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釜山 '이바구길'

초암 정만순 2014. 4. 2. 13:10

釜山 '이바구길'

골목마다 이야깃거리… 釜山 '이바구길' 관광 봄바람

인물사 담장·김민부전망대 등 근·현대사 흔적 곳곳에 담겨… 투어버스 가득찰 정도로 인기
쉽터 등 마을기업으로 운영해 지역경제 살리는 데 큰 도움봄기운이 완연한 26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맞은편 '금호회국수 전통보리밥집' 옆 골목길. 왼편으로 '초량이바구길'이란 입팻말이 봄 햇살을 받고 서 있었다. '이바구'란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란 뜻. 작년 3월 길을 연 '초량이바구길'이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1년 남짓 동안 10만여명이 다녀갔다.

그 전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장소가 아니었던 이곳에 투어버스가 생기고, 주변 집값이 오르고, 빈집들이 팔리고 있다. 작년 9월 중순부터 매주 토·일요일 운행하는 '산보도로 투어버스'는 인기 만점으로, 보름 전엔 예약해야 한다. 인근에 호텔 5곳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지난 14일 부산 동구 초량동 김민부전망대 개소 1주년을 맞아 초량 이바구길을 찾은 방문객들이 장기려 박사 기념 ‘더 나눔 센터’를 나와 언덕을 오르고 있다
지난 14일 부산 동구 초량동 김민부전망대 개소 1주년을 맞아 초량 이바구길을 찾은 방문객들이 장기려 박사 기념 ‘더 나눔 센터’를 나와 언덕을 오르고 있다. /부산 동구 제공

정영석 동구청장은 "부산항·산복도로 등이 있는 동구는 개항, 해방, 6·25전쟁 등 우리 근·현대사의 흔적과 기억들이 점으로 곳곳에 남아 있다"며 "이바구길은 지역의 이런 점들(스토리)을 연결해 선(텔링)으로 만든, 다른 데엔 없는 유니크한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했다.

입팻말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섰다. 50m쯤 걸어가니 오른쪽으로 5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이 나왔다. 1922년 지어진 국내 최초의 성형외과 의원이 있었다는 옛 백제병원 건물이다. 당시엔 주변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급'으로, 성형외과 외에 내과·치과 등 여러 의원들이 입주해 있었던 '메디컬센터'였다.

이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50여m를 가면 한 마트 옆에 '남선창고' 터가 있다. 빨간 벽돌 담만 남은 남선창고는 1900년대 초 영남권에 공급되는 동해 명태의 집하지였다. 당시 이곳 주변의 명란젓 맛을 보고 반한 가와하라란 일본인이 귀국해 후쿠오카에 명란젓 공장을 세웠다. '후쿠야 명란'이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명란 회사다. 이 스토리는 작년 일본TV 드라마로 제작돼 방영됐다.


	부산 초량이바구길 지도

남선창고 터에서 백제병원 건물로 되돌아와 산쪽으로 큰길 따라 50~60m 올라가 오거리에서 11시 방향으로 20~30m 걸으면 '광복사'란 간판집이 나온다. 그 옆으로 폭 2m쯤 되는 골목이 나오며 꼬불꼬불한 '이바구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곳부터 경사 급한 좁은 골목길을 지나며 '산복도로'로 올라간다. '산복도로'란 산허리쯤에 난 도로다. 6·25 전쟁통에 피란민들이 산비탈에 모여 살자 길이 생겼다.

담장갤러리, 동구 인물사 담장, 168계단, 김민부전망대, 당산, 이바구공작소…. 이바구공작소까진 대개 가파른 경사의 골목, 계단길이다. 길들이 꼬부라지고 꺾어지고 휘어진다. 편한 길로만 갈 수 없고, 같은 속도로도 걸을 수 없는 길들이다.

정치인 장건상·허정·박순천, 경제인 강석진·신덕균, 문화인 유치환·이윤택·박칼린, 한류스타 나훈아·이경규 등이 이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공부했다. 인물사 담장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김민부는 "일출봉에 달~뜨거든…"으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가사를 지은 시인이다. 이곳에서 살았다.

168계단. 스키장 상급코스만큼이나 가팔랐다. 발 아래 부산항과 도심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복도로로 들어서 동쪽으로 가면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 모체인 청십자병원을 운영했던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를 기리는 '더 나눔센터', 갤러리·찻집·전망대 등을 갖춘 '유치환의 우체통', 게스트하우스인 까꼬막(산비탈의 경상도 사투리), 마을카페 등을 만난다. 해가 지고 '유치환의 우체통' 전망대에서 보는 부산 야경은 일품이다. 방문객 이동환(47)씨는 "다른 곳에서 느껴보지 못한 사람 사는 이야기, 부산항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전망은 소중한 체험이었다"고 했다.

이런 '초량이바구길'이 봄바람을 타고 진화를 이어간다. 지난 2월 '168계단' 가기 전 장소에 휴게쉼터 '이바구정거장'이 문을 열었다. 다음 달 초에는 168계단 주변에 게스트하우스 '이바구충전소' '6·25 막걸리집', 시래깃국 등을 파는 '168도시락국'이 영업을 시작한다. 모두 주민이 종업원으로 일하는 마을 기업이다. 동구 측은 올해 좌천동 일대 '호랭이 이바구길', 범일동 일대 '부산의 부산이바구길' 등을 추가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