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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

초암 정만순 2021. 7. 16. 15:54

 

전북 임실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치즈의 고장

 

전북 임실군은 전주와 남원 중간에 위치해 있다. 노령산맥 동쪽사면에 위치한 내륙 산간지역으로 낙농업과 고랭지농업이 활발하다. 임실고추와 임실치즈는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다.

임실군은 임실읍·강진면·관촌면·덕치면·오수면·삼계면·성수면·신덕면·신평면·운암면·지사면·청웅면·하운암출장소 등 1개읍 11개면 1개 출장소 131개 동·리로 돼 있다. 군청소재지는 임실읍 이도리이다. 군전체 면적은 597.05㎢다. 전북지역의 7.4%이며 서울특별시 크기로 짐작하면 된다. 인구는 3만여 명을 간신히 웃돈다.

임실치즈테마파크 야경. | 임실군 제공

 

치즈의 모든 것을 즐기고 맛본다

 

치즈는 ‘우유의 사리’다. 우유는 금방 상한다. 하지만 치즈는 몇 년 동안 두고 먹을 수 있다. 우유를 숙성시키면 치즈가 된다. 한국의 된장, 청국장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각 가정의 장맛이 다르듯이 서양의 치즈 맛도 집집마다 다르다. 어떻게 발효되는가에 따라 맛과 색이 달라진다. 임실(任實)은 ‘씨앗이 튼실하게 영그는 동네’라는 뜻으로 한국 치즈의 발상지가 바로 전북 임실이다.

임실에는 치즈테마파크가 있다. 2011년 10월 개장했다. 치즈체험장, 홍보관, 유가공공장, 특산물 판매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특히 치즈캐슬에서는 임실치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날 수 있다. 드넓은 초지와 유럽풍의 경관을 배경으로 치즈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중이다. 어린이들의 체험 학습 명소는 물론 가족이나 연인들도 꼭 한 번 가 볼 만한 농촌 관광 명소다.

치즈마을도 조성돼 있다. 1967년 임실성당에는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가 있었다. 그는 주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산양 2마리를 들여왔다. 이것이 임실에서 치즈를 생산하기 시작한 효시다. 치즈마을은 원조 임실 치즈의 뿌리를 가진 마을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치즈마을’이란 테마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꾼다. 바른 먹거리와 아이들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이곳이다. 마을사람들이 직접 진행하는 치즈낙농 체험과 흥겨운 농촌체험을 통해 도시와 농촌이 하나되는 도농 교류 경험을 할 수 있다.

옥정호와 붕어섬의 환상적인 풍경

옥정호는 우리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큰 호수다. 호수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는 환상 그 자체다. 물안개 길에서 바라본 붕어섬은 사방천지가 아슴아슴 아득하다. 한낮의 뿌연 봄기운도 몽환적이다. 산 위에서 올라 쳐다보면 지느러미를 늘어뜨린 붕어를 영락없이 닮았다 해서 붙여진 붕어섬의 모습도 탄성을 자아낸다. 붕어섬 주변은 붉은 황토밭에 기름이 자르르하고, 옥정호수의 푸른 물은 물빛에 그을려 푸르다.

옥정호의 물안개. 몽환적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 임실군 제공

 

한국 유명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이곳은 인근 국사봉에 올라가 봐야 제대로 된 조망을 할 수 있다. 옥정호에는 58개의 이정표가 곳곳에 서 있다. ‘51번 육모정, 23번 용동마을’식으로 번호만 알면 어느 지점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물안개길 걷기가 끝나면 가까운 국사봉 전망대에 들르는 것은 필수코스.

국사봉은 해돋이 관찰 명소이기도 하다. 푸른 호수 위로 불끈 떠오르는 붉은 해는 해맑다. 국사봉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붕어섬과 옥정호가 한눈에 잘 보이지만 워낙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많아 비슷비슷하다. 다른 앵글을 담기 위해선 국사봉(475m)을 거쳐 오봉산 정상(513m)으로 가야 한다.

 

매화꽃 만발하는 섬진강변 마을

 

국내 문학 창작의 요람지로 알려진 섬진강 상류인 덕치면의 천담마을과 구담마을 일대를 돌아본 사람은 그 아름다움에 입을 다문다. 섬진강 지류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 여기다. 봄에는 매화꽃이 만발해 매화마을로도 불린다. 김용택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진뫼마을 앞강에는 마을 사람들이 손수 만들어놓은 징검다리가 있고, 오래도록 마을을 지키는 정자나무가 시인의 마음을 닮아가며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진뫼마을은 마을의 모든 집에서 강까지는 몇 걸음 되지 않는 전형적인 강마을이다. 시인은 이곳에서 주변의 산과 들, 나무와 풀, 강물과 논밭을 노래해왔다. 김용택 시인이 ‘서럽도록 아름답다’고 했던, 시인의 단어를 만들어낸 서정(抒情)의 강변이 바로 이곳이다. 검은 암반 위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 낮게 드리운 집들, 모든 풍경들이 한편의 시가 되기도 했다.

구담마을과 어깨를 겨루는 천담마을의 여름풍경. | 임실군 제공

 

진뫼마을에서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맑은 물과 산등성이로 병풍을 친 듯한 천담마을 앞에는 진뫼마을 김도수님의 ‘어머니 사랑비’가 있다. 부모님이 땀 흘리던 마을 앞 고추밭 가장자리에 ‘사랑비’를 하나 세웠다. 그 비의 뒷면에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씀을 이렇게 적어 놨다. “어머니 아버지 가난했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섬진강은 따뜻한 사람들이 찾고 그리워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흐른다.

진뫼마을을 지나 천담마을과 그 아래 구담마을은 때 타지 않은 수더분한 맛이 있는 마을이다. 구담마을의 느티나무 언덕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에서 아이들이 주인공 창희의 가묘를 만들어주던 곳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섬진강은 말로 전하는 강이 아니라 바라보는 강’이라고 한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섬진강의 시작 임실’은 이렇게 느티마을에서 끝을 보이게 된다. 바로 섬진강 500리의 상류가 끝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섬진강은 전북 순창으로 넘어가면서 임실군에서 내려오는 오수천을 만나 중류의 새로운 중후한 공간을 만든다. 산속에서 나온 강은 이제 제법 큰 들과 많은 산들이 쏟아내는 물을 받아 그곳 사람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가며 또 다시 흐른다.

 

선녀와 충견의 전설이 남아 있는 곳

 

관촌면 전주~남원간 도로옆에 자리잡은 사선대는 손꼽히는 명승지로 상춘객들이 많이 찾는다. 사선대 아래로는 진안에서 발원한 오원천(烏院川)이 흐르고 주변에 울창한 송림과 잡목이 들어차 운치를 더한다. 조각공원 및 체육시설과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위락시설도 갖춰 놓았다. 2012년 11월에는 청소년수련원이 360명을 동시 수용 가능한 지상 3층(총 48객실)의 숙박기능을 갖춘 생활관을 신축했다. 전국의 학교 및 사회단체, 기업체에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신선과 선녀들이 노닐던 곳 사선대 전경. | 임실군 제공

 

사선대의 유래는 이렇다. 2000년 전 마이산의 두 신선과 운수산의 두 신선이 관촌 오원강 기슭에 모여 놀다가 병풍처럼 아름다운 주위의 풍경에 취했다. 산 위에 오르기도 하고 바위 위를 거닐기도 하면서 그들은 즐겼다. 어느 날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려 놀고 있을 때 홀연히 네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네 신선을 호위하여 사라졌다. 그 후로 그 곳을 선남선녀들이 놀았다 하여 사선대(四仙臺)라 하고 까마귀가 놀던 강이라 하여 오원강(烏院江)이라 불렀다.

 

의견비는 오수리 원동산 공원에 있다. 지금부터 1000년 전 지사면 영천리에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키우는 개가 있었는데 항상 주인을 따라다녔다. 고려 때 최자라는 사람이 쓴 보한집에 이 개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어느 날 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만취한 그는 마른 풀이 우거진 벌판에 누워 깊은 잠이 들었는데 난데없이 들불이 일어났다. 주인이 위기에 처하자 개는 냇물에 뛰어들어 온몸에 물을 적시어 주인 주변의 불길 속에서 데굴데굴 굴러 불길을 잡았다. 개는 지쳐버린 나머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얼마 후 잠이 깬 주인은 주변의 광경을 보고 탄식했다. 사랑하는 개의 죽음에 대한 슬픈 마음과 함께 개를 그 자리에 고이 묻어주고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무덤가에 꽂아주고 후일의 표적으로 삼았다. 지팡이는 싹이 돋기 시작하더니 하늘을 찌를 듯한 느티나무가 됐고 그때부터 그 나무를 개 오, 나무 수를 써서 ‘오수(獒樹)’라 이름 붙였다. 오늘날까지 아름드리나무로 무성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충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오수면 소재지에 의견공원이 조성되었고 애견 관련 명소로서 각광받고 있다.

 

좌도농악의 대표. 임실필봉농악

 

호남좌도 필봉농악은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서 전승되어 온 호남좌도농악의 대표적인 풍물굿이다. 필봉마을 굿의 역사는 300여년 정도로 추정된다. 오늘날과 같이 수준 높은 풍물굿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강진면에 사는 박학삼이라는 유명한 상쇠를 필봉마을로 초대하면서부터다. 2대 송주호 상쇠를 거쳐 필봉농악의 보유자였던 상쇠 양순용에 이르러 필봉굿은 꽃을 피우게 된다. 양순용 선생은 필봉리 출신으로 필봉농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현재는 상쇠 양진성이 뒤를 이어 수많은 공연 활동과 전국의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필봉굿을 전수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필봉농악의 특징으로는 앞 굿 중심이 강한 다른 지방의 농악에 비해 뒷 굿 또는 놀이 중심이 강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잡색, 고깔 소고가 많고 가락은 전체적으로 힘차고 꿋꿋하며 투박한 느낌이 강하다. 임실군 강진면에 임실필봉농악전수관이 건립되어 임실필봉농악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면서 전통문화 보호는 물론 외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