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미친 사람''나무 인간''나무병 환자'.
강판권(51) 계명대 사학과 교수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들이다. 그는 나무를 보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나무와 친구가 되기 위해 캠퍼스에 있는 나무를 모두 세어 보기도 했다. 비 오는 날 학생들과 교정을 순례하며 나무 아래서 수업도 했다. 생물학적 관점이 아니라 인문학적 관점으로 나무 이야기를 풀어 낸 책도 10권 이상 펴냈다. 나무를 향한 그의 열정은 시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이성복 시인은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1-나무 인간 강판권'이라는 시를 통해 '어쩌면 그는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려/ 우리에게 온 나무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무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가 나무가 된 사람'이라고 강 교수를 표현했다. 나무에 대한 그의 사랑은 상사병 수준이다. 생각과 행동의 출발점이 나무이며 종착점도 나무다. 자신을 지칭하는 나무 이름(쥐똥나무)도 갖고 있다. 하루 종일 나무를 생각하고 나무를 공부하며 나무에 대한 글을 쓰는 강판권 교수를 만나 괴짜 같은 삶을 궤적을 들여다 봤다.
◆호구지책(糊口之策)
강 교수는 중국 청나라 역사를 전공한 사학자다. 청나라 말 양무운동을 주도했던 이홍장 연구로 계명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청나라 농업사를 주제로 경북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나무를 연구하는 사학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강 교수가 처음부터 나무 연구를 했던 것은 아니다.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나무에는 관심 조차 없었다. 그가 나무를 연구하게 된 이유는 유쾌하지 않다. 하는 일마다 어긋나는 인생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나무 공부였기 때문이다. 강 교수의 대학원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중간에 전공을 바꾸는 바람에 3년 만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진학도 순탄치 않아 4년 만에 경북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우여곡절 끝에 박사과정에 들어갔지만 학위를 받는데 다시 6년 6개월의 시간을 더 소비해야 했다. 1999년 어렵게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진로는 불투명했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위기감이 몰려왔다. 시간강사 수입으로는 생활이 안돼 빚은 늘어갔다. 자신을 바라보고 사는 아내와 두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강의가 없는 시간이면 팔공산 성전암에 올랐다.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어서 사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성전암을 찾았습니다. 절 뒤로 펼쳐진 소나무를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입니다."
강 교수는 1년 동안 성전암 숲길을 오르 내리며 인생을 전환시킬 해법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그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바로 산림학자 차윤정 씨가 쓴 '신갈나무 투쟁기'였다. 그는 신갈나무를 의인화해 신갈나무의 치열한 삶을 기록한 책을 읽으며 자신이 쌓은 인문학적 지식과 나무 이야기를 묶어 책으로 내면 호구지책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시골 출신이라 나무와 함께 자랐습니다. 친숙한 대상인 나무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고 조금만 공부하면 책을 쓸 수 있겠다 싶었죠.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평생을 해 온 것이 공부였기 때문에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달려 들었습니다."
◆열공
강 교수는 우선 나무 이름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식물도감을 사서 읽어 나갔다. 나무에 인문학적 지식을 불어 넣기 위해 각종 사료도 뒤졌다. 느지막이 시작한 나무 공부가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적성에는 맞았다. "나무에 관한 책을 읽다 궁금한 것이 나오면 관련 서적을 찾아 읽는 방법으로 공부를 했는데 지겹기는 커녕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나무를 알아 갈수록 나무에 대해 무관심한 채 살아 온 제 삶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강 교수는 나무 공부가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자신도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추측해 보면 환경적인 요인과 생활의 절박함, 호기심 강한 성격 등의 3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이 나무 공부가 재미 있었던 원인으로 해석됩니다. 시골에서 나무를 늘 접하며 자랐기 때문에 내면에 나무에 대한 사랑이 잠재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먹고 사는 문제와 한 가지 일에 푹 빠지는 성격의 영향을 받아 밖으로 표출이 된 것 같습니다."
그는 나무를 보기 위해 전국을 다녔다. 주말은 당연히 나무 보러 가는 일에 투자를 했고 평일에도 시간이 나면 차를 몰고 나무를 찾아 떠났다. 그런 노력 덕분에 전국의 유명 숲은 모두 가 봤다. 강 교수는 나무 공부를 시작한 뒤에도 시간강사의 미래는 불투명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열정을 바쳐 탐구해야 할 대상과 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나무 세기
2000년 강 교수는 계명대 성서캠퍼스(163만9천여㎡)에 있는 나무 수를 모두 세었다. 구획을 나누어서 약도를 그린 뒤 약도 위에 나무를 일일이 표시하는 방법으로 나무를 세는데 꼬박 1년을 투자했다. "사람들은 제가 그 많은 나무를 다 세었다고 말하면 믿지를 않습니다. 그때 만든 자료를 보여주면 그제야 혀를 내두릅니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나무가 몇 그루냐고 묻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도 궁금해서 몇 그루가 되는 지를 물었다. 강 교수의 대답은 한 그루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무를 센 뒤 모두 자신의 마음 속에 옮겨 심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그는 캠퍼스 어디에, 무슨 나무가 있는지를 훤히 꿰고 있었다. "제 마음 속에는 나무를 옮겨 심으면서 그려 놓은 나무 지도가 있습니다. 나무 지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학생들과 가끔 내기도 합니다. 제가 어디에 무슨 나무가 몇 그루 있다고 말을 하면 학생들이 깜짝 놀랍니다."
강 교수가 나무를 세기 시작한 이유는 나무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나무를 세면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겉으로 보면 다 같은 나무로 보이지만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다릅니다. 그리고 세어 보면 생각 이상으로 나무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무를 세면서 나무와 생명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강 교수는 7년 전부터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나무 세기 숙제를 내주고 있다. 성리학에서 나오는 '격물치지'(사물을 바로 봄으로써 그 이치를 깨닫도록 하는 것)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강 교수에게 나무는 '격물치지'에 좋은 학습 교재다. "사물을 이용한 공부법은 우리 선조들이 해 오던 것입니다. '논어' 자장편을 보면 '배우길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그 안에 인이 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나무를 세라고 한 것은 캠퍼스를 오가며 수없이 마주치는 나무야 말로 가까이 생각하기에 좋은 대상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강 교수는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를 보면 나무를 세면서 자신이 느낀 점을 학생들도 같이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리포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은 늘 가까이 있지만 생각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던 나무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나무가 품고 있는 자연의 이치를 아는 것이 격물치지의 시작입니다. 학생들이 나무 세기를 통해 격물치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낍니다."
◆통섭(統攝)
강 교수는 나무에서 인문학의 원리를 발견한다. "나무는 성실합니다. 게으름을 피워서는 계절에 맞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중용'에서 말하는 성실입니다. 또 나무에서 변화의 원리인 역(易)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무는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줍니다. 천년을 살아온 은행나무와 푸르게만 보이는 소나무도 가까이서 바라보면 늘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혁신하며 성장해 가는 존재가 나무입니다."
강 교수는 나무를 알기 위해 나무를 세는 단계를 너머 나무와 인문학을 결합시킨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가 나무와 인문학의 통섭을 위해 기획한 것 중 하나가 나무로 역사와 문화를 읽는 것이다. 강 교수는 2002년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를 출간한데 이어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차 한잔에 담은 중국의 역사''나무열전''최치원 젓나무로 다시 태어나다''나무사전''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등의 책을 냈다. 모두 나무와 인문학의 경계를 허물려는 노력의 산물들로 강 교수는 그 공로를 인정 받아 2003년 민음사가 제정한 올해의 논픽션상 대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선정한 간행물문화대상(저작상 부문)을 수상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2005년 강 교수는 오랜 시간강사 생활을 청산하고 모교 교수가 됐다. 나무와 인문학의 통섭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지 않았다면 꿈조차 꾸지 못했을 일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나무 공부가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준 셈이다. 이를 두고 새옹지마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교수라는 자리는 나무가 내게 준 선물입니다. 나무는 제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일과 취미는 분리되어 있지만 저는 학문과 생활, 취미 등 모든 것이 나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무와 맺은 인연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는 나무를 사랑하며 살다 나무처럼 되는 것이 꿈이라 했다. 나무가 되기 위해 나무에 한 발 더 다가서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할 생각도 밝혔다. "앞으로 연구해야 할 주제를 모두 잡아 놓았기 때문에 부지런히 공부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동안 해 왔던 글쓰기의 연장 선상에서 소나무, 회화나무, 배롱나무 등 나무 한 그루를 통해 문화와 역사를 조명한 책을 낼 계획입니다. 또 생태학적 관점에서 숲과 상상력에 대해서도 풀어낼 생각이며 나무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문학과 식물학의 아우르는 분야도 개척해 보고 싶습니다."
강 교수는 나무 이야기만 나오면 화색이 돈다. 입에서는 백과사전 같은 나무 지식이 쉴새 없이 흘러 나온다. 어려운 고전도 나무 이야기에 빗대 풀어내는 그의 설명을 듣다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인터뷰를 마치고 캠퍼스로 나오자 나무가 달라 보였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가던 길에 만났던 나무들은 의미 없이 서 있는 나무에 불과했지만 강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인문학적 원리와 인생의 이치를 품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존재로 다가왔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겸허히 살아가는 자존의 삶
"나무교 교주로서 여수동락(與樹同樂)하고 싶다"
(대구=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나무는 묵묵히 서 있다. 그리고 물끄러미 세상을 바라본다. 깊은 골짜기도, 캄캄한 밤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오늘도 수도승처럼 여여한 자세를 견지한다.
천지를 뒤흔드는 폭풍우도, 뼛속 깊이 파고드는 한파도 나무의 기상과 끈기를 쉽게 꺾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무를 가까이 대하면서도 그 실체를 잘 모른다.
한낱 식물로 여길 뿐 그 삶과 생명력이 우리 인간과 얼마나 닮았는지 알려 하지 않는다.
4월 5일 식목일이면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으로 그치기 십상. 신록의 달을 맞아 그 미덕과 교훈을 새겨보면 어떨까.
계명대 사학과의 강판권 교수(55). 그는 나무를 화두로 열정적인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이른바 '수학'(樹學)이다. 생태사학자로서 나무를 인문학 차원에서 정립한 수학으로 독자적 자기 정체성을 굳혀가고 있다.
지난해 여름 출간한 저서 '나무철학'처럼 나무의 생태학을 인문학에 접목함으로써 학문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것.
강 교수가 나무와 벅찬 해후를 한 건 경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던 1999년이라고 한다.
경남 창녕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나무와 함께 자란 그였건만 나무에서 인문학의 곧은 줄기를 발견한 건 바로 마흔이 다 돼서였다.
이후 10여 년 동안 차나무, 뽕나무, 은행나무, 전나무, 소나무 등 나무를 통해 세계사와 문화를 정신없이 읽어나갔다.
나무에 비춰보니 중국의 고전도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강 교수가 지금까지 낸 책은 '나무열전', '중국을 낳은 뽕나무', '은행나무', '최치원 잣나무로 다시 태어나다' 등 18권. 지난해 '나무철학'에 이어 이번 4월에는 '회화나무'를 펴냈다. 물론 나무 관련 논문도 쉰 편에 가까울 정도로 많이 발표했다.
"회화나무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교사회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나무예요. 그러나 지금까지 그 누구도 회화나무를 문화사적으로 정리하지 않았죠. 회화나무는 중국 주나라시대부터 청대까지,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창덕궁을 비롯해서 성균관, 향교, 나아가 지방의 서원과 성리학자들의 공간인 재실과 정자 등지에 심었습니다.
이처럼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이 나무가 학자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책에서는 이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회화나무를 중국의 사례와 우리나라의 사례를 문헌은 물론 현장을 통해 정리했습니다."
강 교수가 나무 관련서를 줄기차게 펴내는 것은 '사료화'(史料化) 때문이다.
특히 이 같은 작업이야말로 아직 현장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자료를 '사료화'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그는 이 작업을 '현장의 사료화'라고 부른다.
학자는 모름지기 기존의 사료를 단순히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료를 진취적으로 생산하는 자라야 한다는 것.
젊은 시절 강 교수는 먹고 살기 위해 나무에 기대었다.
인문학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인문학을 새롭게 해서 밥을 찾기 시작했다.
인문학의 위기가 그의 삶을 짓누르고 있을 때, 인문학자로서 위기를 탈출하려고 나무와 조우한 것이다.
"그래서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인문학과 나무를 결합하는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논문 외에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책은 결코 쉽게 간행할 수 없었어요.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나무 사진도 필요했고,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글쓰기도 만만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길이 없던 터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어요. 반복해서 글을 썼고, 사진도 직접 찍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에서 원고를 출판사에 메일로 보낸 후 결과를 기다려야 했던 그였다.
그런데 반응이 의외로 좋았단다.
책을 준비한 지 1년 반 만에 첫 책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가 세상에 나왔고 이어 후속서들이 해마다 쏟아졌다.
그는 첫 책 출간으로 단박에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나무는 그에게 '목木숨'이었다.
나무가 자신의 목숨을 결정한 생명체임을 깨달았고, 나무를 통해 가장 기본적인 생존에 필요한 '밥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통절히 깨달았다.
"나무들은 결코 자신의 삶을 다른 나무들과 비교하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그동안 끊임없이 제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며 살았어요.
사람도 나무처럼 살아갈 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알았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이 지니고 태어나는 타고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살아갈 때 행복하다고 봐요."
강 교수는 나무의 삶이 자신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는다.
나무가 주는 가르침은 매우 컸다.
나무는 위로 향하면서도 옆으로 몸집을 불리는 걸 게을리하지 않는다.
시간의 삶과 공간의 삶, 즉 종적인 삶과 횡적인 삶을 동시에 살더라는 것이다.
나이를 위로 먹는 게 아니라 옆으로 먹는 나이테는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어떤가. 대부분이 시간의 삶에 집중한 나머지 종적인 삶인 나이에 집착해 종횡의 삶이 갖는 균형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제가 나무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익을 다투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자신의 문제를 대부분 스스로 해결하기 때문에 이익을 다툴 일이 없어요.
예컨대 겨울의 소나무는 갈잎나무들과 경쟁할 이유가 없지요. 그저 혼자서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덕 있는 자는 외롭지 않다'(덕불고 필유린ㆍ德不孤 必有隣)는 공자의 말처럼 군자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아요. 혼자라 생각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기 때문이지요.
소나무는 겨울에 혼자 서 있어도 두렵지 않기에 외롭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촘촘한 나이테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강조한다. 얼굴의 주름을 보면서 한숨짓기보다는 주름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이를 먹어가며 다른 존재들에게 베풀면서도 자신의 성장과 성숙을 거듭하는 것처럼, 인간 역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남에게 많이 베풀면서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어요.
매일 위로 성장하면서 옆으로 나이를 먹는 나무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행복합니다."
강 교수는 스스로 '쥐똥나무'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별명인 셈. 책의 서문 등에서 자신의 이름 '강판권'과 별칭 '쥐똥나무'를 지기지우처럼 나란히 붙일 정도다. 하고 많은 나무나 풀을 놔두고 왜 하필이면 쥐똥나무일까? 그의 설명을 들으니 색다른 재미가 있다.
"제 나무 이름으로 쥐똥나무를 고른 것은 나와 닮은 부분이 아주 많아서입니다.
똥만큼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것도 없지요.
동물은 배설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쥐똥나무의 이름 역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소중한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 우리 조상들은 아주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기 위해 우회적으로 '개똥이' 같은 흔한 이름을 붙이곤 했는데, 식물학자들이 가장 흔한 '똥'을 나무에 이름 붙인 것도 바로 쥐똥나무를 아주 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강 교수는 "떨기나무 중에는 독립수로 살아가는 나무도 있지만 여러 나무가 더불어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자신도 사람은 물론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길 꿈꾸며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식목일이 있는 4월을 맞는 소회를 물어봤다.
이에 그는 "식목일이 있고 많은 사람이 나무에 관심을 갖는 달"이라면서 "하지만 여전히 나무를 생명체로 바라보지 않고 단순히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해 마음이 무척 불편하다"고 토로한다.
물론 생태사학자로서 나무를 인문학 차원에서 정립한 수학을 학문적으로 더욱 체계화하고 싶은 게 여전한 꿈이다.
그간의 작업은 물론 앞으로의 작업도 수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라는 것.
이 작업과정에는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책, 나무로 고전을 읽는 책, 한 그루의 나무로 성리학을 이해하는 책을 비롯해 대한민국 전역을 생태로 읽어보는 '대한민국 국토실록' 등도 포함돼 있다고 귀띔한다.
그가 창안한 독창적 용어 '여수동락'(與樹同樂)처럼 나무와 더불어 세상을 겸허하면서도 자존감 있게 살고 싶다는 거다.
"나무는 자기 삶을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그럼으로써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며 세상과 소통하지요.
책 또한 누구보다 저 자신을 위해 쓴답니다.
종교 중 최고의 종교는 '나무교'라고 봐요. 저는 그 교주 중 한 사람이고요.
물론 누구나 나무교의 교주가 될 수 있습니다.
나무를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요. 진정한 나무교에는 오로지 교주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