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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백운산 고로쇠약수제와 섬진강100리 테마로드

초암 정만순 2014. 3. 24. 10:02

 

광양 백운산고로쇠약수제와 섬진강100리 테마로드
 
 대지에서 오는 봄, 고로쇠로 통하고… 바다에서 오는 봄, 섬진강을 통하네!
3월 6일 약수제…황어·빙어·매화·산수유 등 봄의 전령들 즐비한 섬진강 따라 걸어

	섬진강100리 테마로드
▲ 섬진강100리 테마로드는 섬진강을 따라 걸으며 매화나 섬진강 속의 황어와 은어 등 봄기운을 완연히 느낄 수 있다.

고로쇠와 경칩, 그리고 섬진강. 봄을 알리는 징후들이다. 한반도에서 봄이 가장 먼저 오는 지역은 어딜까? 아마 섬진강이 아닐까 싶다.


대지를 녹이는 따뜻한 기운은 고로쇠 수액을 밀어올리고, 동면하던 벌레들도 첫 천둥 치는 소리에 놀라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자고로 경칩(驚蟄)이다. 놀란 개구리들은 대지로 뛰쳐나와 따뜻한 연못을 찾아 알을 낳기에 바쁘다. 이어 초목의 싹이 돋아나고 대동강물이 풀리며 완연한 봄을 맞이한다. 섬진강에는 어김없이 알을 낳기 위해 황어가 남해 바다에서 올라온다. 산 사면과 강변 일부엔 아직 군데군데 눈과 얼음이 쌓여 있지만 그 밑으로는 대지를 녹이는 기운이 점차 세력을 넓혀 간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전조다.


올해의 경칩은 3월 6일. 광양 백운산 고로쇠약수제가 열리는 날이다. 34회째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로쇠축제다. 시인 홍성운은 고로쇠나무를 아름다운 시어로 노래했다.


‘2월 한기 가신 날/ 너의 체액에 내가 취했다/ 예전에 너를 몇 번 만났어도 그냥 단풍나무라 여겼다/ (중략) 나는 너의 물관에 드릴을 댔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 눈물이다/ 헌혈 한 번 못 해본 내가 수액을 빨다니…./ 나무야 정말 미안하다/ 너를 채혈해 갈증을 풀다니….’


천연의 수액 중에 가장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함유한 것이 고로쇠다. 역사도 가장 오래 됐다. 그중에 으뜸이 광양 백운산 고로쇠 수액이다. 백운산 고로쇠 수액에 대한 전설도 몇 가지 전한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전투를 벌이다 백제 병사들이 지쳐 패전 상황에 직면했다. 백운산까지 후퇴했다. 이때 일제히 고로쇠 수액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 다시 전투에 나가 승리했다고 전한다. 또 통일신라 말 도선 국사가 오랜 좌선 후 일어서려 했으나 다리를 펼 수 없었다. 옆에 있는 나무를 잡고 일어섰다. 나무가 꺾였다. 꺾인 나무에서 수액이 뚝뚝 떨어져 나왔다. 그 물을 마셨더니 원기가 회복되고 다리 통증도 사라졌다고 한다. 도선 국사는 이 나무의 이름을 뼈에 이롭다는 의미로 골리수(骨利樹)라 불렀다고 전한다. 그 이후 음운변화에 의해 고로쇠로 정착, 지금에 이르고 있다.


광양 백운산은 고로쇠의 기원


이같은 전설 모두가 광양 백운산 고로쇠 수액과 관련된 것들이다. 광양 백운산은 그만큼 고로쇠와 깊은 관련이 있고, 최고의 고로쇠 수액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한마디로 백운산은 고로쇠의 기원이 되는 산이다.



	백운사에서 고로쇠 수액을 떠다놓고 백운산 산신에게 약수제를 지내고 있다.
▲ 백운사에서 고로쇠 수액을 떠다놓고 백운산 산신에게 약수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 광양시청 제공

	백운산 고로쇠 약수제에 앞서 도선풍물단이 풍물을 선보이고 있다.
▲ 백운산 고로쇠 약수제에 앞서 도선풍물단이 풍물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광양시청 제공

광양 백운산 고로쇠나무는 실제로 여러 족보가 있는 수액이다. 광양 백운산 수액이 갖고 있는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러 개다. 1981년부터 전국 최초로 매년 3월 초 경칩 때 고로쇠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도선 국사의 자취를 찾아 약수제단을 설치하고 광양시장과 광양시의회 의장, 지역 국회의원, 백운산고로쇠협회 회장 등 관련자 수백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린다.


또 2008년 8월 전국 최초로 산림청이 인정한 ‘지리적표시등록제’를 획득한 수액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 최초이자 유일하게 특허청으로부터 ‘지리적표시단체표장’을 1999년 등록한 수액이다. 지금 현재 산림청이 인정한 ‘지리적표시등록제’는 덕유산 고로쇠와 울릉도 우산고로쇠 등이 있으나 특허청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은 백운산 고로쇠 수액 한 곳뿐이다. 더더욱 산림청과 특허청으로 동시 인정받은 수액은 백운산 고로쇠 수액이 유일하다. 정부로부터 품질을 인정받은 명실상부한 고로쇠 수액인 것이다. 고로쇠 애호가들에게도 백운산 하면 고로쇠라고 바로 떠올릴 정도다.


백운산은 총 산림면적이 1만966㏊에 달한다. 그중 고로쇠나무는 약 7,000㏊에 분포하고 있다. 전체 면적의 70%에 조금 못 미칠 정도로 온 산 전체가 고로쇠나무가 점하고 있는 것이다. 광양 백운산약수협회에 등록된 회원은 총 420여 명. 이들이 매년 100만~120만 리터의 고로쇠 수액을 채취한다. 18리터 한 통 가격은 5만5,000원. 연 30억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민박 등 부대수입은 10억여 원. 전체 채취농가 420명에 40억 원으로 환산하면 한 명당 수입이 1,000만 원 꼴이다. 두 달 가까이 일하는 부수입 치고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광양 백운산고로쇠협회에 등록된 회원 420명이 관리하는 고로쇠나무는 한 명당 평균 150주씩 약 5만 주가 백운산에 식재돼 있다. 백운산에는 대부분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채취하고 있고, 일부 사유림에서는 자작나무의 수액을 채취하고 있다.


기후와 토질이 수액생산에 가장 적절한 지역이 지리산과 백운산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고로쇠나무는 내한성이 강하며, 음지·양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주로 산록부나 계곡부의 습윤지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광양 백운산의 고로쇠나무는 능선보다는 계곡 주위에 자생한다.


고로쇠 수액은 그 어떤 음용수보다 인체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로쇠 수액은 기본적으로 97%의 물 외에 포도당, 자당, 과당 등 당분과 풍부한 미네랄이 나머지 3%를 구성하고 있다. 미네랄은 칼륨, 칼슘이 대부분이며, 불소·망간·철 등과 기타 아미노산, 비타민A·C 등을 함유하고 있다.


2008년 ‘영국 영양 저널(British Journal of Nutrition)’에 발표한 논문에서 4대 미네랄로 불리는 칼슘(Ca)·칼륨(K)·나트륨(Na)·마그네슘(Mg)의 함유 성분을 시판하는 물(spring water)과 수액을 비교 분석한 결과가 있다. 칼륨은 1ℓ당 물이 7.34㎎이지만 수액은 무려 117.96㎎이나 함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칼슘은 물이 4.15㎎이고 수액은 155.32㎎로 칼륨에 비해 더 큰 차이를 보였다. 반면 나트륨은 물이 27.86㎎이고 수액은 18.90㎎으로 오히려 더 적은 양이 함유돼 있었다. 마그네슘은 물이 3.68㎎이고, 수액은 14.39㎎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이 논문은 고로쇠수액이 골다공증에 매우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경칩 되기 전부터 고로쇠나무에 호스를 꼽아 일제히 수액을 채취한다.
▲ 경칩 되기 전부터 고로쇠나무에 호스를 꼽아 일제히 수액을 채취한다.

고로쇠는 골다공증·면역증진에 효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결과와 별로 다르지 않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수액이 자연수에 비해 칼슘 함량이 3~40배, 칼륨 함량이 1~20배, 마그네슘은 약 30배 높아, 매우 이상적인 음료로 평가받는다. 뿐만 아니라 자당 함유가 16.4g이 되고, 1.8~2.0%의 당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고로쇠 수액 1리터에 대한 함유량과 분석해 보면, 골격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양소인 칼슘은 63.8㎎, 혈압을 조절하며 혈압질환을 예방하는 영양소인 칼륨은 67.9㎎, 성장과 골격구조를 형성하는 망간(Mn)은 5.0㎎, 신경계통을 정상으로 유지시켜 주는 마그네슘은 4.5㎎, 빈혈에 좋고, 특히 임산부 산후조리에 좋은 철(Fe)과 허약, 피로, 탈수 현상을 방지하는 아연, 황산, 염소, 당분 등 10여 종의 미네랄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고로쇠 수액은 골다공증 개선과 골밀도 증가, 생체면역력 향상, 산후조리와 숙취제거에 탁월한 효과, 내장기관의 노폐물 제거와 신진대사 촉진 등에 좋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비뇨·변비·류머티스·관절염·위장병·신경통·피부미용에 효험이 크며, 신장병과 이뇨작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월 6일 열리는 제34회 광양 백운산고로쇠약수제는 백운산 자락인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약수제단인 백운사(白雲祠) 일원에서 성대하게 치러진다. 백운사 앞 안내 이정표에는 ‘백운산 약수제는 3가지 동물(봉황, 여우, 돼지)의 신령한 기운을 품고 있는 백운산(1,218m)의 산신께 광양시의 안녕과 무궁한 발전, 그리고 고로쇠 약수의 풍성함을 기원하며 올리는 제례입니다. (후략)’라고 돼 있다.


3가지 동물의 정기는 봉황의 기개, 여우의 지혜, 돼지의 부(富)로 알려져 있다. 봉황과 여우의 기운을 받은 인물은 조선 중종 때 정치개혁을 이끌었던 신재 최산두와 고려 때 몽골 왕비인 월애다. 돼지의 부의 정기를 받은 인물을 아직 나타나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약수제는 광양시가 직접 주최하며, 이성웅 광양시장이 산신께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초헌관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관은 우윤근 국회의원과 이정문 광양시의회 의장이 직접 올린다. 마지막 잔을 올리는 종헌관은 김태한 백운산약수협회장이 맡는다. 약수제를 마치고 2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통제례악 공연과 풍물놀이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제례악 연주는 광양시립국악단이 직접 나서고, 옥룡면 도선풍물단이 풍물놀이 공연을 보여 준다. 시립국악단은 민요공연까지 선사한다.


광양 백운산 고로쇠약수제는 아직 우리 전통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몇 안 되는 축제로 꼽힌다. 약수제를 즐긴 뒤 또 다른 봄의 전령을 볼 수 있는 섬진강으로 달려간다.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를 걸으면 남녘에서 오는 봄을 만끽할 수 있다.


섬진강100리 테마로드는 영호남 화합차원서 조성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는 하동과 광양이 50리씩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북쪽의 남도대교와 남쪽의 섬진교를 길쭉하게 연결한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조성한 길이다. 광양에서는 이 길을 국토대장정 자전거길과 같이 조성했다. 길을 걷다 보면 자전거 타는 사람과 가끔 마주친다.



	섬진강100리테마로드를 걷다가 아름다운 강과 주변 풍광을 감상하고 있다.
▲ 섬진강100리테마로드를 걷다가 아름다운 강과 주변 풍광을 감상하고 있다.

	섬진강의 아름다운 모래톱 옆으로 난 테마로드를 걷고 있다.
▲ 섬진강의 아름다운 모래톱 옆으로 난 테마로드를 걷고 있다.

섬진강은 원래 모래가람·다사강(多沙江)·사천(沙川)·기문화·두치강 등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1385년(우왕 11) 즈음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했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는 전설이 있다.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 한다. 섬진(蟾津)이란 강 이름은 한자말 그대로 해석하면 ‘두꺼비나루’가 된다. 왜구를 물리친 두꺼비들의 공적을 그대로 강 이름에 녹아 들어간 것이다.


섬진강이 흘러가는 하동(河東)이란 이름은 이 강의 동쪽 마을이란 뜻이다. 하동과 마주보고 있는 강의 서쪽이 바로 광양이다. 따라서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강인 셈이다. 지리산 자락에 흩어진 전설을 모아 남해로 흘러 보내고, 눈부시게 흰 모래밭과 강바람에 휘청대는 대나무숲 등에 어우러진 섬진강의 애환을 따라 한 번 가보자.


출발지로 삼은 남도대교는 구례와 광양, 하동 3개 시군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경계를 안내하는 이정표도 있다. 남도대교는 2003년 영호남 화합차원에서 개통했다. 이 다리가 조성되기 전에는 양쪽 사람들이 줄나룻배를 타고 오가곤 했다. 섬진강 하구가 바로 남해 바다로 연결되는 지점이라, 남도대교에서는 고도가 GPS로 32m밖에 안 된다.


유유히 흐르는 강과 아름다운 모래사장을 보며 걷는 길 옆으로는 온갖 초목들이 봄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치 경쟁을 하는 듯하다. 섬진강에는 봄의 전령인 황어가 바다에서 올라오고 있으며, 은어도 제철을 맞아 주말에는 낚시꾼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광양의 매화나무들은 잔뜩 물이 올라 곧 터트릴 듯 꽃망울을 움켜쥐고 있는 형국이다. 일부 성급한 매화들은 벌써 꽃을 피워 애처롭게 버티고 있다. 역시 봄은 오고 있는 중이다.


하천마을을 지나 염창마을로 접어들었다. 염창(鹽倉)마을은 고려시대 때부터 소금을 보관하고 출납하던 창고가 있던 곳이다.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다. 조선 초기 소금 생산지인 광양 노을도소와 고지포 등에서 소금을 섬진강 수로를 이용해서 운반해와 보관했다고 전한다. 조선의 5대 시장 중의 하나인 화개장터가 강 건너편에 있어, 염창나루터에서 화개장터로 이동해 내다팔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염창마을엔 옛날 감호정(鑑湖亭)이 자리 잡고 있다. 이로 봐선 당시 선비들이 시를 읊고 교우했던 장소로 유명했다고 한다. 감호정은 전란을 겪으며 폐허가 됐으나 최근에 후손들이 다시 단장했다.

 

3월 6일 약수제…황어·빙어·매화·산수유 등 봄의 전령들 즐비한 섬진강 따라 걸어

	섬진강변에 유달리 대나무숲이 많다. 대나무숲 옆에 버들나무도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섬진강변에 유달리 대나무숲이 많다. 대나무숲 옆에 버들나무도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홍쌍리 매화마을도 지나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하동 방향으로도 강 옆에 나무데크가 보인다. 광양은 이 길을 자전거길과 같이 조성했고, 하동은 걷는 길로만 만들었다. 2월에는 아직 쌀쌀한 바람 탓에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매화가 제대로 피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광양의 섬진강 테마로드는 매화천지다. 전국에서 매화로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매화랜드가 나온다. 홍쌍리의 매화마을과는 또 다른 매화군락이다.


염창마을에 속한 매각마을이 바로 이어진다. 전망은 좋으나 바람이 불어 쓸쓸하다. 봄기운을 찾으러 주변을 살펴본다. 역시 매화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고, 중간 중간에 감나무와 밤나무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의외로 대나무군락이 눈에 많이 띈다. 대나무는 대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다. 만약 그렇다면 섬진강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살았고, 많은 나루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도대교에서 섬진교까지 있었던 광양 방향 나루터만 하더라도 염창나루터, 금천나루터, 검두나루, 다압나루, 항동나루터, 돌티나루, 섬진나루터, 평촌나루터 총 8곳이나 된다. 이 외에도 거의 마을마다 나루가 있어 화개장으로 장을 보러 갔으리라 싶다. 1990년대까지 줄나룻배가 오가던 나루터 막걸리집에서 선술잔을 팔기도 했다. 엊그제 같은데 아련한 추억이 돼 버렸다.


이어 직금(織錦)마을이다. 직금은 이곳이 백운산 옥녀봉의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세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문헌상으로는 1870년대에 처음 직금마을이 나온다. 그 전에는 진전촌이라 불렀다. 진전(陳田)이란 묵정밭, 즉 토지대장상으로는 경지로 되어 있으나 장기간 경작하지 않아 황폐된 토지가 많은 마을이란 뜻이다. 지금은 직금정 정자도 조성해서 사람들이 쉬어가도록 했다.


봄이 오는 길목의 섬진강과 매화. 그 섬진강을 보며 매화 군락 사이로 걸으면 벌써 봄이 온 느낌이다. 성급한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린 사이로 마침 할머니 한 분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매화가 벌써 꽃망울을 터트렸으니, 이번 봄은 조금 빨리 오는 듯하다”고 말씀하신다. 나무만큼, 꽃만큼 날씨에 민감한 것도 없다. 조그만 변화에도 곧바로 반응을 보인다. 정말 이번 봄은 일찍 오려나.


성인 키 두 배 정도 되는 바위에 평촌마을이라고 새긴 널찍한 마을이 나온다. 백운산 자락 사이에 있는 아늑한 마을이다. 마을 이름도 섬진강변의 평지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졌다. 평촌나루는 마을 입구 섬진강변에 있던 나루터로서, 옛날 하동 화개 검두마을을 내왕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곳곳이 나루터였으니 대나무가 곳곳에 군락을 이뤄 자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역시 대나무 군락이 나온다. 아마 섬진강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경관이 유려히 흐르는 강과 모래, 매화와 대나무가 아닐까 싶다.



	매화나무밭 사이에 양봉을 하는 농부가 벌집을 들여다보고 있다.
▲ 매화나무밭 사이에 양봉을 하는 농부가 벌집을 들여다보고 있다.

	섬진강 모래톱 주변으로 독수리가 비상하고 있다.
▲ 섬진강 모래톱 주변으로 독수리가 비상하고 있다. 주민들 말로는 섬진강변에 독수리가 100여 마리 산다고 한다.

 

강변에 대나무숲이 의외로 많아


어디를 가든지 대나무숲이다. 강바람과 대나무숲에서 부는 바람으로 아직 겨울이 가지 않은 섬진강변의 2월 중순은 더욱 춥게 느껴진다. 마침 또 대나무 이름에서 유래한 마을이 나온다. 죽천(竹川)마을이다. 죽천마을은 넓은 백사장을 끼고 있는 많은 대나무가 산재되어 있으며, 도로변에 길게 자리 잡은 자연마을들 사이로 4개의 하천이 흐른다 하여 대내, 즉 죽천이라 했다고 전한다. 섬진강변으로 바싹 붙어 섬진강의 모래톱이 손에 잡힐 듯하다. 마치 백사장 같아 바닷가에 온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길은 외길이고 자전거길과 같이 조성돼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항동(項洞)마을까지 그대로 내려가면 된다. 항동은 면의 중앙에 위치한다 하여 ‘한골’이라 불리다 한문식으로 음차해서 항동이라 했다고 전한다. 또 목처럼 잘룩한 곳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백운산 줄기인 매봉 하단에 위치해 있으며,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하동군 악양면 개치마을과 마주하고 있다. 백운산 작설차와 가공공장이 있다.다압면사무소와 작설차홍보관 등 주요 관공서도 이곳에 있다. 이곳에는 밤나무와 감나무, 작설차밭도 있다. 물론 매실도 마을주민의 주소득원이다.


길은 고사마을로 연결된다. 고사(高士)마을은 원래 마을 앞에 절터가 있었다 하여 고사(古寺)라고 했으나 광복 이후 이곳에서 많은 선비가 배출될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근거해 고사마을로 고쳤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엔 이 마을에 사창을 두어, 면에서 무이자로 춘궁기에 곡물을 대출해 주고 가을에 받아들이는 곡물대여 기능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창고 부근지역을 사창거리라 부른다. 마을에 당산나무로 있는 수령 400년 정도 된 팽나무도 볼거리다.


밤나무와 매화나무, 대나무 군락을 지나 관동마을에 이른다. 관동마을은 ‘깃골’ 또는 ‘귀잇골 등으로 구전돼 온다. 이는 기골이 장대하고 훌륭한 사람이 많이 나는 골이라 하여 불린 이름이다. 깃골을 한문식으로 음차해 관동(官洞)이라 했다고 한다. 모처럼 소나무숲이 나온다. 소학정마을이다. 소학정은 숲이 좋아서 황새가 많이 날아와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곧이어 다사(多士)마을이다. 다사마을은 본래 이름인 다사천(多沙川)이었다. 글자 그대로 모래와 내가 많은 고을이라는 뜻이다. 현재도 모래가 매우 많으며, 4개의 내가 있는데, 탑골천, 바람재 꼬랑, 가늘골(큰냇골), 용수암 계곡천 등이 있다. 1789년 호구총수 문헌에서부터 다사(多士)라고 나온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리도참설에 이 고을에 선비가 많이 날 것이란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마을 앞에는 청동기시대 지석묘 1기가 있다.


이어 널찍한 주차장이 나온다. 바로 전국에서 매화로 가장 유명한 홍쌍리의 광양 청매실농원이다. 그 마을 일대가 매화마을이지만 행정구역은 섬진마을이다. 섬진마을에 위치한 섬진진은 하동과 연결하는 가장 큰 규모의 군사요충지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임진왜란 때 <호남진지>에 의하면 ‘처음 섬진에 군사를 배치한 사람은 이충무공으로 섬진의 건너 쪽인 두치에 조방군을 두어 이곳을 지키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섬진마을 청매실농원에서 매년 3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매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매화마을에서 조금 내려오면 신기마을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신기마을은 원래 사평촌·삼당촌 또는 어시랭이라고 불렀으나, 원동마을에 비해 새로 터를 잡아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신기(新基)라고 했다. 어시랭이란 의미는 물고기의 뺨이란 뜻으로, 이 마을 산세가 고기의 뺨처럼 밋밋하고 볼록한 형국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마지막 목적지인 섬진교가 눈앞에 있다. 남도대교 출발지점에서 섬진교까지 GPS로 19.3km 나온다. 정말 힘들다. 대부분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라 걷는 재미보다는 봄을 느끼기에 더 적합한 길이다. 그리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광양의 명소


사적 제407호 옥룡사지와 천연기념물
제489호 옥룡사 동백나무숲 길



	천연기념물인 옥룡사지 동백나무숲 사이를 걷고 있다.
▲ 천연기념물인 옥룡사지 동백나무숲 사이를 걷고 있다.

한반도 풍수를 창시한 인물이 신라 말 도선(827~898) 국사다. 도선은 신라 흥덕왕 2년에 태어나 효공왕 2년에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암 출신으로 태종무열왕의 서얼손이라는 설도 있다.


도선의 생애는 대체로 5기로 나뉜다. 제1기는 도선이 출생하여 15세까지의 유년기, 제2기는 15세부터 20세까지의 화엄 수학기, 제3기는 20세부터 23세까지의 선종 수업기, 제4기는 23세부터 37세까지 방랑수련기, 제5기는 37세부터 72세까지 입적하기까지의 옥룡사 주석기로 구분할 수 있다.


도선은 15세 때 문성왕 3년(841) 당시 교종계 10대 사찰 중의 하나인 화엄사에 들어가 중이 되어 신라 교종의 대표 종파인 화엄종에서 불경을 공부했다. 20세 때에 해탈의 한계를 언어와 문자를 초극하는 선종으로 개종해 혜철(791~861)의 문하에서 선을 수업했다. 도선은 무설지설(無說之說·말이 없는 말), 무법지법(無法之法·법이 없는 법), 즉 상황논리의 구설과 상황논리의 교리로 선의 극치를 체달함으로써 혜철의 인가를 받았다.


이후 도선은 혜철에게서 배운 표층신앙을 선종으로 하되, 기층신앙은 자생 풍수지리와 훈요십조, 지리산의 성모사, 모든 절의 산신각, 중흥사의 용왕전, 장승 등 밀교가 접목되어 불교의 일반화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도선이 마지막 입적하기까지의 37년간을 보낸 절이 바로 옥룡사다. 옥룡사는 1878년 소실되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사적지 제407호로 지정돼 있다.


옥룡사지 주변에 수령 수백 년 이상 된 동백나무가 7㏊ 면적에 7,0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2007년 천연기념물 제489호로 지정됐다. 이 동백나무숲은 도선 국사가 옥룡사의 땅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동백나무를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이른바 비보풍수다. 비보풍수는 부족한 지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균형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동백숲은 자연 1000년이 훨씬 넘었다는 얘기가 된다. 국내 최대 군락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해마다 2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동백은 4월까지 이어져 백운산의 한 지맥인 백계산(505m)을 빨갛게 물들인다.


옥룡사지와 옥룡사 동백나무숲, 그리고 인근 백운산 자연휴양림까지 걷는 길이 조성돼 있다. 이른바 백계산 ‘도선국사 참선길’이다. 동백숲 사이로 걷는 호젓한 길은 도선국사의 자취를 더듬어 걷기에 딱 좋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 알려지지 않아 보전이 잘돼 있는 것도 장점이다. 짧은 길에서부터 길게 자연휴양림까지 짧게는 2시간에서부터 길게는 5시간까지 어느 코스든 선택해서 걸을 수 있다. 원점회귀도 가능하다. 천 수백 년 된 동백숲과 천 수백 년 된 절의 흔적을 되새기며 길을 걸어 보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섬진강100리 테마로드 개념도
▲ 섬진강100리 테마로드 개념도

 

탐방 가이드


교통 섬진강100리테마로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광양보다는 하동터미널에서 접근이 훨씬 수월하다. 서울에서 하동으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 → 대전 → 대전통영고속도로 → 함양 →진주 → 남해고속도로 하동IC로 19번국도로 가면 화개장터와 최참판댁 앞으로 지나간다. 또는 경부고속도 → 천안논산고속도 → 호남고속도 → 익산포항고속도로 →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타다 냉천IC에서 하동 방면으로 좌회전한 다음, 구례로를 따라 19번국도로 계속 가면 화개장터와 최참판댁 앞으로 지나친다. 광양은 19번국도를 타다 남도대교를 건너 861번 지방도 따라가면 다압면 매화마을 입간판이 커다랗게 나온다.


숙식 광양(지역번호 061) 매화마을이 있는 다압면의 민박은 평촌마을(772-5629), 동동마을(772-3898), 서동마을(772-3569), 염창마을(772-2482) 등에 문의하면 된다.
하동(지역번호 055) 화개면을 중심으로 있는 민박집은 지리산흙집세상 (019-268-9165), 산여울(883-0509), 통나무산장(883-1805)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