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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산행 (왕산 - 필봉산 )

초암 정만순 2020. 11. 19. 13:30

건강 산행 (왕산(王山) - 필봉산(筆峰山) )

 

 

편집중입니다

 

 

 

 

 

 

 

 

 

 

 

@ 산행일 : 2020. 11. 21

$  산행경로 :  동의보감촌 주차장 - 소왕산 - 왕산 - 필봉산 - 동의보감촌

 

 

왕산

 

 

 

경상남도 산청군의 금서면 특리·화계리 등지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 : 924m).

왕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북사면에 있는 왕릉의 전설에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왕산의 옛 이름은 태왕산이라고 하였는데 아마 가락국의 궁궐 이름도 태왕궁이 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추측되고 수로왕이 만년에 이 곳에 와서 휴양했다고 가락국 양왕신도비에 새겨져 있으며, 왕산은 가락국의 왕과 많은 사연이 있음을 알려주는 지명 즉 왕등재, 국골, 깃대봉, 각종 기록이나 문헌에도 있어 왕산이라 하였던 것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산음)에 왕산과 왕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왕산(王山)은 현 서쪽 10리 지점에 있다.

산중에 돌을 포개서 만든 둔덕이 있고, 사면은 모두 층계로 되었는데 왕릉이라는 전설이 있다.

왕대암(王臺菴)이 왕산에 있다." 왕산에 있었다는 왕대암에 관해, 『여지도서』에서는 "왕대암이 현 서쪽 30리의 왕산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 당시에는 폐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동지지』(산청)에는 가야의 구형왕릉과 왕산사(王山寺)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가야국 구형(仇衡) 왕릉이 왕산사 뒤의 돌무더기가 둔덕이 된 곳에 있는데, 절은 구형왕이 거주한 수정궁(水晶宮)이다.

구형왕의 사당이 산 아래에 있다."고 자세히 기록하였다.

『산청군지』에는 "지리산에서 맥이 와서 왕산사(王山寺)의 주맥(主脈)을 이루었다.

김해 김씨가 사당을 건립하여 수호한다."라고 왕산의 내맥과 사당의 건립 및 관리 사실을 추가하여 적었다. 『대동여지도』에는 백출현(白出峴) 서편에 왕산이 표기되었다.

『영남지도』(산청), 『해동지도』(산청), 『지승』(산청), 『광여도』(산청), 『조선지도』(산청) 등에도 왕산사(王山寺)가 표기되었다.

 

 

 

필봉산

 

 

경상남도 산청군의 금서면 특리와 향양리 일대에 걸쳐있는 산이다(고도 : 858m).

지리산 천왕봉의 한 맥이 북서쪽으로 뻗어 왕산과 함께 인근의 필봉산을 일으켰다.

왕산과 필봉산 사이의 북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특리천으로 모이고, 필봉산의 남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금서천으로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경호강에 합류한다.

필봉산의 동사면 기슭으로는 경호강이 남북방향으로 종단하며 곡류한다.

조선시대 산청의 관찬지리지와 군현지도에는 필봉산에 관한 기록이 없다.

필봉이라는 산 이름은 붓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풍수적인 형국명과 관련되어 있는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문)필봉이 있으면 과거급제자나 문사(文士)가 난다고 하여 귀하게 여겼다.

『산청군지』에 "필봉산은 현 서쪽 10리에 있다.

지리산에서부터 맥이 와서 왕산이 되었고, 주맥은 뾰족한 봉우리가 붓과 같다."라는 기록이 있다.

 

가락국의 멸망을 지켜본 구형왕의 능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이 활쏘기를 했다는 사대(射臺)가 있는 왕산과 선비의 고장인 산청을 상징한다는 필봉산은 산청군 금서면 일대에 높이 솟아있다.

여우고개에서 보이는 필봉의 모습은 독특하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산의 이름대로 붓끝을 연상해 필봉(筆峰) 또는 문필봉(文筆峰)으로도 볼 수 있겠으나 혹자는 여인의 가슴을 연상해 유방봉, 유두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높이는 이웃한 왕산보다 75cm가 낮지만 산의 모습이 인상적이라 시야에는 필봉산이 먼저 들어온다.

필봉산 정상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바윗덩어리로만 이루어져 있는데다 뾰족하고 사방이 가파른 급경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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