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 遺跡 /山寺 情報

慶山 經興寺

초암 정만순 2019. 3. 12. 10:55




慶山 經興寺 






소재지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모골길 196-55

                               

                        

                     
                                

예로부터 무병장생를 의미했던‘십장생(十長生)’은 우리네 일상생활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특히 그 중 학(鶴)은 우리의 풍수와 접합해 사찰의 배치조건과도 깊은 연관성을 지니게 되었다.

학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도도한 기상과 높은 생존력을 의미한다고 하니 학이 지닌 풍수와 관계된 사찰은 그 사세와 밀접한 관련성를 가지고 있다 하겠다.

동학산 경흥사는 이러한 학과 연관된 풍수를 지니고 있는 사찰이다.

동학산은 학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경흥사는 학의 부리에 해당하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거기다 학의 서기(瑞氣)를 막기 위한 병풍산이 건너편에 있어 경흥사는 외부와도 차단된 지형적인 특성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특히 경흥사는 학의 도도한 기상을 닮아서인지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義僧軍)들이 이 곳에서 최초로 훈련해 전장에 나가 용감히 싸웠으며, 또 사찰의 규모 역시 대단했다고 한다        

                    

    동학산(動鶴山)은 학(鶴)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산자락의 사찰 경흥사(經興寺)는 학의 부리에 해당하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현재 경흥사에 남아 있는 고승의 부도들과 동학산 언저리에 있는 옛 절터에서 초석과 석축 등이 발견되는 것을 볼 때 사찰의 규모가 웅대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경흥사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을 격퇴하기 위한 승병들의 훈련공간이었다.

    사적비의 내용에 의하면 서산대사, 영규대사, 사명대사가 이곳에 머무르면서 700~800명의 승병을 훈련시켰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경흥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훈련시켰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다.

    여기에 6·25전쟁 전후의 사회적 혼란기에 문화재 도난, 도굴 등으로 인해 사찰은 점차 피폐해졌다.

    근년 사세 회복노력에 힘입어 대웅전, 명부전, 독성전, 산령각, 종각 등 대부분의 불사가 마무리되었다.

     대웅전은 1993년에 건립되었다.


    경흥사 대웅전                                          


    부도 · 비석

    경흥사에는 예로부터 부도가 많아 경내 동쪽의 구릉지를 지금도 ‘부딧골’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한때 경흥사에서 수행한 옛 스님들의 부도 36기가 보존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부딧골 일대를 모두 들추어 황폐지로 만들면서 부도들을 200~300미터 아래의 계곡으로 밀어냈는데 광복 이후 신도들이 그중 일부를 수습해 부도 6기와 깨진 비석 조각 1기를 봉안해 이 자리에 모셔놓았다.

    사찰 입구에 보이는 비석들은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경흥사 사적비, 재윤스님 행적비, 경흥사 법당 신축기, 경산시장 최희욱 공덕비, 경산군수 이상우 공덕비 등 모두 5기이다.


    경흥사 사적비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명부전

    경흥사의 옛 대웅전인 명부전은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경흥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명부전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뒷벽 불화 뒤에 일본 국장(國章)을 그려넣어 일왕과 일본국을 경배하도록 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광복 후에 절에서 그것을 제거했다고 전한다.

    명부전(옛 대웅전)

    慶山慶興寺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경흥사 목조삼존불좌상

      경북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 경흥사 소재. 조선시대의 불상. 본존불 높이 158㎝, 협시보살상 높이 126㎝.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6호. 1644년(인조 22)에 조성되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김지용) | 한국학중앙연구원

      개설

      보물 제1750호.

      경흥사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으로,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造成發願文)과 대좌 묵서명 기록을 통해 1644년 조각승 청허(淸虛)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6호에서 2012년 2월 보물 제1750호로 승격되었다.

      내용

      항마촉지인을 한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좌상이 협시하고 있는 삼존불이다.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1635년부터 선승들이 동학산(動學山) 남쪽 기슭에 새로운 사찰을 창건하고자 도모하였고 1644년 영규(靈圭)에 의해 경흥사가 중건되었다고 한다.

      같은 해 수화원 청허(淸虛)를 비롯해 영색(英賾), 현욱(玄旭), 정혜(淨惠), 신웅(信雄), 나흠(懶欽), 영이(榮伊) 등 7명의 조각승이 석가삼존상을 조성하였다.

      특징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등신대의 규격에 단정하면서도 위엄있는 모습이다.

      삼존상은 여래와 보살의 도상적인 차이는 있지만 신체비례와 얼굴, 옷주름 표현 등에서 매우 유사하다.

      어깨와 무릎이 넓어 당당하며, 방형의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 꽃잎모양으로 접은 승각기, 단정하면서도 간결한 옷주름 등이 특징이다.

      석가여래상은 변형편단우견식 대의에 항마촉지인을 결하였는데 왼쪽 손의 엄지와 중지를 구부렸다.

      낮은 육계에 중간계주와 중앙계주가 있으며 얼굴 표정은 엄숙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이다.

      좌우 보살상들은 화려하게 장식된 큰 보관을 쓰고 어깨에 늘어뜨린 머리카락(보발), 편삼을 입은 변형통견식 대의에 수평의 승각기로 석가여래와 차별화되었다.

      두 손은 무릎에 대고 엄지와 중지를 구부렸는데, 우협시보살은 손바닥을 밑으로 향한 반면 좌협시는 손바닥을 위로 향하여 다른 형식을 보인 점이 독특하다.

      현황

      조각승 청허는 원오(元悟)의 차화승으로 1605년 경상남도 김해 선지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충청남도 논산 쌍계사 대웅전 목조삼존불좌상, 전라북도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 등을 제작하였다.

      또한 각민(覺敏)의 차화승으로 1606년 충청남도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1614년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대웅전 불상에 참여하였다.

      즉 청허는 17세기 초엽 충청도, 전라도 지역을 거점으로 원오와 각민에게 불상의 조각 기술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640년 경상남도 거창 심우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690호) 제작에 수화승으로 등장하며 경흥사 불상과 1645년 경상북도 상주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635호) 등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경흥사 불상 조성발원문에는 청허를 전라도 금산사 화원이라고 밝혀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였음도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1644년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7세기 전반기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청허에 의해 조성되었다. 등신대의 크기에 위엄과 온화함을 갖춘 얼굴, 작은 이목구비, 균형 잡힌 비례와 간결한 옷주름에서 17세기 전반기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활동했던 청허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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