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명재고택 풍수
옥녀탄금 뿌리내리자 가문 융성
충청도 양반집으로 유명한 명재고택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306에 위치하고 있다.
논산은 육군훈련소가 있어 병영 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학문의 고장으로 기호학파의 중심지였다.
흔히 ‘충청도 양반’이란 말은 논산 때문에 생겼다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주변에는 노성향교와 공자의 영정을 모신 권리사가 있어 조선 유학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교촌이라는 지명은 향교가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파평윤씨가 노성면 일대에 뿌리를 내린 것은 입향조인 윤돈이다.
선조 때 공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역임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책임 하에 조성된 선조의 능이 장마에 무너지는 일이 생겨났다.
그 책임을 지고 낙향한 그는 지금의 이구산 서쪽 자락에 터를 잡았다.
이후 가문이 융성하기 시작하였다.
아들 윤창세는 이조판서, 손자 윤황은 대사간으로 우계 성혼의 사위가 되었다.
증손 윤문거·윤선거·윤순거 등이 이름을 날렸으며, 고손 윤증은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곳의 태조산은 금남정맥의 계룡산(846.6m)이다.
계룡산 수정봉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맥 하나가 안골산(321.8m)을 만들고,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길게 내려와 주산인 노성산(349m)을 세웠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노성현 북쪽 5리 거리에 노산(魯山)이 있는데, 현의 진산으로 성산(城산)이라고도 한다.”라고 적고 있다.
오늘날은 노산과 성산을 합쳐 노성산(魯城山)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노는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와 관련하여 이름 지은 것으로 해석한다.
노성산에서 나온 맥은 옥제봉과 옥리봉을 거치며 단아한 봉우리를 만드는데 정상이 둥근 반원형이다.
이러한 모양을 오행으로는 금성체, 구성으로는 무곡성, 형국으로는 옥녀봉이라고 부른다.
집 앞에서 옥녀봉을 바라보면 반원형의 산들이 3~4개로 겹쳐 보인다.
이는 공자가 태어난 중국 산동성 곡부의 니구산(尼丘山)과 비슷하다.
곡부의 니구산(340m)은 다섯 개의 반원형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데 이곳보다 산세가 크고 암석이 많다.
공자를 닮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들이다. 당연이 이곳 옥녀봉도 니구산이라 불렀다,
그런데 공자의 이름이 구(丘)다.
태어났을 때 머리가 니구산을 닮아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조선 선비 입장에서 공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불경스러운 일이다.
니구산에서 구자를 빼고 니산(尼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노성면의 옛 이름이 니산현, 니성현이었던 것은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옥녀봉 중심에서 나온 맥은 반원형의 봉우리들을 만들며 아래로 내려온다.
봉우리와 봉우리 간격이 가깝기 때문에 맥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이를 월사맥이라고 한다.
월사맥이 고택 가까이 이르러서는 세 개로 갈라진다.
좌측 맥은 청룡이 되어 팔을 안 듯 원을 그리며 고택 입구의 느티나무가 서있는 곳까지 이어진다.
우측 맥은 향교 쪽으로 이어져 이곳의 백호 역할을 한다.
백호에 비해서 청룡의 길이가 길지만 높이는 약간 낮다.
이를 비보해주기 위해 수령 4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청룡 능선에 여러 개 서 있다.
동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므로 집의 생기를 보호한다.
가운데 중심맥은 두 개로 갈라져 하나는 안채로 다른 하나는 사랑채로 이어진다.
안채와 사랑채가 모두 혈처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고택 뒤 담장 밖으로 나가면 작은 물길이 양 갈래로 갈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이 뒤에서 갈라지는 것을 상분(上分)이라고 한다.
뒤에서 갈라진 물이 양쪽으로 감싸고 흘러 앞에서는 합수해야 한다.
이를 하합(下合)이라 한다.
이곳의 합수처는 집 앞에 있는 샘물이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항시 용출하고 있는 진응수다.
양택은 음택에 비해 자연지형 훼손이 심하다.
특히 맥과 정확한 혈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때는 물의 상분하합이 이루어지는지를 살피고 그 안쪽에 혈이 있다고 판단하면 된다.
이곳은 물의 상분하합이 여러 번에 걸쳐 일어나는데 앞에서 합수하는 물들이 모여 연못을 형성하였다.
이를 지당수라고 하는데 부를 의미한다.
명재고택의 형국은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다.
거문고는 앞에 보이는 야트막한 안산으로 한일자 모양으로 생겼다.
옥녀는 용모가 준수하고 귀한 자손 배출을 뜻하고 탄금은 학문과 기예가 높고 뛰어남을 의미한다.
안산너머로 보이는 뭉게뭉게 모이는 조산들은 옥녀의 거문고 소리를 듣기 위한 청중들이다.
이곳 고택으로 사람이 끊이지 않고 모이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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