 법당으로 뜻밖에 대웅보전이 두곳이나 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져 있다. 절집에 대웅보전을 두곳 거느린 운문사의 사연은 이러하다. 기존 법당에는 비로나자불을 모시고 있어 누가봐도 비로전이 되어야 하지만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 새롭게 대웅보전을 만들고 옛 대웅보전을 비로전으로 교체 하려자 문홰제청이 건물이 문화재로 이름 변경이 불가하다는 주장에 간판을 새롭게 달지 못하고 두개의 대웅전이 된 것이다.
보물 제835호 | |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淸道 雲門寺 大雄寶殿) |
신라시대에 세운 운문사는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는데 지금의 절은 조선 숙종 44년(1718)에 있었던 네 번째 보수 때의 것이다. 대웅보전도 이때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기둥 사이의 간격을 넓게 잡아서 같은 규모의 건물보다 크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다포계 건물들과는 달리 장식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앞면에는 꽃무늬를 넣은 문을 달았는데, 특히 가운데 칸은 넓어 5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안쪽은 큰 기둥을 하나만 세워 넓고 탁 트인 공간을 꾸미고 있다. 천장의 가운데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화려하게 채색해 놓았다.
건물의 짜임이 조선 중기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내의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
석가의 진신(眞身)을 높여 부르는 칭호로서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 ·노자나불·자나불이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이라는 뜻인데, 불지(佛智)의 광대무변함을 상징하는 화엄종(華嚴宗)의 본존불(本尊佛)이다. 무량겁해(無量劫海)에 공덕을 쌓아 정각(正覺)을 성취하고, 연화장(蓮華藏)세계에 살면서 대광명을 발하여 법계(法界)를 두루 비춘다고 한다. 법상종(法相宗)에서는 노사나불(盧舍那佛)·석가불(釋迦佛)·수용신(受用身)·변화신(變化身)으로 쓰고, 비로자나불은 자성신(自性身)이라 하여 구별하고 있다. 또 천태종(天台宗)에서는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불을 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에 배치하여 설명하고 있고, 밀교(密敎)에서는 《대일경(大日經)》의 설을 계승하여 대일여래(大日如來)와 동체라고 한다.손의 모양은 지권인 [智拳印]으로 대일여래(大日如來) 즉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결하는 수인이다.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만 이 수인을 하므로 이 수인을 한 불상은 곧 비로자나불이다.형상은 두 손을 모두 금강권(金剛拳 : 엄지손가락을 손바닥에 넣고 다른 네 손으로 싸 쥐는 것)으로 만들고 가슴까지 들어올린 후, 왼손 집게손가락을 펴 세워서 위쪽 오른손 주먹 속에 넣는다. 오른손은 법계를 뜻하고 왼손은 중생을 뜻하여, 이 수인은 법으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 일체의 무명 번뇌를 없애고 부처의 지혜를 얻는다는 뜻이기도 하며, 이(理)와 지(智)는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은 하나라는 뜻이며, 미혹과 깨달음도 본래는 하나라는 뜻이다.
대웅전 앞 석사자
보물 제193호
청도 운문사 금당 앞 석등 (淸道 雲門寺 金堂 앞 石燈)
운문사 금당 앞에 놓여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바닥돌과 하나로 이루어진 아래받침돌에는 여덟 장의 잎을 새긴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그 위에 놓인 가운데기둥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으며, 윗받침돌에는 각 면마다 연꽃이 새겨져 있다. 화사석에는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경쾌한 모습이며, 꼭대기에는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있다.
각 부분이 잘 균형을 이룬 우아한 모습의 통일신라시대 석등이다.
오백나한을 모시는 오백전과 나한님들~~
전각뒤로 보이는 지룔산의 위용
극락교
하을하늘 끝~~
석조여래불과 사천왕석주
고려시대 석불인 청도 운문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은 작압전(鵲鴨殿)에 석조사천왕상과 같이 모셔져 있다. 육각 대좌와 광배가 모두 온전한데, 광배 가운데 연꽃이 있고, 테두리에는 불꽃무늬가 있다. 석조사천왕상(보물 제318호) 4기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다. 본디 이곳에 있었던 전탑 돌기둥에 새겨진 조각으로 수법이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명부전
원응국사비
해탈문 - 이 곳에서 은행나무 촬영을 했다~~
운문사에 가거든 북대암에 오르라
호거산(虎据山) 운문사(雲門寺) 북대암(北臺庵)
운문사 북대암 주지스님(법춘스님)
북대암(北臺庵)은 운문사에서 보면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비집처럼 높은 곳에 지어져 있어서 북대암이라 이름 붙여졌다.
557년(신라 진흥왕 18년) 초창했다고 하나 알 수 없다.
1851년에 운악대사가 중수한 후 여러 차례 수보하여 오늘에 이른다.
북대암 법당에는 주불로 관음보살과 좌우에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는 특이한 불상 배치법을 보인다.
법당과 칠성각, 산신각이 있으며, 근래 지장기도를 많이 봉행하고 있다.
북대암은 운문산성(일명 지룡산성) 바로 아래에 세워져 있으며 산성과 암자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고증이 없어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앞으로 연구해야할 과제인 것은 틀림이 없다.
북대암은 운문산에서 최초로 세워진 암자이다. 최초 창건연대는 알 수 없고 창건자도 신승이라고 하기도 하고, 보양국사(寶壤國師)라고 하기도 하는데 정확히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와서 삼년만에 오작갑(五鵲岬)을 짓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저 신승(神僧)이라고만 전해져 오고 있으며 그 장소는 현재의 북대암에서 동쪽으로 약200m 옆으로 가서 계곡을 건너 돌로 축대를 쌓은 곳이 있는데 정확한 자리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이 곳이 옛날 보양국사가 터를 잡은 곳이라 전해오는 자리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고 전해온다.
옆으로 30보(步) 앞뒤로 10여 보의 평평한 터가 지금은 채마전으로 우거져 있으나 그곳에서 운문사를 내려다보니 별유천지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한 폭의 동양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은 과연 지혜있는 사람이 기거할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존하는 건물은 제일 위쪽에 축대를 쌓아 산신(山神)과 독성(獨聖)을 모신 곳이고, 그 옆이 칠성각(七星閣)이 있고, 그 아래 법당이 있다. 70년대까지는 한 채의 집으로 인법당과 스님의 방도 있었으나 지금은 전체를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옆에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가 있고 앞마당은 시멘트 바닥인데 아래에는 방으로 꾸며저 신도들 숙소로 되어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법당을 위시하여 산신각, 칠성각, 요사 등 네 동의 건축물과 신도들의 숙소인 마당의 동굴형 요사도 있고 모두 다섯동이 있다.
운문사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좋지만 실로 위에서 보는 아름다움과는 비교할 수 없다. 북대에서 내려다보는 운문사의 경치 또한 우리가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북대암 주차장
북대암 가는길~~
북대암 산신각과 북대봉
북대암
부처님들~~
북대암에도 감나무가~~
북대암 굴뚝과 소각로
칠성각
아기자기 요모조모~~
북대암에서 내려다본 운문사~~ 천하절경이여~~
역시 두그루의 은행나무가 눈에 확 들어오네!!!
이제 운문의 신선계를 을 떠나 속세로 향한다 ~~
운심정에서 늧은 점심을 먹고 동동주도 한잔하며 친구와 회포를 풀고~~
운문천을 끼고 돌아오는 길도 가을의 정취를 듬뿍 맛보며 즐거워라~~
같이 동행한 원식이 영화께 고맙다는 말부터 하고싶구나
참 좋은 하루였고 새삼 우정의 소중함을 확인한 멋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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