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의 적용와 희귀성
穴은 귀하다. 그리고 쓰임새가 각각 다르다
<동춘당 송준길 묘소> 대전시 서구 원정동
동춘당 송준길이 1672년에 졸했다.
그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고 일생을 종질이자 진외가 6촌인 우암 송시열과 학문적으로나 당파로나 궤를 같이한 인물이다.
영조 때 우암과 함께 문묘에 배향 되었고 사계 김장생의 제자로 예학에 밝고으며 학문적 깊이가 있는 분이었다.
그가 졸하자 초장지를 충남 연기군에 정했다가 이후 공주 등으로 이장을 했으며 그 후로도 서너번의 이장을 거쳐 최종적으로 아들 묘소 뒤인 이 자리에 안장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6천 7장 정도는 되는 것으로 보임)
어느 분이 이 자리를 조선 8대 명당이라고 인터넷에 버젓이 올려 놧던데 그 분은 정말로 이 자리를 그렇게 크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대전이라고는 하지만 이 지역은 논산과 공주를 경계로 하는 오지 중의 오지로 현장에 서서 보면 매우 빼어난 보국을 볼 수 있다.
형기적으로 대단한 장풍을 이루고 있지만 개인적 소견으로는 아들인 송광식의 묘소가 정혈이며 동춘당의 묘소는 입수처 아래에 용사되었다고 본다.
그만큼 이장하면 체백이나 온전히 남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明堂은 무덤이나 집터 또는 마을의 입지를 정할 때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공간을 가리킨다.
명당자리에 무덤을 쓰거나 집을 지으면 후손에게 장차 좋은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고 여기는 공간이다.
때로는 관상학에서 사람의 이마를 가리키고, 임금이 조회朝會를 받던 정전正殿을 가리키기도 한다.
풍수지리에서는 명당 관념을 더욱 구체화・상징화하였다.
방위상으로 명당은 청룡靑龍과 백호白虎, 주작朱雀과 현무玄武라는 사신사四神砂에 둘러싸인 혈穴 앞의 땅을 가리킨다.
명당은 매우 추상적인 공간이지만 이를 이론적으로 구명하여 택지擇地하는 것이 풍수지리설이다.
땅을 해석하는 원리로 간룡법看龍法・장풍법藏風法・득수법得水法・정혈법定穴法・좌향론坐向論・
형국론形局論등이 있다.
이 가운데 명당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방법이 정혈법인데, 풍수에서 요체가 되는 장소인 혈穴은 묫자리의 경우 시신屍身이 직접 땅에 접하여 그 생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집터의 경우 거주자가 실제로 삶 대부분을 사는 곳이다.
명당은 이 혈 앞의 넓고 평탄한 땅을 일컫는다.
따라서 명당은 풍수지리설의 요체이고, 가장 중심이 되는 요소이다.
풍수지리설은 ‘풍수風水’라는 용어로 대표된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비롯된 용어인데, 땅 가운데 있는 생기生氣가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수기水氣를 만나면 멈추기 때문에 ‘바람을 막고 물은 얻는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따라서 풍수는 장풍득수와 관련된 이론으로서의 풍수설風水說을 가리킨다.
명당은 이러한 기본관념에서 바람을 막고 물을 갈무리할 수 있는 ‘땅 중의 땅’으로서 특정된 장소를 뜻한다.
실제 풍수이론에 의해 상점相占되는 명당은 하나의 이상적 공간이다.
정치精緻한 이론과 엄밀한 적용에 대해 일가견을 이룬 전문 풍수들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다.
난해한 이론을 적용해야 하고 답산踏山을 통해 찾아내야 하는 공간이다.
이를테면 자연에 인위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며, 엘리아데(M. Eliade)의 표현으로 ‘천상天上의 원형을 지상에 재현하는 성화聖化 작업’이기도 하다.
풍수설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는 풍수에서 제기되는 관념과는 다르다.
이른바 이야기식 담론으로 전개 되는 대표적인 것이 풍수 설화이다.
풍수 설화의 명당 관념은 풍수설 고유의 관념과는 차이가 크다.
본디의 풍수 관념과는 다른 면으로 굴절되어 있거나 풍수설의 한 단면을 수용한다.
물론 ‘굴절’이나 ‘한 단면의 수용’이란 용어는 부정적 이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본래의 풍수 관념을 바탕으로 수용하되 이해 가능한 만큼 이해하고, 나름의 해석에 따라 자의적으로 수용한것이다.
풍수 설화가 풍수설을 수용하여 삶을 재해석하고 그에 따른 질서 의식을 드러내는 구실을 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명당은 흔히 혈穴로 대변되고 이 혈에 대한 의지가 명당잡기의 본령이다.
혈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와 같은 사신사四神砂로 표상되는 복합한 체계 위의 신성한 공간이다.
또 혈로 통칭하는 명당은 중심이론中心理論에 근접하는 장소로서 ‘세계의 중심’이나 ‘대지의 배꼽’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그
러나 이러한 성소聖所 관념은 풍수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확인된다.
이를테면,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Cuzco)와 그리스 중서부에 있는 아폴론 신전 옴파로스(Oomphalos)는 ‘대지의 배꼽’이라는 뜻이며, 중앙아시아 타림분지 남부의 서역남도西域南道에 있는 최대의 오아시스 허톈和田(Khotan)은 ‘대지의 자궁’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성소 관념은 각자의 정주 공간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고를 반영한 것이다.
이는 종교학적으로 신성현현神聖顯現(hierophany)과 신력현시神力顯示(cratophany)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다.
명당을 쓰고 복을 받는다는 발복發福 관념이 바로 이것이다.
전문가인 풍수사(지관)와는 달리 일반인의 명당 관념은 풍수 설화를 통해 잘 드러난다.
풍수 설화에서의 명당은 관념화된 공간이다.
풍수설에서 등장하는 명당 관념을 빌어오지만, 구체화하지 못하고 흥미 위주의 장소로 개념화하고 있다.
비논리적이나마 이해 가능한 범주 내에서 명당 관념을 수용하다 보니 명당이 지닌 본래의 변별적 자질을 ‘낯설거나 특이한 곳’으로 변형하거나, ‘탈속적脫俗的인 특정 공간 관념’으로 전이하여 버렸다.
이를테면, ‘마루 밑, 집 뜰, 길거리, 바위 밑, 밭머리, 뱀 묻었던 자리, 문둥이가 거처하던 움막 터, 강가 모래밭’ 등이 명당이고, 이를 밑받침하는 증거로 특정 행위나 상황을 연결하고 있다.
이 점 역시 명당은 중심으로서의 혈인 동시에 성스러움의 현현체顯現體이며, 일상적 공간과는 구별되는 변별적 공간이라는 이분법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다.
그러면서 명당을 탈속적脫俗的인 공간으로 형상화했고, 결국 그러한 공간을 통해서 발복發福하고자 하는 관념을 드러내었다.
특정한 땅에 무덤을 쓰거나 집과 마을, 도성을 지으면 땅이 신비한 능력에 힘입어 복을 받는다는 이론에서 발생한 관념이 명당이다.
자연의 공간 중에 특정한 땅인 명당을 찾아가는 것이 풍수 또는 풍수지리설이다.
죽은 자와 관련된 터를 음택陰宅이라 하고, 산 자와 관련된 터를 양택陽宅이라 하며, 마을이나 고을 및 도성과 관련된 터 잡기를 양기陽基라 구분하지만, 기본 원리는 같다.
음택과 양택, 양기의 대상은 일반적인 자연 공간이 아니라 풍수이론에 부합하는 땅 중의 땅인 명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이 지닌 길흉화복을 가리고 명당을 통해 길吉함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관념을 반영한다.
이런 이유를 근거로 풍수의 비과학성을 지적하고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너나 할것 없이 명당에 대한 욕심이 컸다.
그래서 사대부들이 五福을 거론할 때 과거에 급제하는 것, 무병장수, 부자로 사는 것 에 더해 좋은 자리에 드는 것을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자연의 이치가 인간에게 좋은 혈처를 호락호락 허하지 않은게 문제였다.
누구나 욕심을 내고 좋은 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그건 조물주의 허락 정도는 있어야 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조선 내내 訟事의 대부분이 묘지에 얽힌 산송이었다는 것만 봐도 양반 뿐 아니라 일반 민초들도 좋은 자리에 들기 위해 엄청난 공력을 부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물주가 이런 혈처를 함부로 내놓지 않고 숨겨 놓은 것이 문제였는지 500여년의 역사 동안에 용사된 묘소를 수 천기(과장도 좀 있음, 적어도 1500--2000기는 본 듯 함)를 답산했지만 마음에 들 정도로 좋은 혈처를 차지한 경우는 많지 않았으며 그 중에서도 빼어난 몇기를 차지한 경우에 명문가의 기틀을 만들 정도로 혈처가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양반가의 욕구에 부응하여 수 많는 지사가 그에 합당한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적고 있는 자신의 눈이 밝지 못함을 탓해야 하는 경우도 가능하겠지만 지금까지 답사 후 내린 결론이 이러하다.
혈처는 그만큼 귀하다.
또한 쓰임새가 각각의 성질에 따라 다른 것으로 보인다. 신라 떄 자장율사가 적멸보궁을 세우실 때 그 자리의 성격이 산이나 혈의 九星點임을 아시고 자리를 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자리들이 수행지로 쓰이는 천기점에 배치를 하셨다고 본다(정암사가 격에 떨어지니 우리나라에는 앞으로도 5개의 적멸보궁 자리가 비어 있다는 가설도 성립이 되는가요?)
이렇듯 수행처로 쓰이는 자리가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어 고찰을 비롯한 많은 사찰이 이에 해당하고 현재도 비어 있은 수행처가 많은 것으로 추정이 된다.
두번째로 양택지로 쓰이는 혈처가 있으며 고래로부터 좋은 자리를 점한 경우가 많다.
강릉의 선교장, 창녕의 아석헌, 구례의 운조루 등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은 자리들이고 그 외에도 많은 양택지가 사용되거나 비어져 있다.
또한 죽은자의 영역인 음택혈은 그 숫자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고래로 용사된 자리들 중 유명한 혈처에 속하는 자리도 있으며 그보다는 격이 떨어지는 자리도 수두룩하다. 다만 그 자리의 숫자가 그것을 원하는 사람의 숫자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혈처를 제대로 사용치 못해 비어 잇는 자리가 많다.
그것은 우주나 자연의 힘을 관장하는 어떤 절대자가 그런 자리를 한꺼번에 찾아내 사용해 버리지 못하도록 안배하는 데서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바꿔 말하면 어느 눈 밝은 지사가 일생동안 용사할 수 있는 자리가 한정이 되었다고 본다.
무학대사가 여말 선초에 소점하셨다는 자리가 몇인가?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겨우 10여 기 전하는 정도다.
당시에는 아무리 명성있는 지사도 일생동안 30기 용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른 한가지는 당대에 실력있는 지사를 많이 배출하지 못하도록 안배가 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혈은 살아남고 음택자리는 대부분 지사를 불러 용사하지만 숨어 있게 되는 이치가 아닌가 한다.
실제로 인구를 대비한다면 혈자리는 마주 작은 것이 된다.
현대에 이르러 화장이 대세가 되어 소수의 인원만 혈처를 찾는 셈이 되었지만 그래도 인구대비 음택혈처는 적다.
또한 그것을 찾아내는 지사도 드물다고 본다. 그것이 조물주의 안배다.
지금도 비어 있는 혈처는 그런대로 많다.
다만 그것을 제대로 밝혀 사용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그 이유가 위에 열가한 글 속에 있다.
실력잇는 지사를 많이 내지 않는 조물주의 안배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지사를 한꺼번에 많이 배출하면 정혈처의 고갈이 빠른 시일 내에 오게 되고ㅠ거러면 후일에 사용되어야 할 자리는 어찌 남아 있을까?
바꾸어 말하면 그런 이유로 지금 활동하고 있는 지사들이 과연 제대로 된 눈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본인도 그러기에 흐린 눈을 맑게 가지려고 노력에 노력을 더하고 있지마 아직도 남들 앞에 드러내 놓고 실력을 보여줄 처지가 아니다.
다만 풍수의 이치를 조금씩이나마 국우해 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경계하고 있어야 한다.
지사가 분에 넘치는 재물을 요구하는 것은 일차 경계대상이다.
자신의 실력을 과장하여 자랑하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전통의 풍수적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類를 창조했다는 이들도 문제다.
금낭경의 뜻 한구절도 다시 읽어보면 느낌이 다르다.
그것들을 아직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 풍수에 새로운 유형은 없다고 본다.
그동안 몰랐던 것을 다시 알았다면 모를까!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맞다.
그런데 그 알았다는 것이 진리에 해당하면 그 말이 맞다.
그것이 아집에서 출발했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류일 뿐이다.
그러기에 풍수를 공부하는 학인의 자세는 수행자이어야 하고 수행이 뒤따라야 비로소 공부의 시작이 됨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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