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巨樹 保護樹 記念物/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서상돈과 히말라야시더

초암 정만순 2018. 9. 11. 19:05



서상돈과 히말라야시더




 

 

 

 



# 히말라야 시더에 살아 숨쉬는 애국魂


노거수(老巨樹), 즉 오래된 나무나 큰 나무는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유산 중에서도 특별히 생명이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노거수는 그 자체가 고귀한 생명체이지만 자라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노거수 가운데 누군가에 의해 심어진 나무(수식목·手植木)들이 있다.

나무 전문가 이정웅 씨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식목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이정웅 씨는 대구시 녹지과장, 대구가톨릭대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 달구벌 얼 찾는 모임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팔공산을 아십니까’ ‘나의 시랑 나의 자랑 대구’ ‘대구가 자랑스러운 12가지 이유’‘푸른 대구이야기’ 등이 있다.


대구의 1907년은 매우 특별한 해였다.

 서상돈 선생 등 지식인들이 2천만 동포가 3개월 동안 금연을 통해 절약한 돈을 모아 나라가 진 빚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고 제안한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해이다.

또 대구를 다녀간 프랑스의 지리학자 바라(Charles Louis Varat·1842~1893)가 중국의 북경성 못지않게 아름답다고 격찬했던 대구 읍성(邑城)이 철거되었던 해였기 때문이다.

전자가 ‘우리 민족의 강렬하고 자발적인 애국정신이 발휘된 국권회복운동’ ‘대구 사람들의 진취적 개방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등 시민들의 자긍심을 드높인 일이라면 후자는 성곽도시 대구를 파괴한 일이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손색이 없을 대구 읍성을 친일파 군수 박중양(朴重陽`1874~1955)이 흔적도 없이 파괴시켰다.

대구가 널리 알려진 것은 신라 제31대 신문왕(681~692)이 대구로 천도(遷都)하려 했던 일과 임란 후 경상감영(監營)이 설치되고 나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구가 전 국민에게 크게 알려진 계기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고부터이다.

남녀의 차별이 극심했고, 반상(班常)의 차이가 엄격했던 시절, 성별과 연령, 신분의 귀천을 가릴 것 없이 민족 전체가 참가한 국채보상운동은 전 국민의 자랑거리이자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대구 사람이 주도한 일이다.

대구시에서는 국민운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조성하고 100주년을 맞은 2007년에는 주창자 서상돈과 김광제 두 분을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또 ‘기념우표발간’ ‘국제학술대회 개최’ ‘흉상건립’ ‘기념음악회 개최’ ‘금연운동 전개’ ‘관련 유적 답사’ 등 다양한 행사를 펼쳤다.

그러나 100년 전 대서특필했던 서울의 주요 일간지들은 단 몇 줄의 기사로 취급해 지역민만의 잔치(?)로 끝나 몹시 아쉬웠다.

더 나아가 국채보상운동의 산실(産室)이었던 광문사(廣文社)마저 헐려 아쉬움은 더 컸었다.

대구의 역사적인 건물 중 사라진 것이 어디 이 건물 한 곳뿐이랴만 100주년 기념행사를 눈앞에 두고 그것도 기념관을 새로 짓는 등 후속 계획을 마련하고 있으면서도 있는 것조차 보존하지 못했다.

또 운동의 주역이었던 서상돈(1850~1913) 생가도 헐린 상태에서 1세기를 맞았다.

다만 ‘달구벌 얼 찾는 모임’에서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장차 지역사회에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과 함께 국채보상운동 관련 유적지, 즉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광문사 옛터-시민회관 광장을 둘러보며 운동의 의의와 후손인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 등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을 뿐이었다.

행사가 끝난 후 대구의 골목문화를 새롭게 조명한 책 ‘신택리지’로 시민들의 큰 관심을 끌었던 ‘거리문화시민연대’의 권상구 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책 발간 후 시민들의 골목문화에 대한 관심을 충족하기 위하여 답사를 실시하는데 하루쯤 협조해 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그날 답사는 골목보다 도심지에 있는 노거수가 중심이었다.

계산성당에 있는 이인성나무 등 몇 나무를 보고, 마지막은 천주교 대구교구청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서상돈 선생이 직접 심은 나무였다.

10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하면서 묘소와 생가(生家)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이 컸었는데 좋은 사료를 지척에 두고도 몰라서 못했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대구 가톨릭의 심장부인 교구청사 입구 계단 양쪽에 크기와 굵기가 비슷한 히말라야시더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고, 그 밑에는 서상돈 수식(手植)이라고 쓴 표석이 있었다.

서상돈 선생은 나라를 위한 애국자이자, 가난한 사람을 위해 식량을 무상으로 내놓은 사회사업가로,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교를 설립한 교육자로, 상공회의소의 전신인 대구민의소를 설립한 경제인으로, 계산성당을 짓는 데 거금을 지원하고, 교구청 일대 3만3천여㎡(1만여 평)의 땅을 희사한 신앙인으로 한 시대를 참으로 다양하게 살다 간 인물이다.

그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것은 이제 이 나무뿐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특히 천주교가 대구에 뿌리를 내리려는데 크게 기여한 그였기에 교구설정 100주년을 맞는 2011년은 매우 특별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에는 백향목(柏香木)이라 하여 구약성서에 무려 70회나 등장하는 성스러운 나무다.

백수의 왕이 사자(獅子), 풀의 왕이 파초(芭蕉)이듯이 수목의 왕(王)으로 대접받는 나무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전정을 해 다양한 모양으로 키울 수 있고, 사철 푸른 상록수이다.

병충해 피해도 적고, 흉한 곳을 가리는 차폐(遮蔽)에도 알맞아 조경수로 각광받고 있다.

더욱이 대구지역 풍토에 잘 맞아 동대구로 등 주요 도로의 가로수로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